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루쉰의 일본 유학시절(변발을 자른 후의 모습)

 

 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 루쉰은 문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비평가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19세기 후반 저장성 샤오싱에서 태어난 그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정치판을 목격하기면서 청년기를 보내던 중 그의 진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길로 가기 위해(그의 동생도 마찬가지) 일본 도호쿠대학에 진학을 했다.학교에서의 수업시간에 보았던 '환등기'사건 일본인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인의 학살장면을 보고 그것이 구경거리라고 방관하던 중국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무지몽매한 중국인과 사회부조리를 개혁하고자 그는 문예를 통해 계몽활동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몇 년 전에 루쉰[본명 저우수런(周樹人)]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婴)이 쓴 <나의 아버지 루쉰>을 통해 루쉰의 일생과 삶의 이력을 살펴 보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일반인의 관점에서도 환등기 사건은 커다란 충격이고 의분이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그에게는 썩어 빠진 청국의 실상을 글로서나마 간접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사상가로서도 마음에 싹이 트였던 것이다.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회적 리더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해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한 루쉰은 1918년 문학혁명이 끝나면서 아Q정전과 광인일기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편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광인일기의 경우에는 피해망상광에 걸려 있는 한 중국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강박관념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비록 부랑자와 같은 모습의 주인공이지만 실상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묘사했고 당시의 중국사회가 어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작품이었다.루쉰은 1920년 이후 북경대 여자사범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고 중국 현대교육계의 거장 차이윈페이와의 교류도 있었는데 반정부 지식인에 대한 탄압으로 아내인 쉬광핑과 광둥지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청말,신해혁명,중국대장정을 목도했던 루쉰은 무지몽매한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지지대가 되어 주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계몽사상가적인 언행을 꾸준히 발표했다.이 글이 바로 그가 생전 사회와 중국인민들에게 보내는 절규와 같은 주옥같은 어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직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다. - 본문 -

 

 특히 인상적인 글은 그가 타계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죽음>이라는 글에서 그는 "장례 때 조의금을 받지 마라.","어떤 기념행사도 하지 마라".'"나를 잊고 자기 생활을 돌아보라."를 남겼다.루쉰다운 정신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대쪽과 같이 지조가 있는 분으로 다가온다.12개의 항목으로 나뉘어진 루쉰의 어록은 짧은 쪽지와 같기도 하고 시(詩)와 같기도 하지만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그는 중국사회 및 인민들에게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펜으로나마 경종을 울렸으리라 생각한다.사회는 보수라는 썩고 고인 물이어서는 아니된다.맑게 졸졸 흘러 가는 물이어야 하고 그 물이 강과 강이 만나 대양으로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또는 후학들에게 충고하는 멘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국가와 사회는 다르지만 개인의 삶에 견주어 루쉰이 남긴 어록을 깊게 참고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지침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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