행복한 고물상 - 개정판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비좁은 방 두 칸에 아홉식구가 피난살이와 같이 살았던 지난 시절,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해 보니 지난 시절을 말할 때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그때의 삶은 단순소박했다.기계화,도시화도 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인심도 그리 각박하지 않았다.그 대표적인 예가 품앗이였고 잔치 및 제사가 있는 집에서는 부르기도 하고 손수 만든 음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새해에는 나이가 칠십이 넘은 분들에게 세배를 다니기도 했다.그때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고 연례행사인 줄 알고 지냈는데 시간이 흐르고 시대와 사회의 구조,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바뀌어 가면서 어린시절 겪었던 일들은 이제는 과거지사로 깊게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196,70년대에는 농촌이든 도회지이든 지금과 같이 각박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비포장도로,구불구불 이어지는 고샅길,초가집,문화주택 등이 끝없이 이어지고 나이드신 할아버지는 망건을 쓰시고 할머니들은 비녀로 머리결을 마무리 하신다.아버지께서는 오래된 이발관에 가셔서 바리캉으로 머리를 다듬으시고 어머니께서는 동네에서 (개인적으로)파마를 잘하는 아주머니에게 파마를 하고 오시며 넉넉한 미소를 지으신다.산과 들,길게 이어진 초가집들 그리고 논과 밭으로 부지런히 일을 나가시는 이웃 농부들,길고 좁은 비포장도로로 학교로 향하던 내 또래의 벗들 모두가 선의의 경쟁은 했어도 지금과 같이 피튀기는 경쟁은 없었다.

 

 <연탄길>로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이철환작가의 유년시절을 그린 <행복한 고물상>을 읽으면서 느끼는 점은 정겹고 인정 많던 시절이 다시 올까 싶은 추억이 묻어 나는 글이다.작가의 아버지께서는 고물상을 하셨다고 하면 내 선친은 양은 그릇 장사를 하셨다.본가를 떠나 5일장이 서는 시골로 아예 어머니와 새살림을 차려 그곳에서 몇 년간을 고생하셨다.정해진 장날을 준비하셔서 아침 일찍 아버지는 앞에서 어머니는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당기시면서 물건 팔 준비를 하셨다.나는 방학 때가 되어야 부모님이 계시는 곳을 찾아 뵙는데 방 한 칸에 좁은 부엌 그리고 새로 들여 온 양은 그릇이 방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입심 좋고 사귐성이 좋으신 아버지는 호객 행위를 구성지게 잘 하셨다.점심은 리어카 옆에 모닥불을 피어 놓고 밑반찬과 간단한 찌개로 때우시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그릇을 파셨다.장사가 잘 되는 날도 있었고 잘 되지 않은 날도 있었는데,아버지께서는 술을 너무 좋아하셨던 것이 뒤늦게 병을 얻으셨던 것 같다.

 

 개발되기 전의 서울의 길음동의 모습을 그려 놓은 이 글은 비만 오면 땅은 질척거리고 병이라도 나면 하루를 공치기 때문에 생계도 커다란 지장이 온다.그런데 당시의 부모님이나 아이들은 각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일이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면서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해내려 하지 않고 순명을 지키려 했던 것으로 보여지며,아이들도 공부,공부에 매달리지 않고 놀 때 마음껏 놀고 숙제가 있으면 열심히 숙제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은 건강한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물론 돈에 쪼달리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도 많았지만 시대적인 분위기,사람 사는 모습이 지금과는 정반대일 정도이다.

 

 지금은 눈을 감아야 그 유년시절이 온전하게 보인다.삶이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던 것도 많았다.특히 밤에 재래식 화장실(치칸)에 가는 것,내일 모레가 중간.기말고사인데 일손 도와 달라고 강청을 할 때,TV가 없어 남의 집으로 TV를 보러갈 때 등이다.시간이 흐르면서 물질문명의 혜택도 집안에 들여지고 나이가 들면서 시골집을 팔고 도회지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시골에서 보낸 시간이 30여 년이 되기에 도회지의 삶은 아직도 낯설어서 정이 들지 않는다.할아버지 묘가 시골 산에 있기에 유년시절의 시골동네를 잠깐 들르게 되면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고 어쩌다 마주치는 노인들은 이제 백발이 되어 내가 먼저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알아 보지를 못할 정도의 격세지감을 느낀다.시간이 멈춰 영원히 그대로일 것만 같았던 유년시절의 꿈은 어느덧 퇴색되어 가고 남은 것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의 무게를 하나 하나 풀어 내어 맑고 건강한 내일을 오래도록 간직해 보고 싶다.유년시절 내게 안겨 주었던 천진무구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그리고 넉넉한 인심과 사리가 밝았던 어른들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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