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 생일 맞고 박경리 보내고 [2008.12.26 제741호]
 
[겨울, 문학여행]2008년 한국문학 10대 사건
 
 
 
최재봉


 
 

1. 박경리·이청준 타계

<토지>의 작가 박경리와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이 잇따라 타계했다. <먼동>의 작가 홍성원 역시 올해 세상을 버렸다.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쓰인 <토지>는 박경리의 필생의 작품인 동시에 한국 소설의 한 절정에 해당한다. 경남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의 상속녀 서희를 주인공 삼은 이 소설은 동학농민전쟁이 끝나고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의 가혹한 지배에서 벗어난 1945년 해방까지 질곡의 민족사를 방대한 분량에 담았다. 이청준의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한센인 병원에 새로 부임한 원장 조백헌과 원생들 사이의 갈등과 협력, 오해와 화해의 드라마를 통해 사랑과 자유, 구원의 상관관계를 파고든 묵직한 소설이다.


 
 


» 2008년에는 박경리(사진),이청준,홍성원 등 문학계의 거목들이 세상을 버렸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2. 본격문학 작가들, 인터넷 진출 활발해져

박범신의 <촐라체>가 2007년 8월부터 네이버 연재를 거쳐 단행본으로 출간된 데 이어 올해 황석영이 <개밥바라기별>을 역시 네이버에 연재한 뒤 책으로 묶어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서 인터넷 교보문고가 정이현의 소설 <너는 모른다>의 연재에 들어갔다. 네이버의 경쟁사인 다음은 11월 말부터 공지영의 <도가니>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예스24 역시 12월1일부터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백영옥의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인터넷 교보문고에 맞불을 놓았다. 잡지와 더불어 소설 연재의 주요 장이던 신문들이 연재소설을 외면하는 상황에서 인터넷 포털과 인터넷 서점은 소설 연재의 대안 거점으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3. 조경란 <혀> 표절 논란





신인 작가 주이란이 조경란의 장편 <혀>와 같은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내면서 ‘표절 논란’을 제기했다. 주이란은 자신이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혀’를 당시 심사위원이던 조경란이 읽었으며, 조경란의 <혀>는 그 작품의 모티브와 주제의식 등을 베낀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주이란은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신청을 제기했으나 석 달의 중재 기간에 조경란이 미국에 체류하는 등의 이유로 출석하지 않음으로써 중재는 결렬됐다.


 
 


» 11월21일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문학관 개관식이 있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4. 고액 상금 장편소설 공모, 잇따라 ‘당선작 없음’

은희경의 <새의 선물>과 천명관의 <고래>, 김언수의 <캐비닛> 등 문제작의 산실로 구실해온 5천만원 고료 문학동네소설상이 올해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조경란의 <식빵 굽는 시간> 등을 낳은 2천만원 고료 문학동네작가상 역시 수상작이 없었다. 김영사와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1억원 고료 제2회 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의 결과도 ‘당선작 없음’이었고, 5천만원 고료 ‘문학의문학 장편소설 공모’ 역시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요 출판사와 신문사 등이 경쟁이라도 하듯 운영해온 고액 장편소설 공모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출판계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터에, 판매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은 작품에 고액의 상금을 주면서까지 출판할 까닭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5. 청소년문학 약진

기성 문학상 공모가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가운데, 청소년문학상은 <완득이>라는 대어를 낳으며 문학출판의 노른자위로 떠올랐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김려령의 <완득이>를 비롯해 사계절의 사계절문학상, 비룡소의 블루픽션상, 문학동네의 청소년장편소설 공모 등을 통해 청소년문학 분야의 역량 있는 신인 작가들이 발굴되면서 이제 청소년소설은 (성인)소설과 동화 사이에 끼인 어정쩡한 처지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장르’로 발돋움하고 있다.


6. 소설의 영화화와 드라마화 활발

박현욱의 장편 <아내가 결혼했다>와 윤성희의 단편 ‘그 남자의 책 198쪽’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와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이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원작 소설을 영상으로 옮기는 움직임도 활발했다. 완성도와 흥행성은 작품에 따라 차이를 보였지만, 콘텐츠의 원천으로서 문학의 중요성은 다시금 확인시켰다는 평이다.



 
 


» 한국 소설을 장편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논의가 이어진 가운데 장편소설 중심을 내세운 문학 계간지 <자음과 모음>이 창간됐다.
 
 
 
7. 한국 근대문학 100년, 임화 등 탄생 100년

최남선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소년>에 발표된 1908년을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으로 삼는 관행에 따르자면 올해는 한국 근대문학의 출범 100주년에 해당하는 뜻깊은 해였다. 문단 안팎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100살 생일을 기리는 행사가 줄을 이었다. 올해는 또 임화, 김유정, 김정한, 유치환, 백철 등 주요 문인들의 탄생 100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8.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

11월21일 오후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개관식이 있었다. 조정래의 소설을 대상으로 한 문학관으로는 2003년 전북 김제에 개관한 아리랑문학관에 이어 두 번째였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1만6500장에 이르는 작가의 육필 원고와 취재수첩, 필기도구 등이 비치됐는데, 특히 이 소설에 대한 우익 단체들의 협박과 소송의 시말을 다룬 신문 및 잡지 기사 등이 비중 있게 전시된 것이 눈길을 끈다.


9. <자음과 모음> 창간과 장편소설 흐름 가속화


한국 소설의 체질을 단편 중심에서 장편 중심으로 개선하자는 논의가 지난해부터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장편소설 중심을 표방한 계간지 <자음과 모음>이 가을호로 창간됐다. <창작과 비평>을 필두로 한 기존 문학잡지들 역시 장편소설 분재의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세계의 문학>은 내년부터 매호 원고지 500장 안팎의 경장편을 전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10. 아시아 문학과의 만남


한국 문학과 아시아 문학의 만남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5월 초 인하대에서 제2차 한-중 작가회의가 열려 쑤팅, 팡팡, 천쓰허 등 중국 문인들이 국내 문인들과 교류했고, 5월 말 포항에서 열린 아시아문학포럼에는 옌렌커(중국), 렌드라(인도네시아), 바오닌(베트남), 칠라자브(몽골) 등 아시아 문인 25명이 참가했다. 이어 9월에는 서울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문인들이 참가하는 제1회 ‘한-일-중 동아시아 문학포럼’이 열려 쓰시마 유코, 시마다 마사히코, 히라노 게이치로 등 일본 문인들과 톄닝, 모옌, 쑤퉁 등 중국 문인들이 한국 문인들과 어울려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이 밖에도 11월에는 서울에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작가가 참여한 한국-아랍 문학포럼이 열리고 요르단에서 한국 작가들의 낭독회가 열리는 등 아랍 문학과 한국 문학의 소통을 위한 움직임도 두드러졌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 문화부문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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