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역사를 따라걷다
이훈 지음 / 역사공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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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거리상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 쓰시마(對島)는 부산에서 쓰시마 최북단 가미쓰시마초(上對島町)까지는 49k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맑은 날 가미쓰시마초 전망대에서는 부산과 남해의 산하가 아련하게 보이고 밤에는 부산의 야경이 찬란하게 다가오는 곳이다.거리와 역사적으로 쓰시마는 한국과 오랜 교류와 문물이 왕래했던 곳이고 일본에선 변방에 있는 외딴 섬이라 본토(혼슈,큐슈,홋카이도,시코쿠)의 영향력은 크지 않아 그들이 말하는 내지와는 물질문명이 덜 발달되어 있기도 하다.부산에서 쓰시마에서 가장 큰 도시 이즈하라까지는 페리를 이용한다든지 후쿠오카를 경유하여 이즈하라까지 가는 교통편이 있는데 한국과 역사,문화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고 조선의 문화 자취가 남아 있기에 한 번쯤 가보고 싶기도 하다.

 

 

약 8,000년 전 한반도의 융기문 토기,3~4세기 무늬없는 토기가 전래되면서 쓰시마는 한반도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815년에는 신라어 통역관 설치,1274년 여.몽 연합군의 쓰시마 습격,1366년 고려국왕이 대마도주에게 왜구 단속을 요청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1419년에는 이종무가 아소완 공격으로 대마도 토벌이 이루어지면서 쓰시마는 조선과의 무역과 어업(부산포.염포.제포)에 종사하게 된다.나아가 조선의 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고 쓰시마를 거쳐 귀환하게 될 경우에는 쓰시마도주의 도항증명이 문인(文引)발급이 가능해지며 조선의 3포에 사는 일본인이 소요를 일으키며 조선은 쓰시마도와 통교 단절을 선언하게 된다.

 

 

쓰시마는 임진왜란 당시 소요요시토시가 고니시유키나가 군단의 선봉이 되어 조선 침략을 감행했으며 왜란이 끝난 후 1609년부터는 국교회복과 동시에 세견선 및 사자 파견 등 통교가 시작되고 조선에서는 일본과의 회담 겸 쇄환사를 파견하는데 이러한 조선과 쓰시마간의 통교가 이해관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며,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탄생되면서 쓰시마는 일본 외무성이 담당하게 되고,구한말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는 쓰시마를 교두보로 삼게 되며 제2차 세계대전시에는 대마도를 요새화되기도 한다.현재 쓰시마는 나가사키현 소속이며 쓰시마 공항 개항과 부산 영도구간 자매섬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엄마 말과 아기 말이 땅에 드러누워 있는 형상을 띤 쓰시마 남쪽섬과 북쪽섬 두 개로 되어 있고 산악이 80퍼센트 이상이며 인구는 5만여명인데 가장 큰 도시 이즈하라에 9,000여명이 살고 나머지는 산촌과 어촌에 촌락을 이루고 있는데 쓰시마는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되고 내지의 지원을 받지 못한 탓인지 많이 낙후되어 있다.

 

 

조선과 쓰시마를 오가는 사스나 포구를 비롯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위해 쌓은 나고야죠(名護屋城),에도까지 조선 통신사를 수행한 대마번주의 가신행렬,조선 인삼을 취급한 약국,부산 초량 왜관,덕혜옹주와 소오 타케유키의 쓰시마 방문 모습,구한말 면암 최익현 선생의 비가 있는 슈젠지(修善寺),신라 박제상을 기리는 추모비,아리랑 마쓰리(축제) 행렬 등이 인상적이다.조선과 도쿠가와 막부가 260년간 유지한 선린우호가 메이지 정부에 의해 부산 왜관을 쓰시마번으로 접수하면서 조선 관계에서 손을 떼게 된다.

 

 

역사적 기록물인 <한단고기(桓檀古記)> 태백일사에는, "400년 당시 쓰시마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분국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어떤 이는 이를 바탕으로 신라가 8세기까지 쓰시마를 지배하였으며...와 <삼국사기> 신라본기 실성왕조와 타이슈헨넨랴쿠(對州編年略) 범례 '산가요약기'에 쓰시마가 신라 및 고려국의 목이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다만,이것은 정치적 관계를 나타내고 있기에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며,해좌전도(1857년 이후),조선전도(18세기 말),대한전도(1899년)에는 쓰시마가 부산의 아랫부분에 그려져 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하고 국제사법재판소에 독도 문제 판결을 의뢰하려는 작금,쓰시마 역시 역사적,문화적인 관계를 놓고 볼 때 쓰시마 역시 과거 고대사 부분에서 한반도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잃어 버린 고토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떠한 생각과 방침을 내세우고 관련국에 대응을 하고 이를 외교문제로 어떻게 전개하려고 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쓰시마의 역사와 문화는 한반도에서 흘러간 다양한 문화,생필품,언어,풍습 등이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알게 되며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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