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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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교보문고에서 샀던 날을 떠올렸다. 책을 사기 전에 목차를 보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은 샘플책이 없고 비닐로 싸여 있어서 그냥 구입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말이 주는 아이러니한 느낌이 좋았고, 표지가 좋아하는 노란색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차별을 주제로 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본능적으로 끌린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이유는 나 역시 이 책에 따르면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걸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람들은 본인이 차별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마음과 의도는 선량하지만, 실제 언행은 누군가를 차별하기 때문에 차별주의자라는 것이다. 책 제목부터 집필 의도와 주제까지 굉장히 매력적인데,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내용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몇 장 읽자마자 '아, 이거 내 스타일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뭔가 배울 점이 있을 거라는 것과 미처 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책을 읽었다.(사놓고 안 읽으려니 ㅠㅠ)

실망스러운 점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의도는 알겠는데, 결과적으로 글쓴이의 거친 주장만 남아있는 것이다.

1. 본인의 주장(차별은 안돼, 구분 짓지 마.)을 각종 사례에 갖다 붙이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예를 들면 편향된 능력주의에 대해 언급을 한다.(5장 어떤 차별은 공정하다는 생각) 하나의 기준으로(토익 점수) 채용을 하면 장애인에게 불리하다는 내용이다. 이야기는 학교의 우열반 제도로 흘러간다.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채용기준이 없고, 학교에서 우열반을 운영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일이다. 두 가지는 현재진행형인 이슈도 아니다. 이런 사례를 가져와서 편향된 능력주의를 지적하면 근거가 빈약하지 않나? 게다가 중간에 존 롤스의 무지의 장막을 인용한다.

2. 인용하는 글을 너무 많이 첨가했다. 인용 구절은 대부분 전문가의 말(한나 아렌트 등), 외국 연구 및 통계 자료다. 특히 인종차별 및 인종분리 정책에 대한 연구 자료를 많이 인용했다.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할 정도만 가져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고 가르치려는 느낌을 받았다. 또 너무 많은 인용으로 인해 논리적 비약이 심한 것 같다. 예를 들면 인종분리와 노키즈존을 동일 선상에 두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인가 고개가 갸우뚱했다.(6장 쫓겨나는 사람들) 차라리 인종분리는 인종분리를 주제로, 노키즈존은 노키즈존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더라면 어땠을까? 트렌스젠더의 고충을 생각해서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어이없는 웃음도 나왔다.(175쪽) '분리하는 것은 옳지 않아!'라는 자기 확신에 힘입어 편향된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3. 차별에 대해 민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차별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도 맞다. 당연히 혐오 표현도 반대한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항상 선은 아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여야 하지만 그 평등이 결과의 평등까지 지향하는 것은 반대한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게 태어났다. 그런데 어떻게 모든 것을 똑같이 맞출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차별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을 위해 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것을 똑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들린다.(앞서 언급했지만 이 책의 주장이 거칠게 다가온다.) 그럼 '똑같이'라는 영역과 한계를 어디까지 정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는 똑같이의 영역은 기회지, 결과가 아니다.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기회가 똑같이 주어져도 시스템과 과정에서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한다. 그럼 그 시스템과 과정을 고쳐나가면 된다. 나는 이 과정이 여러 사람의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보적인 사람은 그 시간이 너무 더디다고 느낄 수 있다. 보수적인 사람은 그 시간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회가 진보하는 속도는 그 사회의 대중이 합의하는 만큼 나아간다고 생각한다. 더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성에 안찰 수 있다. 그래서 조급한 나머지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면서 현실을 외면한다. 100이 아니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이렇게 자기주장만 하는 태도가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까?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과도 함께 연대해서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려고 하면 안 될까?

4. 대통령 후보자가 TV 토론회 생중계에서 다른 후보자로부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받았다. "동성애를 반대하십니까?"(225쪽) 누가 봐도 악의적인 질문이고,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저열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받은 후보자는 당황했고, 자신의 답변을 수정했다. 질문을 피해 간 다른 후보자는 정돈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가끔 사람을 상대할 때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 잘 대처를 못할 때가 있다. 그 방송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때 당시 답변보다 질문이 더 당황스러웠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 질문이다. 평소에 동성애는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좋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

"차이를 강조하는 접근은 기존의 분리된 체제와 낙인을 심화시키거나 유지시킬 위험이 내재되어 있다."(183쪽)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성적 지향성을 강조하는 접근이 오히려 더 낙인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해서 하는 생각일 수 있다. 요구하는 바가 있는 사람의 입장이 되지 못했으니까.

그들과 내가 생각이 다른 것처럼, 성적 지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생각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는데 왜 이렇게 적대적인 느낌이 들지?(146쪽) 나랑 생각이 다르면 악인가? 문득 처음에 매력을 느낀 제목도 선량이라는 단어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비꼰건가?(물론 아니겠지.)

앞서 언급했지만 사회는 진보할 때도 있고, 퇴보할 때도 있어서 나아가는 속도가 내 기대에 못 미칠 때가 많다. 생각이 앞서지 못했다고 해서 대중들이 멍청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진보는 사회 구성원이 합의한 만큼 나아가는데, 왜 이만큼 합의하지 않아?라고 자기주장만 하면 갈등과 반목만 남고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앞선? 분들, 제발 조급증과 교조적인 태도 좀 거두어 주시길.)

5. 차별이라는 주제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좀 더 섬세하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양한 차별의 상황을 너무 버무려서 공감이 안되고, 인용하는 글이 많아 거창하고 어렵다. 차별이라는 일상의 이야기가 와닿지 않았다.(표지 디자인은 친절한데) 글쓴이가 겪은 결정장애 이야기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둔감하거나 놓치는 상황을 일상의 이야기로 전달해주었으면 내가 좀 더 많이 반성했을 텐데.

6. 나는 선천적인 차이와 취향으로 인해(성별, 인종, 신체, 종교, 재산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남의 노력과 성공을 폄훼하는 평등도 반대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하는 것이 완벽하진 않지만 평등을 향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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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20-01-08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 형님이 얼마전에 독서모임에서 읽고 있다고 알려준 책이네요 ^^ 반가워서 답글 달아요. 옆집 형님이 ˝모르고 했던 차별들이 많았어˝라고 이야기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읽어 보고 싶은 책이에요
리뷰 고마워요

지유 2020-01-08 07:56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즐겁게 읽어 보셔요~^^

Comandante 2020-01-08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깊이 공감합니다.
‘선량한 파시스트‘들이 이 책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구요..

지유 2020-01-08 10:44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 제가 오독했을 수도 있지만, 읽으면서 머릿 속에 끊임없이 물음표가 뜨더라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