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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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장래의 희망이 엿보이고,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은 경제적 안정과 건강 등이 담보되어야 희망을 잃지 않고 여유로움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다.특히 삶의 질이 떨어져만 가는 시대,돈이 절대 권력인 시대에서는 당장 먹고 사는 일부터 자식들 교육문제,노후문제로 인해 누구를 생각하고 배려할 겨를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이웃간에 정을 나누는 일은 이제는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길이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게다가 치안를 내세워 어디든지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세태를 보면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사회지도층,권력을 쥔 자들이 절대 다수인 일반서민들을 위한 각종 시혜책과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상생과 나눔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데 선거철의 공약과 일상의 정책에는 커다란 간극과 괴리가 있기에 정치불신에 대한 것도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한다.또한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일부 재벌 및 부유층이 천문학적인 외화를 외국계 은행에 비자금으로 예치시켜 놓았다는 소식을 접할 때 허탈감마저 일어난다.말그대로 맥이 풀리면서 사는 낙,사는 희망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옛말에 의식족지예절(衣食足知禮節)이라는 말이 있다.입고 먹는 것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예절을 안다고 했다. 사회 양극화를 좁히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도 생각은 하겠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과 길은 마련해 주는 것이 사회적 약자로서 바램이며 그것이 보일 때만이 삶의 희망을 열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 찾아올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세계인 마음 다스리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희망은 자신에게 적극 올 수도 있고 도망갈 수도 있다고 본다.이 글의 저자가 종교인이기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현실성에서 다소 거리감은 있다고 느껴진다.마치 악하고 몽매한 사람을 계도하는 잠언과 같은 말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기에 개인에 따라서는 가슴에 와 닿을 수도 있고 거리감과 위화감을 느낄 얘기들이 있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즉 희망은 추상적이면서도 삶의 끈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단초와 같다고 생각하는데,꿈과 희망 모두 실현 가능성이 있게 계획하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일 수가 있고 꿈과 희망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에는 그 보람과 가치가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세운 꿈과 희망을 머리 속으로만 담고 있어서는 작심삼일이 될 수도 있으니 늘 꿈과 희망에 대한커다란 계획을 자주 바라보고,선명하게 바라보고,계속 바라보라는 저자의 메시지에 매우 공감을 한다.그리고 점검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꿈이 현실이 되도록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적극성과 긍정적인 마인드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게다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에 일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어도 죽음,고통,갈등,죄책감 등의 한계상황이 찾아 오게 마련이다.이러한 상황 앞에서는 꿈을 향한 열정과 목표가 주춤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럴 때에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 놓고 포괄자 즉 절대신에게 마음을 열고 용서와 회개를 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목표의식을 잃지 않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자신이 꿈꾸고 바라는 일들이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늘 배우고 찾아 다니고 좋은 관계를 맺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이 성사되고 꿈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저자의 주옥같은 인용구 및 통찰력,삶의 조언 등이 잘 조합되어 상실한 자들에게 삶의 희망과 지혜를 안겨 주고 있다.실의와 비관에 머물지 않고 늘 밝고 긍정적인 자세와 태도로 하루 하루를 충실하게 사는 것만이 꿈도 희망도,사랑도 자신에게 오래 머물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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