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버린 사람들 - 1866, 애절한 죽음의 기록
이수광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종교의 가르침과 교리,믿음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이러한 믿음은 육신을 초개와 같이 불사르고 세속에 더럽혀진 영혼을 갈구함으로써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가슴 깊게 느낄 수가 있다.비단 어느 종교,종파를 떠나 자신이 의지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교인들과의 두터운 관계를 통해 신심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나라가 어둡고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라면 종교와 교리가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이 되어 주고 그 종교를 바탕으로 의지와 열정,희생을 감수할 각오와 선각자적인 자세가 충만되어 있다는 것을 조선후기에 불어 닥친 천주교인에 대한 처형,유배 등을 통해 인지하고 깊게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프랑스 선교사 리델이 쓴 <나의 서울 감옥 생활 1878> 살림 출판을 통해 프랑스 외방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선교 활동과 투옥 생활 등의 체험기를 통해 천주교 박해의 단면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도서를 통해 천주교 박해의 실상을 연대기,인물,사건배경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천주교 박해는 말그대로 피비린내 나는 처형극의 극치였고 교인들은 대개가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오상절개와 같은 기개를 보여 주었다.

 

정조 후반기에 들어온 천주교는 개방적이고 실용주의에 가까운 정조는 천주교인들에게 심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정조 사후 조대비의 수렴청정과 안동김씨의 세도정권을 위한 신유박해에서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희생이 1886년 조불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천주교는 조선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윤지창의 조상에 대한 폐사(廢祀)사건부터 신유박해,임오박해,기해박해,병인박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주교인들은 한결같이 배교의 회유를 물리치고 그들이 믿는 천주의 교리를 끝까지 지켰다는 점이다.안동 김씨,풍양 조씨 등의 정권 장악과 조선 왕권의 강화,유교체제의 붕괴 우려가 천주교인들의 거대한 희생양이 되었으며 병인박해를 통해 프랑스 로즈 제독이 이끄는 강화도 점령 사건은 조선의 뒤떨어진 화승총,화살과 프랑스의 신식 무기 앞에 강화도는 초토화가 되고 천총 양헌수가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면서 외세의 침략과 개방 압력은 국내 천주교인들을 더욱 탄압으로 몰아가고 말았다.또한 천주교인에 대한 탄압과 회유,군문효수형은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그즈음 동학과 민생의 도탄 등으로 조선의 국내 상황은 말그대로 오리무중이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개혁은 아래로부터 불붙기 시작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물론 교리를 대표하는 사람과 선교사들도 탄압과 희생의 대상이 되었지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민초들의 뜨거운 신심이 조선의 개방에 커다란 역할과 작용을 했다고 생각되며 역사라는 것은 위정자들의 선각적이고 개방적이며 민심을 아우르며 치세를 행하는 자가 진정한 애국자이고 위인이며 후세에 기리 칭송과 존경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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