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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새롭게 만나는 아르누보의 정수
장우진 지음 / 미술문화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일정한 거처가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는 방랑객의 대명사 집시족인 보헤미안이었던 무하의 회화 세계를 광고,포스터,회화,판화를 통해 그의 삶과 당대 프랑스 및 조국이었던 체코에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재혼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무하는 어머니의 바램대로 그림 그리는 일을 걷게 되는데 그의 어린 시절은 합스부르크 왕조가 해체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개편되는 시대적 상황이고 20대 초반 공방에서 해고되면서 그는 빈을 떠나 쿠엔 백작의 후원으로 파리로 유학을 하고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을 하게 되는데 이듬해(1888년) 그는 장식화를 제작하면서 그가 꿈꾸었던 그림의 창작에 몰입하게 된다.

 

 

집시는 보헤미안과 같은 가난하고 꾀죄죄하며 하루 하루를 이어가기 위한 부류가 있는가 하면 댄디와 같은 귀족냄새가 나는 부류도 있다.당시 예술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랭보는 온갖 방탕과 방랑을 일삼은 최고의 퇴폐주의자였으며,보헤미안이자 댄디,위대한 상징주의자였는데 무하는 그의 세계를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모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또한 19세기말 프랑스는 산업화로 인한 획일성과 기계주으에 대한 반대,대중주의의 속물 취향에 대한 혐오,부르주아지의 위선에 대한 항의,엄격한 도덕주의에 대한 반발,그 이전 시대의 자연주의,낭만주의,인상주의에 대한 반감이라는 거대한 부정문을 그의 회화 속에는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근대회화인 우끼요에(浮世繪)가 프랑스이 아르누보(신예술)에 영향을 끼치고 상징주의와 미학적인 면에서 많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세기말 파리를 장식하게 되었다.그는 관능적이면서도 상징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으며 광고와 포스터,사진 예술 세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한다.그것은 세기말 사회분위기가 퇴폐와 향락,염세적인 분위기였고 지식인들은 무정부주의와 데카당스로 경도되고 문학은 암시와 모호함을 던져 줄 뿐이었다.또한 당대 유명한 고갱과의 조우를 통해 회화의 세계와 우정을 돈독히 하는 시간도 갖게 된다.

 

 

그가 그린 대표적인 작품은 너무도 많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보헤미아 왕 프리제미술 오타카르 2세,베들레헴 교회에서 설교하는 얀 후스의 종교적인 색채와 연인들,물랭주즈의 무도회의 포스터가 있으며 지스몽다 등의 석판화가 눈에 띄고 지스몽다를 그리고 난 뒤부터는 파리지앵들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는 일약 유명세를 달리게 된다.또한 무하가 디자인한 뱀팔찌와 반지,에나멜과 진주로 장식된 코르사즈 등도 독특하고도 섬세한 미적 디자인의 감각을 충분히 살린 귀중한 작품으로 보여진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명랑과 외설이 교묘하게 만나며,

세속적인 동시에 영혼의 한 지점을 울리는 그의 작품은

분명 벨 에포크의 파리 시민들이게 익숙하지만

왠지 낯선 아름다움이었다. P182에서

 

 

 

1850년대 사진기가 발명되면서 그는 사진 모델에도 심취한다.반나(半裸)의 여체를 통해 관능미와 신비주의적인 경향을 선보였으며 1900년 파리 박람회가 끝나면서 아르누보는 유행의 불길처럼 퇴색되고 무하는 '슬라브 서사시'쪽으로 착상을 하고 남은 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 대한 봉사로 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되고 미국 체류기간 동안 그를 지탱해준 연인에 대한 사랑으로 고향에 대한 이야기로 마음을 달래게 되고 서로 끌리게 된다.연어가 성장하여 자신이 태어난 강가로 회귀하듯 그도 조국인 체코로 돌아와 여전히 영감이 넘치는 포스터들을 창출하는데 화려함보다는 단순하고 민속적이 요소들이 강한 인상이 짙게 깔린다.

 

 

성직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을 세기말 유럽의 예술 사조를 뒤로 하고 상징적이고 관능적이며 다방면에서 멋진 작품을 남긴 보헤미안 무하는 암울한 조국을 잊지 않고 여생을 조국과 슬라브인에게 봉사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이고 예술가임을 작품 하나 하나에 열과 성,혼을 바쳐 그만의 창작 세계를 풍성하고도 다양한 회화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를 사랑하고 지탱해 주었던 여인의 정신적 지원이 그가 창작활동에 더욱 빛을 발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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