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연극이 쏠쏠하게 재미있다.제목도 눈과 귀를 자극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하다.전혀 부자연스럽다든지 가식이 있는거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천의무봉(天衣無縫)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그래서 관객들은 극의 흐름과 배우들의 연기에 몰입하고 감동과 여운을 함께 얻는다.'죽여주는 이야기' 연극을 앞두고 날씨도 쌀쌀하고 허기도 느낀 시간대(오후 7시반)였지만 좁은 소극장의 연기는 열기로 가득찼다.한참 사춘기에 있는 아들과 함께 관람한 이 연극은 중간 쉼없이 2시간 가량을 연기와 배경 음악 등과 함께 물 흐르듯 흘러갔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안타깝게도 스스로 삶을 마감하면서 남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야기하기도 한다.현대인이라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더 이상 버텨나가지 못한다든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실연과 경제적 무능력의 종국,따돌림과 소통 부재,고독과 외로움,고통 등으로 수많은 고민과 좌절을 딛지를 못한 채 숭고한 목숨을 죽음으로 자신의 뜻을 표출한다.이는 개인과 사회의 비극이다.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탈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개인의 소득과 경제부양을 두고 이혼과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데 돈과 물질문명이 우선이 되면서 인간 본연의 존엄과 사랑,배려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거 같다.

 

 

 

 

죽여주는 이야기는 자살을 앞두고 스스로 죽기가 두려워 '자살 연구소'에 자살 의뢰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사연을 음울하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고 위머와 위트를 섞어 간다.그림의 정면 뒷문 위쪽은 '자살 연구소' 간판이고 바로 위 대롱대롱 걸려 있는 것은 교수형에 쓰이는 목을 죄는 밧줄이다.자살 연구소의 연구소장과 조교(여성으로 분장한 남자 배우)가 무대의 흐름을 이끌어 가고 자살을 의뢰하러 오는 부류는 다양하다.특수학교의 장애아를 성폭행하여 스스로 죄의식과 가책을 느껴 자살을 하는 선생님,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겪는 정신적 갈등과 방황으로 죽으려는 나약한 학생,자식들을 다 키우고 여생에 즐거움보다는 외로움과 고독,슬픔이 곂쳐 삶을 조기에 마감하려는 늙은 노부부 등이 등장한다.넘을 수 없는 우울증이 쌓이고 사회적으로 도태되고 자존이 무너지면서 스스로 목숨에 대한 미련보다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인식하는 인식이 강한거 같다.자살은 우울증의 숭고한 시(詩)이고 희극적 퍼포먼스의 결정체라고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며 죽으러 오는 이들의 표정이 너무도 밝다는 데에 약간 놀라웠다.

 

 

 

 

모두가 자고 있는 어두운 야음을 틈타 자살 연구소를 찾는 이들의 사연은 갖가지이다.옛말에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배경 음악으로 모차르트의 진혼곡 레퀴엠이 흐르면서 죽여주는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달린다.살아가는 이유가 있다면 죽어야만 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다만 세상에 태어나 빛을 발휘하고 누군가에게 빛과 소금이 될 수있도록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고 통제해 나가는 굳건한 마음의 의지와 열정,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왼쪽에 있는 젊은 청년은 자살을 앞두고 반전의 뜻을 표한다.특히 공부지옥에서 살아야만 하는 청소년들에게 소중한 생명과 밝은 미래를 비쳐줄 '청소년을 위한 자살 예방교육'을 함께 의논하고 구상한다.

 

 

 

 

흔히 자살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인간의 내면을 밖으로 표출한다.개인이나 사회모두 손해이고 비극임에 틀림없다.먹고 살기 위해 모두가 힘겹게 살아간다.나보다 못한 이들도 많고 그들이 안고 있는 사연도 다양하지만 죽으려고 하는 모진 마음으로 한번 더 자신을 제어하고 성찰해 보는 것도 자신을 비롯해 많은 이에게 슬픔과 비참함을 던져주지 않을거 같다.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안고 있는 고민과 갈등,번뇌와 좌절을 연극으로 보여준 '죽여주는 이야기'는 시사성과 함께 인간의 내면 심리,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랑과 배려,힘과 용기,격려를 모아야 할때가 아닐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