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 위대함으로…

훌륭한 기획의 위대한 품성은 평범한 이들이 갈망하는 일상의 진보적 대안에서…사회환원 사업은 칭송하지 않네, 아름다운 기획은 일과 삶에 지금, 살아 있으니

▣ 김학원 출판사 휴머니스트 대표


△ 김학원 출판사 휴머니스트 대표

삶의 시계는 두루마리 화장지와 같다. 술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다. 처음엔 마구 써도 표시가 나지 않다가 갈수록 눈에 띄게 줄어든다. 종국엔 그 끝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후다닥 사라져버린다. 맞는 말이다. 한 사람의 생은 제한적이며 생의 시계는 갈수록 놀랄 만큼 빠르다. 기획의 서사는 생의 그것과 같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의 기획은 변화무쌍하다. 119 소방대원이 되기로 했다가 어느 날 트럭기사와 버스기사 사이에서 고민한다. 기획의 원천은 꿈이다. 만일 ‘기획의 어린 시절’ ‘기획의 사춘기 시절’을 잊는다면, 당신은 아무리 프로 기획자라 하더라도 기획의 원천을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10대는 기획의 어린 시절이고, 20대는 기획의 사춘기와 같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체험들이 쌓인다. 30, 40대가 되면 기획이 깊고 넓어진다. 50, 60대로 접어들면 기획은 새로운 동력을 얻는다. 무덤에서 요람까지 기획은 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의지적 활동이다. 한시적인 삶을 어떻게 하면 좀더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이것이 모든 기획의 원천이다.

‘기획의 어린 시절’ ‘기획의 사춘기’…

잘 쓴 글은 멋지지만, 내면을 자극하지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글은 가슴을 뛰게 한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온다. 멋진 기획, 감각적인 기획은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한 기획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훌륭한 기획은 공통적으로 위대한 품성을 지니고 있다. 위대한 기획은 취지와 배경, 의도가 훌륭하다.

본문의 글쓰기를 고통스러워하는 저자에게 가끔씩 머리말을 먼저 써보라고 권한다. 머리말이 분명하면 본문이 탄력을 받는다. 기획의 취지와 배경이 얄팍하면 스테디셀러는 나오지 않는다. 학창 시절 ‘강독을 위한 일문법’이라는 소책자가 있었다. 짧은 기간에 일서를 해독할 수 있는 일문법의 핵심들을 놀라울 만한 구성으로 압축해놓은 책자였는데, 일서를 통해 사회과학을 접할 수밖에 없었던 선배들의 오랜 경험이 쌓인 결과물이었다. 지금 다시 보아도 최고의 실용서 기획으로 손꼽을 만하다.

기획의 위대한 품성은 평범한 이들이 갈망하는 일상의 진보적 대안에서 나온다. ‘인생의 책’으로 자주 꼽히는 <백범일지> <난중일기> <전태일 평전>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하나같이 위대한 품성을 품고 있는 책들이다. 내가 펴낸 책들 중 가장 위대한 품성을 지닌 책을 꼽으라면 단연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와 <대담>이다. <살아 있는 한국사 교과서>에는 새 역사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갈망이 담겨 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와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가 3년 동안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시대의 주제를 놓고 토론한 <대담>은 두 세계의 오랜 장벽에 물꼬를 열며 입에서 입으로 두 학자의 위대한 품성이 오르내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탁월한 기획력을 갖출 수 있는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아울러 가장 난감한 질문이다. 30대 초반에 기획·출판·편집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은 거의 모두 읽었다. 도움은 받았지만, ‘기획의 기술, 편집의 기술’은 탁월한 기획력 쌓기와 거리가 멀었다. 기획은 ‘좋은 품성 쌓기’에서 비롯하며 훌륭한 기획은 현장에서 발견·발굴된다는 것을 일 속에서 체험했다. 15년 동안 500여 종의 책을 펴내면서 체득한 기획의 노하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많이 읽고, 많이 만나고, 많이 생각하라.’ 이보다 훌륭한 답을 찾기는 불가능하다. 그래도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나만의 기획 창고를 만들어라. 일반적으로 45개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중 3개만이 채택돼 그중 하나가 제품으로 만들어지고 이 과정을 거친 100개의 상품 중에서 2개가 시장에서 특별한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30대 초반 책에서 읽었던 이 문장 하나가 나의 기획력을 근본적으로 자극했다. 행동으로 옮겼다. 틈만 나면 서점에 가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신간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거르지 않았다. 6개월 만에 1천 종의 아이디어를 채웠다. 10여 년 전에 출간한 <상식 밖의 세계사> <상식 밖의 과학사> 시리즈는 1천 종의 기획 비밀 창고에서 나왔다. 물론 책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20종을 넘지 못했다.

화려한 드리블보다 정확한 패스

훌륭한 아빠가 되고 싶은가. 100개의 아이디어를 메모하라.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이들과 아내의 요구를 경청해야 한다. 3년 전에 두 아이가 TV를 보다가 말했다. “아빠랑 낚시 가면 정말 좋겠어요.” 지난해 말 아내가 워크숍을 떠난 주말에 두 아이와 낚시를 다녀왔다. 나 역시 난생처음이었는데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아빠 최고”라는 행복한 찬사를 받았다. 빛나는 창의성은 좋은 품성과 훌륭한 습관에서 비롯한다. 기획의 현장에서 얻은 것을 나만의 비밀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행동으로 옮기면 기대하지 않은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기획의 승패에 대한 평가 기준은 ‘기대한 만큼의 감동’은 70점, ‘기대 이상의 감동’은 100점이다. 좋은 기획, 위대한 기획은 모종의 비밀스런 음모와 배후가 있어도 좋다. 일과 사랑, 나와 세상에 대한 비밀스런 기획 창고를 만들어 부지런히 저장해두는 습관을 몸에 익혀라.

기획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진보적 열망과 열정, 갈증들을 실천적으로 풀어가는 노력의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품성이 열정을 낳고 열정이 남다른 공력을 거쳐 결실을 맺는 것은 농사일과 다름없다. 1907년에 태어나 2005년 돌아가실 때까지 손수 농사를 짓고 밥상을 차린 내 할머니는 생에서 만난 최고의 기획자였다. 난 아직도 가끔 편의점에 들러 바나나 우유를 사먹는다. 어린 시절 우유만 먹으면 배탈이 났던 내게 바나나 우유는 촌놈을 위한 훌륭한 배려의 결실이다. 이 기획은 누군가의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21세기는 평범한 이들의 특별한 기획이 살아나는 시대다. 화려한 드리블보다 정확한 패스 하나에 더 깊이 열광하는 시대다.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가 그랬다. 기획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 사이의 멋진 관계 맺기이자 소통이다. 핀란드인과 한국인은 공통적으로 이웃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지만, 먼저 인사를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것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노키야와 삼성의 휴대전화를 낳는 토양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소통의 문화, 소통의 철학은 서로 승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기는 관계 맺기는 구시대의 기획이다. 훌륭한 기획자는 정확하고 멋진 패스워크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하며 또한 이를 연출할 줄 알아야 한다. 연출이란 일의 영역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과 영화에 대한 가장 큰 아쉬움이 여기에 있다. 훌륭한 건축과 영화에서 왜 설계자와 감독만이 주연이 되어야 하는가.

기획은 설계도이지만, 설계도 모두가 건축물이 되지는 않는다. 연초 워크숍에서 역량 있는 학자들의 깊이 있는 학술서 시리즈의 표지 포맷을 기획한 디자이너의 멋진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학자들의 깊은 지식 세계를 남다른 시각의 인물 사진으로 담아내는 안이었다. 박수를 받았지만 실행 단계에서 무산됐다. 인물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국내 학자들의 공통된 기질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실은 기획자들에게 전복의 상상력을 선사해준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서 실패는 새로운 상상력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실패가 준 전복의 상상력

이 기획으로 나와 이웃, 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 건강한 진보의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가. 인류애를 향한 물음은 먼 훗날, 내가 좀더 윤택해지면 해보리라. 난 빌 게이츠의 재단 사업과 사회환원 활동을 그리 칭송하고 싶지 않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부자들의 논리는 안쓰럽다. 아름다운 기획은 더운 여름날 연거푸 아이스크림을 찾는 아이에게 배탈 나니 오늘은 그만 먹으라며 돌려보낸, 내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의 아름다운 가게처럼 일상의 일과 삶에 지금, 이 순간부터 살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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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은 한국인의 기(氣)와 혼(魂)이다.”

    정해(丁亥)년을 맞아 웅진그룹 윤석금(尹錫金·62) 회장은 더 바빠졌다. ‘한국인의 신기(神氣)’, ‘긍정의 힘’을 기르는 노하우를 듣고 싶어하는 외부 강연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전반에 ‘창조경영’, ‘섬김의 리더십’이 화두로 떠오른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말에는 삼성경제연구소가 그를 불러 윤석금 스타일의 ‘창조경영’ 강연을 듣는가 하면 한국능률협회는 윤 회장을 고정강사로 모신다. 각종 경영관련 대학원이나 CEO모임들에서도 그의 ‘힘을 주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초청장이 비서실에 쌓이고 있다.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전도사. 풀 죽은 세상에 구세주랄까?

    기(氣). 정말 그렇다. 1980년 무일푼에서 시작해 26년 만에 2조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그의 성공신화에 매료된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윤 회장을 직접 만나고 나면 기를 받는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부터 그를 모시려는 각계의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

    그의 기(氣)가 기업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음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조사에 따르면 2002년 말 종업원 1000명 미만이던 1191개 상장기업 중 2006년 말 현재 1000명 이상으로 성장한 곳은 웅진코웨이를 비롯한 14개였고 매출액 3000억원을 넘긴 곳은 5곳,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곳은 웅진코웨이 단 1곳뿐이었다. 인터뷰는 종로4가 웅진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

    ―이런 결과(훌륭한 기업실적)를 알고 있었습니까?

    “난 그런 사실은 몰랐는데…. 다만 2, 3세가 아니라 창업자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 중에는 아마 세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겠나 정도 생각했지요. 팬택이 어려움에 봉착했는데 참으로 착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경제환경에서는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발돋움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잖아요. 마음 속으로 격려를 많이 했었는데….”

    ―웅진그룹의 작년 매출은 2조5000억원이라더군요. 1980년 창업 이후 계속 성장해왔다고 하더라도 믿기 어려운 성과입니다.

    “IMF 직후 잠시 정체된 것을 빼면 성장만 해왔지요. 작년에도 골프장만 빼면 전 기업이 흑자입니다. 골프장도 새로 건설하는 바람에 그랬던 것인데 내년이면 흑자로 돌아설 것입니다. 올 매출은 3조원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30대 중반에 맨손으로 창업해서 환갑 때 3조원이라….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꿈도 진화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치약으로 이를 닦았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 세 끼 쌀밥 먹어 보는 게 간절한 꿈이었지요. 그게 저의 첫 번째 꿈이에요. 1970년대 초 대학 졸업하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파는 세일즈맨으로 취직하면서 일단 그 꿈은 실현되었습니다. 그 이후 내가 꿈을 가졌던 것은 1980년대 초 웅진출판 창업 때였습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당시 가장 큰 동아출판사처럼 큰 출판사로 키워야겠다는 게 그때 꿈이었습니다. 10년쯤 지났을 때 매출액에서는 동아출판사를 따라잡았어요.”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너무 평범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산 사람’ ‘죽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어요. 꿈 없는 사람은 살아있어도 실은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열정이 없고 매사에 부정적이며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어떤 꿈을 갖고 계십니까?

    “한국 최고의 기업!”

    ■“자기를 긍정해야 자기개조가 가능”

    ―그런 긍정적 태도는 세일즈맨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까?

    “27살 때 학교 마치고 세일즈에 뛰어들었어요. 솔직히 처음부터 잘될 리 있었겠습니까? 모든 게 어색하고 쭈뼛쭈뼛…. 안 되겠다 싶어 먼저 설명을 요령 있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매뉴얼을 만든 다음 반복 숙달했어요. 동시에 매일 30분씩 거울 앞에 서서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얼굴을 만들기 위해 수도 없이 표정 짓기를 연습했지요. 몇 달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얼굴에 밝은 인상이 생겨났어요.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물건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브리태니커 세일즈에 뛰어든 첫해에 한국 1등도 아닌 세계 1등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윌리엄 벤튼상도 받았습니다.”

    ―창업 계기는?

    “첫해에 벤튼상을 받는 바람에 다음해에 곧바로 지부장을 맡았어요. 즉 나의 현장세일즈 경험은 딱 1년뿐입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뭐든지 남과 다르게 하자’라는 철학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1979년 출판사업을 해보기로 하고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미국에 갔습니다. 외자를 끌어들여 사업을 해보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단 한 명의 미국 CEO도 만나지 못하고 낙담해 귀국길에 일본에 들렀어요. 그때 일본회사 ‘헤임’에서 한국 내 판매회사를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일종의 학습용 카세트 테이프를 파는 회사였지요.”

    ―여기서 회장님의 유명한 ‘택시 속 아이디어’ 사건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 그게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서 과외(課外)금지조치를 내렸잖아요. 그때 나는 서울역 앞 사무실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던 중에 라디오로 그 소식을 들었어요. 즉각 ‘유명한 강남 과외선생들 강의를 카세트에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당시 문교부로 달려가서 담당자를 찾아 유권해석을 의뢰했더니 그건 ‘합법’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선생들을 수소문하고 강의를 녹음해 제품으로 만들었는데 대히트였어요.”

    ―긍정적 확신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말씀인가요?

    “저는 고스톱을 좋아하는데 일단 광(光) 2장이 들어오면 나머지 한 장도 내게 온다는 믿음을 갖고 칩니다. 70% 이상은 정말로 들어와요. 내가 남들보다 퍼팅(골프)을 잘하는 편입니다. 왜냐고요? 늘 ‘이것은 들어간다’는 자기최면을 걸고서 쳐요.” ■“IMF는 나에게 전화위복(轉禍爲福)”

    ―그룹실적을 보니까 IMF 이후 1998, 1999년 두 해 동안 매출과 이익이 대폭 줄었더군요.

    “사업을 시작하고 그때만큼 기업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이후 다시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습니까?

    “실은 그때 막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사업이 흐름을 타려고 할 때였습니다. 출판 다음으로 내가 심혈을 기울여 시작했던 사업이지요. 그런데 IMF가 터지니까 공장에 물건은 쌓이고 심지어 사장을 맡겠다는 사람조차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경영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회장님의 장기인 ‘방문판매’를 정수기에도 적용하셨군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으니 어쩔 수 없어서 그랬지. 소비자들에게 우리 물건을 맡겨둔다는 심정으로 한 것이에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소비자들이 바로 우리 직원들에 대한 감시자가 돼주는 것이에요. 제품에 하자가 있으면 즉각 제품을 반환하더라고요. 그러니 우리 직원들도 대충대충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그때서야 ‘아! 이게 획기적인 영업모델이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이지요.”

    실제 1999년 6610억원이던 웅진의 매출은 이 같은 렌털 영업기법에 힘입어 불과 1년 만에 1조12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한다. IMF가 웅진그룹에는 ‘블루오션’을 열어준 셈이 됐다.

    ■“사랑과 행복을 주는 기업 만들 것”

    ―회사 곳곳에 ‘또또 사랑’이라는 표어가 눈에 띕니다.

    “내 25년 기업활동의 요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또또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또 사랑하자는 것이 ‘또또 사랑’입니다. 돈 한푼 없이 시작해 현재의 웅진이 있을 수 있는 원동력의 하나가 바로 ‘사랑’입니다. 저는 지금도 계열사 회의를 할 때마다 사장들에게 실적보다는 ‘직원들에게 신기를 불어넣기 위해 무슨 행사를 열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현장을 방문했다가 풀 죽은 사원들을 보면 불러서 함께 목욕탕에 갔어요. 회사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근처 맛있는 국밥집 같은데 가서 즐거운 이야기 하며 점심 먹고 나서 들여 보냅니다. 오후에 그 직원들을 보면 얼굴색이 완전히 바뀌어 있습니다.”

    ―올해는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하실 건가요?

    “행복입니다. 신년사에서도 우리 직원들에게 당신들은 행복해져야 한다, 당신들은 충분히 그럴 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는 싫고 누구는 잘못됐고 하는 부정적 마음부터 털어버려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는 순간부터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올해는 작심하고 ‘행복 전도사’가 돼 보렵니다.”


    / 독점인터뷰=이한우 경영기획실 기자 ,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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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하는 일본 소설
    출판계 ‘블루칩’… 10대 팬들도 환호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 소설의 과열 현상에 대한 논의가 거듭됐지만 파장이 줄어들기는커녕 해를 거듭하며 문화적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러 지표들이 이런 현상을 확인해준다. <출판연감>에 따르면 1997년 143종에 불과했던 일본 소설은 2004년을 정점으로 크게 늘어 2006년에는 580권이 출간됐다. 교보문고의 연도별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일본 소설의 증가세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도만 해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우동 한 그릇>, 그리고 동명의 영화가 소개된 <철도원>이 종합 200위 안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3년 <냉정과 열정사이>를 기점으로 현대 일본 소설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급기야 2005~06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는 물론이고 오쿠다 히데오와 가네시로 가즈키까지 일본 소설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제 국내 소설의 상대적 침체 현상과 비교돼 일본 소설을 이야기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일본 소설은 장르가 확산됨은 물론이고 과열 현상을 걱정해야 할 만큼 다양한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소설 침체와 달리 과열 현상까지

    <냉정과 열정사이>가 80만 부 이상, <공중그네>가 30만 부 이상 팔리며 대중성이 확인되자 출판사들이 너도나도 일본 소설에 뛰어들고 있다.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넘나들며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전할 줄 아는 특유의 정서가 국내 독자에게 어필하자 일본 소설의 출간은 양적으로 크게 늘었다. 따라서 저작권 로열티 금액도 폭등했다. 1~2년 사이에 일본 소설은 과열 경쟁을 거치며 로열티 금액이 통상적인 수준보다 10배 정도 높아져 버렸다는 후문이다. 특히 유머와 재미를 담보해 국내에서 반응이 좋은 나오키상 수상작들은 부르는 게 값이다. 나오키 수상작은 500만 엔(5000만 원)부터 계약된다는 소문인데, 최근 나오키상을 수상한 미우라 시온의 <마호로역 앞 다다심부름센터>도 이 정도의 로열티를 지급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일본 소설 전문 편집자나 마케팅 담당자의 몸값까지 높아지고 있을 정도로 과열 현상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일본 소설은 양적인 증가와 함께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일본 소설은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 유형이었다. 첫 번째는 에쿠니 가오리로 대표되는 연애소설이다. 두 번째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레벌루션 No.3> 혹은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 <일요일들> 등처럼 20대 화자를 내세운 청춘(연애)소설이 있다. 세 번째는 학원만화나 영화가 강세인 일본의 특성상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10대 소설이다. 이시다 이라의 <4teen>이나 쓰지 히토나리의 <사랑을 주세요>, 와타야 리샤의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시게마츠 기요시의 <안녕 기요사코>처럼 오늘의 10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들이다.

    일류의 견인차 역할을 한 일본의 연애소설, 청춘소설, 10대 소설이란 순문학적 전통에 사로잡혀 국내 작가들이 시도하지 않은 영역들, 다시 말해 국내 작가들이 채워주지 못하지만 독자의 필요가 존재하는 빈자리를 적절하게 채워주며 최고의 읽을거리로 자리 잡게 된 측면이 크다.

    그런데 2006년을 기점으로 국내에서는 독자층이 미미한 마이너 장르의 일본 소설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나 에쿠니 가오리의 연애 소설들이 베스트셀러를 점령한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일본 소설까지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중이다.

    전 세계 3억 독자가 열광했다는 스티븐 킹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 정도로 국내 시장에서 미스터리 장르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스티븐 킹조차 국내에서는 불쾌하고 저급한 호러 작가일 뿐이며, 소수의 마니아 독자들과 여름 시장 특수에 기대어 고작 2000~3000부 정도가 판매될 뿐이다. 하지만 2006년 선보인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전3권)은 3만 부 이상 판매됐으니 우리 출판 시장의 정서나 전통에 비해 얼마나 새로운 현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 기대 밖의 반응을 얻자 미야베 미유키만 해도 <모방범>은 물론이고 <용은 잠들다> <스텝파더 스텝> 등이 연속적으로 소개됐으며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 타고>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의 살인사건>, <용의자 X의 헌신> 등도 출간되고 있다.

    2차 상품인 캐릭터 소설도 인기

    또 하나 라이트 노벨 혹은 캐릭터 소설이라고 부르는 주니어 소설까지 이 대열에 합세했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달에 수십 종씩 간행되는 게임이나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로 일본에서는 ‘스니커문고’ 시리즈가, 국내에서는 ‘NT novel’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2006년 국내에서 인기를 끈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는 스니커 대상(스니커 문고에서 수여하는 라이트 노벨 분야의 상이다. 우리로 치면 인터넷 소설에 수여하는 상이다)을 받은 라이트 노벨이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은 또 어떤가. 만화에 별 관심이 없던 30~40대 직장인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끌며 전통적인 일본 만화의 독자 연령층을 확대했다.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일본 소설의 주요한 독자는 20~30대 여성이었다. 물론 상처 입은 삶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바나나가 10대와 20대 여성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야마다 에이미는 20~30대 독자들에게, 사랑에 빠진 마음을 감각적이고 감성적으로 그려낸 에쿠니 가오리는 20~40대에게 하는 식으로 독자층이 나눠지기는 한다. 하지만 중심은 20~30대 여성이었다.

    당연히 출판사들은 일본 소설을 마케팅할 때 철저하게 20대 여성을 중심에 둔다. 대표적 현상이 책의 패키징이다. 2003년 국내에 소개된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는 소설책의 외형이 일반적인 신국판 크기에 무선철이었다. 작품은 호평 받았지만 판매가 부진하자 2005년에 개정판을 펴냈다. 20대 여성 독자를 주 타깃으로 정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표지를 바꾸고 손에 잡히는 팬시한 사이즈의 양장본으로 다시 책을 출간했다. 결과는 성공적으로 뒤늦게 5만 부 이상이 팔렸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2000년에 출간됐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빵가게 재습격> 역시 2004년에 양장본으로 다시 펴내면서 판매 부수가 급증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역시 신작 의 출간과 맞춰 언뜻 만화책처럼 보일만큼 단순하지만 명료한 일러스트로 표지를 바꾸고 손에 잡히는 양장본으로 새롭게 출시했다. 재출간되며 2006년 한 해만 는 5만 부, <플라이 대디 플라이>는 14만 부가 팔려나갔다.

    하지만 대형 서점의 일본 소설 코너를 가보면 알 수 있지만 독자층은 20~30대보다 훨씬 아래로 내려가 있다. 최종태 감독이 동명의 일본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이문식 이준기를 주연으로 영화화한다고 발표하며 <왕의 남자>의 히어로 이준기를 좋아하는 10대 여학생들이 앞 다퉈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도 독자 연령이 확대된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여기에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소설화한 2차 상품에 해당하는 캐릭터 소설까지 합세하며 본격적인 10대 독자가 창출되고 있다. 캐릭터 소설은 사실주의가 주류를 이룬 근대소설과 노선을 완전히 달리하는 장르로 문장보다는 인물 창조에 큰 비중을 두며 현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10대에게는 안성맞춤인 장르다. 21만 부 이상 팔려나간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로 대표되는 캐릭터 소설의 독자는 초등학교 4~5학년부터 시작된다.

    일본 소설의 인기를 견인하는 또 하나의 무기는 영화 혹은 드라마의 인기다. 2000년 국내에 소개된 <냉정과 열정사이>나 2005년 출간된 <도쿄 타워>의 인기는 모두 동명의 영화로부터 시작됐다. 제3회 서점 대상 수상작인 릴리 프랭키의 <도쿄 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2007년 봄, 오다기리 조 주연으로 영화화될 예정으로 벌써부터 주목받고 있다.
    글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입력일시 : 2007년 3월 7일 9시 45분 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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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분야별 출판 시장 규모 (추정액)

     

    (단위: 종,부,원)

          구분

    분야

    발행 종수

    발행 부수

    평균 정가

    시장 규모 추정금액

    (발행부수×평균정가×2배)

    순위

    총류

    332

    671,458

    14,264

    19,155,353,824

    13

    철학

    838

    1,426,232

    15,544

    44,338,700,416

    12

    종교

    2,032

    4,893,990

    10,483

    102,607,394,340

    9

    사회과학

    5,777

    10,319,495

    16,975

    350,346,855,250

    3

    순수과학

    849

    2,274,554

    15,897

    72,317,169,876

    11

    기술과학

    3,660

    6,357,735

    18,832

    239,457,731,040

    5

    예술

    1,632

    3,105,754

    16,539

    102,732,130,812

    8

    언어

    2,246

    6,372,833

    13,406

    170,868,398,396

    7

    문학

    8,261

    19,345,637

    9,575

    370,468,948,550

    2

    역사

    1,300

    2,842,144

    16,405

    93,250,744,640

    10

    학습참고

    1,919

    15,019,798

    9,223

    277,055,193,908

    4

    아동

    7,146

    23,760,022

    8,983

    426,872,555,252

    1

    만화

    7,593

    23,267,029

    4,173

    194,186,624,034

    6

    총계

    43,585

    119,656,681

    11,257

    2,693,950,516,034

    -


    ※ 시장규모는 각 분야별 발행부수×평균정가×2배(중쇄)로 산출한 추정 금액입니다.

    2005년 출판통계 현황

    구분

    신간발행종수

    신간발행부수

    평균부수

    평균정가

    평균면수

    2004

    2005

    증감율

    점유율

    (%)

    2004

    2005

    증감율

    2004

    2005

    증감율

    2004

    2005

    증감율

    2004

    2005

    증감율

    총류

    297

    332

    11.8

    0.76

    819,112

    671,458

    -18.0

    2,758

    2,022

    -26.7

    15,524

    14,264

    -8.1

    258

    226

    -12.5

    철학

    584

    838

    43.5

    1.92

    1,220,873

    1,426,232

    16.8

    2,091

    1,702

    -18.6

    15,120

    15,544

    2.8

    348

    357

    2.5

    종교

    1,183

    2,032

    71.8

    4.66

    3,457,400

    4,893,990

    41.6

    2,923

    2,408

    -17.6

    10,682

    10,483

    -1.9

    307

    309

    0.6

    사회

    과학

    4,650

    5,777

    24.2

    13.25

    7,567,540

    10,319,495

    36.4

    1,627

    1,786

    9.8

    16,968

    16,975

    0.0

    405

    391

    -3.6

    순수

    과학

    514

    849

    65.2

    1.95

    781,391

    2,274,554

    191.1

    1,520

    2,679

    76.2

    16,359

    15,897

    -2.8

    348

    318

    -8.6

    기술

    과학

    2,891

    3,660

    26.6

    8.40

    4,909,665

    6,357,735

    29.5

    1,698

    1,737

    2.3

    18,607

    18,832

    1.2

    382

    378

    -0.9

    예술

    1,308

    1,632

    24.8

    3.74

    2,500,800

    3,105,754

    24.2

    1,912

    1,903

    -0.5

    14,021

    16,539

    18.0

    201

    219

    8.7

    언어

    1,502

    2,246

    49.5

    5.15

    4,459,121

    6,372,833

    42.9

    2,969

    2,837

    -4.4

    13,519

    13,406

    -0.8

    297

    274

    -7.8

    문학

    6,069

    8,261

    36.1

    18.95

    15,522,287

    19,345,637

    24.6

    2,558

    2,342

    -8.4

    9,362

    9,575

    2.3

    285

    287

    0.7

    역사

    1,128

    1,300

    15.2

    2.98

    2,259,033

    2,842,144

    25.8

    2,003

    2,186

    9.2

    18,066

    16,405

    -9.2

    376

    331

    -11.9

    학습

    참고

    1,485

    1,919

    29.2

    4.40

    17,254,384

    15,019,798

    -13.0

    11,619

    7,827

    -32.6

    10,883

    9,223

    -15.2

    199

    203

    1.8

    아동

    5,913

    7,146

    20.9

    16.40

    21,341,314

    23,760,022

    11.3

    3,609

    3,325

    -7.9

    8,555

    8,983

    5.0

    81

    85

    5.8

    27,524

    35,992

    30.8

     

    82,092,920

    96,389,652

    17.4

    2,982

    2,678

    -10.2

    12,708

    12,752

    0.3

    270

    269

    -0.5

    만화

    7,867

    7,593

    -3.5

    17.42

    26,862,030

    23,267,029

    -13.4

    3,415

    3,064

    -10.3

    4,023

    4,173

    3.7

    173

    170

    -1.6

    총계

    35,391

    43,585

    23.2

    100.00

    108,954,950

    119,656,681

    9.8

    3,078

    2,745

    -10.8

    10,777

    11,257

    4.5

    249

    252

    1.2


    본 자료는 (사)대한출판문화협회에 납본된 자료를 근거로 집계한 통계이므로 출판계 전체 통계로는

      볼 수 없으니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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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슬러 주용우 사장 冊 - 출판

    2005/07/06 19:03

    http://blog.naver.com/pwda/60014722503

    이야기책인지 과학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책

    한미화|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대학에서  공부한 이정모 선생은 과학  전문 저술가다. 정창훈 선생과 공저로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펴낸 것이 2002년  12월인데, 당시 책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았다가 최근 이정모 선생이 과학 저술에 관해 쓴 글(궁금하신 분은 『글쓰기의 힘』의  286-301쪽을 찾아 읽으시기 바란다. 필자인 이정모 선생을 떠오르게 하는 재미난 글이다.) 때문에 책을 손에  잡았다. 게다가 판권을 살펴보니 2005년 현재 무려 25쇄를 발행하지 않았는가. 이 무슨  일인가 싶어 냉큼 책을 사서 읽어봤다. 전세계적 선풍을 몰고 온 『해리포터』가 마법의  세계를 다룬 책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 그런데 마법의 세계와 과학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설명하는 책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재미났다.

    이런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정모 선생은 자신의 글 속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온갖 종류의 책을 섭렵하는 자신들에게  유독 과학책은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이정모 선생이 보기에  이들은 과학책에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학책은 읽어봤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불편부당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학책이 어려운 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가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크게 모자란  것뿐이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 한다고 자만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의 지적 수준에 적당한 과학책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책을 읽고서는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정모 선생은 “독자가 무식한 것이니 과학 저술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르친 학교에 가서 따질 일”이란다.

    무릇 삶에서 필요한 것이란 이해가 아니라 깨달음이란 사실을 진작 알고는 있었으나 이정모 선생이 말한 참뜻은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읽으며 풀렸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모두들 이토록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이 있다니 하며 호들갑을 떨던 책들, 예를 들면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2』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늘 아득함을 느꼈다. 『E=mc2』에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블랙홀 이론으로 연결되는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읽는다는 행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저 ‘E=mc2’이라는 공식의 성장사를 통해 서양과학 300년의 역사를 꿰뚫은 구성의 특이함이나 그 공식 뒤에 숨은 과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내는 작가의 예민한 시선이 놀라울 뿐이었다. 소설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문장론과 구성론에 감탄한 꼴이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나는 드디어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과학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동안 몇  페이지 읽다가 재미없다고 남에게 주어버린 과학책들을 원망하지 않으련다. 왜냐면 문제는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정모 선생이 과학 저술에 관해 쓴 글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책 같은
    『해리포터 사이언스』에는 보통의 출판사들이 대중적 과학서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수식과 화학기호 그리고 구조식이 꽤 많이 나온다.  수식과 기호를 사용해야 내용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되기 때문이란다. 보통의 출판사는 이 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선뜻 동의한 출판사가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휘슬러라고  했다. 대중과학 월간지에서도 “그냥 이야기책인지 과학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과학책이라고 평가한 ‘사이러스’  시리즈를 출간한 곳이  바로 휘슬러다.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필두로  『바이블 사이언스』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 등의 ‘사이러스’ 시리즈와 『부엌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등의 과학책을 주로 출간했다. 출판사를 방문하기 전 이정모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휘슬러의 주용우 사장님 어때요. 재미있는 분입니까.

    피자가게에서 과학책으로
    한미화(이하 한) 이정모  선생은 사장님을  재미있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이정모 선생과는 ‘사이러스’ 시리즈 작업을 같이 하셨지요. 과학책이란 우리 출판에서 소외되어 있는 분야 중 하나인데, 과학책을 시작하신 계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주용우(이하 주) 저 역시 이정모 선생에게 한미화 씨가 원고독촉을 잘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출판을 시작한 것은 집안 내력 때문입니다. 제가 다섯  형제 중 넷째입니다. 어머니가 독수리 5형제를  키우신 건데요. 사촌 형이 출판사를  하셨습니다. 아카데미서적이라는 의학, 생물학 관련 전문 학술 출판사였지요. 우리나라에서 의학도감을 처음 낸 곳입니다. 첫째와  둘째 형이 아카데미서적에서 편집자와 영업자로  일하셨지요. 1980년대 후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가 나자 둘째 형이 출판사를 인수하여 1999년까지 운영하셨어요. 지금은 성우출판사를 하고  계시지요. 편집장이었던 큰 형은  아카데미아라는 의학전문 출판사를 새로 시작하셨고요.  
    집안이 출판과 이렇듯 관계가 있긴 하지만 왜 책을 만들고 어디에 파는지는 관심도 없었어요. 다른 일보다 보수가 두둑한  편이라 책 배달이나 전집 수금사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많아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피자 체인점 가맹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카데미서적을 인수하게 된 둘째 형이 저를 꼬시는 겁니다. 영업을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저밖에 없는 것 같다며 1주일을 쫓아 다니더라구요.
    제가 당시 이 일을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했냐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가서 투자설명도 하고 가맹점을 늘리기도 하는데, 만들어 놓은 책을 파는 일이 뭐가 어렵겠냐고 생각했죠.
    그때 아카데미 서적에서 <한국동식물도감>이라는 시디롬을  만들었는데, 열개의 시디로 구성된 시리즈가 70만 원이나 했습니다.

          아카데미서적 시절에는 주로 채택영업을 하셨던 거군요.  단행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카데미서적에서 일을 하면서 교재 말고 단행본을  해보고 싶었지요. 단행본 출판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강짜를 부리다가 내가 한번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제의를  했어요. 안 들어주면 그만둔다는 심보였지요.  마침 그 무렵
    『맥스웰의 도깨비』라는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책이지요.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열역학 제2법칙을 깨트릴  수 있는 가상의
    존재, 도깨비를 만들어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이 된 엔트로피 이론을 등장시켰지요. 이  책의 지은이 츠츠키 다쿠지는 그러니까 맥스웰의 도깨비를 통해 과학이란 인간 상상력의 소산임을 흥미진진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블루백스’ 시리즈 중 한  권이었는데 마침 그 시리즈가 이미 1992년에 계약 만료된 상황이더군요. 무작정 시리즈를 계약하겠다고 덤볐죠. 그때 처음 동경도서전에도 갔지요. 일본어도 할 줄 모르고 만날 사람도  없는 터라 3박 4일 동안 신주쿠 기노쿠니아 서점으로 매일 출근을 했어요. 4층 전문서적관에 ‘블루백스’ 시리즈가 있었는데 정말로 그 자리에 3박4일을 지키고 앉아 있었어요.  책이 어떻게 팔리는지 궁금했던 거죠. 놀랍게도 학생부터 주부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블루백스’ 시리즈를 2-3권씩 사가지고 가더군요. 서점직원들이 1시간마다  서가에 와서 빠진 책을  채워 넣기 바쁠 정도였어요.

          당시 일본과 국내 사정이 좀 틀렸을 텐데, ‘블루백스’ 시리즈를 결국 출간하셨나요.
          ‘블루백스’ 시리즈의 도서목록을 구해오긴 했는데, 전 권을 오퍼할 수는 없고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때 가방 끈이 긴  친구의 소개로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신과람)의 현종오 선생을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신과람 모임의 선생 중 네 분이 <과학동아>에 연재를 하고 계셨는데, 이 분들의 도움으로 50권을  골라 오퍼를 넣을 수 있었어요. 한번에 50권을 오퍼한다니까 말들이 많았죠. 과학서 시장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저지른다고 절 찾아온 분도 계셨고, 아카데미서적이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냐는 소리도 들었죠. 11권을 1차분으로 출간했는데,  그해에 100권을 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습니다. 기자간담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스포츠신문 기자까지 불러 간담회도 했어요.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군요. 최근 ‘사이러스’  시리즈를 보면 국내  필자들과 함께 힘들여 작업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처음은 좀 무식하게 접근하셨군요. 국내  과학서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언제인가요.
          그러고는 IMF가 들이닥쳤으니 돈이  될만한 책을 만들어야  겠더라구요. 블루백스
    시리즈를 진행하며 만나게 된  신과람 선생님들이 모두  <과학동아> 필자였다고 했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과학동아>라는 잡지를 자세히 봤어요. 그런데 놀랍더라구요.
    『맥스웰의 도깨비』를 보고도 과학책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싶어 감탄했는데, <과학동아>는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십수 년치의 <과학동아>를 가져다가 쫙 펼쳐놨죠. 그리고 같은 주제별로 기사를 모았어요. 그렇게 해서 책을 냈는데, 그게 ‘밀레니엄’ 시리즈였습니다. ‘밀레니엄’ 시리즈로 나온 책이 『시간여행』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노벨상 따라잡기』  『스포츠 사이언스』 『자동차 과학』 『아인슈타인 뛰어넘기』 『시네마 사이언스』『뜯어봅시다』 등이지요.

          ‘밀레니엄’시리즈의 필자들을 보니 지금은 유명해진  분들의 이름이 보이는군요. 이한음 씨가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를, 정재승 박사는 『시네마 사이언스』를  썼네요. 아마도 이 책이 이분들의 첫 번째 책이겠군요.
          ‘밀레니엄’ 시리즈는 <과학동아>에 실린 기사를  주제별로 모은 것이었는데, 이한음, 정재승, 전창은 씨는 당시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던 터라 그대로 한 권의 책으로 펴내게 된 거지요.

          이한음의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는 SF추리  콩트를 모아 엮은 책이군요. 정재승 박사의 책은 영화에서 과학을 살피는 책이고요. 무명시절의 이한음 씨나 정재승 씨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재미있겠네요.
          이제는 모두 유명 필자가 된 사람들이니 그 이야기 말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요.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10권이
    『뜯어봅시다』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 그러니까 지폐, 자전거, 당구, 놀이동산 등등을 모두 뜯어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요소를 찾아내는 구성이지요. 그런데 <과학동아>에 실렸던  ‘로빈손 따라잡기’라는 특집기사가 워낙 재미있어서 연관도 없는데 이 책 속에 넣었어요. ‘로빈손 따라잡기’는 그 후 뜨인돌 출판사에서 노빈손 시리즈로 다시 태어났지요.

          <과학동아>의 특집기사가 노빈손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은 저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장님도 그 특집을 눈여겨보고 단행본에까지 넣어 출간하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군요. 그런데 그 특집을 재미나게 보셨으면서도  왜 그 아이디어를 독립된 단행본으로 발전시키지 않으셨습니까.
          뜨인돌에서 몇 페이지도 안 되는 ‘로빈손 따라잡기’ 특집기사를 지금의 시리즈로 확대시킨 걸 보고 기획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깨달았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던 거죠. 특집기사는 ‘로빈손 따라잡기’였는데, 로빈손이라고 하지 않고 노(No)빈손이라고 새롭게 명명한 것도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대목이지요. 먼저 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극대화하는 것이 기획이라는 사실을 느꼈어요.  



    세계를 겨냥한 과학책을 만들자며 필자를 꼬셔
          수업료를 치르고 기획공부를 하신 셈인데요. 휘슬러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성우출판사에도 잠깐 계셨다고 했지요.
          아카데미서적을 운영하던 작은 형님이 성우로 독립하셔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지요. 성우에서는 ‘선생님도 놀란 과학뒤집기’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밀레니엄’ 시리즈는 잡지를 주제별로 묶은 것에 불과하니 아무래도 글 읽는 맛이 덜할 수밖에 없고 시리즈의 생명력이 길지 못했죠.
    그래서 성우에서는 드디어 단행본처럼 책을 만들어봤어요. 물론 역시 <과학동아>의 콘텐츠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한 가지 과학적 주제를 인간,  자연, 사회, 역사, 문화라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조망했어요. 예를 들어 동물의  행동이라는 주제를 한권의 책에서 다룬다고  하면, 인간의 행동 양상, 자연의 법칙이라는 측면에서 동물의 번식행동,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의 역사, 문화적인 차원에서 본 동물들의 생활을 각각 살피는 식이었지요. 그밖에도 교과  관련 정보를 알려줬고, 단원이 끝나면 이우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동원해 그동안 살펴본 내용을 만화로 정리하는 등 쉽고 재미있게 총체적으로 과학적 지식에 접근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선생님도 놀란 과학 뒤집기’시리즈로 24권의 책이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제 이런 방대한 과학책이 나왔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일반인의 호응이나 서점 판매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동안 제가 교재영업을 해온 터라 책을 다른 식으로 마케팅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릅니다. 책을 펴내고 과학담당 교사들에게 발송을 하고 반응을 살펴봤어요. 학생들에게 생활 속 과학을  가르치는데 유용하겠다는 호의적 반응이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책의 효용성이 있다뿐이지 그게 시장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거였어요. 아시는 것처럼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사질 않잖아요. 게다가 참고서  총판장들을 불러 시장성을 타진했는데, 총판장들의 반응이 아주 안 좋았어요. 한결같이 이 책이  팔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책을 참  예쁘게는 만들었는데 1만2천 원이나 하는 과학책이 팔릴 시장이 없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벤트를 하자 하여 시작한 것이 학생과학논술대회입니다. 제 딴에는 과학 독후감 대회는 너무 진부하니 ‘과학논술’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과학논술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과학논술이라는 말이 없었던 겁니다. 대회를 만들고 걸맞는  시상을 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과학부장관상과 동아일보사장상을  따냈어요. 그러고 나니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풀리더군요. 2005년 현재 제4회째로 과학논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과학논술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책이 ‘선생님도 놀란  과학 뒤집기’시리즈입니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휘슬러  이야기가 나올 시간이 되었군요.  그런데 휘슬러라고 검색을 하니 온갖 업체가 다 뜨더군요. 심지어 밥통회사 이름에도 휘슬러가 있던데요.
          휘슬러를 시작하기 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40일 정도 갔다  왔어요. 거기서도 갈 데가 없으니 근처의 서점에 주로 갔지요. 서점 말고 인상적이었던 곳이 휘슬러 산입니다. 2010년에 동계 올림픽이 열릴 휘슬러가 바로 그곳인데요. 촌놈이  가본거라 그런지 문화적 충격을 느꼈어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부실 정도로 부럽더라고요.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마침 출판등록을 하려면 출판사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그때 휘슬러산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해서 그대로 휘슬러라고 했어요.

          저는 사실 최근에야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읽었는데, 정말 재미났습니다. 뒤늦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과학책과 친해지고 싶어서 이 책 저 책 집적거려 봤는데 도무지 읽어낼 재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읽히질 않는다며 책을 원망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줘 버리곤 했는데, 이 책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 처음 한 일이 피자 체인점 만드는 일이라고 했지요. 피자를 반죽하는 법은 2-3일만 가르치면 다  합니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융통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반죽을 할  때 여름과 겨울이 틀려요.  온도라는 조건이 다르니까요. 다시 말해서 음식을 요리할 때도 원리를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이겁니다. 사고가 과학적이면 되는 겁니다.
    과학책을 만들다 보니 과학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과학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레 화두가 되더군요. 그래야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겁니다. 호기심과 흥미가 생겨야 과학책을 읽을 수 있어요. 원리를 가르쳐주면 흥미가 배가되고 그렇게 과학을 배우면 재미있는  거지요. 과학을 과학으로 설명하고 과학으로만 배우면 재미가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과학을 배웠지요. 그러나 피자를 만들기 위해 피자반죽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설명해주면 쉽게 과학적 원리를 배우지요. 먹고사는데 필요한 과학을 이야기하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휘슬러의 책 중에
    『부엌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 같은 책도 있습니다.
          제가 참 궁금해 했던 것들이 뭐냐 하면  콩나물 데칠 때 뚜껑을 닫아야 하는 이유 같은 겁니다.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음식에  관한 과학책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데,  문제는 기획을 어떻게 대중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와 필자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겁니다.

          기획은 있는데 필자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힘들게 써봤자 돈이 안 되니까 그래요. 그래서  제가 ‘사이러스’ 시리즈를 할 때 필자들을 어떻게 꼬셨냐 하면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책 한권 써봤자 푼돈밖에 안 되니  전세계 판권을 염두에 두자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 사기치고 있는 건데요. 아직 현실화된 게 거의 없으니까요. 일단 시범적으로 홍콩에는  저작권 수출을 했어요. 일본이나 중국은 저작권을 팔 것이 아니라 직접 회사를 만들고 판매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이러스’ 시리즈 기획할 때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어요. 이순신의 과학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런데 수많은 아이디어가 모두 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전세계 판권을 염두에 두려면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궁금해 할 주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해리포터, 그리스 로마 신화 등등의 주제를 고른 이유이기도 하지요.
    저는 과학책을 만드는 사람이 과학책에 빠지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교양생물책을 만들면 다음에는 분자생물책을 만들게 되고요. 그 다음에는 분자세포 생물학책을 만들게 되요. 하지만 그러면 곤란해요. 자기세계에 함몰되고 자기  카테고리를 정해놓으면 융통성도 없어지고 새로운 기획도 나오질 않아요.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요. 지금 휘슬러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행책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행책을 시리즈로 준비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그렇지 않아도  들었는데, 아무리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과학책에서 여행책으로 뛴다는 건 비약이 좀 심한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과거에도 휘슬러에서는 여행책을 낸 적이 있어요.
    『소프라노 패밀리  요리천국』입니다. 미국 HBO의 TV 시리즈 의 소프라노 가족 생활을 그대로 옮긴 책인데, 이게 요리책이자 여행책인 겁니다. 요리사 아티 부코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가족과 이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탈리아의 문화와 삶을 이야기하지요. 게다가 이탈리아 요리법도 나오고요. 믈론 이 책이야 안 팔릴 줄 알면서 만든 책인데 생활 속에서 과학을 찾듯이, 요리 속에서 여행을  찾는 책이 『소프라노 패밀리  요리천국』입니다.  요리를 통해 이탈리아의 문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니까 더할 나위 없는 여행책이지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금 준비하고 계신 여행책에  관한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지요. 좀 다른 개념의 여행서인 듯하군요. ‘인사이드’라고 시리즈 명을 정하셨군요.
          국내의 여행 가이드북과는 다른 문화적  여행서에 가깝지요. 저를 두고  늘 모호한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 책 역시 출판계 입장에서는 정체성이 모호한 책일 겁니다. 그러나 독자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여행서는 현지에 가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되는 정보들만 담겨있어요. 가이드북  성격의 여행책은 장기간 현지에 가지 않으면 별로 도움이 안 되지요. 국내 여행자들이란 주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여행을 하게 되는데, 책에 담긴 내용 중 극히 일부 지역만을 여행하고 돌아올 뿐입니다.
    물론 에세이 개념의 여행서도 있지요. 그런데 이런 책 역시 여행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정도지 결국 도움은 안 되지요. 호기심을 지닌 사람들,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은 뭘까를 생각해봤어요. ‘인사이드’시리즈는 사람이야기, 전통적 관습, 에티켓 등 여러 요소를 담아 여행자들의 간접 체험을 돕고 실제 여행자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해외여행서의 개정작업은 기껏해야 2-3년에  한 번 이뤄지는 형편이니 식당정보 등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가이드북처럼 단편적 정보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각 나라에 맞게 중요한 사안을 카테고리로 묶었어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사업보다는 여행이나 자연적 환경에  더 비중을 두었지요. 홍콩이나 싱가폴에 가려는 사람에게는 비즈니스가 중요할 테니 그 부분이 강조되는 식이지요. 텍스트를 나열한 원서와 달리 요소를 주제에  맞게 그룹핑하고 사진자료를 많이 넣었어요. 원서와 국내서는 서로 다른 책이 된 거죠. 일차분에 쿠바가 들어 있는데, 쿠바로 여행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시리즈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주겠다 싶어서 일부러 쿠바를 전진 배치했지요. 6월 초면 선보일 겁니다.

    주용우 사장은 그간 주변사람들에게 “이게 소설이야, 과학이야”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시도가 자칫하면 책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획자는 때로 엉뚱하게라도 자신이 궁금한 것을 책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이제는 여행서를 통해 보여주려는  듯하다.
    『사색기행』에서 다치바나는 원숭이가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정글에서 사바나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한 것이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지적을 한다. 원숭이의 후예인 인간에게 미지의  것과 조우하는 일은 원숭이가 사바나로 옮겨간 것처럼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육체를 미지의 공간에 둘 때 인간은 정말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과학책이 아닌 과학책을 통해 과학의 세계를 맛보게 했듯이 여행서 답지 않은 여행서를 통해서 세계인식이라는 여행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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