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 다큐PD 왕초의 22,000킬로미터 중국 민가기행
윤태옥 지음, 한동수 감수 / 미디어윌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나라마다 백성들이 기거하는 공간이 집이고 백성들의 집이었기에 한자어인 민가라고 부르지 않을까 한다.본래 집가(家)는 집면에 돼지시가 합쳐진 글자로서 집면은 상투를 튼 지도자의 형상이고 돼지시는 하늘을 우러러 떠받드는 군왕의 모습을 띤다고 한다.어찌되었든 집가라는 글자의 모양 속에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지붕 밑에 사람들이 그 안에 살아가는 모습도 연상이 된다.역사 이래 사람들이 살아가던 주거공간인 집은 나라와 지방마다 고유의 전통가옥과 특성이 담겨져 있는데,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1차원적인 개념을 떠나 집안의 대소사를 비롯하여 바깥 손님을 맞이하고 예의격식을 갖추는 사회 최소단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기원 3세기 중국 중원에 죽림칠현 중에 유령(劉伶)이라는 술꾼이 있었는데 평소 그는 술만 마시면 몸에 걸친 옷가지를 훌훌 벗어 젖힌 채 알몸으로 방약무인했다고 한다.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그를 찾아와 알몸에 대한 추태를 힐난하고 조롱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당신이 어쩌자고 허락도 없이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대단히 기발하고 재치있고 해학적인 발상이다.보통사람 같으면 알몸행세도 못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번뜩이는 재담을 이끌어 낼 수가 있었겠는가.집에 대한 생각과 관념이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신이 기거하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상념이 교차할 것이다.가깝게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편안한 본향과 같은 공간,식욕과 성욕을 채우는 공간,비,바람,추위를 막아 주는 공간,어떠한 사연이 담겨져 있고 또 다른 사연을 채워 가려는 공간 등 집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시간이 더 해 갈수록 정념은 더욱 깊어져 가리라 생각한다.

 

이번 도서는 중국마니아라고 할 정도로 중국의 이모저모를 발품을 팔아가면서 중국 각지방의 민가를 소개해 주고 있는 윤태옥저자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출발점으로 하여 상하이,푸졘,광시좡족자치구 등의 소수민족,조선족이 거주하는 만주벌판에 이르기까지의 지방만의 민가의 특색을 중국의 역사,문화,기후,분 등과 관련지어 잘 들려 주고 있으며 컬러화보까지 삽입되어 있어 중국민가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읽어 가다 보니 중국 소수민족 중에 묘족(猫族)이 고구려의 후예라는 점 새롭게 알게 되었고 중국 만주지방에 흩어져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민가는 한국 전통가옥을 옛모습 그대로 보여 주기에 정감마저 들었다.어린시절 단란하게 초가집에 대가족이 살아가던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구중궁궐과 같은 베이징의 사합원은 중국에서 가장 전통적인 가옥구조라고 할 수가 있다.대가족이 살고 하인들을 두었던 고위신분들의 가옥이어서인지 손님을 맞이하는 방부터 부부의 침실인 동이방,서이방 그리고 자식들의 방인 동상방,서상방,하인의 방과 창고였던 도좌방이 있으며 창은 모두 마당을 향하며 화장실은 서남방 모서리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대표적인 사합원의 가옥은 중국현대문학의 거장인 라오셔의 기념관을 들 수가 있다.베이징을 벗어나 상하이로 들어가면 이롱(里弄)주택을 볼 수가 있는데 다닥다닥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연립주택을 연상할 수가 있다.좁은 골목에 누추한 집으로 이어져 있는데 이러한 가옥구조는 삼합원과 사합원을 강남의 지형과 기후 등의 조건에 맞게 변형한 것이라고 하며 복층이 많다는 점이 특색이다.

 

전란을 피해 숨어든 유민들의 보금자리인 푸졘성의 객가인의 투러우(土樓)는 외벽이 두텁고 대문이 튼튼해서 대문만 닫아걸면 마치 성채(城砦)의 요새와 같이 매우 견고한 철옹성과 같은 느낌이다.중국에서는 유민이 다섯 차례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유민들이 전란을 피해 새로운 삶을 찾아 남으로 피난했는데 그들이 객가인의 선조라고 한다.그들은 주로 홍콩의 위아래인 장시성,푸졘성,광둥성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객가인의 후손들 중에는 덩샤오핑을 비롯하여 대만의 리덩후이,싱가포르의 리광야오,그리고 실업계의 거부인 리자청 및 세계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화상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투러우는 원형,방형,장방형 등 다양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나아가 광동성에는 군사용 망루 또는 돌집 모양의 조루가 있다.이러한 조루는 티벳,쓰촨 등에도 발견된다.

 

광시좡족자치구,구이저우성,후난성 등지에는 소수민족이 다양하게 분포하여 살고 있다.산지가 많고 교통이 불편한 탓에 간란주택이 많다.한국의 고상식(高床式)과 비슷한데 지면에서 받침대를 세워 집을 짓는다고 한다.습기,벌레,뱀 등을 차단하며 경사면에 집을 짓는 것이 통상적이다.뾰족한 꼭지모양과 겹처마가 10층이 넘는 누각들을 자랑하는 고루와 비와 바람을 피하고 앉아 쉬면서 강물을 관조할 수 있다고 해서 풍우교라고도 한다.먀오족의 거주공간인 조각루(弔脚樓)는 하천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은 가옥구조인데 일몰후 야광은 물빛에 반사되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아름답기 그지없다.먀오족이 고구려의 후예라는 점에서 관심있게 읽었고 기회가 닿으면 김인희저,푸른역사간/1300년 디아스포라,고구려 유민 읽어 보려 한다.그외 구이저우의 안순 둔보,구이양 석판방,윈난 객잔 및 보이차의 길,목릉방과 동티베트의 조방과 조루를 소개하고 있다.

 

사막 폐허의 고성은 시간이 정지되어 있는 것과 같이 고적한 여운을 안겨 준다.중국 고대 서사시의 주인공인 <뮬란>을 등장시킨 에니메이션과 함께 송대의 악부시집과 문원영화(文苑英華)가 소개되고,섬서성의 동굴집인 야오동도 볼 만했다.땅을 파고 들어간 집으로 고원의 기후 특성상 야오동은 일면 원시적인 느낌을 줄 수가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야오동이 매우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주택이라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나아가 네이멍구의 게르 또는 겔 유목민들만의 고유 가옥구조이다.조립하고 해체하기가 쉽게 되어 있다.탄력성이 있어 끊어지지 않고 웬만큼 비틀어져도 형상기억합금과 같이 형태를 잘 유지한다고 한다.나아가 북만주 어원커족.어룬춘족의 사인주 러시아와 몽골공화국과 중국에 걸치는 넓은 지역에 작은 마을로 분산되어 있다.마치 고깔모양의 텐트모양과 같은 가옥구조이다.끝으로 만주 초가집 온돌집은 한국전통 가옥구조를 띠고 있어서인지 고즈넉하면서도 정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민가기행을 통해 다양한 가옥구조와 그들이 그러한 가옥구조를 짓고 살아가는 바탕에는 이주와 수난을 피해 형성된 것들과 날씨와 기후 및 외부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지어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중국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인습,문화의 한 단면을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어 다행이다.고풍스러운 가옥이 있는가 하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가옥도 있다.가옥은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소산이고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새삼 발견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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