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아리랑 - 최범산의 항일유적 답사기
최범산 지음 / 달과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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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한일합방이 강제적으로 체결되고 국권이 일본에 넘어 가면서 나라의 독립의 열망을 담아 독립지사들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중국에 임시정부 및 항일 독립운동 아지트를 세우면서 일본에 총칼로 저항하기도 하고 일본 경찰 및 밀정,간첩들을 나포하기도 하는 등 항일 독립지사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이국에서 행했던 공로는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독립지사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한 줄기찬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나라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독립지사들에게 감사함과 경건하고 숙연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항일 유적 답사를 몸과 마음,두 발로 발품을 팔아가면서 항일 유적지를 현장 체험과 세세한 해설,전언 등과 함께 독자들에게 유적 답사의 의미,가치를 전달해 주고 있는 최범산저자에게 개인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신의주를 마주 보고 있는 중국 단동(丹東)을 거점으로 요녕성,길림성,요녕성에 산재해 있는 항일 유적지를 더듬어 순례해 가는 과정은 기대반 회의반으로 가득차 있었다.사전에 한국 독립운동사를 숙지하고 항일 운동가 및 유적지를 체크하면서 답사해 나가는 과정은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항일 운동 후손들의 현재의 삶은 어떤가? 이승만정권에 의해 항일운동의 의미가 축소되고 친일파의 후손들이 세세손손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있는 상황을 직시할 때 과연 나라의 정기가 제대로 세워지고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가 없다.친일 세력들의 부는 3대가 먹고 살만큼 유지가 되고 항일 운동 후손들은 3대가 가난을 면치 못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사실을 놓고 볼 때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정권을 유지하려는 위정자들이 과연 역사 인식이 있는지 아연해지기만 한다.이제라도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심정으로 역사를 바로잡지 않으면,민족정기로 빛나던 한민족의 반만년 역사는 그 빛을 잃어버리고,민족배반의 인물들(친일세력들)이 또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치욕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항일독립투쟁의 봉화를 올린 단동,항일무장 투쟁의 성지 관전현,역사의 도시 환인현의 항일유적지,여성의병장 윤희순 의사의 유적지,남만주 항일투쟁의 횃불을 든 대한독립단,신흥무관학교 유적지,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장군의 유적지,육군주만참의부 항일유적지 등이 저자가 답사한 경로이다.중국이 자본주의 시장의 도입과 도시개발,산업화에 따라 항일 유적지들은 크게 훼손되고 도시개발로 인해 일부는 아예 흔적도 없기도 하다.또한 당시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생생한 전언 및 증언도 세월이 흘러 대부분 고인이 되었거나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증언의 내용이 미미한 수준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런 와중에 중국은 한국의 고대사 부분을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여 한국의 고대사를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데 정부에서는 중국에 대한 입장과 외교채널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유인석장군을 비롯하여 이회영,김구,김동삼,윤희순,양세봉 장군 등이 온몸을 바쳐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도 끝내 해방의 기쁨과 환희를 맛보지 못한 채 운명을 달리 했어도 그 분들의 넋과 영혼은 조국의 금수강산이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차 있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청소년들에게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항일 유적답사지를 견학 코스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돈과 물질,명예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국가의 역사의 인식을 바로 잡고 다시는 외세에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이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나 역시 이 글을 읽어 가면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겪었을 온갖 고초,수난과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오로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바친 그 분들께 숙연한 마음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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