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 - 개정판
이황 지음, 이장우.전일주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나 지금이나 부모가 자식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각별하다.일상 속에서의 잔소리부터 모범적인 언행,자상한 멘토,죽어서도 자식이 잘 되어 대대로 가문이 융성해지기를 바라는 점은 천륜의 정이 아닐까 싶다.특히 유교 문화권인 한국의 경우에는 혈육간의 정이 두텁고 부모가 자식에 거는 기대는 전세계의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이라고 생각이 든다.퇴계 이황은 한국이 낳은 조선시대의  석학으로서 왕성한 독서력과 불후의 철학 서적을 저술하는등 학자로서의 면모도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다.그가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면서 본가에 있는 첫째 아들 준에게 보내는 ’인생 지침서’는 핵가족화,개인주의화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부모 자식간의 언어 없는 생활에 일침을 가하는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하다.그는 70여 평생을 살다 갔지만 40세부터 55세까지 맏이인 준에게 보낸 편지글을 접하노라니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모와 자식은 한 핏줄을 주고 받은 DNA의 교합체이고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훈훈한 관계임이 이 글은 전해 주고 있다.가슴 뭉클한 사연과 퇴계 선생의 자상하고도 치밀한 자식 교육이 전달되어 나 자신도 상황에 맞게 내 아이들에게도 전수하고 읽게 해주고 싶다.

 퇴계 선생의 생전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이 불거졌고 조선의 관료제의 부패와 사색 당쟁의 와중에 있었고 말년에는 왜구의 침입마저 있었기에 당시 사회의 분위기는 ’백면서생’의 사회 구조와 체제에 놓여 있었다는 생각이 들고 관료들의 배 채우기식의 당파싸움 및 당쟁은 훗날 일본 에도막부의 침입 구실을 제공했다고 생각이 든다.을사 사화,양재역 벽서 사건,을묘 왜변등이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70여 차례의 벼슬길을 사양하면서도 꼿꼿한 선비 정신은 일관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데,그것은 자신의 건강 문제,학문에 대한 열의,제도권 정치애 대한 실망등에서 기인한거 같고 그가 남긴 수많은 저서중 <성학 십도>와 <사단칠정 논변>,<퇴계선생 문집 59권>등은 중국에서도 가치있는 학술로서 인정을 받고 앞다투어 그에 대한 연구가 봇물이 터진듯이 줄기차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니,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갖어볼 만하다.

 퇴계 선생께서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은 번역을 했기에 그의 살아있는 뜻은 백퍼센트 맞아 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시대적인 상황과 그의 입장,심리등을 전반적인 맥락에서 놓고 볼때엔 사색 당쟁과 농경 사회였던 조선의 당시 상황과 부정이라는 천륜등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는 공감이 간다.농사를 짓는 아들에게 파종,납세,물건 판매후 원하는 물건 사기,노비 관리,친척간이 재산 분쟁 대처법등까지 선비의 자식으로서 체면을 구겨서는 안된다는 처세법과 교유 관계등까지 촘촘하고도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여 생원,진사과에 합격하여 벼슬살이를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점이 두드러졌고 군역을 피하는 법도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했다.현대판 고위층들이 자신의 자식만은 군역면제를 위해 온갖 술수를 사용하는 것에 비춰 볼때 부모의 마음과 국방의 의무중에서 우선 순위는 당연히 국방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본처 및 둘째를 일찍 앞세우고 후처와 함께 한양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퇴계 선생이 맏이에게 남기는 가르침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여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가르침과 본보기가 잘 녹아져 있기에 아버지라면 자식에 전해주는 메시지로서,자식이라면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천고불변의 천륜지정이라는 것을 부자지간이라면 꼭 읽고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흑백 컬러 화면에 나오는 갓쓰고 도포차림의 근엄한 선비가 서안에 앉아 세세한 붓으로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글과 시골에서 노비를 다루고 농사를 지어가는 퇴계 선생의 아들의 모습이 한가롭지만 주변을 돌아보고 살아가는 방도를 익혀 가며 나라를 걱정하는 퇴계 선생의 우국지정등이 교차해 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