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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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따라 유랑극단,어머니따라 불공을 드리고 씻김궂을 보러 따라 다니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선연하다.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대 위에 알록달록 분장한 희극인들이 연기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짙은 눈썹에 하얀 분가루를 진하게 바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권위있는 자세로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하기도 했다.실감나게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눈과 귀를 쫑긋히 하고 숨을 죽이면서 할머니와 구경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할머니 머리에는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손수건이 가려져 있고 배가 고프다고 하니 팥들어 간 찐빵을 사서 허기를 달래기도 하면서 유랑극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그리고 불교를 믿는 집안이라 사월 초파일에는 으례 절에 등불을 켜고 공양을 드리기도 하고 집안에 액운이 찾아 오면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 씻김궂을 벌이기도 했다.식구들의 앞날,죽은 조상의 한(恨)을 풀어주기 위해 내복을 사서 가지고 갔다.무당은 의식에 따라 접신의 예를 갖추고 식구들의 사주를 보면서 액운을 풀어 주고 조상의 한을 달래 주었다.

 

 

진도 씻김궂

 

 한국 전통예술문화이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살풀이춤,태평무,판소리,궂거리 등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는 토속문화이다.백성들의 애환을 달래기도 하고 신명나는 춤과 노래로 좌중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손과 발동작,목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마다가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절제된 미가 압권이다.노래,춤,장단이 일체가 되어 풀지 못한 한을 풀어 내던 한국 고유의 샤머니즘 문화이다.이러한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전통예술문화가 요근래에는 크게 각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서구의 문화와 사상이 온천지에 만연하다 보니 자칫 사라질 염려마저 없지 않아 있다.중학교 국어시간에 배웠던 조지훈시인의 <승무>는 불교적 복식에 유교적 가치관을 띤 스님의 춤사위을 애절하게 다가온다.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꼬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뻗은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냥하고

 

이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꼬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승무(僧舞)

 

 우리의 전통예술문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진옥섭저자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의 춤꾼,소리꾼들을 찾아 다니며 춤 한 사위,소리 한 소절이라도 듣고 싶어 애간장이 탄 흔적과 발품이 가상스럽기만 하다.그 예인들의 증류수와 같은 목소리,한마리 학이 되어 사뿐사뿐 걷는 발걸음,소리의 달인이 된 득음의 경지는 두 눈을 집중시키고 마음의 깊은 골짜기까지 후려치고 만다.감탄과 감동이 절로 일어난다.저자가 만났던 예인들이 나이가 들고 질병이 찾아 오면서 하나 둘씩 우리 곁을 바람과 이슬과 같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서글픔과 그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그래서 저자는 한 명이라도 더 뵙고 소리,춤의 무늬와 질감을 더 깊게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지난 시절 예인들과의 추억과 그리움,사모하는 정이 못내 아쉬어 다시 올 수 없는 시간 속을 마중 나가는 참이었다.

 

 

공옥진여사의 광대연기

 

 

 나에게는 소리와 춤으로 유명한 고(故)공옥진여사의 공연하던 기억이 선연하다.흔히 병신춤으로 널리 알려진 예인 공옥진은 신체가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의 사연을 진한 연기로 관중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대학시절 수업을 마치고 또 다른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을 이동하던 중 공옥진여사의 <병신춤>과 그녀의 찰지며 대담하기까지 한 표정과 대사에 강의받는 것은 잊은 채 표정과 말씨를 진지하게 구경했던 시간이 새롭기만 하다.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홀로 자립을 해야 했던 공옥진여사는 <심청가>를 비롯한 살풀이춤,씻김궂까지 다재다능한 분이었다.세련되지 않은 극히 자연스럽게 촌티나는 말씨에 솔직한 표현은 좌중을 울리기에 충분하다.말년 감나무를 벗하며 홀로 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공옥진여사의 춤과 소리,연기가 그립기만 하다.

 

 소리꾼,광대,춤꾼 모두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적 신분이 그리 높지는 않다.지금이야 직업의 귀천이 사라져서 이들에 대한 선입견과 시선은 바뀌었지만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해방직후에 활동했던 그들은 부부의 연을 끊고서라도,돈을 되지 않지만 하늘이 내려준 천부적인 '끼'를 놓치고 싶지 않아 집을 뛰쳐 나오고 세상을 방랑하면서 소리와 춤을 배우고 익히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들은 스스로 팔자에 정해진 길이라 여겨 담대하게 이 길을 선택하고 결정했던 것으로 보여진다.이러한 소리꾼들은 교방,예기조합,권번을 거치면서 해방후에는 국악원으로 바뀌어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다만 이들에 대한 처우가 아직은 흡족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소리와 춤 정말 다양하기만 하다.소고춤,민살풀이춤,중고제의 쑥대머리,학춤,북춤이 있다.그리고 판소리 열 두마당을 여섯 마당을 신재효는 춘향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흥부가,가루지기타령으로 정리하고 있다.판소리 명창들은 득음을 이루기 위해 깊은 산중 굴을 파고 독공을 해야만 하고 목청을 위해 생소금을 삼켜야 하는 시련의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매일 나오는 각혈과 더럽고 오래된 인분도 삼켜야 하는 과정은 보통 사람은 할 수가 없는 신의 경지라고 생각한다.그들의 목표는 폭포수를 뚫고 나갈 소리를 벼리기 위한 것이었기에 아무리 가시밭길과 같은 시련의 과정일지라도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것이다.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콤비가 되어 진행하는 판소리는 언제 들어도 구성지면서 가슴 뭉클할 때가 많다.

 

 

판소리 장면

 

 

   전라도에서 소리를 동편,서편으로 나눈 것처럼 춤도 나눠보는 것이다.남녘을 동서로 나눠 호남 전체를 서편으로 영남을 동편으로 양쪽의 춤을 살피면 가정은 퍽 유효해진다.호남의 춤이 살풀이장단에 계면조라면 영남의 춤은 굿거리 장단에 우조인 것이다.기교를 위주로 한 호남에 비해 영남은 정직한 몸놀림으로 춤을 춘다.계면조가 식민지 설움을 통과하며 주류를 이뤘다는 견해에 따르면,우조는 유구하고 고풍스런 몸짓인 것이다. -본문-

 

 이렇게 춤과 소리,궂이 일제강점기,해방을 거쳐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그 전통의 맥을 유지해 왔다.춤판은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과 소문이 잦아 몽골,중국,동남아,유럽 등의 원정공연을 하면서 한국의 전통예술의 미를 맘껏 발휘하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1992년 사물놀이 팀이 발족되면서 전통 무형문화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현대적인 느낌을 살린 공연들이 시대의 흐름과 감각에 맞춰 색다른 맛과 여운을 안겨 주고 있다.끼를 살리고 팔자로 쓰여진 대로 살아가려고 했던 소리꾼,춤꾼,광대들의 신명나는 한마당,구성지면서 가슴을 저미는 감동과 열광의 도가니를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은 케케묵은 것이 아닌 켜켜이 묵힌 신토불이와 같은 존재요,보배로운 한국의 무형자산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이 도서와 함께 <춤과 그들/동아시아출판/유인화저>을 읽으면 더욱 우리의 전통예술의 혼과 미를 이해하면서 우리의 것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고취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http://blog.yes24.com/document/720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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