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창] 공정택 교육감님께 / 박범신
삶의창
 
 
한겨레  
 








 

»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파면과 해임으로 쫓겨난 선생님들이 학교 교문 앞에서 울고 있는 걸 텔레비전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에 나갔으니 선생님은 죄가 없다’고 울부짖는 아이들과 학부형들도 보았습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자 ‘너희는 그래도 공부해야 한다’며 울부짖는 아이들을 억지로 학교에 들여보내는 선생님의 모습은 솔직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참된 교육은 사랑과 감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교육감님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교육감님, 저는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이 전근대적인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어느 쪽이 이길 것인지를요. 사랑과 감동보다 더 진실한 것도 없고 또 그것보다 더 전염성이 강한 것도 없으니까요.

어디 사랑과 감동뿐이겠습니까. 교육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이 학생과 선생님들입니다. 헌법도 이를 전제로 교육의 자율성과 정치적인 중립을 근원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은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일제고사냐 체험학습이냐, 그 선택권을 그들에게 부여했습니다. 성적에 따른 폭력적인 서열주의가 교육현장을 황폐화시켰음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를 경쟁제일주의의 반인간화로 내몬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들이 보여준 선택은 그런 점에서 최소한의 것으로서, 그야말로 ‘소심한 자율권의 행사’로 제 눈엔 비쳤습니다. 그런데 상습 성추행 교사나 금품수수 교사는 제쳐두고 유독 ‘소심한 자율권’을 행사한 극소수의 선생님들에게 파면이라니요. 파면은 퇴직금조차 제대로 다 받지 못하는 죽음의 선고입니다.

교육감님.

오래전 유신시대, 저는 어느 시골 중학교에 근무했습니다. 그때의 교장선생님은 전근대적 이념으로 무장한 분이었고, 모든 학교행정을 오로지 유아독존적인 당신의 뜻에 따라 행사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당연히 지급하도록 돼 있는 자습비(공식 이름은 기억 안 납니다)조차 당신 마음대로 전횡했으나 ‘소심한 선생님’들은 누구 한 사람 감히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젊었던 저는 선생님들의 울분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 직원회의에서 그 점을 정식으로 지적했지요. 파장은 컸습니다. 제가 지적한 문제들은 차후에 개선됐으나 그 후유증으로 저는 자의 반 타의 반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폭압적인 교장의 전횡보다 사달이 시작된 이후 모든 동료 선생님들이 보여준 ‘비겁한 침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는 고단한 역사 속을 역동적으로 관통하며 놀라운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해임당한 선생님 곁에서 함께 피켓을 들고 선 학생들과 학부형들, 여기에 동참하는 다른 선생님들이 바로 새 시대의 징표입니다. ‘비겁한 침묵’은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과 감동’에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주체로서의 ‘자율성’이라는 명분까지 보탰으니 저들이 만들어내는 의미 있는 파장은 도미노처럼 퍼져갈 게 확실하다고 봅니다. ‘밖’에 있는 제 눈엔 ‘싸움’의 결말이 환히 보이는데, 저보다 인생도 선배시고, 선생님들 중의 큰 선생님이신 교육감님이 그 ‘안’에서 이번 파장의 출구를 보지 못하시다니요.

징계를 철회하십시오, 교육감님. 이는 사필귀정이니, 다른 누가 아니라 교육감님 스스로 용기를 갖고 명예로운 길로 가시기를 후배로서 간청드립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희망이 되어야 할 교육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저는 교육감님이 우리 앞에 지혜롭고 신선한 전례를 남겨주실 것을 강력히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박범신/작가·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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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살 생일 맞고 박경리 보내고 [2008.12.26 제741호]
 
[겨울, 문학여행]2008년 한국문학 10대 사건
 
 
 
최재봉


 
 

1. 박경리·이청준 타계

<토지>의 작가 박경리와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이 잇따라 타계했다. <먼동>의 작가 홍성원 역시 올해 세상을 버렸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쓰인 <토지>는 박경리의 필생의 작품인 동시에 한국 소설의 한 절정에 해당한다.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의 상속녀 서희를 주인공 삼은 이 소설은 동학농민전쟁이 끝나고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의 가혹한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해방까지 질곡의 민족사를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이청준의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한센인 병원에 새로 부임한 원장 조백헌과 원생들 사이의 갈등과 협력, 오해와 화해의 드라마를 통해 사랑과 자유, 구원의 상관관계를 파고든 묵직한 소설이다.


 
 


» 2008년에는 박경리(사진),이청준,홍성원 등 문학계의 거목들이 세상을 버렸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2. 본격문학 작가들, 인터넷 진출 활발해져

박범신의 <촐라체>가 2007년 8월부터 네이버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출간된 데 이어 올해 황석영이 <개밥바라기별>을 역시 네이버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서 인터넷 교보문고가 정이현의 소설 <너는 모른다>의 연재에 들어갔다. 네이버의 경쟁사인 다음은 11월 말부터 공지영의 <도가니>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예스24 역시 12월1일부터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인터넷 교보문고에 맞불을 놓았다. 잡지와 더불어 소설 연재의 주요 장이던 신문들이 연재소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포털과 인터넷 서점은 소설 연재의 대안 거점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3. 조경란 <혀> 표절 논란





신인 작가 주이란이 조경란의 장편 <혀>와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내면서 ‘표절 논란’을 제기했다. 주이란은 자신이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혀’를 당시 심사위원이던 조경란이 읽었으며, 조경란의 <혀>는 그 작품의 모티브와 주제의식 등을 베낀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주이란은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신청을 제기했으나 석 달의 중재 기간에 조경란이 미국에 체류하는 등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음으로써 중재는 결렬됐다.


 
 


» 11월21일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문학관 개관식이 있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4. 고액 상금 장편소설 공모, 잇따라 ‘당선작 없음’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천명관의 <고래>, 김언수의 <캐비닛> 등 문제작의 산실로 구실해온 5천만원 고료 문학동네소설상이 올해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조경란의 <식빵 굽는 시간> 등을 낳은 2천만원 고료 문학동네작가상 역시 수상작이 없었다. 김영사와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1억원 고료 제2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의 결과도 ‘당선작 없음’이었고, 5천만원 고료 ‘문학의문학 장편소설 공모’ 역시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출판사와 신문사 등이 경쟁이라도 하듯 운영해온 고액 장편소설 공모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터에, 판매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 작품에 고액의 상금을 주면서까지 출판할 까닭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5. 청소년문학 약진

기성 문학상 공모가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청소년문학상은 <완득이>라는 대어를 낳으며 문학출판의 노른자위로 떠올랐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김려령의 <완득이>를 비롯해 사계절의 사계절문학상, 비룡소의 블루픽션상, 문학동네의 청소년장편소설 공모 등을 통해 청소년문학 분야의 역량 있는 신인 작가들이 발굴되면서 이제 청소년소설은 (성인)소설과 동화 사이에 끼인 어정쩡한 처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장르’로 발돋움하고 있다.


6. 소설의 영화화와 드라마화 활발

박현욱의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와 윤성희의 단편 ‘그 남자의 책 198쪽’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와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원작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완성도와 흥행성은 작품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문학의 중요성은 다시금 확인시켰다는 평이다.



 
 


» 한국 소설을 장편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논의가 이어진 가운데 장편소설 중심을 내세운 문학 계간지 <자음과 모음>이 창간됐다.
 
 
 
7. 한국 근대문학 100년, 임화 등 탄생 100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소년>에 발표된 1908년을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삼는 관행에 따르자면 올해는 한국 근대문학의 출범 100주년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였다. 문단 안팎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100살 생일을 기리는 행사가 줄을 이었다. 올해는 또 임화, 김유정, 김정한, 유치환, 백철 등 주요 문인들의 탄생 100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8.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

11월21일 오후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이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을 대상으로 한 문학관으로는 2003년 전북 김제에 개관한 아리랑문학관에 이어 두 번째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1만6500장에 이르는 작가의 육필 원고와 취재수첩, 필기도구 등이 비치됐는데, 특히 이 소설에 대한 우익 단체들의 협박과 소송의 시말을 다룬 신문 및 잡지 기사 등이 비중 있게 전시된 것이 눈길을 끈다.


9. <자음과 모음> 창간과 장편소설 흐름 가속화


한국 소설의 체질을 단편 중심에서 장편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논의가 지난해부터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장편소설 중심을 표방한 계간지 <자음과 모음>이 가을호로 창간됐다. <창작과 비평>을 필두로 한 기존 문학잡지들 역시 장편소설 분재의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세계의 문학>은 내년부터 매호 원고지 500장 안팎의 경장편을 전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10. 아시아 문학과의 만남


한국 문학과 아시아 문학의 만남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5월 초 인하대에서 제2차 한-중 작가회의가 열려 쑤팅, 팡팡, 천쓰허 등 중국 문인들이 국내 문인들과 교류했고, 5월 말 포항에서 열린 아시아문학포럼에는 옌렌커(중국), 렌드라(인도네시아), 바오닌(베트남), 칠라자브(몽골) 등 아시아 문인 25명이 참가했다. 이어 9월에는 서울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문인들이 참가하는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열려 쓰시마 유코, 시마다 마사히코, 히라노 게이치로 등 일본 문인들과 톄닝, 모옌, 쑤퉁 등 중국 문인들이 한국 문인들과 어울려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이 밖에도 11월에는 서울에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작가가 참여한 한국-아랍 문학포럼이 열리고 요르단에서 한국 작가들의 낭독회가 열리는 등 아랍 문학과 한국 문학의 소통을 위한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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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동아일보 선정 ‘올해의 책’ 10








《올해 불황의 골이 유독 깊었던 출판계지만 여러 분야에서 눈에 띄는 좋은 책이 많았다. 동아일보는 올해 1월 5일부터 12월 20일까지 본보에 소개된 책을 포함해 학계 출판계 선정위원들의 추천을 받아 ‘올해의 책’ 10권을 선정했다(무순). 철학, 역사학, 경제학, 경영학, 과학, 문학, 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30명이 선정위원으로 참여해 본지가 제시한 책 중 7∼10권을 추천했고 그 목록에 없는 책은 별도 추천했다. 그 결과 ‘올해의 책’ 후보 123권 중 비문학 7권, 문학 3권이 ‘올해의 책’의 영예를 안았다. 비문학에서 ‘만들어진 신’(김영사), 문학에서 ‘남한산성’(학고재)에 편중됐던 2007년 ‘올해의 책’ 추천과 달리 올해는 역사, 인문, 경제, 고전,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고루 많은 추천을 받았다. 비문학과 문학을 합쳐 국내 저자와 외국 저자의 책이 5권씩 균형을 이룬 것도 특징이다. 세계적 금융위기와 불황으로 어수선한 마음을 올해를 빛낸 10권의 책으로 추스를 수 있기 바란다.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

‘더불어 사는 세계화’ 대안 제시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조지프 스티글리츠/21세기북스

‘공정한’ 세계화를 주창해 온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올해 내놓은 이 책은 세계화가 야기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수작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화 반대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화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 막대한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열렬한 전도사를 자처한다. 다만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이익에 치중해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킨 세계화 방식을 지적한다.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에서 선진국에 더 많은 표를 할애하는 의결 방식의 개혁 등 ‘세계화의 시스템’을 고치자는 경제학 석학의 주장이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한자경(철학) 이화여대 교수는 “세계화의 물결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힘과 그 물결에 슬기롭게 대처할 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못믿을 식품’ 뿌리를 파헤치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마이클 폴란/다른세상

올해 유해 화학물질인 멜라민이 첨가된 식품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히면서 식품의 이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슈퍼마켓에 진열된 음식의 사슬을 거꾸로 추적하며 식품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무관심했던 세태에 경종을 울린 ‘잡식동물의 딜레마’가 식품 관련 주제를 다룬 책 중 단연 돋보였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치킨너깃부터 스테이크, 연어까지 슈퍼마켓에 진열된 많은 식품 사슬의 처음이 옥수수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방목해서 길렀다는 닭이 생후 6주까지 농장의 폐쇄된 공장에서 자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옥수수농장부터 작물 재배, 수렵 체험까지 마다하지 않은 저자의 열정이 눈길을 끌었다. 박재환 에코리브르 대표는 “삶의 방식과 생각을 결정하는 ‘먹는 문제’를 문명사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했다”고 말했다.


오지를 변화시킨 ‘독서 바이러스’



◇ 히말라야 도서관/존 우드/세종서적

올 연말 기부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2월 출간된 ‘히말라야 도서관’은 탄탄대로를 달리던 세계적 기업의 중역이 보장된 성공을 포기하고 네팔과 인도 베트남의 오지에 도서관 3000곳을 지은 이야기로 일찌감치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이사였던 저자는 네팔로 휴가를 떠났다가 읽을 책 한 권 없는 학교의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우연히 마주친 가난한 풍경에 대한 일시적 연민이 아니었다. 그는 자선단체를 설립해 150만 권 이상의 책을 기증했고 200곳 이상의 학교를 지었다.

저자는 오지 어린이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라며 세상을 바꾸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뛰어들라고 말한다. 송기원(생화학) 연세대 교수는 “결심에 따라 우리 모두가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서양 배를 통해 본 조선 근대사



◇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박천홍/현실문화연구

조선 앞바다에 서양 배들이 출몰하는 사건을 통해 우리 근대사를 조명한 책이다. 주제가 참신하고 다큐멘터리를 소설처럼 구성한 시선이 독특하다. 저자는 16세기 이후 서양 배가 조선을 찾은 열여섯 사례를 재구성했다.

다수의 고문서를 소장한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인 저자는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일기, 항해일지, 보고서는 물론 조선이 서양 배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문정관의 기록도 함께 뒤져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구성했다. 서양 배들은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하거나 식량이나 물을 찾아 상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 의도된 탐험, 통상요구, 선교를 위해 조선을 찾았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서양 세력이 바다를 통해 침탈해 오는 과정과 (조선인이 받은) 문화충격을 흥미롭게 다뤘다”고 했다.


불확실성의 세상을 대비하라



◇블랙 스완/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동녘사이언스

올해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특히 주목받은 책이다. 2007년 “조만간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며 월가에 독설을 퍼부은 이 책이 나왔을 때만 해도 언론과 학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는 저자의 독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책의 논지는 흰 새라서 백조()라는 기존의 학설은 ‘극단 값’인 검은 백조가 나타나는 순간 무너진다는 것이다.

현직 월가의 투자전문가인 저자는 전례만을 기준으로 삼아 극단 값에 대한 방비가 없기 때문에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말한다. 임진택 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은 “세상이 가진 불확실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통찰하는 책”이라고 했다.


응어리진 삶 치유 ‘가족이 필요해’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창비

신경숙 작가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작품. 서울역에서 실종된 엄마를 찾아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사에 얽힌 상처와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엄마의 일생을 풀어간다. 모성에 대한 근원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서사가 가슴을 먹먹하게 하지만 그 응어리는 가족들의 시선을 통해 엄마의 삶이 재구성되면서 치유의 과정으로 변환된다. 최근 경제위기와 맞물리며 인기를 끌게 된 대표적인 가족서사로 사라진 엄마를 찾아가는 미스터리 양식 속에 녹아든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문장이 돋보인다. 모두의 가슴속에 비슷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을 엄마의 모습은 곳곳에서 뜨끈하게 목을 메이게 한다. 박성원 작가는 “‘봉합과 치유’라는 새로운 가족문제를 제기했으며 통속적 소재를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문장과 구성이 신기에 가깝다”고 말했다. 출간 두 달 만에 18만 부가 판매됐다.


70 평생의 화두 ‘왜 공부하는가’



◇공부도둑/장회익/생각의나무

스스로를 ‘공부꾼’이나 앎을 훔쳐내는 ‘학문도둑’으로 부르는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70년 공부 인생의 내공을 쉽게 풀어낸 자전적인 글이다. 물리학자이자 ‘온생명 이론’이라는 독창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한 저자는 집안 내력부터 어린 시절의 지적 호기심과 서울대와 미국 유학시절, 이후 학문 여정에 대해 담담하게 회고한다.

저자는 땅이나 일구라는 할아버지의 반대로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공부거리를 찾아다녔던 ‘타고난 야생기질’을 이야기한다. 공부거리는 학교 담장 안에만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관류하는 것은 ‘공부는 왜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한국의 자립적 지식인의 창조적 공부법을 담은 이 책을 통해 통섭의 본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북간도 항일투쟁과 연애 버무려



◇밤은 노래한다/김연수/문학과지성사

김연수 작가의 시선이 국경 너머,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스러져간 청춘들의 삶 속에 와 닿았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초반 북간도 항일유격대 근거지에서 벌어졌던 ‘반민생단 투쟁’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혁명과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젊은이들의 잔혹하고 애틋한 운명을 그려냈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직원인 김해연은 여학교 음악교사인 이정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정희의 뜻밖의 죽음으로 그녀가 용정 내 중국공산당원으로 프락치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해연은 사랑의 후유증과 역사의 격랑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진실에 대한 사랑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결국 하나임을 보여주는 역사연애소설”(강유정 문학평론가), “무국적자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가의 시선이 지금의 우리를 위무하는 작품”(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이란 평가를 받았다.


문명 붕괴의 시대, 묵시론적 경고



◇ 로드/코맥 매카시/문학동네

국내에도 코맥 매카시 열풍은 거셌다.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문학 작가로 손꼽히는 저자는 대재앙이 일어난 지구에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의 여정을 통해 붕괴해 가는 문명에 대한 경고와 죽음의 세상에 남겨진 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함께 담아냈다. 바다가 있는 남쪽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두 사람은 문명과 인간성이 완전히 소멸된 종말론적인 세상을 본다. 며칠간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굶주리고 춥고 불안한 잠자리를 전전하며 때로는 인간사냥꾼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공포와 살의, 적대만 남은 버려진 땅의 황폐함과 굶주림, 폭력, 살인의 광기들이 시적이고 묵시론적 문장으로 형상화돼 무게감과 비감을 더했다. 소설가 김숨 씨는 “노작가의 잠언적 상상력과 문장이 묵직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매카시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국내에서 20만 부 판매됐다.


“문체가 곧 삶” 꼿꼿했던 선비들



◇고전 산문 산책-조선의 문장을 만나다/안대회/휴머니스트

‘고전 산문 산책’은 상투성이나 낡은 사유를 찾아볼 수 없는 조선시대 산문을 소개해 반향을 일으켰다. 저자는 10년간 사회 통념을 거부한 주제, 파격적 문체, 시적 감수성이 특징인 산문을 발굴했고 이 중 산문가 23명의 160여 편을 번역해 멋과 의미를 소개했다.

부조리한 현실을 직설적으로 꼬집은 허균 등 알려진 문장가뿐 아니라 글자 수가 불과 53자에 불과하지만 외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 관념을 통렬하게 비판한 산문을 쓴 이용휴, 수많은 인물의 특징을 다채로운 묘사로 잡아낸 이옥 등 저자가 발굴한 작가들을 통해 조선시대 고전 산문의 참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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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전문기자의
살아있는 시승기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문체가 곧 삶’이라는 산문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800쪽에 가까운 책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 (가나다순)

강유정(문학평론가) 강정(시인) 구본형(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장) 김기봉(경기대 교수·역사학) 김숨(소설가) 김원(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정치학) 박문호(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성원(소설가) 박재환(에코리브르 대표)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이권우(도서평론가) 이명옥(사비나미술관장) 이주헌(미술평론가) 임진택(삼성경제연구소 출판팀장) 송기원(연세대 교수·생화학) 신병주(건국대 교수·한국사) 신정근(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신형철(문학평론가) 장대익(동덕여대 교수·과학기술학) 장은수(민음사 대표)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교수·물리학) 조영희(에코의서재 대표) 조원희(국민대 교수·경제학) 정민(한양대 교수·한문학)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한자경(이화여대 교수·철학) 허병두(‘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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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급 앵커들 파업 참여…방송의 꽃에서 파업의 꽃으로
“정부·여당 아무런 의견수렴없이 밀어붙여”
“거대자본 방송잠식 땐 국민에 칼날 될 것”
 
 
한겨레 노현웅 기자
 








 

» 전국언론 노동자연합 SBS본부는 26일 오전 목동 SBS사옥에서 한나라당 언론 악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한 파업투쟁 참여하며 뉴스 앵커등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검은색 옷을 입는 ‘블랙 투쟁‘을 벌인다. 최영주 아나운서등 동료들이 악법저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용일 기자yongil@hani.co.kr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왔다. 아나운서는 뉴스를 보도하는 ‘방송의 최전선’으로서 당연히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 오늘부터 ‘블랙투쟁’을 시작했는데, 앞으로도 노조의 뜻에 맞춰 최선을 다해 돕겠다.”(최영주 <에스비에스> 아나운서협회장, 에스비에스 파업 출정식에서)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등 방송사 중심으로 26일 시작된 총파업에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간판급 아나운서들이 대거 참여해 투쟁 열기를 고조시켰다.

특히 문화방송의 경우 오전 6시 ‘뉴스투데이’를 맡은 박상권·이정민 앵커를 비롯해 ‘뉴스데스크’의 박혜진, 주말 ‘뉴스데스크’ 손정은, 평일 ‘마감뉴스24’ 김주하, 평일 낮 12시 ‘뉴스와 경제’의 최율미씨 등 시청자에게 낯익은 뉴스 진행자들이 모두 파업에 참여했다.

이날 전국언론노조 결의대회에서 사회를 본 문화방송 박경추 아나운서는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으면 80년대로 돌아갈 것 같다. 80년대 이후로 싸움을 통해 얻어 온 민주주의가 몇개월 만에 무너지는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사회까지 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주하 앵커는 이날 결의대회에 앞서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파업이라는 형태의 투쟁이 다른 경우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적절한 투쟁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견제장치에 대한 고려와 의사 수렴 과정 없이 (한나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앵커와 기자 활동을 모두 접고 파업에 전면 참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노조의 결정을 따라 (총파업 투쟁에)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쇠고기 굴욕협상 보도로 조·중·동과 정권으로부터 호되게 두들겨 맞은 ‘피디수첩’ 제작진도 파업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김보슬 피디는 “피디수첩 보도와 총파업은 별개 사안이며 한 사람의 조합원으로서 나왔다”고 담담한 심정을 밝혔다. 석달 남짓 검찰의 강제구인에 대비해 회사에서 숙식생활을 한 이춘근 전 피디수첩 피디는 “한나라당과 족벌 신문, 재벌은 문화방송이라는 존재를 항상 불편하게 생각해 왔다”며 “우리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항상 권력을 비판하는 방송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피디수첩 개편 뒤 새로 진행을 맡은 문지애 아나운서는 “파업에 대해 적극 찬성한다”고 짧게 결연한 의지를 비쳤다. ‘뉴스후’ 김주만 기자는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은 문화방송의 민영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칼날이 국민과 누리꾼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파업을 결정하게 됐다. 거대 자본이 방송을 잠식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지금 당장은 경제 상황이 안좋아 그 정도 자금 동원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그 문을 열어두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간부급 한 아나운서도 “87년 입사 이후 10번의 파업 중 처음으로 이번 파업에 불참하게 됐다. 후배들이 당당하게 싸울 수 있도록 팀장으로서 대체인력 지원 등에 최대한 뒷바라지하겠다”고 애정 어린 지지의 마음을 전했다.







 


노현웅 권귀순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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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12-28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넘겨주려면, 교육에 이어 언론에까지 미치고 있는 이 미친 바람의 실체를 명확히 구분해내야 한다.
 

삶의 밑불 지펴올릴 희망의 연대
올해의 책(번역서)
 
 
한겨레  
 








 

» 〈죽음의 밥상〉
 
끔찍한 사육과 도살로 파괴되는 인간성

〈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산책자·1만5000원

육식 위주의 ‘전형적인 현대식 식단’은 물론이고 유기농 식품을 먹고 현지재배 채소도 즐겨 구입하는 ‘양심적인 잡식주의’도 답이 아니다. 답은 생선도 우유도, 심지어 달걀이나 벌꿀도 먹지 않고 오직 채소만 먹는 ‘완전 채식주의(베건)’. 왜 그런지를 실증하기 위해 글쓴이들은 모델이 된 가족들을 관찰하고 식품 생산·유통·소비 현장을 찾아다닌다. 그 과정에서 좁은 철창에 쑤셔넣은 사육동물에게 합성호르몬과 항생제를 투입하고 산 채로 도살하는 처참한 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초점은 육식의 비윤리성. 굳이 동물을 죽이지 않아도 충분히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왜 끔찍한 짓을 계속하며 인간성마저 스스로 파괴하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항공사진과 사유가 결합된 ‘지구 속의 한국’

〈하늘에서 본 한국〉


 

» 〈하늘에서 본 한국〉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 이어령·존 프랭클 글, 조형준 옮김/새물결·9만7000원


이방인이 상공에서 바라본 한국. 이 특이하고 전례없는 작업을 프랑스의 저명한 사진가가 5년여에 걸쳐 수행했다. 지구인의 시선으로 찍은 2만여 장의 항공사진. 이 가운데 160여 장을 골라 대형 컬러판 책으로 엮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마라도까지, 서해에서 동해로 펼쳐진 자연, 그리고 서울 도심과 세계 최대의 조선소, 거기에 깃든 사람들 모습.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이 유네스코의 후원 아래 1994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하늘에서 본 지구-우리 지구의 초상: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하여’의 일환이다. 이어령씨 등이 쓴 글은 단순한 사진설명이 아니라 한국을 사유하는 풍성한 에세이로도 읽힌다. 한승동 선임기자





민주주의의 토대, 유럽좌파의 역사 총정리

〈더 레프트 1848-2000〉


 

» 〈더 레프트〉
 

제프 일리 지음·유강은 옮김/뿌리와이파리·5만원

1848년 혁명에서 러시아 혁명과 1968년 혁명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유럽 좌파의 역사를 정리했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19세기 생디칼리즘에서 20세기 후반 신사회운동에 이르는 급진주의의 다양한 흐름을 좌파라는 범주 안에 포괄했다. ‘좌파=사회주의’의 도식에서 벗어나 포괄적인 민주주의 운동의 틀 안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민주주의가 타협·합의·번영의 결실로 등장한 게 아니라, 투쟁·봉기·반란 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통해 형성된 역사적 좌파의 성취물임을 긍정함으로써 사회주의 몰락으로 초래된 정치적 무력감에서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이슬람 역사와 정신, 문명의 세밀도

〈이슬람의 세계사 1·2〉


 

» 〈이슬람의 세계사 1·2〉
 

아이라 라피두스 지음·신연성 옮김/이산·각 권 3만3000원

2001년 9·11 사건 이후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책들이 여러 종 출간돼 이 문명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통념을 바로잡는 교정자 노릇을 해주었다. <이슬람의 세계사>는 이 교정 과정을 아우르고 매듭짓는 작업의 완결판이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이슬람 역사에 관한 현존 최고의 권위자인 지은이는 이슬람 문명의 출생에서부터 21세기 벽두까지 1400년 역사를 통시성과 공시성의 축 위에 올려놓고 분석하고 종합했다. 복잡한 이슬람 역사의 줄기를 잡고 그 속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을 포착했다. 그 결과로 1600쪽에 가까운 이 책은 이슬람 문명에 관한 넓고도 세밀한 역사 지도가 됐다. 고명섭 기자





자연의 아들이 어쩌다 혁명가로 살았나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파블로 네루다 지음·박병규 옮김/민음사·2만5000원

네루다는 자연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의 시를 쓰고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은 칠레 남부의 개척 도시에서 태어난 네루다가 열정적인 연애시와 초현실주의적 실험시로 이름을 날리다가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민중시를 쓰는 공산주의자로 변모하고, 1970년 대통령선거에서 좌파 인민연합 단일후보 살바도르 아옌데 지지 유세를 벌이며, 아옌데의 당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지만, 미국이 사주한 군사 쿠데타로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아옌데 자신은 대통령궁에서 피살된 1973년 9월11일의 상황까지를 시적인 문체로 풀어놓는다. 유려한 번역이 원작의 맛을 잘 살렸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카를 융의 내밀했던 시간까지 파고든 대작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
 

디어드리 베어 지음·정영목 옮김/열린책들·4만8000원

올해는 카를 융 관련서 가운데 중요한 책들을 어느 해보다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해였다. <융 기본 저작집>(전 9권·솔)이 완간됐고, 융이 말년에 쓴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김영사)이 지난해 말에 출간돼 독자와 만났다. <융-분석심리학의 창시자>는 융 관련서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책이다. 1166쪽에 이르는 이 방대한 융 전기는 분석심리학 창시자의 생애와 사상을 정밀하게 파고든 저작이다. 스위스 취리히에 보관된 융 관련 문서를 꼼꼼하게 파헤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내밀한 삶을 드러냈으며, 프로이트의 가장 아끼는 제자에서 학문적 적대자로 바뀌는 과정도 세밀하게 기술했다. 매혹적이고 압도적이고 모순적인 그의 삶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대작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떼 지성’이 제국의 그물을 찢으리라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 〈다중-제국이 지배하는 시대의 전쟁과 민주주의〉
 

마이클 하트·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서창현·정남영·조정환 옮김/세종서적·2만5000원

하트와 네그리를 일약 세계적 이론가로 세운 <제국>의 내용을 보충하고 확장하는 책이 <다중>이다. 21세기 지구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제국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제국>의 진단이라면, <다중>은 그 제국 안에서 제국의 실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잡아낸다. 다중은 제국의 소산이지만 동시에 제국의 그물을 찢고 지구적 차원의 변혁을 일으킬 주체이기도 하다고 지은이들은 말한다. 다중의 특성인 ‘집단지성’ 혹은 ‘떼지성’이 컴퓨터 네트워크로 연결돼 새로운 차원의 집합적 지성을 창출한다는 이들의 이론은 올해 국내 최대사건인 ‘촛불저항’을 설명하는 유용한 개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고명섭 기자





지구멸망과 인류의 구원 다룬 묵시록적 걸작

〈로드〉


 

»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정영목 옮김/문학동네·1만1000원

코맥 매카시는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개봉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 작가다. <로드>는 매카시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2006년 출간돼 대단한 찬사와 열광을 이끌어냈으며,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얼마전 영화로 개봉된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가 시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만드는 지옥도를 그린다면, <로드>는 그 지옥보다 더한 지구 멸망 이후의 세계를 보여준다. 아버지와 아들이 암회색 풍경을 통과해 남쪽으로 가는 여정을 축으로 삼은 이 소설은 암흑과 절망의 마지막 지점까지 독자를 끌고간다. 인간성의 물기가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말라버린 야수의 시대에 인류의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묵시록적 소설이다. 고명섭 기자





자본주의 경제 해부학서 ‘재번역 숙원’ 이뤄

〈자본 I-1·2〉


 

» 〈자본 Ⅰ-1·2〉
 

카를 마르크스 지음·강신준 옮김/길·3만5000원

19세기 중반 사회주의 운동의 유력한 지도자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던 마르크스를, 인류사에 가장 심대한 영향력을 미친 사상가 반열에 올려 놓은 ‘자본주의 경제의 해부학서’. 1980~90년대 이론과실천과 비봉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는 <자본>을, 독일어판을 모본 삼아 재번역했다. 번역자는 이론과실천판의 번역에 참여하고, 해설서를 집필하는 등 20년 넘게 <자본> 연구에 매진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의 권위자다. 비봉판이 영문판을 번역한 것이라면, 이론과실천판은 독일어본에 기초했으나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간된 것이란 점에서, 재번역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세영 기자





카잔차키스, 그 투쟁과 조화의 기록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안정효 이윤기 외 옮김/열린책들·전 30권 각 권 1만800원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한 카잔차키스의 주요 작품들은 일찍부터 국내에 번역되었다. 정신과 사유보다는 몸과 행동을 중시하는 조르바의 ‘생철학’은 숱한 아류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아랍계 아버지와 그리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카잔차키스의 세계는 단일하다기보다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것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 투쟁성과 온후함, 외향성과 내향성이 카잔차키스라는 한 몸 안에 깃들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인류의 대표선수라 할 만했다. 그는 평생을 영혼과 육체의 갈등을 통한 조화를 추구했으며, 30권의 전집으로 갈무리된 그의 문학은 바로 그 투쟁과 화해의 기록과도 같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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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8-12-2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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