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만드는 기계
김진송 지음 / 난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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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래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면서 문명의 발전을 기해 오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오기도 하고 야사와 같이 기록으로 전해 오는 것도 많다.사진과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더욱 일반인들의 삶의 애환이 어떠했을지가 매우 궁금하기만 한데 특히 농경시대에서는 마을 내지 부락민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이웃집의 숟가락이 몇 개이고 신발이 몇 개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정도로 친근감과 유대감을 오래도록 공유해 왔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면 시골은 으례 농한기에 들어 간다.월동을 보내는 데에 사람마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사랑방에 모여 술내기 화투를 치기도 하고,어떤 사람은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수령(樹齡)이 오래된 잡목을 톱과 낫으로 베어 겨울나기를 준비한다.아낙네들은 고구마를 한솥 쪄서 이웃을 불러 들여 무료함을 고구마와 김장김치를 '쭉'찢어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심심풀이를 하곤 했다.그 속에는 시간과 공간이 함께 하는 이야기 꽃이 만발해 있었다.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생존해 계셨던 할아버지는 매우 부지런하셨다.늘 몸을 아끼지 않으셨기에 손마디는 괭이가 지고 뼈대는 젊은이 못지 않게 강골이셨다.할아버지는 누군가를 만나 한담을 나누고 노는 것은 당신의 체질과는 먼듯 늘 뭔가를 찾아 손과 발,몸을 뒤척이고 바지런하게 움직여야만 속이 시원하셨던 참에 마른 볏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하고,초가지붕에 들어가는 용마루를 만들기도 하셨다.때론 싸리나무를 베여와 싸리 빗자루,수숫대로 수수 빗자루를 만드시면서 뇌의 회로는 늘 가는 길이 정해져 있듯 기계보다도 더 정교하고 실수 한 점 없이 착착 만들어 내고 일이 끝나면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시며 "애아(저의 어머니),밥 다 됐니?"하면서 작업에 몰두하셨던 시간이 매우 유익했고 가정 살림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표정에 역력했다.그리고 말이 없이 밥을 찬이 입으로 오가는 시간 속에는 침묵이 흘렀지만 무언으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이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고,어린 시절 보고 들었던 정감어린 이야기 사연은 옛날이라는 시간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눈을 감고서야 비로소 보여지고 가슴 뭉클한 사연들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 전해 주어야 옛날 어른들의 이야기는 어떠했을지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나무를 정교하게 깎고 밀고 수정하는 일련의 목공의 작품이 의인화되어 하나의 사연을 담은 것으로 전해지는 이 글은 크든 작든 일상의 이야기들이 공감의 물수제비가 파급력을 높이고 있다.원목을 이용하여 껍질을 벗기고 민들민들한 알몸덩어리 나무는 목수의 손질에 의해 또 다른 사물로 변해 간다.사람,귀신,사물 그리고 갖가지 동물과 화초,물고기들로 변신하여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스토리텔링으로 밋밋하고 건조한 세상에 윤활유를 머금은 듯 하다.

 

 

 

나무를 깎고 손질하는 세공사는 숨소리도 소음으로 들릴 것이다.혼자가 되어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교묘하게 활용하면서 그 곳으로 몰입해 가는 천부적인 재주꾼이 세공사이다.네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글은 작품 하나 하나가 탄생하기까지 공들여 온 흔적이 역력하고 세심한 손끝의 마무리가 경이롭기만 하다.일반인들은 무관심하고 도외시하기 쉬운 존재,흔적들을 기꺼이 세인들에게 사연을 담아 내어 인간의 희노애락이 무엇이고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이 무엇인지도 들려준다.그 중에 인간이 발명하고 발견했던 것과 과학과 문명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의자와 결합시켜 인간 스스로 의자라는 권위,신분상승의 상징물을 탈취하기 위해 인간 스스로 의자의 노예자로 전락되었다는 경고성 있는 일침이다.

 

 

 

 

 

 

 

 

 

 

 

개와 의자 이야기는 분명 시사성이 있는 사연이다.개와 의자는 비록 은유적이고 의인화된 상징물이지만 권력층에 순종하며 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대다수의 민중이 아닌가라는 자조 섞인 탄식이 절로 나온다.신분과 권력이 상징하는 의자에 짓눌리고 복종하면서 살아가지만 결국에는 의자 다운 의자에도 앉지 못하고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밑바닥 언저리에서 의자만 바라보다 불행하게 운명을 달리하는 존재는 아닌가 싶다.개나 의자 모두 생명이 있는 존재이기에 상생의 차원에서 의자가 개가 되고 개가 의자가 되는 순환보직의 관계형성은 그렇게도 넘기 힘든 문제인가?그 옛날 도란도란 세상사를 들려 주던 어른들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의 삶을 지탱해 주는 동력이고 기축제였다면, 지금의 이야기는 돈과 물질이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세습해 가는 사회구성원간의 불균형과 부조화가 팽배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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