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기 전에 꼭 읽어야 할 만화 국어 교과서 1 - 맞춤법 되기 전에 시리즈 4
고흥준 지음, 마정원 그림, 정호성 감수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난 이걸 보고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맞지 않는 말을 쓴다. 나도 똑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말을 알맞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책은 만화로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읽기도 쉽고 재미있다.

또 이 책은 인물들이 틀린 말을 하면 여기 나오는 아저씨가 있는데, 그 아저씨가 꼼꼼이 하나씩 틀린 말을

똑바로 알려준다.

이젠 조금이라도 맞는 말을 쓰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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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26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쁜 말들을 사용안하고 이상한 말들을 많이 사용하던데 세종대왕님이 아신다면 울고 싶을거예요..그죠??
 

[커버 · 1인 출판] 1인 출판사… 출판독립 선봉에 서다 살롱(salon)

2006/09/29 20:29

http://blog.naver.com/sudony/100029133934

[커버 · 1인 출판] 1인 출판사… 출판독립 선봉에 서다


▲ 윤양미 '산처럼' 대표

윤양미 '산처럼' 대표
"자기 색깔로 틈새 공략하면 승산"

윤양미(43) 씨는 1인출판사 ‘산처럼’ 대표다. 1988년 출판계에 입문해 한길사와 역사비평사에서 8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다 2002년 독립, ‘산처럼’을 세웠다.

“30대 후반 들어 출판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면서 누구의 간섭 없이 평생 만들고 싶은 책을 내고 싶었어요.”

한길사 출판사에서 편집ㆍ기획을 하고 그보다 작은 역사비평사에서 편집뿐 아니라 제작, 마케팅, 경리 등을 간접 경험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산처럼’이 최근까지 발행한 책은 모두 20권. 대부분 인문ㆍ역사서들이다. 첫 작품인 ‘세계 지식인 지도’(2002년)는 초판이 모두 팔리고 지금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첫 출간의 성공은 윤 대표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이어 역사 에세이 ‘테이레시아스의 역사’9,000부가 넘게 팔렸고 TV 책소개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을 뿐 아니라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뽑히기도 했다.

한길사에 있으면서 인연을 맺은 이오덕 선생의 에세이집 ‘나무처럼 산처럼’도 8000부 남짓 나갔고 문광부 추천도서로 뽑혔다. ‘가네코 후미코’평전은 최근 ‘KBS 스페셜’프로그램이 이 인물을 다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밖에 ‘근대의 횡단, 매혹의 질주’,‘만철(滿鐵)’,‘신데렐라 천년의 여행’,‘단군, 만들어진 신화’,‘신세기 랩소디’,‘사유의 열쇠-철학’ 등 주목할 만한 역저들을 냈다.

윤 대표는 1인 출판이 자기 ‘색깔’을 갖고 틈새를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인문ㆍ역사서는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지만 현실적으로도 실용서에 비해 판매 규모가 크지 않고 영업도 큰 힘이 들지 않아 1인 출판에 적합하다고 평가한다.

윤 대표는 1인 출판의 어려운 점으로 어떤 책을 펴낼 것인가를 혼자 결정해야 하고 초기 자본 및 이후 자금 회전, 홍보ㆍ마케팅의 한계 등을 꼽았다. 특히 자금은 1인 출판의 생명줄과도 같아 ‘팔릴 수 있는 책’, 그러면서도 ‘가치있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감은 상당하다고 했다.

‘산처럼’은 곧 일본 소수 종족인 아이누족의 문제를 다룬 ‘변경에서의 조망’과 우리의 식민 잔재를 통찰하는 ‘생활속의 식민주의’를 펴낼 예정이다.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대표
"홍보 힘들었지만 이젠 보람 느껴"

▲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대표

‘대종언어연구소’는 출판 경험이 없는 박대종(43) 대표가 설립한 1인 출판사다. 박 대표는 편집,기획은 물론 제작, 홍보까지 직접 도맡아 한다.

박 대표가 출판사를 차린 것은 90년대 초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1982년) 중국어를 전공하던 박 대표는 한자와 씨름을 했다.

2000년 전 후한(後漢)의 학자 허신이 ‘설문해자’를 통해 문자의 구성체계와 어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이를 토대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글자가 너무 많았다. 한자 해석에 미친 박 대표는 1991년 대위로 전역한 뒤 ‘선비 출판사’를 설립하고 이듬해‘한자핵(韓字核)’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한자의 어원해설뿐 아니라, 한자를 만든 민족은 한족(漢族)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동이족)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후 중세·고대어를 연구하면서 그는 우리말과 영어의 연결고리를 발견했고, 95년 ‘뿌리 뽑힌 영어’라는 연구 결과의 일부를 공개했다. 일반인들이 영어 단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해주는 학습서 개념으로 펴낸 것인데 반응이 좋았다.

박 대표는 99년부터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 출판사를 ‘대종언어연구소’(www.hanja.com)로 변경하고 ‘나는 언어 정복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시리즈를 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6권이 나왔고 앞으로 15권까지 펴낼 예정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말과 영어 간의 음운대응법칙뿐 아니라 우리말과 일본어, 일본어와 영어 간의 음운대응법칙까지 밝힘으로써 외국어 학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대종언어연구소는 2005년 청소년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정통 한자학습만화 '이지한자'와 ‘한자 마랑’을 펴냈다.

하지만 출판사가 영세하고 독자층이 한정돼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보다 정통학자나 교수와 같은 ‘간판’이 없다보니 홍보ㆍ마케팅에 애를 먹었죠.”

다행히 중국의 동북공정 등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최근 대종연구소의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박 대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역사기록의 근본인 한자를 그들보다 더 알아야 한다”면서 “요즘 출판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조광현 '디지털미디어리서치' 대표
"독자관심 읽어내기가 성패 갈라"

▲ 조광현 '디지털미디어리서치' 대표

디지털 시대의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데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디지털미디어리서치’는 2004년에 설립한 신생 1인 출판사다.

하지만 조광현(42) 대표의 출판 인연은 꽤 깊다. 1994년 웅진그룹에 입사, 출판 분야에 근무히면서 1년 후 ‘자녀교육 부모지침서’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그후 97년 웅진출판 단행본 개발부에서 1년 가량 근무하다 일빛 출판사로 옮겨 기획팀에 있으면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출간했다.

조 대표는 2000년 웅진그룹에 재입사, 인터넷 비즈니스를 접하면서 디지털 시대의 무한 가능성에 매료됐다. 서강대 대학원에서 디지털미디어를 전공하고 그 방면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출판까지 하게 됐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관심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고 출판 경험도 도움이 됐죠.”

조 대표는 출판사 설립 3개월 만에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이해하는데 지침서가 되는 ‘퍼스널 미디어’를 펴냈다. 3쇄판을 낼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고 문화관광부 도서에 선정되기도 했다.

디지털미디어리서치는 이어 세계 게임업계의 거물인 라프 코스터가 글과 그림을 그린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2005년), 멀티미디어시대 차세대 웹을 다룬‘웹2.0 시대의 기회, 시맨틱 웹’(2006년)을 펴냈다.

두 책 역시 관심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IT 분야에서 일반적인 개론서는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분야, 앞선 정보를 제공하는 전략이 통한 것 같습니다.”

조 대표는 “1인 출판의 성패는 ‘기획’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국내외 IT 분야의 흐름을 늘 점검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히는 게 그의 주요 일과다.

조 대표는 편집ㆍ기획에 전력하고 제작과 마케팅은 각각 부인(김진 디자인 대표)과 전문집단에 맡기고 있다. 김진 대표는 50여 개 출판사의 디자인은 물론 국내 영화제 포스터, 대학 도록 등 다방면에 디자인 실력을 갖춘 출판계의 베테랑으로 통한다. 디지털미디어리서치의 책은 모두 김진 대표의 손을 거친다.

조 대표는 “아웃소싱 분야가 확대되면서 1인 출판이 수월해졌다”며 “미래(독자의 관심 등)를 정확히 읽고 그에 따른 기획을 하면 다양한 1인 출판사가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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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청 “최근 진보논쟁서 정치·민생과 직결된 남북문제 누락”
불붙은 ‘진보논쟁’ 백낙청 교수 인터뷰
한겨레 박찬수 기자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백낙청(69)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최근의 ‘진보 논쟁’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건 다행스런 일이지만 남북 관계에 관한 고민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논쟁을 불러온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면 정권교체되는 게 당연하다”는 발언에 대해선 “최 교수가 (이 발언을) 원론적인 얘기라고 했지만, 원론적 얘기라면 (언론 인터뷰가 아니라) 강의실에서 말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참여정부 실패엔) 정책 실패와 대통령의 어법이나 행동에 대한 국민 반감 뿐 아니라, 보수적인 거대 야당이나 거대 언론에도 책임도 있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노 대통령의 ‘유연한 진보론’에 대해 “우리나라에 교조적 진보가 분명히 있지만, 미국 일정에 맞춰 한-미 FTA의 졸속 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까지 ‘교조적 진보’라고 보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와의 인터뷰는 2월28일 한겨레신문사 7층 편집국에서 이뤄졌다. 박찬수 정치팀장

-최근 진보진영 안에서 ‘진보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면 정권교체 되는 게 당연하다. 한나라당이라고 안될 것은 없다”고 발언하며 불 붙기 시작했고, 반론 재반론이 이어지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논쟁에 참여했습니다. 최근 일고 있는 진보 논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학계가 대체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고 외국의 이론이나 들먹이기 좋아하는 풍조가 강한 마당에 이 정도의 논쟁 벌어진 것도 다행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소위 진보논쟁이라는 것도 더 진보하고 진화할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에요. 최 교수의 경우는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원론적인 얘기를 한 것일 뿐이라고 발뺌을 했는데, 글쎄 원론적인 얘기는 강의실에서 하면 되는 거고, 실제로 그것이 원론적인 얘기만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다른 차원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 그 얘기는 나중에 계제가 되면 더 하기로 하지요. 이른바 진보논쟁 전반에 관해 내가 느끼는 것 하나가, 최장집·조희연·손호철 세 분이 그사이 주로 부각된 인사들인데, 세 사람의 논의에서 공통적으로 누락된 것이 남북관계라든가 한반도평화 문제예요. 참여정부를 평가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그 문제를 다뤄야 할 건데말이에요. 참여정부가 그 문제에 얼마나 잘 대처했냐, 김대중 정부에 비해서는 어떻고, 만약 이회창 정권이 들어섰을 경우를 가상했을 때는 더 잘했을까 더 못했을까를 학자로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게 아예 빠져 있거든요. 그런데 한반도평화는 절박한 정치문제인 동시에 경제문제고 민생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한반도 긴장이 어느 수준이냐 하는 것하고 우리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느냐, 우리 사회에서 민주세력과 수구세력 사이의 세력균형이 어떻게 바뀌느냐 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든요. 세 사람 다 그 이야기를 빼고 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각기 다를 거라고 보는데, 아무튼 그 문제를 빼고서 논쟁이 그냥 지속된다면 몇몇 학자가 떠들다가 사그라들게 마련이에요. 그렇지 않으려면 논쟁의 과정에서 본인들이 직접 새로운 차원을 개척하거나 아니면 제4, 제5의 논객이 가세해서 차원을 높여나가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는데, 학계 내에서 그런 진전이 있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개입을 하는 바람에 판도가 달라졌죠.

-이 문제가 애초엔 학자들 간의 논쟁이었는데 대통령이 끼어들면서 정치·사회적인 논쟁으로 확산됐습니다. 대통령의 논쟁개입이 적절했다고 보십니까?




=논의가 사그라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는 확실하게 공헌한 셈이지요. 그러나 일반론의 차원에서 가령 대통령이 영문학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임기 중에는 첨예한 영문학 논쟁을 피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번 진보논쟁은 학술논쟁인 동시에 정치적 성격이 강하니까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개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요. 그럴 수는 있는데, 어쨌든 이제까지는 학술논쟁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끼어드는 게 모양새가 안 좋았고, 또 하나는 이게 사실 대통령께서 직접 뛰어들 만한 수준에 도달한 논쟁이었는가에 대해 나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진보논쟁이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고, 그 평가가 구체적인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무조건 ‘실패했다’고 규정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진보논쟁에 참여한 한 계기인 것 같습니다. 이제 꼭 참여정부 4년이 지났는데, 참여정부가 실패했다고 보십니까?

=참여정부가 잘못한 일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난 참여정부가 실패했냐 안했냐는 식으로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가 편향된 논의구도라고 봐요. 물론 정치권에서야 으레 할 수 있고, 학자라고 해서 못할 건 없지만, 모든 논의가 초점이 그리로 모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수진영이 꼭 좋아하는 논의구도를 미리 설정해놓은 상태에서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말려들거나 심지어 조장하는 판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의 참여정부 국정운영을 평가하신다면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일단 다각적인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평화문제나 남북관계 차원에서도 봐야 하고, 최장집 교수가 강조하는 정당정치의 활성화나 제도화의 차원에서도 평가를 해야 하고, 민생문제 차원에서도 봐야 되고. 가령 민생문제, 서민의 생활문제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건 틀림이 없는데 그 문제도 평화문제와 따로 노는 것이 아니고, 또 여러가지 맥락이 있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맥락도 있고, 한반도 역사의 맥락도 있고, 지난 4년 간 정부의 행태라든가 이런 사항도 있고. 그런데 학자들의 논쟁이 그 점에서는 오히려 정치인들의 논의 비슷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진보진영에서는 ‘참여정부 때문에 욕먹고 있다, 진보 전체가 무능력하다고 매도되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반면에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항상 비판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양쪽의 시각 차가 큰 거 같은데, 진보진영과 진보적인 기치를 내건 정부의 관계설정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진보진영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뭐가 진보진영이냐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개혁세력이라는 말을 쓰면서 그게 곧 진보라는 전제를 깔기도 하고, 진보개혁세력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개혁은 개혁이고 진보는 진보라는 주장도 있어요. 우선 그런 것부터 정리를 해가면서 논의를 해야지요. 나 자신은 흔히 진보학계의 한 사람으로 꼽히지만, 그리고 그게 아주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겠습니다만, 극단적인 진보하고 개혁세력을 분명히 가르는 데는 반대하고요.

또 하나는 철저한 진보를 외치는 쪽에서 잘 말하지 않는 일종의 치부가 있는데, 좁은 의미의 진보진영 안에서도 진보의 기준에 대해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정파의 대립이 있잖아요. 한쪽에는 반미 자주통일을 진보의 최고 척도로 보는 그룹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 남한사회 내에서의 평등이랄까 이런 데 치중하면서 북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안하거나 심지어 반북적인 좌파도 있단 말입니다. 이 둘이 많은 사안에 대해 서로 협조하고 품앗이를 해주고 지내기는 하지만 그러다가도 조직내 헤게모니가 걸리면 비타협적으로 싸우기 일쑤고 아무튼 전혀 융합이 안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온건진보라고 할까 중도적인 개혁세력을 떨어내고, 남은 진보세력에서도 각 정파의 상이한 기준에 따라서 절반을 다시 떨어내면 그야말로 극소수밖에 안 남죠. 철저한 진보를 말할 때 숨겨진 함정 같은 것인데, 아직 그게 솔직하게 토론이 안되고 있다고 봐요. 나 자신은 ‘변혁적 중도주의’를 얘기하면서 그것이 곧 이 시대의 진정한 진보라는 주장이기 때문에, 진보를 그냥 내세우는 사람과는 입장을 달리하죠.

-‘변혁적 중도주의’가 어떤 개념인지 설명을 해주시죠. 요즘 중도 개념이 너무 많은데….

=정치권에서는 집토끼를 확보해놓고 산토끼까지 잡으려고 하면 중간지대로 진출해야 하니까 너도나도 중도를 외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이 애당초 없다고 생각하면 극단적인 진보노선을 내세울 수도 있지만, 현실권력을 잡겠다는 사람들은 중도를 표방하게 돼죠. 내가 말하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런 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변혁’이라는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개념을 전제로 진정한 중도의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이죠. 우리 시대 최대의 변혁과제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혁입니다. 그건 통일지상주의와는 달라요. 통일을 하되 제대로 해서 한반도에 진정한 선진사회를 만드는 통일, 현재의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그보다 나은 체제를 건설한다는 개념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변혁과제인데, 한반도의 현실에서는 그런 과제가 전쟁을 통해 달성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다른 어떤 혁명적 극단적 방법으로 안되고, 한반도 특유의 방식으로 점진적, 단계적으로 진행하면서 그때그때 남쪽 사회에서 필요한 개혁과 남북의 통합과정을 연계시키는 폭넓은 연대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도주의가 나온 겁니다.

이런 변혁적 중도주의는 길게 볼 때는 남북을 통틀어서 다수의 입장이 되기를 겨냥하고 있지만, 현재 정치판에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지지하거나 이해하는 사람들이 다수파가 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지요. 물론 지지하는 사람을 늘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만, 당장에 여기서 표가 많이 나온다기보다 쓸데없이 분열하는 논리에 대항하는 의미가 더 크지요. 아무튼 득표전략으로서의 중간노선과는 성격을 달리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을 ‘유연한 진보’라고 하면서, 기존 진보 세력을 ‘교조적 진보’라고 표현했습니다. ‘변혁적 중도’는 ‘유연한 진보’와 통하는 개념입니까?

=‘유연한 진보’는 일종의 정치적 수사 아니겠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그때그때 맥락에 따라서 결정될 텐데, 우리나라에 교조적 진보가 분명히 있죠. 또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보다 보수적인 집단이 분명히 있고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참여정부는 교조적 진보보다는 유연하고, 보수세력보다는 진보적이다, 이런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한데, 사안별로 그게 맞는 대목도 있고 안 맞는 대목도 있습니다. 가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정에 대해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을 대통령은 교조적 진보라고 봤는데, 나는 적어도 이 경우에 한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진영하고 죽이 잘 맞아서 가고 있다고 믿어요. 물론 반대하는 사람 중에 교조적인 진보주의자도 있지만, 미국하고의 단순한 무역협정을 넘어서서 여러 면에서 제도적 통합, 경제통합에 가까운 협정을 맺으면서 이렇게 졸속으로 할 수 있느냐, 미국의 일정에 맞춰서 그걸 ‘빅딜’식으로 서둘러 해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조차 교조적 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이 잘하는 일에 대해서도 보수언론이 사사건건 문제삼는 실정인데 유독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해서는 전혀 안 그런단 말이죠. 내가 노 대통령이라면 이거 뭔가 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하고 있으면 저 친구들이 나를 칭찬을 할까, 이렇게 한번 곱씹어볼만한 대목이라고 봐요(웃음).

-노 대통령은 진보세력의 가장 경직된 부분 중 하나가 개방에 대한 시각이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한미 에프티에이 논쟁을 구한말의 ‘쇄국주의 대 개방’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지요. 한국시장은 이미 80~90%가 개방된 상태이고, 이것을 개방 이전으로 되돌리자고 하는 사람은 있더라도 극소수일 겁니다. 그런데 한미 에프티에이를 지금처럼 추진해서는 관세장벽만 허무는 것이 아니고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나 산업정책, 남북통합 과정에서의 독자적인 국가정책마저 그 여지를 없애기 쉬운 그런 식의 경제통합이니까 훨씬 신중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쇄국주의라고 보는 것은 전혀 타당치 않지요.

-진보 시각에서 보면, 통일외교 분야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잘해왔다고 평가하십니까?

=굳이 ‘진보 시각’이라는 토를 달 것 없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크게 봐서 그래도 옳은 방향으로 해왔다고 인정해야죠.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최장집 교수 ‘정권교체‘ 발언 이 원론적이라면 강의실서 말했어야…참여정부 실패엔 야당과 언론 책임 있다”

-꼭 노 대통령 글이 아니더라도, 최근에 진보진영이 위기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 위기라고 보시는지, 위기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진보진영이 누구냐에 따라서 위기인 사람도 있고, 재밌게 잘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위기이더라도 어떤 위기이냐가 달라지게 마련이죠. 욕먹을 이야긴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표방하는 지식인, 학자들의 상당수가 말로는 위기를 논하지만 사실은 87년 이래의 민주화가 가져온 공간 속에서 상당히 즐겁게 살고 있다고 봐요. 이 공간에서 위기를 말하고 정부를 비판하고 하는 것이 요즈음 지식인에게는 참 남는 장사거든요. 87년까지 우리가 정말 얼마나 피어린 투쟁을 해야 했고, 87년 이후의 20년도 저절로 된 것이 아니잖습니까. 나만 하더라도 87년 이후에도 불려가고 잡혀가고 제재를 받았는데, 나는 상대적으로 특혜를 받고 편하게 산 사람 중에 하나예요.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자유를 누리기까지의 처절한 우리 역사의 과정을 얼마나 몸으로 느끼면서 얘기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른바 87년체제를 비판하면서도 실제로는 87년체제에 배부른 게 아닌가, 민주주의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과연 얼마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요.

-진보진영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치열한 태도가 무뎌졌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진보진영이라고 자꾸 단순화하지 맙시다.(웃음) 또 안주하는 방식도 여러가지라고 봅니다. 양극화문제 같은 것을 계속 제기하더라도 이것이 분단체제 현실과 어떻게 고약하게 얽혀있는가 고민하면서 구체적으로 타개할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문제도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이게 모두 분단 때문이니까 통일해야겠다고 부르짖으면서 관성적인 통일운동에 안주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현상들이 사회 도처에 있어요. 하지만 나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역동성이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요. 87년 이전과 이후의 역사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큰 잠재력을 지녔다고 봐요. 이럴 때 지식인들이 나서서 정말 슬기롭게 그 역동성을 살릴 길을 찾는 게 중요한데, 너무 거룩한 말씀들만 주고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예요.

-지식인 집단은 아니지만, 87년 민주화 체제의 산물로 전교조나 민주노총 등 사회세력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국민 지지를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조직 이기주의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직 내부에서도 그런 비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니까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봐야겠죠.

-올해 12월 대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진보진영이라고 부르든 민주화 진영이라고 부르든, 개혁세력이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쟁점인데요, 최장집·조희연·손호철 논쟁의 핵심도 이것입니다. 최열 대표나 정대화 교수 같은 분들은 한나라당에 정권 넘겨줄 수 없는 거 아니냐며 ‘미래구상’이라는 연대기구 만들어 총체적으로 대응하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일부에서는 왜 우리가 선거에 목매야 하느냐며 한발 떨어져 있기도 합니다. 민주화세력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선생님 의견을 말씀해주시죠.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 특별한 의견이 없어요. 지금 대선 얘기가 나오니까 갑자기 표현이 ‘진보진영’에서 ‘민주화세력’으로 가는데(웃음),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대표적인 예가 손호철 교수죠. 손호철 교수의 경우에는 이번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그가 생각하는 진보진영을 위해서는 나쁜 일이 아니라는 쪽으로 이미 생각이 정리된 것 같고, 최장집 교수는 결과적으로 손호철 교수와 상당히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지만 딱히 그렇게는 말하지 않고 누가 물으면 ‘원론적인 얘기한 것뿐이지, 그건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내 짐작에. 조희연 교수는 두 사람과 다른 입장인데, 그러나 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이라든가 이런 얘기는 잘 안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뭔가 덜 진보주의적으로 보일까봐 망설이는 기색도 있더군요, 내가 볼 때에는. 나는 뭐 지금 손호철 교수 같은 사람은 그들대로 진보논리를 펼치고 ‘미래구상’은 ‘미래구상’대로 움직이고, 최근에 ‘번영과 통합을 위한 국민운동’이라는 집단도 출범을 했는데 거기는 거기대로 하고, 각자가 나와서 활동하다보면, 이게 대선국면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는 현실논리에 따라서 정리가 되게 마련이라고 봐요. 그때 가서 국민이 선택하고 심판하면 되지, 지금부터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에 황석영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새 정치질서를 위해 총대를 멜 생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대상이 손학규 전 경기지사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87년 이후의 민주화세력 그룹이 많이 갈라져 있는데요, 이번 대선에선 진보 진영이 대동단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나도 문학평론가가 이것저것 딴 짓을 하고 다니는 처지에 황석영씨 보고만 ‘당신 작품이나 열심히 쓰라’고 말할 입장은 못되죠. 황석영씨는 황석영씨대로 자기 소신대로 뛰는 거죠 뭐.

-시대적 당위가 있다고 보십니까, 범민주세력의 결집을 위해서 지식인들이 뛰는 게. 과연 그렇게까지 뛸 시기라고 보십니까?

=글쎄, 황석영씨의 정확한 입장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보수진영 일부에선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간을 ‘잃어버린 10년’, 그러니까 그 기간 동안 나라가 무너졌다는 시각이 강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이 후퇴했다는 일부 보수진영의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여기저기 들여다보면 엉망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어떻게 보면 아직도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보다는 ‘상식’과 ‘몰상식’의 대립으로 분류해야할 정도로 엉망인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10년을 잃어버려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은 그러면 10년 전, 아니면 20년 전의 이 나라는 엉망이 아니었느냐…. 나는 박정희 정권 18년도 ‘잃어버린 18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을 정상국가로 설정해놓고 그때에 비해 나라가 엉망이 됐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죠. 우리 역사를 돌이켜보면 조선왕조가 500년 넘어 지속된 끝에 그야말로 엉망이 돼서 일제 식민지가 되었고 다른 민족의 종살이를 했지요. 1945년에 해방이 됐지만 곧바로 분단이 돼서 분단민족으로 살아왔고, 독재에 시달렸고, 이거를 그래도 조금씩 헤쳐내면서, 많은 사람이 죽고 피흘리면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에요. 엉망인 건 엉망인 걸로 솔직히 인정하되, 그것을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한나라당이라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게 맞고, 민주노동당밖에 도저히 없다면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집권 못하더라도 거기다 힘실어주자라고 주장하면 되고, 둘다 내키지 않는 대안이라면, 지금 비록 지리멸렬하지만 폭넓은 민주화세력이 대오를 정비해서 개혁작업을 계속하는 게 좋다면 어디 한번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가 지켜보면 되는 것이지, 개인적으로 거기에 미리부터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뉴라이트 담론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현대사 교과서 파문도 있었는데요, 뉴라이트가 나오는 게 합리적 보수 형성에 기여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새로운 수구세력의 외피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존 보수보다 오른쪽으로 간 그런 극단적인 수구일 수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최근 뉴라이트 흐름을 한번 평가해 주시죠.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게 시작된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하나는 옛날의 우익세력은 담론투쟁이라는 게 필요없었어요. 마음에 안 드는 놈 그냥 잡아가면 되는 거였고, 돈이나 관직을 줘서 해결하기도 쉬웠어요. 그런데 세월이 바뀌어서 담론투쟁을 우익에서 하겠다고 나선 것은 우리 사회의 발전이라 봐야죠. 지금 뉴라이트 운동이 시민운동으로서 튼튼하다고 보진 않지만은, 어쨌든 시민운동 하겠다는 건 진전이에요. 그러나 뉴라이트 담론의 내용이 얼마나 새로운지는 아직 회의적입니다.

가령 유럽이나 미국에서 60년대에 ‘뉴레프트 운동’이 나왔을 때 뉴레프트가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것은 라이트보다 오히려 올드레프트와의 논쟁이고 투쟁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그런 식의 치열한 담론투쟁을 보여주느냐, 물론 다소의 견해차는 있지만 그 정도는 뉴라이트 내부에서도 있는 것이어서 대단한 게 못돼요.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단적인 예가, 맘에 안 드는 아무나 친북좌파로 몰아가는 태도지요. 물론 이 나라에 친북좌파가 없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친북좌파도 있고 반북좌파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친북우파도 있잖아요. 고 정주영 회장 같은 사람은 좌파일 리는 없고, 굳이 말한다면 상당부분 친북적인, 북에 우호적인 친북우파였지요. 이런 점을 가려가면서 친북좌파는 친북좌파로 비판하고, 반북좌파는 반북좌파로 비판하면서 그런 분간을 못하는 구우익을 상대로 좀 맹렬하게 다툴 건 다퉈야하는데 아직 그 단계까진 안간 것 같아요.

-며칠 전 선생님의 라디오 인터뷰 들으니까, “참여정부의 스타일과 정책실패를 구별해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던데요, 참여정부의 책임 중 정책실패 부분도 있고, 통치스타일 부분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죠. 대통령의 어법이나 행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랄까, 그런 게 있지요. 그런데 정책실패와 통치스타일 외에 보수적인 거대야당이나 거대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거야말로 너무나 지당한 말씀 아닌가요.(웃음)

-정책실패는 한-미 FTA 추진 등 양극화를 막지 못한 것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양극화라는 게 참여정부의 전적인 책임으로 미루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어쨌든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 분명히 있지요. 그런데 이 경우에도 거대야당과 거대언론에도 책임이 있는 게, 부동산정책이라든가 분배정책 해보려고 하면 언제 뭐 협조한 적이 있습니까. 협조를 안한 정도가 아니라 여기저기서 가로막기 일쑤였지요.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도 성공하려면 심리적 요인이 상당히 중요한데 정부가 잘 못해서 신뢰를 잃은 면도 있지만, 덮어놓고 안될 것이라는 식으로 미리 몰고간 경우도 많지요. 정부가 잘될 거라고 그랬다가 틀린 적도 있지만 보수언론에서 안될 거라고 예언했다가 안 맞은 면도 있잖아요. 그래도 되는 방향으로 밀어줬다가 안됐을 때 가열차게 비판하는 것은 몰라도, 처음부터 심지어 되는 것조차 안되는 것으로 비판했으면 나중에 양심에 거리끼는 기색이라도 보일 법한데…. 이런 것도 우리 사회가 엉망인 한 면이 아닐까요.

-정책 자체의 실패, 어법과 행동 등에서 참여정부가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것도 있는데, 진보개혁 세력이 적극적으로 노무현 정부를 안 도와준 측면도 있다고 보십니까?

=분명히 야당에 속하는 진보정당이라든가 또는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본업으로 하는 시민단체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죠. 다른 한편으로 비판을 하더라도 좀 실상을 알고 물정을 알아가면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실제 국정경험과 정치현장의 경험이 있거나 실물경제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충분히 할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 임기가 1년 남았습니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FTA반대 세력은 ‘교조적 진보’ 주장 잘못…진보위기 말하는 상당수 학자들 87년 이전 헝그리정신 부족”

=글쎄요, 양극화를 어떻게든 완화시키고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추세를 견지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나는 해야 할 일보다는 하지 말아야할 일 한가지를 먼저 꼽고 싶군요. 대통령이 한-미 FTA가 양극화를 악화시킨다는 근거를 알지 못한다고 하지만, 거기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제출이 돼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반드시 맞다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그런 견해를 충분히 감안해서 사안별로 검토하고 그럴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지를 충분히 고려해가면서 진행한다면 3월말, 4월초 일정에 맞춰서 후다닥 ‘빅딜’을 해서는 안되는 게 분명하지요. 졸속은 피하고 남은 임기 동안 협상을 계속하면서 신중히 대처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남북관계는 대체로 옳은 방향으로 해왔다고 그랬는데, 물론 이 정권의 준비부족으로 김대중 대통령 때보다 못한 점도 있지만 처음부터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강경책을 밀고 나가는 상황이었고 노무현 대통령 취임하자마자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고 이런 장애요인도 있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겪으면서 2007년에 희망적인 국면까지 왔으니까, 마지막 1년 동안 그 방면에 더 많은 진전을 이룩하기를 바랍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화 세력은 노무현 정권과 결별하고 따로 가야 한다”고 말했고, 함세웅 신부는 “비판할 건 비판하더라도 끝까지 잘하도록 도와줄 건 도와줘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선생님은 어느 쪽이십니까?

=최 교수의 그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민주화 세력이 과연 누구며 ‘결별’이라는 걸 어떻게 하는 건지…. 한나라당 집권을 예상하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말자는 이야기라면 무슨 이야긴지는 분명한데 최 교수는 꼭 그런 건 아니라고 하고요.

얼마 전에 내가 최장집 교수에 대해 ‘자신은 원론적인 얘기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원론만으로 안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대해서도 숙고해보는 게 좋지 않겠냐’고 공개적으로 충고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으로 최장집 교수를 아끼는 마음의 표현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며칠 사이 계속 언론에 이 문제가 확산되고 최 교수의 발언들이 부각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조금 각도를 달리해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최장집 현상’이라는 것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최 교수의 학설이나 발언뿐 아니라 그것을 언론이 다루는 방식이라든가, 진보학계에서 반응하는 방식 등이 다 포함되는데, 난 언론에 대해 불만이 많아요.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한겨레>도, 단순논리를 펼치면서 정부나 개혁세력을 꾸짖는 지식인의 발언을 굉장히 선호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어요.

최 교수 이야기가 사실은 한두 번 들은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민주주의라는 게 독재헌법이 민주헌법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다 되는 게 아니고, 서민생활 향상시켜야 한다, 정당정치 제대로 해야 한다, 관료사회 잘 통제해야 한다, 뭐 다 지당한 말씀 아닙니까. 최근 논쟁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통일을 얘기하면 평화에 위협이 되니까 평화 얘기만 하자는 게 최 교수의 입장인데, 내가 원래 그를 비판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였어요. 왜 평화담론이냐 통일담론이냐, 이렇게 이분법으로 갈라서 생각을 하는가, 한반도라는 데는 섣불리 통일을 주장해도 평화가 위협받지만, 한반도식의 통합과정을 진전시키지 않아도 평화정착이 안 되는 곳이니까 단순논리를 넘어서자고 한 것이었지요. 조희연 교수 역시 정당정치냐 사회운동이냐 이렇게 딱 갈라놓는 이분법을 비판했다고 생각하는데, 최 교수는 사회운동만 다시 하자는 건 과거의 타성이라거니, 지금은 통일을 말할 때가 아니라 평화를 말할 때라는 식의 얘기를 되풀이하고 있어요.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실명비판을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최 교수는 남이 실명비판을 해도 결코 실명으로 답하지 않고, 대신에 측근이나 지인이 나서서, “사실 이번에 최 교수가 쓴 글 중 어느 대목은 아무개에 대한 답변에 해당한다”라고 언론에 귀띔해주면 기자가 열심히 받아적곤 하지요. 그런 방식을 노무현 대통령이 좀 배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1월에 청와대 오찬에 참석하신 사진을 신문에서 봤는데요, 노 대통령을 몇번이나 만나셨습니까?

=몇 번 안돼요. 그나마 여러 사람 틈에 끼어서 만났죠.

-자유롭게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까?

=지난 1월에는 비교적 자유롭게들 얘기하는 분위기였죠. 분위기는 괜찮았지만 상대가 대통령이면 여러 사람 모인 자리에서 할 말 다 하기는 어렵지요.

-노 대통령의 어법이나 행동, 그것도 국민들이 현 정부 싫어하는 요인 중의 하나인데, 좀 고치라고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까?

=나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완곡하게 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그러나 대통령은 나름대로 소신을 갖고, 그게 내 체질인데 어떻게 하냐는 태도인 것 같아요. 또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예전에는 많다가 지금은 대폭 줄어들었지만, 대통령은 줄어들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인 모양이니까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를 연임하시게 된 걸로 아는데요.

=5일에 정기총회에 해당하는 공동대표회의가 있는데 총회준비위원회에서 연임을 요청해와서 공동대표들이 결정하신다면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직은 고생의 끝이 안 보이는군요.(웃음)

-지난 2년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말씀해주시죠.

=6·15공동위원회는 남북의 당국간에 대화가 단절됐던 시점에 출범해서 그것을 복원하고 2005년의 여러 성과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은 2005년에 비해 훨씬 어려웠는데, 북의 수해 피해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고 6·15공동위원회 차원의 대화의 끈을 유지함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 데 공헌했다고 보고요. 또,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는 아니지만 6·15 남측위원회 내부사정이 굉장히 복잡했었습니다. 처음 제가 맡았을 때만 해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심각한 위기도 더러 있었지요. 그런 것을 넘기면서 이제는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적어도 조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도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평양 가셔서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위원장과 만나셨는데, 어떤 대화를 나누셨고 어떤 합의를 하셨나요.

=지난해 6월 광주행사 이후로는 6·15민족공동위원회가 부진했죠. 7월에 미사일 발사, 10월에 핵실험, 그 사이에 수해도 있었고요. 원래 10월 하순에 평양에서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는데 핵실험 이후에 남쪽의 요구로 연기됐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좀 경색된 관계도 풀고 하기 위해서 비공식적으로 북측 위원장과 평양에서 만나서 정세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주고받았고 올해 들어서 심양에서 한번 소규모 회의를 하고, 오는 6월 행사는 평양에서 하자는 공감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올해 6월 행사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으면 구체적인 실무준비는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요?

=6월 행사를 여는 일 자체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봅니다. 평양에서도 해봤고 광주에서도 해봤고, 또 지금 전체적으로 작년 후반기에 비해 상황이 좋으니까 사태가 급전직하로 나빠져서 북에서 2차 핵실험을 하고 국제적인 제재가 강화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돌변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인 어려움은 없어요. 다만 그때 가서 얼마나 뜻있는 성과를 내느냐 하는 것은 지켜볼 일이지요. 베이징 6자회담에서의 2·13 합의가 가령 94년의 제네바 합의와 비교해서 진전된 점이 크게 두 가지라고 보는데요, 하나는 미국이건 북한이건 한번 갈 데까지 가본 뒤에 대화로 해결하기로 마음을 돌려먹었다는 점이 그 전과 다르지요, 북은 핵실험까지 했고, 미국은 2000년 말에 클린턴 행정부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놓은 걸 부시 행정부가 뒤집고 여러 해 동안 북을 압박하다가 이제 드디어 정책전환을 했지요. 또 하나 과거와 다른 점은 이번 합의는 구체적인 일정이 촘촘하게 잡혀있지 않습니까. 이행조처에 대한 시한들이 박혀 있기 때문에 건축공사로 치면 ‘기성고’ 즉 시공이 진행된 수준에 따라서 대금을 지급하는 방식이에요. 지금부터 6월 사이에 굉장히 많은 것이 진행되기로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되는지 안되는지를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어요.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훨씬 희망적인 상황이라 봅니다. 지금부터 6월 사이에 합의된 조처들이 이행된다면 이번 6·15행사는 2005년에 못지 않은 의미있는 사건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시죠.

=글쎄요. 대강 다 말씀드린 것 같긴 한데요. 올해 대선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번에 진보논쟁이라는 이름으로 학계에서 이런 논의가 시작된 것을 계기로 적어도 학계나 공론장에서 정말 우리 사회에서 ‘참 진보’는 뭐며, 87년 이후 20년이 된 시점에서 다음 단계를 어디로 어떻게 나아갈 건가, 그런 것을 조금 더 깊이있게 논의하고 다소나마 의견접근이 일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걸 얘기할 때에는 우리가 남북관계 문제와 남한사회 내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생각하면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는데요, 학계에서도 그런 노력이 더 있었으면 합니다.

소위 진보진영의 많은 논자들이 남북문제를 빼고 애기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그것은 그동안 통일담론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쪽의 책임도 있어요. 일반 국민이나 다른 사람이 볼 때 현실성도 부족한 통일노선을 가지고 외쳐대니까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거니 하고 외면하거나, 심지어 공감하는 사람일지라도 통일은 극단적이고 용감무쌍한 투사가 하는 일이지 우리는 감히 못해볼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당연히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런 걸 취급 안하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진보적인 지식인들일수록 ‘후천성 분단인식 결핍증’에 걸린 경우가 많아진 것 같아요. 분단체제 속에 오래 살면서 거기에 길들여진 거지요. 최근의 논의가 이런 증상을 치유해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데, 남북관계가 진전이 되면 될수록 좋든 싫든 남북문제와 국내문제가 직결돼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거라고 봅니다. 올해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될 거냐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의 현실인식 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질 기회라고 봅니다.

정리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백낙청 교수는?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는 민족문학론과 분단체제론을 주창한 진보 학계의 원로다. 1965년 소설 <분지>의 작가 남정현의 구속에 항의하는 평론을 언론에 기고하면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한 백 교수는 1966년에는 계간 평론지 <창작과 비평>을 창간했다. <창작과 비평>은 <사상계>와 함께, 1960~70년대 한국 지식인층의 사회·문학 비평 담론을 이끈 대표적 잡지로 꼽힌다.

1974년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청원 지지 문인 61인 선언’에 동참했다가 같은 해 12월, 서울대 조교수직에서 파면되기도 했다. 지금은 ‘시민의 방송’ 이사장과 ‘6·15 남북공동선언 실천 남측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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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내 머리는 기획실, 손은 공장”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 시간에 자신만의 지식과 지혜로 수완 좋게 사업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1인 기업’이다. 이들은 특정 기업의 하청 업무를 맡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1인 화물사업자나 학습지 교사 등을 포함하는 ‘프리 에이전트’와 구별된다. 단순히 오프라인 상점을 온라인으로 옮긴 1인 쇼핑몰과도 다르다.

1인 기업은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거나 만들어 내는 특성을 지녔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고객인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세분화되는 흐름을 파고들어 자신의 일을 찾아내고 키워 간다.》

‘1인 기업’ 시대, 생각이 곧 돈이다

#장면 1 “1년에 평균 1억 원 이상은 벌지요. 하지만 돈보다 좋은 것은 평일에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미술관과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가는 길은 다른 길이다. 하늘에서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다면 아마 이런 장면일 것이다. 비슷비슷한 정장을 차려 입은 직장인들이 도심의 회색빛 빌딩으로 들어갈 때 그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서울 종로구 북촌길의 정독도서관을 찾는다.

김용섭(35) 씨는 휴식과 일을 겸해 일주일에 2∼3일은 도서관에 들른다.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미술관을 자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전 직장에서 디지털미디어 전략 업무를 맡았던 그는 7년째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김 씨가 하는 일은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팅. 법인의 전략을 짜 주는 개인이다.

#장면 2 김 씨가 정독도서관에 있을 즈음, 수원에 사는 안용성(30) 씨는 자신의 집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자신이 관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자기경영 플러스’에서 좋은 교육 아이템을 발견했다.

‘이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몇 사람이나 참여할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강의 장소로 적합한 회의실 위치가 내비게이션 지도처럼 쫙 펼쳐졌다. 적당하지 않은 후보지를 지워가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다. 핵심 콘텐츠를 보유한 강사들의 리스트는 이미 사진첩처럼 잘 정리돼 있다.

프로그램이 확정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를 띄운다. 1개월에 10회 정도 열리는 그의 세미나에는 많게는 100명, 적게는 30명이 참여한다. 행사 당일 부족한 일손은 대학생의 도움을 받는다. 안 씨의 직업은 자칭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다.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시장의 흐름을 파악했고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일을 만들었다. 소득은 웬만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

○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 수요에 맞춰

권윤구(34) 씨는 자신을 ‘북 코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만든 직업이다.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은 뒤 인상 깊은 구절과 책의 메시지를 e메일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2005년 북 코치로 나서기 전 1년가량은 직장생활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책 읽은 소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e메일로 보내던 것이 아예 직업이 됐다.”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급증하면서 책을 선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 주 수요층이다.

e메일 서비스는 무료다. 그 대신 다독(多讀)의 경험을 살려 출판사의 출판기획 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득을 올린다. 자신의 ‘책 리뷰’를 온라인 사이트에 연결해 주는 조건으로도 돈을 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케이블 TV에 출연하는 것도 일과에 포함됐다.

미국 포천지 편집인을 지낸 윌리엄 화이트가 만든 단어인 ‘조직 인간’. 산업화 이후 정형처럼 굳어진 그런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사람이 1인 기업이다. 거대 조직에 봉사하느라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를 잊거나 덮어두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권기훈(45) 씨는 오피스텔과 와인 바를 오가며 소믈리에(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골라주는 사람)를 교육하는 와인 전문가다. 오스트리아에서 의대를 다니다 와인에 빠져 1998년부터 현지 와인스쿨에서 지식을 쌓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벌린다’는 원칙에 따라 오피스텔에서 한 번에 3, 4명만 가르친다. 와인 실습은 자신이 컨설팅해 준 제자의 점포에서 번갈아 여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였다.

와인 열풍과 더불어 소믈리에 수요가 늘어 현재 월 800만∼900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마산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혼자 심리학책 출판해 베스트셀러 터뜨렸죠”

○ 잘하는 분야에서 독자영역 구축해야

2005년 중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심리학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교보문고의 인문서적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다. 통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3개월도 지키기 힘들다는 점에 비춰보면 작지 않은 성공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조영희(38) 씨가 혼자서 만든 책이다. ‘에코의 서재’라는 1인 출판기업을 세우고 6개월간 준비했다. 그는 위즈덤하우스 등 대형 출판사에서 10여 년간 일하며 틈새를 찾았다.

“역사나 철학에 비해 심리학 분야에선 고급 독자를 겨냥한 책이 거의 없었다. 심리학과 경제·경영서 중에 학문적 이론이 결합된 고급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출판업계는 디자인과 편집, 교정 등의 작업이 정교하게 분화돼 있어 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1인 기업의 활동이 쉬운 편이다. 조 씨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책도 내놓았다.

물론 독립이 쉽지는 않다. 1인 기업이 되려면 ‘조직 인간’일 때 받는 정기적인 급여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고정적인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용섭 씨는 “전문 지식과 인맥을 쌓아 가면서 자신의 일을 서서히 키워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닭이 껍데기가 여문 계란을 낳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회사와의 별도 계약을 통해 1주일에 2, 3일만 출근해 일하는 형태의 근무를 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진행하던 자신의 일이 많아져 전업을 해야 했지만 회사에서 그의 손이 필요한 기간에 시간을 갖고 독립 능력을 키웠다.

○ 1인 기업의 생리

“행사를 알리느라 돈을 들이는 일은 없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지를 올리면 제휴를 맺은 커뮤니티에도 알려지거든요. 통상 5만 건의 조회를 기록할 정도이니 적은 숫자는 아니지요.”(안용성 씨·교육 프로그램 기획가)

비용의 최소화는 1인 기업의 숙명이다. 인터넷은 이런 필요에 가장 충실한 도구다. 개인이 블로그나 미니홈피로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김민희(27) 씨는 인터넷에 ‘연애할 때 유용한 요리’라는 독특한 아이템을 올려 자신을 알렸다. 덕분에 요리와 관련된 기업의 객원 연구원으로 영입돼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

1인 기업의 주요 생산품목은 결국 지식이다. 컨설팅이나 교육강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가장 손쉬운 ‘원재료’ 확보 수단이기도 하다. 외국의 강연장을 찾지 않고도 최소의 비용으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여러 곳에서 확보한 지식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1인 기업의 몫이다. 이들에게 유독 책읽기나 인터넷 검색 시간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술과 강연은 이들의 핵심 마케팅 수단이자 소득원이다. 인세와 강연료를 챙기면서 미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1인 기업은 넓은 사무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사무실을 임차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주’들이 많다.

비용의 최소화는 시장에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무기가 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을 컨설팅할 때 경쟁상대인 법인보다 가격을 낮춰 제시할 수 있다. 책을 출판할 때도 대형 출판사들이 최소 3만 부에 손익분기점을 맞춘다면 1인 출판기업은 1만 부로도 가능하다.

적은 비용 지출은 곧 높은 영업이익률을 뜻한다. 대부분의 1인 기업은 ‘매출’과 ‘순이익’ 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금전적인 투자비용이 적은 만큼 사업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 1인 기업의 인프라

사회 인프라의 발달은 1인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북 코치로 활동 중인 권윤구 씨는 방송 일정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택배시스템의 발달 덕택이다.

서울 강남과 신촌 등에 있는 ‘토즈’라는 가게는 1인 기업의 사회적 인프라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은 2인실부터 90인실까지 다양한 독립공간을 갖춰놓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던 1인 기업들은 이곳을 예약해 자신의 사무실처럼 사용한다. 2시간 동안 쓰면서 1인당 차 한 잔 값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인테리어는 대기업의 사무실 공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지식 생산이 주 업무인 1인 기업을 위해 콘텐츠를 유통시켜 주는 장(場)도 섰다. 인터넷 사이트 비법닷컴(www.vipup.com)에서는 ‘동대문 상권 분석’ 같은 독창적인 콘텐츠를 개인들로부터 확보해 유료로 유통시키고 있다.

비법닷컴 나원주 사장은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도 소득을 올리는 개인이 늘고 있다”며 “이곳은 특정분야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 수단도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다변화한 것도 1인 기업에는 고무적인 변화다. 1인 기업은 케이블TV와 위성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등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연애 요리 전문가 김민희 씨와 북 코치 권윤구 씨는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글로벌 1인 기업 성공전략’ 강연가로 활동하며 자신도 1인 기업인 김형환(40) 씨는 “처음 개척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한 성공조건”이라며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 진정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나홀로 회사’ 차리려면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1인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계발 욕구가 강하다. 자신이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 되는 기업을 꿈꾸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기 전 자신이 가진 핵심기술을 단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소장은 직장 생활도 ‘회사와 나(1인 기업)의 계약 관계’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회사를 고객으로 인식하면 고객을 만족시킬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고, 자신의 기술도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1인 기업의 생존은 자신의 핵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출판 분야의 경우 기획능력이 있다면 1인 기업 설립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이다.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는 능력을 갖췄다면 온라인 장터(마켓플레이스)에 쇼핑몰을 차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물론 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외부 서비스 환경을 적극 활용해 핵심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 기획가인 안용성 씨는 프로그램 기획과 마케팅에만 관여하고 구체적인 행사진행 등은 대학생들에게 맡긴다. 자신이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외부 서비스 환경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사업 계획을 세울 때는 잠재적인 실패 요인에 유의해야 한다. 성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들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예측에 근거한 시장 조사나 예상 매출액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신기술이 나오면 내 편으로 만든다. 북 코치 권윤구 씨는 처음에는 웹메일 서비스를 이용해 e메일을 보내다가 e메일 대행 서비스 업체를 3곳이나 바꿔가며 신기술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e메일 관리를 수월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 가끔 일을 하지 않아도 표가 나지 않지만 1인 기업에서는 바로 실적으로 나타난다”며 창업자의 의지와 역량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했다. 권기훈 씨는 “전문 지식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없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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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광고산업통계」조사결과 발표 날짜 : 2007.02.22
  

 문화관광부(장관 김명곤)와 한국방송광고공사(사장 정순균)는 지난해에 이어 우리나라 광고산업의 전반적인 현황과 동향을 체계적으로 조사한「2006 광고산업통계」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2005년 기준 광고산업 규모는 8조4,178억원, 종사자수는 2만9,625명으로 GDP의 1.06%를 차지하였고, 2007년 광고경기전망지수는 광고회사와 광고주가 각각 102.6과 103.9로 전망하면서 광고경기가 다소 호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05년말 기준 광고산업규모 8조 4,178억원, 종사자수 2만 9천 625명

  2006년 8월~9월 실시한 2005년 기준 광고산업통계 조사결과, 우리나라 광고산업 규모는 8조 4,178억원, 사업체수는 4천 828개, 종사자수는 2만 9천 625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문화산업규모를 50조원으로 볼 때, 약 16.8%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업종별로 구분해 보면 광고(종합)대행업체의 취급액이 5조 4,662억원 64.9%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 광고제작업, 서비스업, 인쇄, 온라인, 기타 업종이 2조 9,515억원으로 35.1%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체당 취급액 17억 4천 4백만원, 종사자당 취급액 2억 8천 4백만원

  사업체수와 종사자수를 고려하여 산업규모를 살펴보면, 사업체당 취급액은 17억 4천 4백만원, 종사자당 취급액은 2억 8천 4백만원으로 나타났다. 사업체당 취급액을 업종별로 구분하면  광고(종합)대행업이 41억 3천 1백만원으로 가장 높고 서비스업 26억 8천 6백만원, 온라인 19억 3천 6백만원, 광고제작업이 9억 3백만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4대매체(TV,라디오,신문,잡지)취급액규모 3조 8천 155억원, 
뉴미디어(케이블,온라인,모바일,DMB)취급액규모 7천 605억원

  2005년 광고산업 사업체들의 매체별 취급액 규모는 5조 9,360억원으로 전체 광고산업의 70.5%를 차지한다. 이중 4대매체(TV,라디오,신문,잡지)의 취급액은 3조 8,156억원으로 매체 전체 취급액의 64.2% 비중이며, 뉴미디어(케이블,온라인,모바일,DMB)는 7,605억원 12.8%, 옥외광고는 1조 137억원 17.1%의 구성비를 나타냈다. 사업체당 평균 취급액은 TV가 117.2억원으로 월등히 높고, 라디오 13.6억원, 신문 13.6억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서울지역 광고업체 1천 987개 41.2%, 취급액 7조 7천 865억원 92.5%
종사자 2만 402명 68.9% 집중

  2005년 광고산업의 매출규모를 사업체의 소재지역별로 살펴보면, 1천 987개 41.2%에 해당하는 사업체가 서울에 소재하고 있으며, 전체 매출규모의 대부분인 7조 7천 865억원 92.5%가 서울에서 취급되고 있다. 사업체당 평균취급액은 서울이 39.2억원으로 6개 대도시 평균 2.5억의 15배, 그 외 9개도 평균 1.8억원의 21배로 절대적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사자는  2만 402명 68.9%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으며, 6대도시에 5,432명 18.3%, 9개도에 3,791명 12.8%가 분포되어 있다. 

5인 미만 사업체 3천 192개 66.1%, 사업체당 평균종사자수 6.1명

  종사자 규모별로 사업체수를 살펴보면, 1~4인 규모 사업체가 3천 192개 66.1%로 가장 많으며, 5~9인 사업체 967개 20.0%, 10~49인 사업체 612개 12.7% 순서로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사업체당 평균종사자수는 6.1명으로 이를 지역별로 구분하면, 서울이 10.3명, 6개 대도시가 3.3명, 그 외 9개도가 3.2명으로 서울에 규모가 큰 사업체가 집중되어 있다. 종사자당 평균 취급액은 2.8억원이며 이를 지역별로 구분하여 보면 서울이 3.8억원으로 가장 높고, 6개 대도시 0.8억원, 그 외 9개도가 0.6억원으로 지역 간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성별 종사자수는 남자 1만 9천 59명 64.3%, 여자 1만 566명 35.7%,
고용 형태별 종사자수는 정규직 2만 6천 502명 89.5%, 비정규직 3천 123명 10.5%

  2005년 기준 광고산업 종사자 2만 9천 625명을 형태별로 살펴보면, 정규직이 2만 6천 502명 89.5%이고, 비정규직이 3천 123명 10.5%를 차지한다. 성별로 보면 남자는 19,059명 64.3%, 여자는 10,566명 35.7%로 남자가 1.8배 더 많이 종사하고 있다. 남자는 정규직 91.2%, 비정규직 8.8%이고, 여자는 정규직 86.2%, 비정규직 13.8%로 상대적으로 여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30~34세 종사자가 7천 749명 26.2%로 가장 많으며, 25~29세 종사자는 7천 90명 23.9%로, 대체적으로 종사자의 연령층이 젊게 나타났다.

2006년 상반기 채용인원은 2005년 상반기 1,766명 대비 18% 감소한 1,452명, 전체 채용인원 중 신입사원의 비율은 2005년 39%에서 2006년 43%로 약 4% 증가

  2005년 상반기 채용인원은 전체 1,766명으로 집계되었으며, 그중 신입은 692명 39.2%, 경력은 1,074명 60.8%로 나타났다. 신입 중 정규직은 552명, 비정규직은 140명으로 나타났으며, 경력 중 정규직은 966명, 비정규직은 108명으로 나타났다.  업체 규모에 따라 신입사업의 비율을 살펴보면, 대형업체는 신입 25.9%, 경력 74.1%로 나타났으며, 일반업체는 신입 46.6%, 경력 53.4%로 나타났다. 

  2006년 상반기 채용인원은 전체 1,452명으로 집계되었으며, 그중 신입은 619명 42.6%, 경력은 833명 57.4%로 나타났다. 신입 중 정규직은 506명, 비정규직은 113명으로 나타났으며, 경력 중 정규직은 749명, 비정규직은 84명으로 나타났다.

  업체 규모에 따라 살펴보면, 대형업체는 신입 26.6%, 경력 73.4%로 나타났으며, 일반업체는 신입 48.0%, 경력 52.0%로 나타났다. 


100인상 대형 광고업체 19개, 취급액 규모 3조 9천 607억원 전체의 47.1%

  대형업체인 100인 이상 사업체 19개가 산출한 취급액은 3조 9천 607억원으로 전체의 47.1%를 차지하고 50~99인 사업체 38개의 취급액은 1조 2천 545억원 14.9%로, 합하면 50인 이상 사업체 57개가 전체의 절반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취급액 규모별로 사업체수를 살펴보면, 1억원 미만 사업체가 2천 456개 50.9%로 가장 많은 비중을 보이며, 그 다음으로 1~10억원 미만의 사업체가 1천 730개 35.8%의 구성비를 보인다. 반대로 취급액 규모가 100억원 이상 사업체는 80개 이지만 이들이 발생하는 취급액은 6조 2천 534억원으로 전체의 74.3%를 차지한다.

광고산업 가치사슬 분류 ;
유통산업 7조 3천 67억원 86.8%, 서비스산업 4조 6천 92억원 54.8%, 
생산산업 4조 4천 70억원 52.4%, 인프라산업 2조 5천 609억원 30.4%
 * 인프라산업 : 인쇄, 제판, 광고사진스튜디오 등
 * 생산산업 : 광고제작업, CM, 영상,카피, 그래픽, 온라인 광고제작 등
 * 유통산업 : 광고대행, 매체대행, 광고기획, 전략대행, 온라인 광고대행 등
 * 서비스산업 : 리서치, PR, SP, 이벤트, Space Design 등

  광고산업을 가치사슬단계 기준으로 새롭게 분류해보면(중복응답), 사업체수 기준으로는 인프라 2천 721개, 생산 2천 413개,  유통 1천 262개 순으로 해당 사업체가 많으며, 취급액 기준으로는 유통 7조 3천 67억원, 서비스 4조 6천 92억원, 생산 4조 4천 70억원 순으로 취급액이 많이 발생되며, 종사자수를 기준으로 하면 생산 1만 4천 565명, 유통 1만 4천 118명, 인프라 1만 3천 246명 순으로 종사자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업체당 평균취급액, 사업체당 평균종사자수, 종사자당 평균취급액으로 환산하면, 가치사슬 단계인 인프라, 생산, 유통, 서비스 순서로 모두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업체당 평균취급액 17.4억원, 사업체당 종사자수 6.1명, 종사자당 평균취급액 2.8억원을 기준으로 보면, 유통과 서비스, 생산 산업은 평균 위의 수준이고, 인프라 산업은 평균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광고산업의 수출·입액 ;
국경기준 광고산업 수출액은 1,703억원이며, 수입액은 1,733억원으로 집계된다. 국적기준의 광고업 수출액은 96억원이며, 수입액은 2조 3,478억원이다. 서비스산업으로서 광고산업의 수출·입은 국경기준보다 국적기준으로 집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여 진다.

  광고업에서의 수출액, 수입액은 2가지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국경을 기준으로 한 무역과 광고회사의 국적을 기준으로 한 무역으로 나뉜다. 

  국경기준 수출수입은 광고회사의 국적에 관계없이 한국에 소재하고 있는 광고회사가 외국인 광고주로부터의 취급액은 수출로 집계하고, 외국에 소재하고 있는 광고회사가 한국인 광고주로부터의 취급액은 수입액으로 집계한다. 국경기준 광고업 수출액은 1,703억원이며, 수입액은 1,733억원으로 집계된다.

  국적기준 수출수입은 광고회사의 소재지와 관계없이, 광고회사의 국적이 한국인지 외국인지로 구분하여 집계하는 개념이다. 수출은 직접수출과 한국국적 자회사에 의한 해외 판매의 합계로 구성할 수 있으며 수입은 직접수입과 외국국적 자회사의 국내 판매의 합계로 구성할 수 있다. 국적기준 광고업 수출액은 96억원이며, 수입액은 2조 3,478억원이다.

2007년 광고경기전망지수(100 기준) 광고업체 102.6, 광고주 103.9

  광고경기전망지수는 2006년 광고경기 체감도를 기준(=100)으로 한 2007년 광고경기체감도 이다. 따라서 100이상이면 광고경기가 좋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석하고, 100 이면 변함없음, 100 미만이면 광고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해석한다. 광고경기 전망치를 보면, 광고업체는 102.6으로 2006년 대비 2007년에는 2.6% 정도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광고주는 103.9로 2006년 대비 2007년에는 3.9%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여, 체감도가 낮았던 광고업체가 전망지수는 광고주 보다 더 높게 나타났다. 한편 종사자 규모별로는 100인 광고업체가 108.4로 가장 
높았으며, 취급액 규모별로는 1~10억원 미만 광고업체와 10~100억원 미만의 광고업체가 105.1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광고주 업종별 2007년 광고경기전망지수 
산업기기 113.9 가장 높고, 음료 및 기호식품 98.4 가장 낮음
 
  광고주의 업종별로 광고경기전망지수를 살펴보면, 전망치가 높은 업종은 산업기기 113.9, 기초재 113.5, 가정용품 113.1 등이며, 상대적으로 전망치가 낮은 업종은 음료 및 기호식품 98.4, 가정용 전기전자 99.4, 수송기기 100.0 등이다. 덧붙여 업종 대부분의 전망치가 100 이상으로 2006년 보다는 나은 2007년을 전망했다.




문의처 : 문화관광부 방송광고과 사무관 장사성 (☎3704-9661, sczhang@mct.go.kr)
         한국방송광고공사 연구위원 오세성 (☎2144-0193, sungoh@kobaco.co.kr)

* 「2006 광고산업통계」는 문화관광부 홈페이지에서 내려받기 할 수 있습니다.
    www.mct.go.kr - 자료마당 - 통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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