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내한테서 찔레꽃 냄새가 난다꼬 - 이지누가 만난 이 땅의 토박이, 성주 문상의 옹
이지누 글.사진 / 호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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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할아버지께서 대학 1학년시절까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다 가셨다.할아버지께서는 말그대로 질박한 전형적인 촌부였다.작고하시고 한세대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생전 할아버지의 모습은 흰 광목에 아침부터 저녁무렵까지 논과 밭일,땔감 준비등으로 등이 휘어질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벌레이셨다.당시 마을에선 최고 연장자이셨기에 새마을 회관에서 잔치라도 열리면 할아버지는 연장자 대접을 받으며 막걸리라도 한 잔 걸치시면 풀기없던 볼에 붉그스름하게 홍조를 띠시며 너털 웃음과 흘러간 노랫가락으로 잔치의 흥을 더하곤 했다.내가 장손이어서인지 늘 내게 관심과 애정을 동생들에게 들키지 않게 아버지께 "잘 해 주어라"라고 당부하시기도 하고 근검절약이 강하셨던 분이셨던 만큼 막걸리 생각이 나시면 쌈지돈을 꺼내어 내게 술 심부름을 간간히 시키셨던 기억도 새롭다.특히 담배를 많이 태우셨던 까닭으로 손톱엔 니코틴 자국이 물들었고 저녁을 드시면 곧장 단잠에 빠지시곤 했으며 새벽 5시 무렵이면 으례 논물을 대러 가기도 하고 논두렁의 풀을 베러 가시며 아침 먹을 시간이면 헛기침을 하시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시절도 엊그제 같다.

 

이 글의 문상의 옹(翁)은 조강지처를 먼저 여의고 홀로 살아가시던 중 저자와의 근3년간의 만남의 기록물이다.근 100세를 앞둔 문 옹은 한시도 몸을 쉬지 않고 논과 밭,산으로 나가 일만 죽도록 하는 전형적인 촌부의 모습이고 저자는 첩첩산중에 홀로 사는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 주고 때론 부족한 일손을 거들어주기도 하는 등 할아버지와의 지근거리의 만남은 다정하기도 하고 외부와의 고립과 소원을 잠시나마 달래주기도 한다.저자는 경북 성주 경찰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엔 으례 라면 1박스와 건강 음료를 챙겨 간다."이기 누꼬,인자 오는 길이가,언제,밤에 왔디나? 집은 다핀체,어른들도 다 편안하시고......?"

 

정감어린 인삿말과 반가움이 묻어 난다.봄이 되면 논에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를 하며 논두렁의 잡초,피뽑기,고추 모종,벼베기,탈곡,약간의 채소 가꾸기,약나무 채취 등으로 문 옹의 생활의 모습이 수채화마냥 기록되어 있다.도회지에 사는 아들이 버린 양복(가다마이)을 폼나게 작업복으로 삼고 저자가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양복을 입은 모습으로 렌즈를 향해 포즈를 취한다.그리고 무심히 고개를 숙이고 논과 밭일에 전념하며 저자가 귀가할 시간이 되면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자고 가라고 한다.혼자 사는 것이 무척이나 적적한가 보다.그래도 가겠다고 하면 경상도 사나이의 자존심 때문인지 더 이상 말리지 않고 미나리라도 한움큼 챙겨 준다.탈곡이 끝나면서 저자는 할아버지께 농담으로 새경을 요구하자 할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늙은 호박 두 개로 새경을 대신하는데 그 많은 쌀은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주려고 했던거 같다.자식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부모님의 따뜻한 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문 옹도 부인을 여의고 가묘를 바라보면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체념이라도 한듯 자신이 죽으면 가야 할 집을 무심코 바라보기도 하며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삭인다.15살에 결혼하여 자연을 벗삼아 작은동(鵲隱洞)에서 85년 가량을 살다간 문 옹의 때묻지 않은 질박하고 단촐한 삶의 여정은 돈과 물질이 지배적인 현대인의 삶과 비교가 된다.라면을 좋아하신 문 옹은 식은 밥을 말아 먹자 마자 낫과 괭이,지게,소를 데리고 논과 밭으로 향한다.도회지에서 자라 노동이 몸에 배지 않은 저자는 할아버지의 지칠줄 모르는 근력과 노동에 혀를 내두르기도 하는데 시골 촌부들이 근검 정신으로 일관성 있게 살아온 세월의 두터운 층이 손과 발,얼굴에 고스란히 쓰여져 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저자와 문 옹과의 마지막 만남이 있고 저자가 일로 바쁜 관계로 몇 년이 지나 다시 찾아간 문 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가묘가 높게 솟아오른 봉분을 보면서 저자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저자에게 인생의 짙은 향기를 안겨준 문 옹의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소박한 삶의 모습을 반추했으리라 생각한다.나또한 이 글을 통해 문 옹과 비슷하게 촌부로 일만 하다 살다가신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이 되살아 나고 무뚝뚝했지만 인자하고 배려심이 강하셨던 그 시절이 어제와 같이 선명한 흔적으로 마음에 아로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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