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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보며 어떤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 이 책을 골랐다. 2020년이라고 제목에 딱, 있으니 그렇다. 잊고 있었는데 2019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다 말았다. 이제 꺼내려니 2019년이란 숫자가 머쓱해진다. 이 책은 늦기 전에 2020년 타이밍에 맞추고 싶었다.
7편의 단편소설과 평론가의 글을 번갈아 읽고, 심사위원의 소감으로 책이 마무리가 된다. 심사위원의 소감을 읽고 나니 나도 한 편씩 내 소감을 말하고 싶어졌다.
1. 음복-강화길
결혼한 여성이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어딘가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흐른다. 한국의 젠더 이야기는 소재만 봤을 때 더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싶다. 오래되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속될 이야기. 하지만 흥미롭게 이야기를 끌고간 작가의 능력이 돋보였다.
개인적으로는 평론가의 글에서 나의 머리를 친 부분이 있었다. 부모의 감정처리 역할을 자처하는 딸의 역할이 지금 나의 모습이었고, 남동생보다 내가 더 많이 맡고자했던 역할인데, 나도 모르게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뭔가 억울하고 열받지만 딱히 벗어날 방법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젠더 이야기는 정말 끝이 없고 화를 안낼 수 없는데, 그래도 ‘음복’은 덜 화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이 공감이 돼서 그런 것 같다. 사랑하면 부당한 결혼 생활이라 해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해 본다.)
2.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최은영
쇼코의 미소를 재밌게 읽어서 어딘가 닮아있는 이 이야기도 좋았다. 소설의 밑바닥에 졸졸 흐르는 작가의 사회 의식이 마음에 든다. 외국이나 외국어로 연결된 다른 세계를 소재나 인물로 배치하는 점도 특징인 것 같다. 쇼코의 미소에서도 이 점이 인상적이었다.
3. 그런 생활 - 김봉곤
나는 소수자의 삶을 특별히 혐오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는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할 뿐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강한 어필은 조금 거부감이 든다.
‘누가 뭐라 했나요?’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뭐라 한 거는 맞으니까,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법적 요구를 하고 존재를 인정해 달라고 하는 거겠지만.
아무튼 이 소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작가와 작품이 퀴어와 관련이 있어서 떠오른 생각이었다. 퀴어든 아니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난 다양한 삶을 존중한다.
4. 다른 세계에서도 - 이현석
낙태죄 폐지. 나도 찬성한다. 여성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낙태를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한가지 입장으로 정의내리지 못한 나의 부족한 가치관이기도 한데,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입장과 화자의 복잡한 생각이 나같은 사람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쟁점이 뭔데, 뭐 어떤 입장이라는 거지, 라며 조금 복잡하고 답답했는데 결국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이다.
5. 인지 공간 - 김초엽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작가지만, 그 상상력이 나에게는 너무 추상적이고, 상상력을 풀어내는 서사는 크게 임팩트가 없다. 이전에 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이렇게 벽이 쌓여가는가...
6. 연수 - 장류진
기대하는 작가님. 일의 기쁨과 슬픔만큼 확 빠져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글이 산낙지 같다. 꿈틀거리는 생생한 묘사와 동시대인에게 와닿는 신선한 소재(맘카페 검색) 이렇게 글을 풀어내는 것이 이 분이 소설가로서 지닌 재능인 것 같다. 이런 부분을 더 느껴보고 싶은 분은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어보시길.
7. 우리의 환대 - 장희원
나쁜 의미는 아닌데, 찝찝했다. 자꾸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분위기만 잔뜩 조성하고 이야기가 막을 내렸다. 딱히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변죽만 울리다 끝난 느낌. 단편소설의 특징이라고 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