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 추위도 시들어지고 화사함을 더해가는 봄날엔 본가 초가집 근처에는 논두럭을 따라 가다 보면 감나무와 복숭아 나무가 잎사귀와 꽃을 앞다투어 피기 시작한다.감꽃은 잎이 넓적하게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복숭아꽃은 감나무꽃보다 먼저 봄기운을 사위에 전하고 복숭아꽃(복사꽃)은 수줍은 처녀와 숙맥인 총각이 달빛 아래 자리를 깔고 소곤소곤 사랑을 엮어 가다 보면 그 향기에 취하고 사람 냄새에 밤새우는 줄을 모른다.

 

복사꽃은 벚꽃과는 달리 피고 지는 시간이 길지만 지루하지 않다.꽃이 지고 잎이 푸릇푸릇 여름을 향해 달려 가면 잎사귀들 틈속에서 아기 복숭아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껍질에는 사춘기의 남녀마냥 털이 조밀하게 묻어 나고 농부는 생산성과 수익을 위해 불필요한 아기 열매를 솎아내면서 봉지 씌우기 작업에 들어가면서 종자에 따라 초여름부터 늦여름에 이르기까지 복숭아는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다.

 

어린 시절의 복사꽃이 필 무렵 바닥에 떨어진 사춘기의 열매를 따서 시냇물에 털을 씻겨 내고 '우적우적'씹으며 놀던 복숭아는 지금도 꽃이 피고 사랑을 나누고 정겨움마저 안겨주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까,아니면 너무 늙어서 베어지고 다른 과목(果木)으로 변했을지 눈에 삼삼하게 떠오른다.

 

 

 돌나물 역시 봄이 되면 돌머리,돌틈 사이로 쑥,냉이,씀바귀들과 함께 흐드러지게 자생한다.가재를 잡으러 가는 길목엔 회색빛의 돌들이 돌나물을 껴안고 입맛없고 반찬거리 궁한 아낙네들의 칼집이 바쁘게 아가고 저녁거리엔 돌나물에 갖은 양념을 섞어 무쳐 찬밥에 쓱싹 비벼 행복하고 든든한 한끼의 시간도 도회지로 올라와 사는 나에겐 잊을래야 잊을 수없는 봄날의 기억이다.어머니가 식구들에게 함지박만한 양푼에 찬밥과 돌나물을 비비고 있으면 새콤하게 퍼지는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바둑이의 출출한 운도 그 눈빛에 역력하게 쓰여져 있었다.먹고 생존하는게 인간의 본능이기에 돌나물밥은 꿀맛보다도 더 달콤하고 먼저 먹는 사람이 한 숟가락이라도 빼앗아갈까봐 '개눈 감추듯'식성이 좋았던 사춘기 시절의 돌나물밥도 이제는 돈 주고 사먹어야 하니 산골 벽지에서 나고 자란 내게 봄날의 정겹고 풍요롭고 인심이 좋았던 시절은 눈을 감아야 떠오르는 오랜되어 헐겁게 변한 흑백사진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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