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물건과 속닥속닥 - 골동품이 내게로 와 명품이 되었다
이정란 지음, 김연수 사진 / 에르디아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부모형제,친구,이웃들과의 공동체에 가까운 삶을 살던 시절은 엊그제 같다.그러한 삶 속에서 자란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유난히도 추억과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눈 감으면 초가삼간 우리집과 더불어 뒷집,앞집들의 사계의 풍경과 동네 고샅길부터 당산나무가 있는 새마을 회관을 거쳐 실처럼 길게 드리워진 신작로는 내가 초.중을 다니던 통학길의 정겨운 시절이 대체로운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이것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한 폭의 그림과 같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좋은 학교,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성년이 되었을 무렵 어느덧 시골은 노인들만 남은 곳으로 변해가고 농촌은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농촌을 떠나 도회지로 떠나면서 시골집에 있던 세간들이 버려지기 일쑤이다.그러한 세간들은 오랜 시간 조상들의 정성과 손길을 거쳐 온 생활용품이고 전통의 멋과 예스러움을 갖추고 있기에 현대적인 세간들과 비교해 보면 촌스럽기도 하고 값어치도 나가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찬찬히 뜯어 보면 세간들 하나 하나에 조상의 숨결,지혜,정성,가치 등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에 요근래 시장에 나오는 화학제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체 건강에도 좋고 정겨워서 좋고 인간미가 담겨 있어 더욱 좋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외지로 장사를 하러 가셨기에 몇 년을 조부모님의 훈육을 따르며 자라왔던 나는 할아버지,할머니의 말씀,행동,농삿일,가사 등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배우며 몸으로 체득한 것이 많다.그 시절의 삶은 기계화 이전의 삶으로서 사람의 경험,지혜,손길,기다림,인내가 주가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비록 그 삶과 생활이 느리고 불편했지만 어른이 되어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니 그 시절이 그립고 정겨우며 사람사는 맛이 온전히 남아 있기만 하다.타임 머신을 타고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되돌아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만 하다.다시 현실로 되돌아 오면 나아가야 할 삶이 팍팍하고 무기력해지는 기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머슴과 같이 하루도 쉼없이 손과 발을 놀리지 않으셨다.할아버지께서 잘 만드셨던 것은 싸리 빗자루,수수빗자루,멍석,삼태기,채반 등이었다.봄볕을 받으시면서 흙벽에 몸을 기대어 두 손으로 재료를 하나 하나 엮으시면서 잠시 담배 한 대 물면서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하셨다.일이 거의 끝나고 점심,간식 먹을 시간이 되면 볼기에 묻은 흙을 탈탈 털으시면서 할머니께서 차려 오신 밥상머리로 가셨던 기억 한 장면이 내 머리에 오래 남아 있다.또한 할머니께서도 부창부수와 같이 늘 몸을 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만드셔서라도 하시곤 했다.메주를 쑤어 간장을 담그고 고추가루와 찹쌀을 이용하여 고추장을 바지런하게 담그시던 모습도 그렇고 오래간만에 이모할머니,작은아버지,고모댁에 출타하실 경우에는 솥에 물을 부어 따뜻해진 물로 머리를 감고 얼레빗으로 먼저 빗질을 하시고 아주까리 기름을 한손에 듬뿍 담아 머리에 윤기가 나도록 바른 후 참빗으로 곱게 머리결을 다듬으신 후 화룡점정과 같이 비녀를 예쁘게 꽂으셨다.할머니는 경대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흡족하신지 치마,저고리를 입으신 후 버선을 신으시고 나에게 "따라 올래?"하시면 얼씨구 좋다 하면서 졸졸 할머니 뒤를 따라 갔던 기억도 새롭기만 하다.

 

어머니는 장사일을 잠시 접고 명절을 쇠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시고 집에 오시면 쉬는 틈 없이 대목 준비에 바쁘셨다.구멍이 뚫린 시루에 떡을 앉히기도 하고 재배한 쥐눈이콩으로 기른 콩나물을 건져 오시기도 했다.그외 깨강정,유과,쑥떡,인절미를 할머니,작은어머니가 합심을 해서 만드시기도 하면서 굽어진 허리가 쉴 틈도 없이 그저 묵묵히 명절준비에만 몰입했다.특히 겨우내 먹을 수 있는 땅 속의 동치미는 꿀맛과 같이 시원하기만 했다.아삭한 사과,배,무가 입안을 돌면 밥맛도 절로 돌았다.번철에 익혀 낸 갖가지 적(표준어:전)과 불쏘시개로 익힌 재래김(시골에선 해우라고 함) 등도 명절날엔 그 어느때보다도 뿌듯하기만 했다.

 

지금은 잊혀져 가는 옛 것들이라고 하지만 불과 30년 전의 시골의 세간살이만 모아 놓은 옛 것들을 접하면서 과연 현대적인 세간들이 모두 좋은 것인가라고 자문자답해 본다.이정란저자는 친정에서 쓸만한 예스러운 물건들을 가져 오면서 조상들의 숨결,지혜,생활철학,삶의 가치,의미 등을 되새겨 보고 있다.사람의 몸에 걸치는 것들도 있고 세간살이에 유용한 물건들도 다수 실려져 있다.이 글을 읽으면서 조상들은 비록 느리지만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자연의 질서를 거스리지 않으려는 순수한 정신을 지녔다고 생각한다.게다가 사람의 몸에 전혀 무해한 것들이기에 보면 볼수록 새롭기만 하다.자칫 잊혀질 수 있는 지난 시절의 물건들이지만 현대인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함으로써 그 가치와 의미,생활의 지혜는 더욱 숙성되어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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