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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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 매체에서 박완서작가의 1주기 추모 대담 있었다.구술자는 박완서작가의 딸이고 수필가인 호원숙작가가 진행을 해주셨다.사회자의 질문 하나 하나에 어머니의 진면목을 진솔하게 전달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진한 추억이 밀려올 때에는 잠시 머뭇거리며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와 자식간의 진한 핏줄,애정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박완서작가가 세상에 빛을 발하지 아니한 몇 편의 단상들이 고인의 서랍에서 묶음으로 발견되면서 『세상에 예쁜 것』것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일제 강점기 유년 시절 성장과정과 서울로의 유학 생활 그리고 동족상잔의 상징인 한국전쟁이 작가에게 남긴 상흔들,1970년대 <여성동아>에서 '나목(裸木)'으로 등단하여 현재까지의 작가 생활의 이모 저모,1988년 남편과 아드님을 잃은 아내이고 어미로서의 휘청거리던 심경,작가로서의 본분,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정든 보문동 구옥을 떠나 전원생활에 묻혀 살던 시절 등이 꿈처럼 추억처럼 아련하고 싸하게 밀려 온다.

 

 

 

 

세상에 너무도 순진무구하고 평화스러운 예쁜 것들이 참으로 많다.길가에 함초롬하게 저만의 빛깔과 자태를 보여 주는 상사화(相思花)도 예쁘고,꼼지락거리는 갓난 아기의 발가스름한 발가락도 예쁘며,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씨도 아름답고 예쁘기만 하다.그 모두가 소유하는 물건마냥 가져갈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따뜻하고 고귀한 영혼은 죽어서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들이리라.

 

 

 

 

박완서작가는 일제강점기 황해도 개풍군 박적골(지금은 박적동)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집뒤는 산이고 앞은 저수지가 있는 호젓하고 평화로운 전원이었고,대쪽같은 할아버지 덕분에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하며,작가의 자당께서 유별한 자식사랑과 교육열로 8살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고 하는데,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작가는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하고,고향 박적골이 그립고 가고 싶어 여름과 겨울방학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 서울대 국문과에 1달도 다니지 못한 채 학업을 중도 포기해야만 했으며,가장 아닌 가장으로 미8군 PX 초상화부에 취직하면서 박수근화백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박완서작가는 '나목'으로 등단하면서 <지리산>을 쓰신 이병주작가 등의 격려 등에 힘입어 개성있는 작품들을 쏟아 낸다.원고 마감일에 전력질투해야 하면서도 가정에선 어머니,아내로서 1인 2역을 별탈 없이 소화해 내기도 하면서,자식들에겐 매는 들지 않되 엄격하고 자애로운 면모를 지니셨으며,남편과 자주 다니셨다는 양수리 마재(馬嶺) 언저리 음식점을 식객으로 자주 다니셨는데 남편과 아들을 앞서 보내면서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정처없는 방황에서 참으로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다행히 이해인수녀를 만나 삶의 의지,작품활동의 재기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서 강인한 생명력마저 느끼게 했다.

 

 

 

 

박완서작가는 박경리작가와 친자매와 같은 친밀감과 동지의식을 많이 느끼신거 같다.균형 잡힌

인간상은 실생활 속에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조화된 인간이라고,박경리작가의 철저한 글쓰기 정신과 전원의 노동생활을 바라보면서 느끼셨고,정신노동의 휴식시간이 육체노동이라고 생각하신다.봄,여름,가을,겨울의 섭리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전해지는 박완서작가의 전원 생활은 풋풋한 싱그러움과 고요한 맑은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매력이 있다.공기 탁하고 각박한 도심에서 벗어난 전원으로 회귀는 박완서작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몰입케 하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고,텃밭에서 뿌리고 가꾸며 잡풀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와 기쁨도 실감했을거 같다.찾아 오는 손님들에게는 박정하게 싫은 내색하지 않으시고 가슴에 와닿는 말씀과 주고 받는 대화들은 삶의 넉넉함을 더해 주었을 것이다.

 

 

박완서작가의 글은 많이 읽어 보지를 못했다.다수의 문인들이 묶어 놓은 소설집과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정도였는데,작가는 생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박완서작가의 글쓰기의 원천은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옛날 이야기,숙명여고 시절 작가였던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고 한다.약간 수줍으면서도 은은하게 미소를 짓는 박완서작가의 모습은 작가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며 열정적인 창작 활동과 독자들과의 따뜻한 대화와 소통이 독자들의 가슴 깊은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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