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쓰는 공간은 서재실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위엄 있고 아늑한 분위기에 잔잔한 멜로디가 샘물처럼 흘러가는 분위기라면 글쓰기에 대한 영감과 속도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손과 마음이 부산날 것이다.영혼이 맑으니 구상했던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지고 인물,사건,배경을 주제에 어울리게 탄탄하게 그려갈 것이다.글을 쓰는 작가의 작업실은 작가만의 내밀한 공간이고 삶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속칭 맨땅에서 꽃피우기와 같은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고난의 작업인 만큼 한 치의 거슬림과 장애물,그리고 번민과 고뇌가 섞여서는 아니 될 신성한 작업이 아닐 수가 없다고 본다.

 

 201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인 앨리스 먼로대표작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모두 15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첫 소설이 작업실로서 글쓰기를 갈망하는 한 여인이 글쓰기 공간을 물색하던 중 둘레를 금테로 장식한 중년 남자의 초상화를 응시하면서 글쓰기 공간으로 낙점을 찍으려 하는데 사물실 공간 주인 남자를 만나고 건물 화장실에 난잡하게 그려진 성적 묘사를 보면서 작업실로 마음이 갔던 순간들이 오싹하게 느껴지면서 사물실 주인에 대한 좋은 감정도 사라지면서 새로운 작업실을 또 다시 알아봐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앨리스 먼로작가는 아날로그 작가인듯 타자기로 '또닥 또닥' 한 자 한 자 쳐 나가면서 그녀의 글쓰기 인생을 선보이고 있다.1950년부터 15년 간 써 내려갔던 소설들이 1968년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탈고하여 지명도가 높은 갖가지 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캐나다의 <총독문학상>을 비롯하여 <길러 상>,<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오 헨리 상>,<맨 부커상> 등 수상이력이 다채롭기만 하다.

 

 15편의 글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내 능력과 수준이 미치지 못하지만 글의 전반적인 흐름과 분위기는 앨리스 먼로가 보고 듣고 체험했던 생의 전반적인 것들을 들려 주고 있다.시대가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여파가 몰아치면서 실직자가 줄줄이 밖으로 내몰리면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사고팔고(四苦八苦)에 가까운 삶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떠돌뱅이 회사의 카우보이> 그리고 이 도서의 표제인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전자는 작가의 고향인 휴런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탄탄한 자동차 회사에서 실직 당한 가장(벤 조던)이 모회사 외판원으로 나서면서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가는데 그의 딸인 소녀가 아빠의 외판원의 풍경을 수채화처럼 그대로 전해 주고 있다.불경기가 계속되다 보니 도시의 모습은 맥수지탄 꼴이 되면서 허름한 창고,자질구레한 고물상들이 비포장 모랫길을 중고 자동차로 누비며 간난한 생활을 이끌어 가는 장면이 무척 가슴을 후빈다.이유인즉 시대와 인물의 얘기는 다르지만 내 선친도 1970년대 리어카 한 대로 시골 5일장을 매일 누비면서 양은그릇을 팔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남부여대의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되어서이다.

 

 마살레스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피아노 수업 풍경을 다루고 있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훈훈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아니다.마살레스 선생님은 피아노 수업을 마치면 선물로 도서를 아이들에게 주기도 한다.그런데 피아노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마살레스 선생님이 건네 주는 도서선물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는 것이다.10년 동안 교습비를 딱 한 번 밖에 인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물 비용을 마련했을까라는 것이다.이를 두고 이러쿵 저렁쿵 갖은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나아가 마살레스 언니가 퇴직을 하고 불어,독어 과외로 벌어 들인 돈으로 선물을 사지는 않았을까라고 궁색한 추리를 하기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마살레스 선생님으로부터 살가운 애정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외부에서 데려 온 여자애의 피아노 연주에만 잔뜩 기대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는 점이다.그러니 선물과 파티 따위에 대해서 진정한 감사와 감동이 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피아노 연주,파티가 끝나고 귀가하면서 아이들은 왜 딱한 마살레스 선생님이라고 말하지 못한 걸까라고 뒤늦게 감정을 추스른다.

 

 여자로서 여성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앨리스 먼로작가는 수많은 인생 경험을 했을 것이다.여자아이로서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불만,성에 차지 않은 감정 등을 잔잔하지만 우주와 같은 품넓은 세계를 당당하게 묘사하고 있다.속삭이듯 고충을 털어 놓듯 살아오면서 다 하지 못한 사연들을 15편의 소설 속에 응축해 놓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80이 넘은 지금도 현역작가로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앨리스 먼로작가는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세인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으리라 생각한다.참고로 앨리스 먼로작가는 고(故)박완서작가와 동갑내기라는 것을 작가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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