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어른 -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울지 않는 아이가 우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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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에서 예정한 일은 없는데,지내 놓고 보니 예정에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그러면 우연찮게 발생했던 일쯤으로 해석하면 될 것인가.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묘하기만 하다.지금 나와 사는 아내도 함께 살기로 예정한 일은 아니었는데,지금 돌이켜 보니 예정에 없던 일로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사람과의 만남과 일과의 만남은 계획을 세우고 궁리를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떠한 인연의 끈으로 나와 타자,사물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오묘한 인력(引力)의 법칙과 같은 감각마저 들게 한다.

 

 에쿠니가오리작가는 이제 내게는 조금씩 친숙해져 간다.그녀가 남긴 몇 편의 에세이를 통해 그녀의 문체를 알게 되었다.이제 오십이 된 그녀는 아직도 청순한 소녀와 같이 맑고 감성어린 화법을 자주 소곤거린다.심오하고 복잡하고 머리를 써야 할 내용은 없다.그녀가 삶의 과정에서 부딪히고 만나고 느꼈을 소소한 소재들을 마치 밤하늘 별과 달님에게 하소연하듯 있는 그대로 주저리 주저리 토해낸다.마치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만족스러운 사랑을 받지 못해 억울하다는 심경으로 말이다.여자는 남자로부터 사랑을 먹고 사는 생물이라는 것은 나도 알지만 살다보면 여자가 원하는 데로 못해 주는 마음을 넓은 아량으로 봐주기를 바랄 때가 많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둘도 없는 사이였던 이모할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오랫동안 상심한 적이 있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모할머니 묘와 이모할머니 큰아들 묘를 다녀 오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위에는 성(시골 어른들은 언니를 성이라고 부름)묘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조카 묘가 있는 것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아 한참이나 성 묘  앞에서 실컷 울고 왔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있다.당시 할머니 연세는 칠십 후반이셨는데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시고 마음 속에 이모할머니 생각이 간절하셨던지 산비탈에 놓인 묘에 다녀 오셨던 것으로 보인다.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언 이십 년이 되어 가고 있다.내 나이도 어느덧 오십 줄이다.세월이 빠르게만 흘러간다.앞으로의 일도 중요하지만 누워 눈을 감으면 지난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웬만하면 눈물을 참는 편인데 누군가 '참 안됐다 라든지,고생만 죽도록 하고 세상을 떠났다'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남일 같이 않게 참 불쌍하고 안타깝게만 다가온다.그럴 때엔 나도 어른이 흘리는 닭똥과 같은 눈물이 눈가를 적시운다.구비지고 가파른 삶의 비탈길을 견뎌 내고 이젠 어느 정도 정상에 가까운 평지에 앉아 있는 나이인가 싶기도 하다.어머니 품과 같은 평지를 사위로 삼고 앉아 있노라니 밑에서 기어 오르는 연약한 삶의 무리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고 싶기도 하고,때론 어설프고 약삭빠른 욕망과 탐욕,거짓으로 가득찬 것들을 보면서 '쯧쯧'소리가 절로 나온다.

 

 에쿠니가오리작가는 일본의 수도 도쿄출신이다.1964년 도쿄 올림픽이 거행되던 해에 태어났으니 돈과 물질이 풍요롭던 시대에 태어난 세대이면서 육체적 고생은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일본식 된장국,치즈를 좋아하는 그녀는 좋아하는 남자가,대화가 통할 것 같은 남자와 술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뜨는 이가 가장 혐오하는 꼴불견이라고 한다.남.녀가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메너가 중요할텐데 먼저 자리를 뜬 남자는 무슨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에쿠니작가는 이 점이 못마땅하다고 하지만 만남의 횟수 및 관계의 친소에 따라서는 남자가 먼저 자리를 뜰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물론 불가피한 사정을 말하면서 양해를 구해야겠지만.왜 이 문제를 끄집어 냈을까? 읽는 내내 에쿠니작가 자신의 감정만 내세운 것은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요즘은 자신의 사후를 미리 정하기도 한다.죽으면 화장을 할 것인지,시신을 병원에 해부용으로 기증할 것인지 등이다.그런데 부부가 함께 살면서 분명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기 마련인데,유골을 병원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니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남편 옆의 무덤에 묻히고 싶다는 고민이 아름답게 들린다.생전 사이가 금슬과 같은 관계였기에 죽어 영혼이라도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이 가상스럽기만 하다.

 

 "사람은 자기 힘으로 빛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 준 사람의 열정과 마음을 받아서,그 반영으로 빛나는 거야." P228

 

 에쿠니작가는 남성 잡지 첫 연재였던 <남성 친구의 방>을 중심으로 나날의 생활과 여행,책에 얽힌 글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살아가면서 동성이든 이성이든 부모형제이든 친구이든 우정다운 우정을 쌓아 가는 삶의 행위,삶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울적하고 쳐져 있을 때 내 마음을 진실로 다독여 주고 위로해 줄 진국 같은 우정의 파트너가 곁에 많이 있다면 좋겠다.그럴려면 내가 우정을 받을 정도의 인과 덕을 많이 쌓아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닌 타인 내지 타자와의 빛나는 관계를 형성해 감으로써 삶은 결코 외롭고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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