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엔 책값부터 줄인다?

지난해 발행부수 20%나 줄어
제작비 많은 아동서 절반 감소


지난해 경기 위축에 따른 출판 불황으로 국내 도서 발행 부수가 전년 대비 20%나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41% 감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하락폭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8년도 출판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발행된 신간 도서 종수는 만화를 포함,4만3099종이었으며 발행 부수는 1억651만5675부였다.

발행 종수는 2007년과 비교해 4.9% 늘었으나 발행 부수는 19.6% 감소했다. 도서의 종당 평균 발행부수도 2471부로 전년(3224부) 대비 23.4% 줄었다.

출판문화협회는 이에 대해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 위기가 국내 실물경기 악화로 이어지면서 출판계도 유류 · 종이값 상승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야별로 보면 아동 도서의 발행 부수가 2688만5334부로 전년(5674만7059부)에 비해 52.6%나 줄었다.

아동 도서의 종당 평균 발행 부수는 3194부로 전년(7766부)에 비해 58.9%나 감소했다. 평균 발행 면수 또한 -3.5%를 기록했다.

아동 도서는 발행 부수뿐만 아니라 판매 부수에서도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교보문고의 경우 지난해 아동 도서 판매부수 증가율은 4.8%로 전년(12.7%)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쳤다.

유아 분야도 6.2%로 전년(11.4%)에 비해 판매 신장률이 급감했다.

이 같은 결과는 전반적인 불황으로 수요가 줄어든데다 아동 도서 분야의 제작비 비중이 크게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종이값이 연초 대비 50% 가까이 치솟았고 환율 급등에 따라 저작권 로열티 부담도 급증했다. 일반 단행본에 비해 종이값과 인쇄 · 제본비가 많이 드는 아동 도서의 타격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종교 분야 서적은 지난해 439만3048부로 2007년 153만9139부에 비해 185.4%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사회과학 분야와 어학 분야도 각각 16.7%와 13% 늘었다.

특히 종교 신간의 급증은 불황에 대처하는 '자기 치유'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어학 분야가 늘어난 것은 구직자들의 '취업전쟁'과 직장인들의 '생존전략'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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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wg 2009-03-30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 인터넷 책대여점 돌북에서 빌려봅니다.
주위에 도서관도 없고 책사기에는 너무 비싸서 부담되구해서요
돌북에는 최신 베스트셀러가 죄다있는데 가격도 저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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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온라인에 파는데만 있는줄알았는데 대여점이 있다는게 신기할정도입니다.
http://dolbook.kr
 

선인세 100만달러나 주고 출판권 가져오다니…  -


‘한국 출판계의 굴욕’

중소출판사 M사의 대표 김모 씨는 지난해 당한 일로 한국 출판계의 과당경쟁이 낳은 폐해를 실감하게 됐다.

그는 미국에서 나온 인문교양서 한 권을 발굴해 계약을 하려고 미국의 출판사에 연락했다. 출판사 측은 에이전시를 통해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한 출판사가 있다”며 선인세 인상을 요구했다. 김 씨는 “2001년에 나온 뒤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도 없고, 유명 작가 작품도 아닌데 미국 출판사가 그렇게 배짱을 부리는 것은 한국 출판사들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책의 판권을 얻기 위해 달라는 대로 선인세를 지불하는 태도를 얘기하는 것이다.

한국 출판계의 이런 행태는 급기야 ‘선인세 100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문학수첩이 6월경 출간할 예정인 댄 브라운의 신작 ‘솔로몬의 열쇠’(가제)의 선인세로 100만 달러를 지급한 것이다. 해외 번역서에 대한 선인세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2만 달러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2000년대 들어 10만 달러, 20만 달러가 우습게 여겨지더니 지난해 ‘마지막 강의’의 64만 달러에 이어100만 달러까지 왔다”면서 “해외 작품에 선인세 10만 달러 이상은 안 주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지키는 일본 출판계와 비교된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선 해외 번역서에 대한 의존이 커지면서 ‘국제 출판시장의 호구()’로 전락한 한국 출판계의 처지가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국내 도서 발행종수 가운데 번역서의 비율이 1990년대까지 10%대이던 게 2000년대 들어 25% 선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번역서 가운데 미국과 일본 번역서의 비중은 70%대에 이른다. 백 연구원은 “번역 출판에 크게 의존하고, 지나치게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한국은 해외 저작권료를 가장 비싸게 내는 나라라는 인식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출판인들은 “치솟는 선인세도 문제지만 한국 출판계의 자존심이 추락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박종만 까치글방 대표는 일본의 출판사들이 한국 출판사에 고압적인 태도로 돌변한 사실을 들며 “10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번역서를 낸다고 하면 고마워하던 분위기였는데 이제는 직원 수를 묻고, 경영 상태를 따지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선 최근 한 출판사 대표가 직접 일본 출판사를 찾아가 ‘면접’ 수준으로 자사의 상황을 설명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에이전트 경력 11년째인 A 씨의 이야기도 충격적이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의 한 유력 출판사가 한국의 출판사들에 ‘계약하려면 판매부수가 아니라 인쇄부수 기준으로 인세를 내겠다고 약속하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A 씨는 “출판사들이 협심해서 이런 요구를 물리쳤어야 하는데 한 출판사가 경쟁사를 따돌리려는 욕심에 그 요구를 받아들였다”면서 “이제 해당 일본 출판사와 거래할 때는 모두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 주는 선인세도 크게 인상됐다.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는 “1990년대까지 선인세가 100만 엔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경우 300만 엔은 평균이고 500만 엔 이상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사들은 더 나아가 ‘한글 제목과 표지 시안을 허락받으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관례가 아닌 요구”라고 출판계 인사들은 말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 출판계는 외국에 퍼주기만 하고 자체의 ‘생태계’는 자생력을 잃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기호 소장은 “100만 달러면 한국의 작가 200명과 계약할 수 있는 금액”이라면서 “출판사들이 국내 콘텐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저자 발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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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봉학 “용산 참사에 가슴 먹먹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글 강병한·사진 남호진기자

“용산 참사 현장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MBC 인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아버지 역을 맡았던 탤런트 맹봉학씨(46)가 용산 철거민 참사를 계기로 다시 촛불을 들었다. 맹씨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후 연예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경찰 조사를 받았다.

TV를 통해 끔찍한 참사 장면을 본 맹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맹씨는 참사 현장에서 매일 열리는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해 다시 촛불을 켰다.

22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맹씨는 참사의 책임을 철거민에게 떠넘기는 정부에 화가 나 있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뭅니다. 최소한 퇴로를 만들어 놓아야지 망루 아래서 특공대원이 올라가고 위에서 컨테이너로 짓누르면 그냥 ‘너희들 죽어봐라’는 것 아닙니까.”

그는 “철거민이 농성한다고 하루 만에 특공대를 투입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참사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면서 “철거민들이 부당한 처우와 용역 깡패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궁지로 내몰린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맹씨는 고교 졸업 후 연극계에 입문해 25년간 연기자 인생을 걸어왔다. 연예인으로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거리에 나오게 된 것은 마음 한 쪽에 남아 있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980년대에 연극을 한다는 이유로 거리에 나가지 않았다. 그게 평생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불효자로 살았는데 지난해 노모의 팔순잔치를 해드린 후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면서 “이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맹씨는 “특공대원도, 철거민도 모두 자신의 꿈이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힘 있는 자들이 베풀고 서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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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작년 1인당 93병 마셨다
진로 12월 판매량 사상 최고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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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국민은 성인 1인당 93병의 소주를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최대 소주업체 진로는 지난해 12월 한 달간 685만여 상자를 판매, 85년 역사상 최고 판매기록을 세웠다.

22일 대한주류공업협회에 따르면 불황이 짙어지면서 지난해 소주 판매량이 전년 동기대비 5.6% 증가한 1억1,613만9,000상자(360㎖ 30병입)에 달했다. 병으로 따지면 34억8,417만병이 팔려나갔다.

전체 국민 중 19세 이상인 음주 가능인구 3,750만 명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93병을 소비한 셈이다. 1주일에 2병을 마신 꼴이다. 그러나 주류업체가 소매 유통업체에 판매한 양이 아직 모두 소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소비량은 이보다 다소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년 대비 소주 판매량 증가율은 2006년 6.7%에서 2007년 1.3%로 크게 둔화했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시화한 불황과 맞물려 다시 큰 폭으로 뛰었다.

제조사별로는 진로가 전년 대비 8.7% 늘어난 5,973만4,000상자를 판매해 시장점유율 51.4%를 기록했고, 두산은 전년 대비 5.2% 증가한 1,285만3,000상자를 팔아 11.1%의 점유율을 보였다. 그 다음은 금복주, 무학, 대선, 보해, 선양, 하이트, 한라산 등의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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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설 선물은 '웃음'
온 가족 모여 사진 속 추억 더듬어봐요 



"엄마는 선본 지 한 달 만에 결혼하셨대요. 아빠가 좋긴 했지만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하는 게 서운해서 신혼여행 가던 날 안 나가고 마구 우셨대요. 그 사이 동네 사람들은 새신랑 구경하자고 몰려들었다지요."

학원강사 이소라(여·24)씨는 22일 부모님 결혼 26주년을 앞두고 엄마가 보여준 사진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추억을 되짚었다. 택시 옆에 두루마기 입고 선 젊은 아버지 주변으로 구름 떼같이 모여든 마을 주민들의 흥분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씨는 "엄마 아빠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더라"고 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카메라는 특별한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귀한 기계였다. 깊고 흥미로운 아날로그 이야기가 옛 사진 속에 숨어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설 연휴, 장롱 깊숙이 묵혀 놓았던 옛 사진이 진가(眞價)를 발휘할 찬스다. 묵은 앨범을 꺼내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야깃거리를 찾아보자.

수학여행 기념사진 속 아빠, 가사 실습 중인 엄마 등 낡은 사진 속 '그분' 찾기 게임으로 옛 사진 탐색을 시작하는 게 이야기 보따리를 여는 비결이다. 고교생 권유진(17)양은 "아빠의 고등학교 소풍 사진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했다. 1975년 경복궁으로 놀러 간 사진 속에서 아빠는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까지 손에 든 모습이었다. "저 어릴 땐 '공중 도덕 지키라'며 잔디밭 들어가면 많이 혼내셨거든요. '아빠는 왜 그러셨느냐'고 했더니 머쓱하게 웃고 마시더라고요."

회사원 정현교(31)씨는 아내와 함께 옛 앨범을 뒤적이다 35년 전 아버지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발견했다. "대구 시내 한복판을 계란과 밀가루 뒤집어쓴 모습으로 당당히 걷는 아버지의 모습이란…. 밤 11시 넘어 들어갔다고 신발을 집어 던지시던 엄한 아버지와 매치가 되지 않더라고요. 아버지는 "만날 1등만 했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 못 갔다"는 한마디로 사진 속 '정황'을 설명하셨어요."

불안한 경기 탓에 뒤숭숭한 올해 설, 힘들었지만 꿋꿋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사진 속 옛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겠다. 훈장님이었던 아버지가 "여자는 공부하면 안 된다"며 책을 불태워 상경했던 엄마, 유원지에 데이트 가서 남의 스쿠터 빌려 포즈 취하는 연인들…. 부자(富者)가 아닌 게 확실한데도 어깨 펴고 까르르 웃는 사진 속 얼굴들이 명절에 웃음을 선물한다.

※사진이 소개된 분들께는 '한국후지필름 포토이즈'에서 사진을 인화해 액자에 담아 보내드립니다.



▲ 신혼여행 떠나기 직전, 엄마는 나가기 싫다고 집에서 울고 있고 훤칠한 아빠만‘새신랑 보자’는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네요. 엄마 아빠는 22일 결혼 26주년을 맞으셨어요. 이소라(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 1970년 엄마의 운동회 사진입니다. 엄마는 지나간 젊음이 서글프다3며 옛 사진을 멀리 하시지만 저에겐 엄마가 김연아보다 아름답답니다. 그 런데 엄마! 옷이 좀 야한 거 아니우? 백소영(경기 평택시 합정동)




▲ 1975년 아빠의 고등학교 시절 경복궁 소풍 사진입니다. 사진 찍자마자 경비원 아저씨에게 걸려 혼이 단단히 났다고 하네요. 권유진(서울 노원구 중계 1동)




▲ 요즘은‘함 사세요’하는 소리 듣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1990년 12월 ‘함진아비’가 신부 집 문 앞에서 버티고 있네요. 뒤에서 미는 신부 친 척들의 웃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장경환(서울 은평구 구산동)




▲ 1960년대 대구 시내에서 찍은 아버지의 뒷모습. 아버지도 졸업식 날은 계란세례 받고 밀가루 범벅이 되어서 거리를 활보하셨네요.“ 고등학교 땐 1등만 했다”던 아버지의 말, 믿어도 될까요? 정현교(경남 거제시 신현읍)




▲ 오빠는 운전사3, 나는 사모님3? 두 살 터울인 사촌오빠와‘새나라 택시’ 를 사이 좋게 타고 찍었어요. 1960년대에는 이런 모형 택시나 꽃마차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어주는 사진사가 있었죠. 김동숙(서울 노원구 중계동)




▲ 엄마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공장 나가 일할 때 만난 또래 친구들 이래요. 맨 왼쪽이 저희 엄마고요, 뒤에서 짓궂게 장난치는 분은 같은 동네 살던 동생이래요. 최예지(서울 도봉구 방학3동)




▲ 1969년 연애 중이던 부모님이 송추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바 이크는 현장에서 미인계(?)를 이용해 빌려 타고 찍으셨답니다. 40 년전 모습이지만 지금 봐도 멋쟁이시죠? 송윤태(서울 서초구 서초동)




▲ 제일 가운데서 신나게‘돌리고’계신 분이 저희 아빠세요. 저 옷은 아마도 교복인 듯한데, 정말 즐거워 보이네요. 아빠에게도‘전성 시대’가 있었나 봅니다. 김승연(서울 서초구 서초동)

김신영 기자
박효재 인턴기자·고려대 사회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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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상 2011-10-09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 사진은 교련복입니다. 1994년도에 교련 수업이 없어지면서 사라졌지만 한 동안 교련복 입고 다니는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1994년 졸업이라 기억이 나네요..유일하게 '수' 받던 교련수업 ㅋㅋㅋ

최원석 2011-10-2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지막사진 님의 아버지께서 입고계신옷은 교련복이라는 옷입니다. 1990년도 초순까지는 남녀를 구분하지않고 고등학교 정규과목중에 교련이라고하는 군사교육시간이 일주일에 2시간간정도 배정이 되어있었지요. 교련시간에 군복처럼 입어야만했던 군사교육복장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에 남학생들은 학교밖에서도 간편하게 많이들 입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