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밖의 길 - 유순하 장편소설
유순하 지음 / 책세상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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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밖의 길’이 주는 이미지는 단순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뭔가 독자들에게 여운과 사념을 품게 해 주는 묘한 끌림이 있어,이 글이 꽤나 부피가 나가지만 짬을 내어 독서를 하는 내게는 주요 등장인물 3~4명이 이끌어가는 심적 고민,갈등,방황등을 작가는 로망과 서사,생명의 소중함등을 일깨워 주는 휴먼소설로서는 오래도록 내 가슴 속에 반향과 울림이 있을거 같다.

이 글에 등장하는 주인공 변(卞)씨,일본인 후미꼬(文子)씨,프랑스인 존씨등이 여행길에서 만나 마음의 친구가 되어 주고,같이 동행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와 끌림을 멋지게 맺어가는 여정을 읽으면서,조그만한 울타리 속에서만 살아오고 있는 내게도 또 다른 세계,여행의 묘미,길에서 만나 속으로만 애태우던 뜨거운 욕망이 사실혼으로 이어지기도 하면서 내면에 잠자고 있던 원초적 본능마저 살아나는 듯이 주인공들과 함께 길 여행길에 동참하는듯 몰입해 가고 있었다.

변씨,후미꼬씨,미스터 존 모두 하나씩 큼지막한 사연을 안고,그 아픈 사연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고 싶었던지 그들은 선진국들이 자랑하는 멋진 명소,문화시설을 돌아보는 여정이 아니라,그 옛날 역사와 문화유적을 자랑하는,개화가 덜 되어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냄새가 풍겨오는 곳을 저자는 알차게 소개를 하고,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나 주위의 여건,풍물등을 아낌없이 보여 주고 있어 살아있는 현장감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어 가는 데에 커다란 매력을 안겨 주었던 거같다.

변씨 남편은 화가로서 출품한 작품이 반체제(1980년대) 색깔을 띤다고 해서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 자살을 택하고,후미꼬씨는 연예인으로서 잘 나가던 남편이 유명 가수와 신접살림을 차리면서 이혼의 상처를 안게 되고,미스터 존은 어머니가 집시족이고 집시족으로는 행세하기 어렵고  멸시받는 프랑스에서 어머니마저 여의자 홀로 남겨진 자신은 강도라는 범죄를 안고  입옥을 하게 되지만 감옥 안에서 썼던 글이 좋은 평가를 받자 곧 출옥을 하고 받은 인지세로,이 3명은 카트만두,캘커타등지에서 조우하게 된다.

풍광이 멋진 네팔의 카트만두,흙먼지,소음,굶어 죽어가는 빈민이 3천만명이 넘는다는 인도,문화와 예술의 도시 파리,그리고 안데스의 마추픽추의 잉카유적,칠레의 산티아고,마지막 여정처인 이스터 섬등이 하나의 파노라마로 각인되어 가며,이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또 다시 우연 아닌 우연으로 재회하게 되는 장면에서는 ’사람은 살아있고 마음 속에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다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인연설이 내내 머리 속에 뿌듯하게 자리잡아 감을 느꼈다.

특히 변씨는 자신이 집시족이라는 불우한 환경과 열등의식인지는 몰라도 말수도 적지만 착한 분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인도 캘커타에는 테레사수녀를 기리고 죽음을  목적에 있는 환자분들을 구제하는 구제원이 있는데 변씨와 존은 이곳에서 만나 인간적인 면과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씻어 줄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인연의 싹이 트여 가면서 다음 여정지인 마추픽추에서 재회하면서 속에 있는 진심을 토로해 나간다.또한 후미꼬도 칠레 산티아고에서 재회하면서 변씨와는 자매의 연을 맺는 여행길에서의 또 다른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이국땅 타지에서 아무도 나를 알지 주지 않는 고독의 길을 헤쳐 나간다면 누구나 인간이 그립고 기대고 싶으며 이들처럼 서로가 벗이 되어 주면서 또 다른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올 수도 있음을 느꼈는데,변씨와 존은 이스터 섬에 안착하면서 마음씨 좋고 성품이 너그러운 ’후아나’할머니 덕분에 삶의 터전인 오두막을 처소로 삼게 되면서,미스터 존은 변씨에게 프로포즈를 정식으로 하게 된다.이 점에서 변씨는 한국인의 외국인과의 결혼관이나 2세에 대한 선입견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변씨도 어렵게 내린 판단 끝에 둘은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뜨거운 잠자리를 갖게 되면서 2세를 바라보게 되지만,그간의 여독과 복통과 발열로 인해 2세의 출산을 보지 못하고 식도 올리지 못한채 쓸쓸하게 이스터 섬 바닷가 한 켠에 불귀의 몸이 되고 만다.

이제 변씨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할 수 밖에 없고 태어난 아이가 튀기여서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아이를 입양할까 어떻게 할까등 많은 고심 끝에 아이의 이름대로(변희망) 아이의 꿈과 희망을 최대한 살려주기 위해 막연하게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몸을 싣는다.길에서 만나 또 다른 길을 찾아 가는 이들의 여정을 저자는 다소는 인위적으로 그들의 만남이 재현되었지만,그래도 변씨와 존씨 사이에서 태어난 ’희망’이는 사생아의 몸이 되겠지만 그의 미래를 위해 일도양단의 결정의식이 현실적이면서도 인간애적인 면이 짙게 깔려 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파우스트의 절실한 탄식에 대한 울림이 있는 문장을 인용해 보려 한다.
"내 마음에는, 아아, 두 개의 충동이 공존하고 있어서,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를 잡아 끌고 있네.하나는 무서운 욕망에 사로잡혀 현세에 매달려 현세적 만족을 얻으려는 충동이요,다른 하나는 세상 먼지를 벗어나 숭고한 선인들의 정신세계로 솟아오르려 하는 충동일세".P439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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