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이 깊어지면 슬픔도 깊어지기 마련인가 보다.종교의 교리에 따라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천주교,불교의 사제,수도사,스님도 인간의 피가 흐르기에 세인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신앙이 아무리 독실해도 스스로 속으로 삼키고 억압하고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왜 사랑하고 그립고 만나고 싶은 감정이 없겠는가.종교가 신성하고 신심이 두텁다 해도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 끌리고 홀리고 떨리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해야 할 것인가.

 

 공지영작가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우상과 같은 문학의 아이콘이 아닐까 한다.그녀의 작품이 출간되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라는 방점을 찍어 가는데 공지영작가 나름대로의 특유의 문체와 입담이 독자들을 사로잡는 흡인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솔직,담백,사회참여적인 작가라는 인상이 내게는 무엇보다 공지영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늘 생각하는데,이번 <높고 푸른 사다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문제를 그리고 있어 관심을 모으기에 족했다.그것도 일반인의 사랑의 관계가 아닌 천주교 수사와 (아빠스 조카)소희와의 대담하고 외도성에 가까운 염문이 한차례 '호랑이가 장가가는' 세찬 소나기에 비유할 수 있는 슬프고 아프고 아련한 사랑의 이야기이다.그 주인공이 바로 천주교 수사인 정요한이다.

 

 정요한 수사는 경북 W(왜관)시 수도원에서 아빠스 비서수사로 봉직하고 있는 29살의 젊은이이다.그러한 가운데 아빠스의 조카 소희가 미국에서 W시 수도원으로 오면서 둘은 누가 시키지도 않은데 쉽게 통성명을 하고 말을 놓는 가까운 사이로 바뀌어 간다.연녹색의 이파리에 하이얀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날의 이화(梨花)와 같은 소희의 자태가 요한의 마음을 뒤흔들었을 것이다.요한은 사랑을 해보지 못한 쑥맥이고 숫기가 없는듯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희의 이끔에 무념무상으로 따라만 간다.요한에겐 첫사랑이 될지도 모르는데 요한은 소희를 어딘가에서 많이 보았을 것 같은 기시감에 사로잡혀 그녀와의 셀 수도 없는 데이트가 무르 익어가면서 영원히 그녀를 사랑하겠노라고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결국 그녀의 애인과의 해결해야 할 사정과 정리되지 않은 그녀의 감정으로 둘은 기약없는 이별을 고하고 만다.

 

 이 글에는 천주교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가지의 비극과 통한의 서사가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다.선교를 목적으로 독일에서 한국에 들어 온 토마스 신부와 요한이 한국전쟁 와중에 겪었던 종교적 박해와 희생,고초는 필설로는 형언키 어려울 정도이다.게다가 몇 날 며칠을 해도 끝이 없을 할머니가 겪은 사연을 통해 명분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다시 한 번 통감할 수가 있었다.하해와 같은 하느님의 깊고 숭고한 사랑에 감읍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사제,수사,신부 등이 힘없고 소외된 계층들에게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는 종교가 없는 내게도 커다란 감동을 안겨 주었다.요한의 할머니는 한국전쟁 중 피난길에서 선박의 선장실에서 아버지를 낳았다는 어렵사리 낳았다면서 오로지 믿는 천주님을 생각하면서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 낸다.

 

 아빠스님의 지시에 의해 미국 뉴튼 수도원 인수건이 불거지면서 한국전쟁 당시 마리너스 수사와 이사악 신부님,L변호사를 접견하게 된다.W시 수도원이 방대한 면적의 뉴튼 수도원을 인수하는 데에는 미리너스 수사의 힘이 컸던 것으로 보여진다.마리너스 수사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할머니와의 조우를 요한에게 들려 주는데 사랑의 인연은 참으로 고귀하고 영원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요한과 소희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 갔지만 요한의 마음 속에는 높고 푸른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이 소희에게 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우연히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요한에게 찾아 온 봄날과 같은 사랑의 속삭임은 육욕을 떠나 모든 보답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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