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버 - 세기의 전환기를 이끈 위대한 사상가
마리안네 베버 지음, 조기준 옮김 / 소이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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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자본주의 윤리정신에 입각한 20세기 최고의 지식인으로 칭송받고 있는 막스베버의 생애에 대해 그의 부인 마리안네 베버가 쓴 전기를 통해 그의 삶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해해 보는 시간이 되었던거 같다.

 그는 1864년 독일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까지 살다간 법률,경제,사회학 방면에서 많은 연구와 저서로 후학들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자본주의의 윤리 정신은 현대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가들이 그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문과 유년 시대로부터 그의 서거까지의 일대기를 베버의 부인 마리안네와의 27년간의 생애 동반자로서 그의 가문,성격,인간 관계,연구 생활,사회에 끼친 영향등을 마치 막스 베버가 일기를 써내려 가는 형식을 빌려 객관적으로 전달해 준 점이 그에 대한 소중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그를 연구하는데 일조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의 출생 및 유년시절은 비스마르크의 철혈 재상주의와 독일의 근대화,보불전쟁등으로 국내 사정이 그리 평온하지는 않았고 집안은 아마포점을 경영해 왔지만 근대화 및 기계화에 밀려 가업은 시들해져 가는 형국이었고 법률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적인 학생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준다.그것은 독서광이었는데 신학,철학,법률,경제,역사등의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했다.역시 한 시대,한 사회를 이끈 리더자는 다방면의 독서 속에서 인격을 형성하고 미래를 이끌어 가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베버는 사법관시보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적 흥미를 모두 단념하고 현실적인 목표에 전심전력을 하게 된다.또한 법률사와 경제사의 경계에 속하는 <중세상사회사서설>이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사회학자로서 자존심과 명예를 굳혀 나간다.

 그의 20대 시절은 비스마르크 단독으로 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국가 풍토가 형성이 되고 비스마르크에 대한 베버의 견해는 중도적인 입장이었으며 먼저 배우고 관찰하고 개량하고서 다양한 사조를 이해하려고 하였다.즉 모든 사상으 자신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정치적 행동의 여려 동기에 대해 공정하려고 노력했던 점이 돋보인다.

 마리안네 부인과는 이종간의 특이한 관계였지만 서로의 마음이 통하고 주위에서 인정받는 사이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된다.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교편생활을 잡으며 마음의 안정과 평화로움,부부간의 알콩달콩한 관계가 깊어져 가며 동시에 그의 학문적 성과도 일취월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국제경제학의 이론과 실제,농업정책,노동자문제에 관한 대규모 강의를 치밀한 구성에 따라 완벽하게 틀을 짜놓은 것에 환희를 느낀다.

 그는 본질적으로 지칠 줄 모르는 자료의 추구와 현존하는 것 이면에 숨겨진 존재의 생성 진행에 깊이 마음 끌리는 한 사람의 젊은 역사가상이다.한편으로는 당시의(1880년대) 정치적,사회적인 여려 문제 역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논리학적.철학적 문제,자연과학과 문화과학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고찰을 이루어 나갔는데,자신이 '주관적으로 고찰한 의미'의 이론이 올바르게 이해되고,그것에 의해 신앙과 이성,증명할 수 있는 것과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종이 한 장의 차이'가 분명하게 인식되는 것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특히 이해와 의미,이념형 문제,인식과 평가,와해에 직면한 시대사조,교단에서 교수는 예언자가 되어선 안 된다,종교와 경험과학,종교사회학적 탐구에도 매진하였으며 제1차 러시아 혁명을 거치면서 역사 및 사회학적 저작에 들어가게 된다.<고대농업사정>이 그를 말해 준다.

 그의 인생 후반은 사회적 활동과 투쟁과 연계된다.정치적 격동과 함께 독일은 의회주의 정치체제가 아니라고 부르짖는다.빈의 사회정책학회에서는 정치의 관료주의화를 반대한다.1919년 사회학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되었는데 쟁쟁한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베버는 모든 테마의 토론에 참석했다.당시 사회학은 전문과학으로 형성되지는 않았고 다만 인식의 대상을 전제로 하였으므로 모든 학문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의 말녀은 팔렌슈타인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부인과 함께 여생을 즐겼다.여행의 욕구가 강렬했다.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전장터에서의 부상자에 대한 성인교육과정을 설치하여 화폐의 본질,독일과 러시아의 농지제도의 차이에 관해서 설명했다.

 퇴직한 베버는 종교사회학 책 저술에 몰두하며 1917년 점차 증대하는독일의 정정 불안을 벗어버리고 이어링하우젠의 조용한 조화로운 세계에 몸을 파묻고 정신적 교류와 투쟁으로 충실한 나날을 보내게 되며 1920년 서거하기 직전까지 독일의 민주주의 선거를 위해 고뇌했고 이해사회학과 역사철학,새로운 개념 형성의 실존적 귀결,심리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를 위해 헌신했고 젊은이들에게 보다 명석한 판단력을 갖고 자기가 나가야 할 길을 선택하도록 힘썼던 것이다.

 이 도서 읽기를 마치면서 느낀 것은 막스 베버는 학자풍의 아버지의 영향과 따뜻한 아내의 내조,그의 식을 줄 모르는 다방면의 연구,토론,지적 욕구,지도자적 자질등이 불후의 지식인으로 존경과 연구의 대상으로 오래도록 후세와 지식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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