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숨은 골목 - 어쩌면 만날 수 있을까 그 길에서…
이동미 글 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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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가 협소하고 인구밀도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우리나라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시범적으로 도시형 아파트를 세우게 된다.그것은 베이비 붐 세대와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대거 유입에 따른 주택난이 가중되면서 좁은 공간에 다세대를 수용할 수 있고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면서 도시형 아파트는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게 된다.역으로 농촌은 인구 감소로 공동(空洞) 현상이 생겨나면서,국가에선 고육지책으로 농어촌 살리기를 제창하지만 이미 도시의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진 젊은층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이미 어려운게 현실이고 농어촌으로 회귀하는 사람들도 농사를 지어보지 않아 과연 잘 버티어 낼지 의문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모든 분야가 집중되어 있기에 심각한 주택문제 해결이 급선무였고 집장만을 하기 위해 '주택은행(현국민은행)'에 청약저축을 몇 년간 부어야 아파트 당첨 1순위가 되고 꿈에 그리던 아파트에 입주할 수가 있다.그래도 부족한 돈은 집을 담보로 여기 저기에서 융자를 끌어와야 겨우 내 집마련에 안착할 수가 있는 것이다.나 역시도 청약저축을 부어 장만한 집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이다.

 

이 도서는 도시개발에 따라 얽히서 섥힌 실핏줄과 같은 골목길이 사라지고 바둑판과 같이 획일적이고 삭막한 아파트촌으로 변색되어 가고 있는 현재 서울의 모습과 예전의 모습을 추억과 향수를 살려 잘 그려내고 있다.군데 군데 남은 골목과 양옥집들,담대 가게,재래식 시장,철물점,고샅길 등이 그나마 옛시절을 떠올리게 하는데,한국의 전통과 혼이 살아 있고 삶의 고유 방식과 근간이 사라져 가고 투기와 비지니스의 상징물인 아파트 일색인 서울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

 

나 또한 486세대이면서 1980년대초 대학을 다녔다.본가는 전북이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는데 대학시절과 신혼초의 서울의 모습은 판이하게 달라져 가고 있다.면목동에서 205번 버스를 타고 중간에 하차하여 대학까지 걷기도 하고,자취 생활에서 현재 살기 전까지는 이문동,성수동,중곡동으로 거처를 옮겨 다녔는데 서울에 친척이 있기에 가끔 놀러 가다보면 예전의 모습은 거의 찾을 수가 없고 반듯반듯하게 정리된 도로와 아파트만이 이방인을 대해 준다.

 

대학시절엔 재래식 화장식,연탄,재래식 시장,흙이 있는 동네길,인정이 살아 있는 쌀가게와 복덕방이 지금은 수세식,난방 보일러,대형 마트,시멘트로 뒤덮힌 아스팔트 길,전문 공인중개사로 변하고 모든게 저울로 달아 계산되기에 '덤'이라는 인정은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우리네 어머니,아버지 세대는 '덤'이 통용되었고 배려라는 동정심이 살아 있었다.지금은 그러한 것을 생각할 수도 없지만 그러한 덤과 인정을 얘기했다간 '세대차이'난다 할까봐 속으로만 옛시절을 삼키고 만다.

 

봄부터 겨울까지 서울의 구석질 곳들을 찾아 다닌 흔적이 물씬 배여 난다.역사와 문화,고단함과 인정,자연미가 살아있는 골목길엔 추억과 향수가 녹아져 나온다.국수를 손수 뽑고 계란을 도매로 팔며 시장을 보러 가면 콩나물,야채 등을 손이 크게 덤으로 얹어주던 그 인심은 이제 세월의 흐름 저 편으로 건너갔다.대신 정량화되고 정해진 가격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형식적인 인사가 전부인듯 하다.모두가 먹고 살기 바쁘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잠시 옛시절을 회고해 보는 쉼표의 장이 잘 살려져 있다.

 

 

양옥집 옥상에 햇빛이 내리쬐는 날 빨래를 걸어 놓으면 빨래는 바람과 공기,하늘과 대화를 나누며 꼬득꼬득 말라가고,철대문 편지통에 우편물이라도 왔을까 기대감으로 가득찼던 시절도 있었다.그 옆으로 좁고 길게 나 있는 고샅길에는 누군가 나를 찾아올 것만 같다.

 

 

잔서가 계속될 무렵 집 앞 마당에 빠알간 고추를 널어 놓은 모습이 평화롭기만 하다.고추 농사지어 겨우내 먹을 김치와 고추장을 담그기 위해 고추는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시키고 있다.바삭바삭 익어가는 고추 몸의 소리가 들려오는거 같다.저 멀리 뭉게구름은 농부의 마음을 알고 있는냥 인정사정없이 뜨거움을 고추에게 쏘아대고 있는거 같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둑이가 더위에 졸려 꾸벅꾸벅하고 멀리서 자식들 왔다고 플라스틱통에 참외,수박을 시원하게 담구고만 있을거 같다.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안 철물점에 많이 다녔다.콘센트,전구,못,망치 등을 사러 갔던 것이다.또한 절친한 대학동창의 아버지는 평생을 철물점에서 돈을 벌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세월과 함께 철물점의 '철'자의 받침 ㄹ 이 떨어져 나가고 입구 지붕은 수리를 안한 탓인지 얼키설키 잡동사니들이 바람막이를 해주고 있다.세월의 무상함만 느끼게 된다.

 

 

아무리 기업화된 대형 마트가 생기고 쿠폰을 주며 이벤트 행사를 연다고 해도 재래시장을 찾는 손님은 그 쪽으로만 발길이 돌려진다.과일,야채,곡류,간식거리,기프트 제품 등이 끝가는데 없이 자리잡고 있는 재래시장은 아낙네의 후덕한 인심과 출출할 때 술한잔에 맛깔스런 겉절이 김치도 맛이 그만이다.그래서 서울에 갈 일이 생기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재래시장에 가고픈 유혹이 식지를 않는다.

 

재래시장과 골목,인정이 살아 있었던 시절엔 동네 이웃들과 교류도 빈번하고 제사라도 지내면 이웃집과 제사 음식도 나눠 먹던 인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지금은 범죄퇴치 차원에서 아파트에 들어갈려고 해도 이중 삼중으로 번호와 인식표,CCTV 앞에 신고를 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삶이 삭막하기에 사람들의 표정은 웃음이 사라지고 상대방의 눈치를 보고 무관심 그 자체이다.여름이 되면 삼베 옷을 입은 할아버지,할머니,이웃 아줌마들이 길목에 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정겨운 시절은 내게는 추억과 향수로 짙게 남아 있다.그 시절이 있었기에 내 자식들에겐 '사람 사는 맛'이 무엇인지를 가끔씩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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