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러 주용우 사장 冊 - 출판

2005/07/06 19:03

http://blog.naver.com/pwda/60014722503

이야기책인지 과학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책

한미화|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독일 본대학에서  공부한 이정모 선생은 과학  전문 저술가다. 정창훈 선생과 공저로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펴낸 것이 2002년  12월인데, 당시 책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았다가 최근 이정모 선생이 과학 저술에 관해 쓴 글(궁금하신 분은 『글쓰기의 힘』의  286-301쪽을 찾아 읽으시기 바란다. 필자인 이정모 선생을 떠오르게 하는 재미난 글이다.) 때문에 책을 손에  잡았다. 게다가 판권을 살펴보니 2005년 현재 무려 25쇄를 발행하지 않았는가. 이 무슨  일인가 싶어 냉큼 책을 사서 읽어봤다. 전세계적 선풍을 몰고 온 『해리포터』가 마법의  세계를 다룬 책이라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 그런데 마법의 세계와 과학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를 설명하는 책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재미났다.

이런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정모 선생은 자신의 글 속에서 이 이야기를 꺼낸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온갖 종류의 책을 섭렵하는 자신들에게  유독 과학책은 어렵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이정모 선생이 보기에  이들은 과학책에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학책은 읽어봤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불편부당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과학책이 어려운 게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가 갖고 있는 과학적 지식이 크게 모자란  것뿐이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 한다고 자만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의 지적 수준에 적당한 과학책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책을 읽고서는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이정모 선생은 “독자가 무식한 것이니 과학 저술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가르친 학교에 가서 따질 일”이란다.

무릇 삶에서 필요한 것이란 이해가 아니라 깨달음이란 사실을 진작 알고는 있었으나 이정모 선생이 말한 참뜻은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읽으며 풀렸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모두들 이토록 쉽고 재미있는 과학책이 있다니 하며 호들갑을 떨던 책들, 예를 들면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E=mc2』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늘 아득함을 느꼈다. 『E=mc2』에서는  특히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블랙홀 이론으로 연결되는 책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읽는다는 행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저 ‘E=mc2’이라는 공식의 성장사를 통해 서양과학 300년의 역사를 꿰뚫은 구성의 특이함이나 그 공식 뒤에 숨은 과학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내는 작가의 예민한 시선이 놀라울 뿐이었다. 소설책을  읽은 것도 아닌데 문장론과 구성론에 감탄한 꼴이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나는 드디어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는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과학책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그동안 몇  페이지 읽다가 재미없다고 남에게 주어버린 과학책들을 원망하지 않으련다. 왜냐면 문제는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정모 선생이 과학 저술에 관해 쓴 글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 과학이 아니라 이야기책 같은
『해리포터 사이언스』에는 보통의 출판사들이 대중적 과학서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수식과 화학기호 그리고 구조식이 꽤 많이 나온다.  수식과 기호를 사용해야 내용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이해되기 때문이란다. 보통의 출판사는 이 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 선뜻 동의한 출판사가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휘슬러라고  했다. 대중과학 월간지에서도 “그냥 이야기책인지 과학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과학책이라고 평가한 ‘사이러스’  시리즈를 출간한 곳이  바로 휘슬러다.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필두로  『바이블 사이언스』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 등의 ‘사이러스’ 시리즈와 『부엌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 등의 과학책을 주로 출간했다. 출판사를 방문하기 전 이정모 선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휘슬러의 주용우 사장님 어때요. 재미있는 분입니까.

피자가게에서 과학책으로
한미화(이하 한) 이정모  선생은 사장님을  재미있는 분이라고  하더군요. 이정모 선생과는 ‘사이러스’ 시리즈 작업을 같이 하셨지요. 과학책이란 우리 출판에서 소외되어 있는 분야 중 하나인데, 과학책을 시작하신 계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주용우(이하 주) 저 역시 이정모 선생에게 한미화 씨가 원고독촉을 잘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출판을 시작한 것은 집안 내력 때문입니다. 제가 다섯  형제 중 넷째입니다. 어머니가 독수리 5형제를  키우신 건데요. 사촌 형이 출판사를  하셨습니다. 아카데미서적이라는 의학, 생물학 관련 전문 학술 출판사였지요. 우리나라에서 의학도감을 처음 낸 곳입니다. 첫째와  둘째 형이 아카데미서적에서 편집자와 영업자로  일하셨지요. 1980년대 후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가 나자 둘째 형이 출판사를 인수하여 1999년까지 운영하셨어요. 지금은 성우출판사를 하고  계시지요. 편집장이었던 큰 형은  아카데미아라는 의학전문 출판사를 새로 시작하셨고요.  
집안이 출판과 이렇듯 관계가 있긴 하지만 왜 책을 만들고 어디에 파는지는 관심도 없었어요. 다른 일보다 보수가 두둑한  편이라 책 배달이나 전집 수금사원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많아요. 대학을 졸업하고는 피자 체인점 가맹 일을 했어요. 그런데 아카데미서적을 인수하게 된 둘째 형이 저를 꼬시는 겁니다. 영업을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저밖에 없는 것 같다며 1주일을 쫓아 다니더라구요.
제가 당시 이 일을 얼마나 낙관적으로 생각했냐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가서 투자설명도 하고 가맹점을 늘리기도 하는데, 만들어 놓은 책을 파는 일이 뭐가 어렵겠냐고 생각했죠.
그때 아카데미 서적에서 <한국동식물도감>이라는 시디롬을  만들었는데, 열개의 시디로 구성된 시리즈가 70만 원이나 했습니다.

      아카데미서적 시절에는 주로 채택영업을 하셨던 거군요.  단행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아카데미서적에서 일을 하면서 교재 말고 단행본을  해보고 싶었지요. 단행본 출판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강짜를 부리다가 내가 한번 책을 만들어보겠다고 제의를  했어요. 안 들어주면 그만둔다는 심보였지요.  마침 그 무렵
『맥스웰의 도깨비』라는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책이지요.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열역학 제2법칙을 깨트릴  수 있는 가상의
존재, 도깨비를 만들어 21세기의 새로운 세계관이 된 엔트로피 이론을 등장시켰지요. 이  책의 지은이 츠츠키 다쿠지는 그러니까 맥스웰의 도깨비를 통해 과학이란 인간 상상력의 소산임을 흥미진진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블루백스’ 시리즈 중 한  권이었는데 마침 그 시리즈가 이미 1992년에 계약 만료된 상황이더군요. 무작정 시리즈를 계약하겠다고 덤볐죠. 그때 처음 동경도서전에도 갔지요. 일본어도 할 줄 모르고 만날 사람도  없는 터라 3박 4일 동안 신주쿠 기노쿠니아 서점으로 매일 출근을 했어요. 4층 전문서적관에 ‘블루백스’ 시리즈가 있었는데 정말로 그 자리에 3박4일을 지키고 앉아 있었어요.  책이 어떻게 팔리는지 궁금했던 거죠. 놀랍게도 학생부터 주부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블루백스’ 시리즈를 2-3권씩 사가지고 가더군요. 서점직원들이 1시간마다  서가에 와서 빠진 책을  채워 넣기 바쁠 정도였어요.

      당시 일본과 국내 사정이 좀 틀렸을 텐데, ‘블루백스’ 시리즈를 결국 출간하셨나요.
      ‘블루백스’ 시리즈의 도서목록을 구해오긴 했는데, 전 권을 오퍼할 수는 없고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때 가방 끈이 긴  친구의 소개로 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신과람)의 현종오 선생을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신과람 모임의 선생 중 네 분이 <과학동아>에 연재를 하고 계셨는데, 이 분들의 도움으로 50권을  골라 오퍼를 넣을 수 있었어요. 한번에 50권을 오퍼한다니까 말들이 많았죠. 과학서 시장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을 저지른다고 절 찾아온 분도 계셨고, 아카데미서적이 돈  많다고 자랑하는 거냐는 소리도 들었죠. 11권을 1차분으로 출간했는데,  그해에 100권을 내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쳤습니다. 기자간담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스포츠신문 기자까지 불러 간담회도 했어요.

      점점 흥미진진해지는군요. 최근 ‘사이러스’  시리즈를 보면 국내  필자들과 함께 힘들여 작업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데, 처음은 좀 무식하게 접근하셨군요. 국내  과학서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언제인가요.
      그러고는 IMF가 들이닥쳤으니 돈이  될만한 책을 만들어야  겠더라구요. 블루백스
시리즈를 진행하며 만나게 된  신과람 선생님들이 모두  <과학동아> 필자였다고 했잖아요. 그때 처음으로 <과학동아>라는 잡지를 자세히 봤어요. 그런데 놀랍더라구요.
『맥스웰의 도깨비』를 보고도 과학책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싶어 감탄했는데, <과학동아>는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십수 년치의 <과학동아>를 가져다가 쫙 펼쳐놨죠. 그리고 같은 주제별로 기사를 모았어요. 그렇게 해서 책을 냈는데, 그게 ‘밀레니엄’ 시리즈였습니다. ‘밀레니엄’ 시리즈로 나온 책이 『시간여행』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 『노벨상 따라잡기』  『스포츠 사이언스』 『자동차 과학』 『아인슈타인 뛰어넘기』 『시네마 사이언스』『뜯어봅시다』 등이지요.

      ‘밀레니엄’시리즈의 필자들을 보니 지금은 유명해진  분들의 이름이 보이는군요. 이한음 씨가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를, 정재승 박사는 『시네마 사이언스』를  썼네요. 아마도 이 책이 이분들의 첫 번째 책이겠군요.
      ‘밀레니엄’ 시리즈는 <과학동아>에 실린 기사를  주제별로 모은 것이었는데, 이한음, 정재승, 전창은 씨는 당시 잡지에 연재를 하고 있던 터라 그대로 한 권의 책으로 펴내게 된 거지요.

      이한음의
『신이 되고 싶은  컴퓨터』는 SF추리  콩트를 모아 엮은 책이군요. 정재승 박사의 책은 영화에서 과학을 살피는 책이고요. 무명시절의 이한음 씨나 정재승 씨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재미있겠네요.
      이제는 모두 유명 필자가 된 사람들이니 그 이야기 말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지요. ‘밀레니엄’ 시리즈의 제10권이
『뜯어봅시다』입니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 그러니까 지폐, 자전거, 당구, 놀이동산 등등을 모두 뜯어보고 그  속에 숨어있는 과학적 요소를 찾아내는 구성이지요. 그런데 <과학동아>에 실렸던  ‘로빈손 따라잡기’라는 특집기사가 워낙 재미있어서 연관도 없는데 이 책 속에 넣었어요. ‘로빈손 따라잡기’는 그 후 뜨인돌 출판사에서 노빈손 시리즈로 다시 태어났지요.

      <과학동아>의 특집기사가 노빈손 시리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사실은 저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장님도 그 특집을 눈여겨보고 단행본에까지 넣어 출간하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군요. 그런데 그 특집을 재미나게 보셨으면서도  왜 그 아이디어를 독립된 단행본으로 발전시키지 않으셨습니까.
      뜨인돌에서 몇 페이지도 안 되는 ‘로빈손 따라잡기’ 특집기사를 지금의 시리즈로 확대시킨 걸 보고 기획이란 이런 것이구나 라고 깨달았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할 줄 몰랐던 거죠. 특집기사는 ‘로빈손 따라잡기’였는데, 로빈손이라고 하지 않고 노(No)빈손이라고 새롭게 명명한 것도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대목이지요. 먼저 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극대화하는 것이 기획이라는 사실을 느꼈어요.  



세계를 겨냥한 과학책을 만들자며 필자를 꼬셔
      수업료를 치르고 기획공부를 하신 셈인데요. 휘슬러를 시작하시기 전에는 성우출판사에도 잠깐 계셨다고 했지요.
      아카데미서적을 운영하던 작은 형님이 성우로 독립하셔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지요. 성우에서는 ‘선생님도 놀란 과학뒤집기’ 시리즈를 만들었어요. ‘밀레니엄’ 시리즈는 잡지를 주제별로 묶은 것에 불과하니 아무래도 글 읽는 맛이 덜할 수밖에 없고 시리즈의 생명력이 길지 못했죠.
그래서 성우에서는 드디어 단행본처럼 책을 만들어봤어요. 물론 역시 <과학동아>의 콘텐츠를 기본으로 삼았지만, 한 가지 과학적 주제를 인간,  자연, 사회, 역사, 문화라는 다섯 가지 시선으로 조망했어요. 예를 들어 동물의  행동이라는 주제를 한권의 책에서 다룬다고  하면, 인간의 행동 양상, 자연의 법칙이라는 측면에서 동물의 번식행동,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의 역사, 문화적인 차원에서 본 동물들의 생활을 각각 살피는 식이었지요. 그밖에도 교과  관련 정보를 알려줬고, 단원이 끝나면 이우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동원해 그동안 살펴본 내용을 만화로 정리하는 등 쉽고 재미있게 총체적으로 과학적 지식에 접근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

      ‘선생님도 놀란 과학 뒤집기’시리즈로 24권의 책이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언제 이런 방대한 과학책이 나왔나 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일반인의 호응이나 서점 판매는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 같던데요.
      그동안 제가 교재영업을 해온 터라 책을 다른 식으로 마케팅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도 모릅니다. 책을 펴내고 과학담당 교사들에게 발송을 하고 반응을 살펴봤어요. 학생들에게 생활 속 과학을  가르치는데 유용하겠다는 호의적 반응이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책의 효용성이 있다뿐이지 그게 시장성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거였어요. 아시는 것처럼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책을 사질 않잖아요. 게다가 참고서  총판장들을 불러 시장성을 타진했는데, 총판장들의 반응이 아주 안 좋았어요. 한결같이 이 책이  팔리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반응이 돌아왔어요. 책을 참  예쁘게는 만들었는데 1만2천 원이나 하는 과학책이 팔릴 시장이 없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이벤트를 하자 하여 시작한 것이 학생과학논술대회입니다. 제 딴에는 과학 독후감 대회는 너무 진부하니 ‘과학논술’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과학논술이 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까지 과학논술이라는 말이 없었던 겁니다. 대회를 만들고 걸맞는  시상을 하기 위해 우여곡절 끝에 과학부장관상과 동아일보사장상을  따냈어요. 그러고 나니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풀리더군요. 2005년 현재 제4회째로 과학논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일반인은 잘  모르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과학논술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책이 ‘선생님도 놀란  과학 뒤집기’시리즈입니다.

      먼 길을 돌아 드디어 휘슬러  이야기가 나올 시간이 되었군요.  그런데 휘슬러라고 검색을 하니 온갖 업체가 다 뜨더군요. 심지어 밥통회사 이름에도 휘슬러가 있던데요.
      휘슬러를 시작하기 전에 캐나다 밴쿠버에 40일 정도 갔다  왔어요. 거기서도 갈 데가 없으니 근처의 서점에 주로 갔지요. 서점 말고 인상적이었던 곳이 휘슬러 산입니다. 2010년에 동계 올림픽이 열릴 휘슬러가 바로 그곳인데요. 촌놈이  가본거라 그런지 문화적 충격을 느꼈어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부실 정도로 부럽더라고요. 천국이 따로 없더군요. 마침 출판등록을 하려면 출판사 이름을 지어야 했는데  그때 휘슬러산에서 받은 인상이 강렬해서 그대로 휘슬러라고 했어요.

      저는 사실 최근에야
『해리포터 사이언스』를 읽었는데, 정말 재미났습니다. 뒤늦게 회개하는 심정으로 과학책과 친해지고 싶어서 이 책 저 책 집적거려 봤는데 도무지 읽어낼 재간이 없더군요. 그래서 읽히질 않는다며 책을 원망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줘 버리곤 했는데, 이 책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과학책이 재미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회에 나와 처음 한 일이 피자 체인점 만드는 일이라고 했지요. 피자를 반죽하는 법은 2-3일만 가르치면 다  합니다. 그런데 안 된다고  해요. 왜냐하면 융통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반죽을 할  때 여름과 겨울이 틀려요.  온도라는 조건이 다르니까요. 다시 말해서 음식을 요리할 때도 원리를 이해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이겁니다. 사고가 과학적이면 되는 겁니다.
과학책을 만들다 보니 과학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과학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자연스레 화두가 되더군요. 그래야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겁니다. 호기심과 흥미가 생겨야 과학책을 읽을 수 있어요. 원리를 가르쳐주면 흥미가 배가되고 그렇게 과학을 배우면 재미있는  거지요. 과학을 과학으로 설명하고 과학으로만 배우면 재미가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과학을 배웠지요. 그러나 피자를 만들기 위해 피자반죽을 할  때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설명해주면 쉽게 과학적 원리를 배우지요. 먹고사는데 필요한 과학을 이야기하면 쉽게 배울 수 있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휘슬러의 책 중에
『부엌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 같은 책도 있습니다.
      제가 참 궁금해 했던 것들이 뭐냐 하면  콩나물 데칠 때 뚜껑을 닫아야 하는 이유 같은 겁니다.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음식에  관한 과학책 자료를 많이 갖고 있는데,  문제는 기획을 어떻게 대중화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와 필자를 어떻게 찾을 것이냐 하는 겁니다.

      기획은 있는데 필자가 없는 경우가 많지요.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힘들게 써봤자 돈이 안 되니까 그래요. 그래서  제가 ‘사이러스’ 시리즈를 할 때 필자들을 어떻게 꼬셨냐 하면 좁은 국내 시장에서는 책 한권 써봤자 푼돈밖에 안 되니  전세계 판권을 염두에 두자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계속 사기치고 있는 건데요. 아직 현실화된 게 거의 없으니까요. 일단 시범적으로 홍콩에는  저작권 수출을 했어요. 일본이나 중국은 저작권을 팔 것이 아니라 직접 회사를 만들고 판매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이러스’ 시리즈 기획할 때 별별 아이디어가 다  나왔어요. 이순신의 과학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런데 수많은 아이디어가 모두 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전세계 판권을 염두에 두려면 세계인이 공통적으로  궁금해 할 주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삼국지, 해리포터, 그리스 로마 신화 등등의 주제를 고른 이유이기도 하지요.
저는 과학책을 만드는 사람이 과학책에 빠지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교양생물책을 만들면 다음에는 분자생물책을 만들게 되고요. 그 다음에는 분자세포 생물학책을 만들게 되요. 하지만 그러면 곤란해요. 자기세계에 함몰되고 자기  카테고리를 정해놓으면 융통성도 없어지고 새로운 기획도 나오질 않아요.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지요. 지금 휘슬러에서  준비하고 있는 여행책도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여행책을 시리즈로 준비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그렇지 않아도  들었는데, 아무리 엉뚱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과학책에서 여행책으로 뛴다는 건 비약이 좀 심한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과거에도 휘슬러에서는 여행책을 낸 적이 있어요.
『소프라노 패밀리  요리천국』입니다. 미국 HBO의 TV 시리즈 의 소프라노 가족 생활을 그대로 옮긴 책인데, 이게 요리책이자 여행책인 겁니다. 요리사 아티 부코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가족과 이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탈리아의 문화와 삶을 이야기하지요. 게다가 이탈리아 요리법도 나오고요. 믈론 이 책이야 안 팔릴 줄 알면서 만든 책인데 생활 속에서 과학을 찾듯이, 요리 속에서 여행을  찾는 책이 『소프라노 패밀리  요리천국』입니다.  요리를 통해 이탈리아의 문화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니까 더할 나위 없는 여행책이지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지금 준비하고 계신 여행책에  관한 이야기도 좀 들려주시지요. 좀 다른 개념의 여행서인 듯하군요. ‘인사이드’라고 시리즈 명을 정하셨군요.
      국내의 여행 가이드북과는 다른 문화적  여행서에 가깝지요. 저를 두고  늘 모호한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 책 역시 출판계 입장에서는 정체성이 모호한 책일 겁니다. 그러나 독자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여행서는 현지에 가지 않으면 도움이 안 되는 정보들만 담겨있어요. 가이드북  성격의 여행책은 장기간 현지에 가지 않으면 별로 도움이 안 되지요. 국내 여행자들이란 주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여행을 하게 되는데, 책에 담긴 내용 중 극히 일부 지역만을 여행하고 돌아올 뿐입니다.
물론 에세이 개념의 여행서도 있지요. 그런데 이런 책 역시 여행자들에게 자극을 주는 정도지 결국 도움은 안 되지요. 호기심을 지닌 사람들, 떠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은 뭘까를 생각해봤어요. ‘인사이드’시리즈는 사람이야기, 전통적 관습, 에티켓 등 여러 요소를 담아 여행자들의 간접 체험을 돕고 실제 여행자들에게 문화적 충격을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해외여행서의 개정작업은 기껏해야 2-3년에  한 번 이뤄지는 형편이니 식당정보 등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가이드북처럼 단편적 정보를 중심으로 하지 않고 각 나라에 맞게 중요한 사안을 카테고리로 묶었어요.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사업보다는 여행이나 자연적 환경에  더 비중을 두었지요. 홍콩이나 싱가폴에 가려는 사람에게는 비즈니스가 중요할 테니 그 부분이 강조되는 식이지요. 텍스트를 나열한 원서와 달리 요소를 주제에  맞게 그룹핑하고 사진자료를 많이 넣었어요. 원서와 국내서는 서로 다른 책이 된 거죠. 일차분에 쿠바가 들어 있는데, 쿠바로 여행가는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시리즈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주겠다 싶어서 일부러 쿠바를 전진 배치했지요. 6월 초면 선보일 겁니다.

주용우 사장은 그간 주변사람들에게 “이게 소설이야, 과학이야”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런 시도가 자칫하면 책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기획자는 때로 엉뚱하게라도 자신이 궁금한 것을 책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이제는 여행서를 통해 보여주려는  듯하다.
『사색기행』에서 다치바나는 원숭이가 안전하고 먹이가 많은 정글에서 사바나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한 것이 진화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는 지적을 한다. 원숭이의 후예인 인간에게 미지의  것과 조우하는 일은 원숭이가 사바나로 옮겨간 것처럼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육체를 미지의 공간에 둘 때 인간은 정말로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 과학책이 아닌 과학책을 통해 과학의 세계를 맛보게 했듯이 여행서 답지 않은 여행서를 통해서 세계인식이라는 여행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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