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신발
김주영 지음 / 김영사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바쁘고 각박하게 살아가다 보면 불현듯 지나간 어린 시절,추억이 깃든 시간 속으로 빠져들 때가 있다.조부모를 모시는 부모님과 함께 초가삼간 옹색한 집에서 온가족이 밥상을 가운데 놓고 옹기종기 지내던 시절도 생각이 나고,학교가 멀어 일찍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뒷집 친구가 함께 가려고 마루에서 기다리던 시절도 생각이 나고,동네에서 법 없이도 살 인정많고 덕이 많은 아주머니는 일찌감치 돼지에게 줄 음식물 찌꺼기를 받으러 우리집에 오던 시절도 엊그제와 같다.

 

마을 대개가 초가집이었기에 짚으로 지붕을 잇고 다음해가 될 때까지 지붕의 짚들은 누런색에서 바람과 비,공기의 영향을 받아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고,지루한 장마,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처마밑은 굼벵이 몸에서 떨어지는 암갈색 물빛이 흙바닥에 흥건히 고이고 처마를 긴 막대기로 훑으면 굼벵이들이 바닥으로 밤송이마냥 툭툭 떨어지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봄에는 할머니께서 텃밭에 갖가지 채소를 모종하고 뒷간에는 재거름을 이용하여 호박,옥수수를 심고 여름이 되면 마당 앞의 텃밭과 뒷간은 온통 녹색 물결로 집안은 생기가 돋아난다.상추와 풋고추로 한여름의 건강을 찾고,토실토실 여운 하지감자는 커다란 솥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며 허기진 속을 달래주던 시절은 소박하기만 했다.가을 벼를 베고 벼를 집안으로 들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홀태로 벼알을 훑어 내고 나는 볏단들을 한 곳으로 옮기는 잔심부름을 했다.밤이 되면 휘영청 밝게 대지를 비추는 달빛을 따라 남몰래 단감 서리를 했던 조마조마하고 짜릿한 순간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 수확이 끝나고 논을 갈아 엎어 보리를 심고 이른 봄엔 보리밟기도 신나던 시절이었다.부지런하신 할아버지께서는 한 순간도 몸을 놀리지 않으시고 산과 들로 머슴 이상으로 일을 하셨다.벼농사,밭농사,땔감은 물론이고 손재주가 있으셔서 마른 수수대와 싸리를 이용하여 빗자루를 능수능란하게 만드셨다.그리고 83세에 작고하셨는데 돌아가시던 날 당신께서 죽음을 예견하셨던지 말끔하게 얼굴을 발을 깨끗하게 씻으셨던 분이시다.학교에서 돌아오니 부음 소식이 들려오고 지붕 위엔 할아버지께서 입던 옷이 던져져 있었다.동네 사람들은 호상이라고 하셨다.

 

지난 일에 대한 추억과 회고는 몇 날을 얘기해도 끝이 없을거 같다.어둡고 불편했던 1970년대 초.중고교 실에는 초가집과 재래식 화장실,모든 일이 손과 발을 움직여야만 이루어졌던 농경사회의 전형이었다.그시절로 되돌아 가기엔 너무 멀리 온거 같다.그리운 시절,간직하고 싶은 추억은 현대 사회에서 맛볼 수 없는 시골의 후한 인심과 공동체적인 상부상조의 정신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돈과 물질도 중요했지만 그다지 돈에 쫓겨 다니는 각박한 상황은 아니었던거 같다.그래서 삶이 힘겨울 때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옛 시절을 회고해 본다.

 

김주영작가가 청소년 시절의 추억과 그리움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1950년대의 서울,충청도,경상도 지역의 빛바랜 정경을 사진과 함께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한국전쟁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탓인지 산과 들,마을의 모습은 벌거숭이이고 복구가 온전치 않은 상처입은 모습이다.사람들의 삶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는 순박한 삶의 모습으로 다가온다.특히 도회지보다는 시골의 모습은 전근대적인 생활상을 보여 준다.보릿고개,참외서리,이잡기,노천 학교,소 꼴 먹이기,동구밖 등의 모습들이다.자연과 함께 삶을 꾸려 가면서 안분지족했던 시절이 당시를 살아갔던 분들에겐 향수를 자극케 할거 같다.불편한 기억도 있겠지만 정겹고 따뜻했던 기억은 오래도록 간직해 두는 것이 좋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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