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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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 원광식)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에도 그가 만든 종이 소리를 낸다. 중학교 나와서 다른 공부 없이 흘러온 인생, 그래서 원광식은 아들에게 대를 이어달라고 했다. 하여 아들은 지금 일본에서 금속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아들 지도교수 말이, "박사과정은 네 아버지 밑에서 밟으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세계 최고인데 뭣하러 딴곳에서 길을 찾느냐는 것이다.
(중략)
"이제 종 만들다가 죽는 일만 남았어요."
먹고살려고 시작했던 '종 업자'가 어느덧 대한민국 '종의 역사'가 되었다.-128쪽

(파이프오르간 마이스터 구영갑) 도제徒弟, 말 그대로 종업원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었다. 아내 나혜경 씨는 "왜 남들 안 하는 짓 해서 가족 굶기려 하냐"고 반대했지만 남편은 "나 잘난 거 하나 없지만 자신 있다"고 했다. 소리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겠는가.
소리에 홀린 중년 가장 구영갑은 베를린에서 오스트리아 빈까지 화물트럭 기사, 물 배달, 책 배달, 호텔 객실 창문 닦기, 채소 장수에 관광가이드까지 안 해본 게 없다고 했다.
(중략)
그가 만든 파이프오르간이 한국에 팔릴 때마다 프랑크푸르트신문은 그를 화제에 올렸다.-130쪽

(이소영) 보아라, 사람들아. 금강산이 그리운 사람들아, 보아라. 누구나 가슴속에 그리움을 묻고 살지만, 그녀만큼 세상이 그리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둠을 떨쳐내고 그녀가 노래를 한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도 비록 여전히 곤궁하지만, 어둠은 가라.-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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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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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가정(假定), 즉 '만약에..'라는 상상을 해본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거울 속에서 그 '만약에'를 오늘에 비춰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사실, 멀지 않은 조선일 경우에 지금의 여러 역학관계와 과연 얼마나 같고, 다른지는 평가에 따라서 진폭이 큰 사안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정치에서는 동일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할 수 있지 않을까?

소현세자나 정조의 급서, 그리고 최근의 급서 등이 '독살'이었다는 주장이 이 책에서는 그 제반 환경과 역학관계, 그리고 당시 현장에서의 정황 등을 통해 매우 설득력있게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으며 '소현세자가... 정조대왕이... 그렇게 독살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하는 추론과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나 다양한 연령대에서 쉽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쓴 저자의 공력이 눈에 띄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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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구판절판


소현세자의 꿈과 좌절은 그야말로 조선의 꿈과 좌절이었다. 소현세가가 순조롭게 즉위하여 청국에서 익힌 세계정세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정사를 펼쳤다면, 인조의 쿠테타로 야기된 그 모든 국난은 긍정되고 오히려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조와 반정의 주역들이 소현세자를 제거하고 원손마저 제거함으로써 소현세자의 꿈은 지상에서 사라졌다. 조선을 개혁의 나라, 개방의 나라로 만들려던 선진적인 꿈은 소현세자와 강빈 그리고 석철과 함께 차디찬 지하에 묻히고 만 것이다.
소현세자가 데려온 천주교 신자인 청나라 환관들은 청나라 사신과 함께 돌아갔다. 그리고 천주교라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인 이들 청나라 환관들이 돌아감으로서 조선은 세계에서 유일한 주자학 유일 사상의 나라로 남게 되었다. 그 밀폐된 공간과 정지된 시간을 채운 것은 인조반정의 후예들인 소중화주의자들의 사대주의와 예학이었다.-126쪽

효종이 전례를 깨고 송시열과 독대한 것은 바로 이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에서 독대는 금지되어 있었다. 국왕은 반드시 승지와 사관이 입회한 자리에서 정사를 처리하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왕과 신하의 독대는 매우 이례적인 행위였다. 효종과 송시열의 독대는 효종 10년 기해년에 있었다고 해서 '기해독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독대다. 그해(1658년) 3월 11일의 일이었다.-151쪽

그중 첫 번째 일정이 '왕세제'를 책봉하는 것이었다. 왕세제는 임금의 아들이 아닌 동생을 후사로 삼는 것으로, 비상한 정치상황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었다. 이방원이 왕자의 난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형인 정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고 자신이 왕세제로 있다가 즉위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비정상적인 정치 일정이 경종 축출을 향한 노론의 제일보였다. 노론 지도부는 당인인 사간원 정언 이정소에게 왕세제 책봉 문제를 공론화하는 역할을 맡겼다.
"전하의 춘추가 한창이신데도 후사가 없어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고 인심이 흩어졌습니다. 이를 수습하려면 후사를 빨리 정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경종 원년 8월이었다. 왕위를 이을 후사를 빨리 정하라는 상소였으니 말인즉 옳았지만, 문제느느 경종에게 아들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들 없는 국왕에게 후사를 정하라는 것은 만약 숙종 때였다면 삼족이 멸족당할 일이었다.-219쪽

그 첫번째 사건은 홍계희의 손자인 홍상범이 암살단을 궁중에 난입시켜 정조를 살해하려 한 엄청난 것이었다. 조선 개국 이래 대궐에 암살단을 난입시켜 국왕을 살해하려 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는 조선의 국가 체제가 갈 데까지 갔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국왕 암살에 대한 명분도 없었다.
홍상범은 천민 출신 장사 전흥문을 돈과 여자로 포섭해 행동책으로 삼은 후, 궁성 호위 군관 강용휘를 포섭하고 그를 통해 20명의 동조자를 규합했다. 이들은 정조 즉위년 7월, 칼과 철편을 들고 대궐 담을 넘어 정조가 머무는 경희궁 존현각 지붕까지 올라가 정조의 목숨을 노렸으나 한 호위 무사에게 발각되어 도주했다. 이들은 대담하게도 다음 달 경계가 강화된 대궐 담을 재차 넘다가 포군에게 체포되었다.-264쪽

수동적인 고종의 정치 태도는 대외 관계에서 보다 심각한 위기를 드러낸다. 고종 12년(1875년) 9월에 있었던 일본 군함 운양호의 강화도 침입 사건은, 앞으로 밀려올 외세에 대한 그의 외교 능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었다. 대원군이라면 이 도발 행위에 대해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때처럼 군사적으로 맞섰을 것이다. 이때 일본은 미국의 군사 위협에 굴복해 개국한 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정한론이 기승을 부리기는 했으나 국력을 기울여 조선 침략에 나설 상황은 아니었고, 그럴 실력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종은 개국에 뜻을 두었더라도 일단 운양호를 격퇴한 후 대등한 위치에서 주체적으로 개국을 단행해야 했다.-297쪽

이토와 이완용은 다음 날 아침 고종이 거부하는데도 경운궁 중화전에서 황제 양위식을 강행했다. 양위하는 고종과 양위받는 순종 모두 참석하지 않은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양위식이었다. 그 후 일본은 순종과 황태자인 영친왕 은을 덕수궁(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주시킴으로써 고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 했다.-309쪽

이회영이 고종의 시종 이교영을 통해 의사를 타진하자 고종은 선뜻 해외 망명 계획을 승낙했다. 고종이 해외 망명 계획을 쾌히 승낙한 것은, 당시 일본이 세자이자 순종의 동생인 영친왕을 일본의 왕족 이방자와 혼인시키려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종은 조선의 왕세자가 조선 여인이 아닌 일본 여인과 혼인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국혼에 대한 모든 결정권은 고종의 손을 떠나 일본에게 있었다.
(중략)
문제는 그날 밤 고종의 병세가 깊어 숙직한 인물이 바로 일본으로부터 자작의 작위를 받은 친일파 이완용과 이기용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음 날 묘시(오전 6시)에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그러므로 고종의 임종을 지켜본 인물은 헤이그 밀사 사건 때 고종에게 "일본에 가 일황에게 사죄하든지 퇴위하라"고 윽박질렀던 이완용과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친일파뿐이었다.-314쪽

그(고종)의 부인 명성황후 민씨가 살해됨으로써 을미의병이 일어나고, 고종의 독살로 3.1운동이 발발했으니, 아마도 고종 부부는 죽음으로써만 일본에게 복수할 수 있는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른다.
518년간 존속했던 조선의 마지막 군주의 인산을 애도 시위로 보낸 것은, 500년 왕업에 대한 이 땅 소박한 백성들의 마지막 의리와 예우인지도 모르겠다.-320쪽

(총론) 그러나 그 후에도 사대부들은 무려 300년이란 세월을 통치자로 군림했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생명의 연장이었다. 정상적인 생명력을 다한 조직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조선 역시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였는데, '국왕 독살설'도 그 하나다. 국왕 독살설이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16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326쪽

(총론) 신하가 임금을 선택했다는 뜻의 '택군擇君;이라 하는데, 국왕 독살설은 그야말로 이 '택군'의 결과였다.
택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국왕을 독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임금을 공개적으로 갈아치우는 것이다. 왕을 갈아치우는 것을 '반정反正'이라 한다. 연산군을 내쫓은 중종반정이나 광해군을 내쫓은 인조반정은 신하들이 임금을 축출하고 새로운 임금을 옹립한 쿠테타였다. 그나마 '정도正道로 돌아가다'는 뜻의 반정은 신하들이 임금을 내쫓을 명분과 힘을 지니고 있는 경우였다.
그러나 명분이 부족하거나 명분을 강행할 만한 힘이 부족한 경우에는 은밀하게 국왕의 신체에 위해를 가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독살'이다. '반정'과 '독살'은 둘 다 신하들이 임금을 선택한 결과라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다. 반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므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있는 데 비해 독살은 은밀히 이루어지므로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었다.-3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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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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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정리중에..) 2005년 4월에 출간되고, 이어서 영화화되어 책과 영화가 모두 꽤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매우 낯익다. 소설로도 자주 접한 스토리이고, 그외 드라마나 다른 장르에서도 접해보았을만한 소재이다. 그런데 이 작품과 영화의 관심은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 사는 방식과 세태는 달라져도, 이 작품에 대한 관심만큼 우리 사회가 따뜻한 인간관계를 원하는 정서가 물 흐르듯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기억에 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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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수 선생의 낙법
이석범 / 민음사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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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사회란,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괴어 있는 웅덩이와도 같아서 바깥 세상이야 어떻든 나름대로의 보수적 질서만이 강고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이었다. 돌멩이 하나가 떨어지면 그만큼의 파문이 한 번 일기는 하지만 다시 예전처럼 잔잔해지는 것도 말 그대로 시간문제여서 고요히, 썩어가는 줄 모르게 썩어가는 것이었다.-129쪽

그때 우리 가슴에 이름 모를 멍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치유되지 않았지요. 뭐가 어찌 된 노릇인지, 그저 <선생질>에서 <발길질>로 이어지는 산 공부만 뼈아프게 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142쪽

문:(담배를 꺼내 문다) 채선생한테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 짓도 결국은 소진증후군에 감염되어 녹아버리게 된다구. 또 하나의 허위요, 서툰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란 말이지. (한숨과 섞어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교직이란 그 어떤 것도 깡그리 녹여내는 용광로야. 허긴, 채선생처럼 그때그때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다면 병증이 되지는 기간이 훨씬 길어지긴 하겠지만. (중략) 임:(가래가 걸린 음성으로) 말들도 참, 되게 어렵게들 하네. 그저 딴 일 없으니 먹고 살라고 선생하는 거지 뭐. 40년 가늘게 먹고 싼 똥, 그것마저 남 주는 게 선생이여.-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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