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들의 걷기
이상국 지음 / 산수야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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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도서를 작고하신 할아버지,할머니,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보지는 못했지만 들었던 얘기를 시대적 상황과 그 분들이 어렵게 살아가던 시절을 생각하며 읽어 갔다.지금의 길은 시골 구석구석까지도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흙내음을 맡을 수 있는 길의 공간이 많지를 않다.골짜기로 들어가야 어릴적 밟고 지나가던 길의 모습이 남아 있을 뿐이다.포장되지 않은 길,오랫만에 듣는 예스럽고 그립고 추억이 묻어나는 공간적 배경이다.

 

 내가 들은 예스러운 길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들려 주시던 시집올 때의 길은 평지가 아닌 산길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고개길이었다고 한다.아직 철도 들지 않았을 열네 살,열다섯 살 소녀티가 물씬 풍기던 시절 시집으로 가기 위해 오르고 넘던 고개길에는 낭군님과 오래도록 함께 해로한다는 즐거움과 기대보다는 고된 시집살이로 점철되어 있었다.특히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일제강점기와 맞물리고 증조할아버지께서 허랑방탕 사시다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고된 삶을 인내와 끈기로 살아가야만 했다.젊은 시절 양식을 구하기 위해 땔감을 리어카에 싣고 할아버지는 끌고 할머니는 밀면서 도회지까지 걷고 걸었던 것이다.이십리(8키로) 길을 새벽이슬을 맞으며 시장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해가 중천에 달리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얼굴과 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땔감을 팔아 보리쌀과 쌀을 팔아 다시 집으로 돌아 오셨다고 한다.당시 작은아버지께서는 국민학생이었는데 아침밥을 굶고 책보를 허리에 차고 학교를 다녀 오는데 실과 같은 가늘고 긴 오솔길을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그리도 짠하다고 생전 심심하면 내게 들려 주셨다.

 

 사람이 걷지 않는 곳은 풀밭이었을 것이다.무슨 목적이었든 뭇사람들이 가고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풀들이 소금에 절인 배추와 같이 풀이 죽으면서 풀밭은 맨들맨들 길로 변했을 것이다.평지이든 비탈길이든 언덕이든 고갯길이든 길은 사람들의 두 발로 인해 생겨 났을 것이다.사람이 다니는 길이기에 길어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이렇게 길에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는 곳이다.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는 못 올 곳이기도 하는 곳이 길이다.길 속에는 다양한 의미와 에피소드가 다겨져 있는데 이 글에는 조선시대의 지식인과 선녀와 악녀,조선인이 고려의 개경을 걷기,고려 콤플렉스 탈출 등이 시대와 인물,심리묘사 등으로 잘 엮어져 있다.

 

 주로 조선시대의 예화들이 예스러우면서도 해학적으로 다가온다.과거를 보러 평지와 고개길을 걷고 또 걷던 예비생원들과 벼슬에 올라 임지로 가는 갈,금의환양하는 길,천 리 먼 길로 유배를 떠나는 일,사랑을 받고 사랑에 굶주린 여인들의 농밀하지만 종말은 비극으로 끝난 여인들의 처절하기만 한 이야기,그리고 역성혁명으로 조선이 세워지고 다시 고려의 개경을 찾아 가는 이야기,송도삼절이라 일컫는 황진희,서경덕,박연폭포 등이 차례대로 등장하고 있다.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해석을 읽다 보니 시대가 남녀간의 사랑을 가로 막았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시대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남녀간의 연애와 사랑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새삼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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