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간 이곳에서의 시간은 조금씩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은 채 내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희미한 빛이 사소한 계기로 일상 속에서 다시 반짝이며 살아나는 순간들 또한 찾아올 것이다. 그 찰나의 빛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애쓸 것이고, 그 애쓰는 마음이 있는 한 우리는 이 세계에 조금 더 선한 존재로 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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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가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라고 했듯이. 시공간을 축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죽음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 비해 공간은 유동적이며 탄력적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 찰나의 스치는 만남, 이런 것들이 어떤 공간에서는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결과로 변할 수도 있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더 나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 삶을 열어주기도 한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삶의 예외성과 우연성 속으로 뛰어들어 삶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68-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