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출판시장 매출 13.8% 줄어
‘문예연감 2007’ 발행
 
 
한겨레 한승동 기자
 






지난해 한국 출판시장 규모(금액환산 추정치)는 2조3657억원으로 전년도의 2조6939억원보다 13.8%나 줄었다고 문학평론가 유임하 한국체대 교수가 밝혔다. 유 교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 문예진흥원)(위원장 직무대행 한명희)가 펴낸 〈문예연감 2007〉에 실은 자신의 글 ‘2006년 한국문학의 좌표’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집계한 통계치들을 근거로, 신간 발행 부수에다 평균 정가를 곱하고 여기에 재판 이상의 부수를 고려하여 2배수하는 관례에 따라 계산한 결과 이런 추정치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연감에 따르면 2006년 신간 발행종수(만화 제외. 이하 같음)는 3만8035종으로 전년보다 5.2% 늘어난 반면, 신간 발행 부수는 9240만부로 4.2% 줄었다. 발행 종수가 늘었는데도 발행 부수가 준 것은 그만큼 매출이 부진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문학분야는 지난해 신간 발행 종수나 발행 부수에서 2005년도에 비해 각각 17.2%, 9.4%씩 늘었다. 하지만 이를 토대로 추산한 작가 1인당 연간 인세 수입은 여전히 바닥 수준으로 전년도보다 오히려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 교수는 2006년 총인세수입액을 문학시장 총액의 10%인 380여억원으로 잡고 한국펜클럽에 등록된 회원을 1만명 안팎으로 추산할 경우 작가 1인당 연간 인세 수입은 380여만원이며, 이는 전년에 비해 8.2% 줄어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국 도서의 세몰이와 몇몇 인기작가에 국한된 구매경향을 감안하면 문인 대부분의 연간 인세 수입은 이보다 훨씬 더 낮아서 생계문제로 인한 상상력의 고갈은 물론 창작의 의욕마저 추스르기 어려운 극빈 상태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7일 “교보문고에 입고되는 연간 신간 발행 종수와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는 신간 발행 종수는 큰 차이가 난다”며 통계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면서 “지난 한 해와 전년도의 출판시장 규모에 그렇게 큰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문학, 시각예술, 국악, 양악, 연극, 무용, 문화일반 등 7개 분야별로 2006년 한 해 동안의 문화예술계 주요 현황 분석과 전망, 관련 통계자료들을 수록한 〈문예연감 2007〉에는 56명의 전문 필진이 참여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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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치고 장구치는 멀티 '책쟁이'… 1인 출판시대
[커버 · 1인 출판] 전체 출판사 중 약 15%가 1인 출판사, 튼튼한 네트워크·철저한 기획 아이디어로 승부수

‘창가의 토토’(프로메테우스),‘백만불짜리 습관’(용오름),‘테이레시아스의 역사’(산처럼),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코의서적),‘헌법의 풍경’(교양인).

2000년 이후 ‘대박’을 터트리거나 1만 권 넘게 팔린 화제의 책들로 ‘1인 출판사’가 터뜨린 작품들이다. 1인 출판은 말 그대로 혼자서 편집ㆍ기획ㆍ제작ㆍ홍보(마케팅) 등 일체의 과정을 도맡아 하는 출판 시스템이다..

최근에는 출판의 양극화 등 출판 환경이 변하면서 ‘1인 출판’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기존 출판사에서 독립하는 수많은 출판인과 새롭게 출판업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인 출판사도 증가하고 있다. .

2002년 1,896개사이던 출판사는 2003년 1,647개 사, 2004년 1,716개사, 2005년에는 9월 말까지 2,091개사로 3년9개월 동안 무려 7,350개사가 신규 등록을 해 총 출판사 수는 2만4,589개사나 된다. 4년 동안 하루 평균 5.4개가 늘어난 셈이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2000년 조사에서 1인 출판사는 전체의 약 7%였는데 현재는 15%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백 부장에 따르면 국내 2만5,000개 가량의 출판사 중 3,700여 개 정도가 1인 출판사인 셈이다.

국내 출판사는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로 그해 10월 출판등록이 자유화되면서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 출판사들은 90년대 전반기 호황기를 거쳐 97년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갈림길에 서게 됐다.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는 “80년대 억압에서 벗어나 90년대 출판이 대중화되면서 출판을 경험한 기획ㆍ편집자가 90년대 말 2,000~3,000 명 가량 등장했지만 출판사 구조는 여전히 전 근대적이어서 기존 조직에 머물 수 없는 출판인들이 독립해서 1인 출판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디지털화로 책제작 쉬워지며 급증세

이후 2000년대의 출판 제작환경 변화는 1인 출판의 증가를 더욱 부채질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디지털화로 책 만드는 게 쉬워져 제작비가 예전보다 3분의 1 수준이 됐다”며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으로 유통이 집중되고 제작ㆍ마케팅 등 외부시스템이 발달한 것도 1인 출판을 양산한 배경이다”고 말했다.

1인 출판은 종래 출판업에 종사해온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개인이 연구 성과를 책으로 내기 위해, 또는 출판 분야의 기자 출신이나 출판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창업을 하는 경우도 많다.

1인 출판을 하는 출판인은 크게 편집자 출신과 영업 출신으로 나뉜다. 90년대 중반까지 출판사 창업을 하는 이는 주로 영업부장들이었다. 전국 서점의 복잡한 유통망과 인맥을 쌓은 영업자가 뛰어난 출판인이었다.

‘사랑의 학교’의 이상복(50) 씨는 범우사에서 9년간 영업을 하다 95년 영업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출판사를 차렸다. 지명도가 있는 이원복 교수의 ‘세계기행 1ㆍ2권’을 비롯해 ‘펜 끝으로 여는 세상’ 등 11종의 책을 냈다.

영업통답게 한 달에 한 번 정도 지방 서점들을 돌며 출판흐름을 파악하고, 영업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기획 아이디어를 얻곤 한다. 아동과 청소년 부문에 주력해 ‘지식보다 감동을 전달하는’ 책들을 펴내는 게 그의 목표다.

이 씨는 “출판을 늦게 시작한 데다 인적 네트워크가 엷어 한계를 느끼곤 한다”면서 “1인 출판을 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하고 튼튼한 네트워크를 형성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대표(41)는 2개 출판사에서 5년여 동안 편집과 영업을 한 뒤 2000년 출판사를 세워 처녀작으로 펴낸 ‘창가의 토토’가 35만 부나 팔려나가 1인 출판계의 신화로 남아 있다.

이후 편집과 마케팅 분야에 2명을 충원한 신 대표는 “글과 삶이 일치하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히로사 다카하시(‘체르노빌의 아이들’저자)를 존경한다”면서 “앞으로 그를 포함한 2명의 전작 작가 시리즈를 책으로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1인 출판을 하다보면 큰 운이 따를 경우도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며 “소규모 출판에 맞는 장기적인 플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인 출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양미(산처럼)ㆍ김혜숙(참솔)ㆍ강규순(숲)ㆍ조영희(에코의 서재)ㆍ한예원(교양인)ㆍ권선희(사이)ㆍ황영심(지오북) 대표 등은 편집인 출신이다.

윤양미 대표는 한길사ㆍ역사비평에서 8년여 동안 편집ㆍ기획 파트에서 일하다 2002년 ‘산처럼’을 세웠다.

김혜숙 대표는 문예출판사에서 12년간 편집일을 하다 95년 결혼과 함께 떠나 있다가 98년 출판계로 돌아왔다. 기획안을 들고 문예출판사 전병석 사장을 찾았으나 “혼자 해보라”는 말과 함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1인 출판사 ‘참솔’을 세웠다. 첫 작품 ‘퇴직시대, 120% 권리찾기’는 출간 한 달 만에 초판을 다 소화했고, 번역서인 ‘초라한 밥상’은 5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조만간 현대인에 와닿을 수 있는 ‘아부의 예술’을 출간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1인 출판을 하려면 최소한 기획 아이디어를 10개 이상 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장밋빛 환상만 갖고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고 충고했다.

강규순 대표 역시 한길사ㆍ문예출판사에서 10년 넘게 편집자로 일하다 2002년 ‘숲’을 설립했다. 첫 작품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를 낸 데 이어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의 그리스ㆍ로마 원전 번역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아이네이스’,‘명상록’은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강 대표는 “그리스ㆍ로마 관련 서적이 많이 나왔지만 국내 전문가가 부족해 ‘원전’은 드물다”며 “고정 독자가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조영희 대표는 대형출판사인 푸른숲ㆍ위즈덤하우스에서 10여 년간 편집일을 하면서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전여옥),‘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한비야), 지난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탄줘잉) 등을 기획, 탄탄대로를 걷다가 2005년 독립해 ‘에코의 서재’출판사를 차렸다.

6개월을 걸려 완성한 첫 작품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9만 부 이상 팔렸고 이어 나온 성인 심리동화 ‘루비레드’, 경제경영 인문서인 ‘성공한 사람들의 정치력101’이 각각 1만 부 팔리면서 1인 출판의 뿌리를 내렸다.

황영심 대표는 문예출판사ㆍ현암사 등에서 16년 동안 편집자 생활을 하다 2003년 ‘지오북’을 창업한 후 첫 책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내놓아 주목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2004년)으로 집무정지됐을 때 보았다고 해 화제가 됐던 ‘헌법의 풍경’은 1인 출판 ‘교양인’에서 펴냈다. 한예원 대표는 9년간 푸른숲 편집장을 하다 독립 ‘교양인’을 차리고 ‘헌법의 풍경’과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로 호평받았다.

전문성으로 틈새 공략

편집의 베테랑으로 잘 나가던 이들이 1인 출판으로 독립한 데는 ‘나이’ 및 오너와의 마찰 등도 영향을 미쳤지만 대개는 창의적이고 독립적인 일을 하려는 의지가 결정으로 작용했다.

국내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위즈덤하우스 편집장 자리를 던지고 나온 ‘에코의 서재’ 조영희 대표는 “내가 만들고 싶은 책과 회사가 요구하는 책이 다를 때는 갈등이 심했다”면서 “편집자로서 경력을 쌓다 보면 좀 더 인문적이고 깊이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데 대형 출판사에서는 그런 욕구를 실현시킬 수가 없어서 내고 싶은 책을 즐기면서 만들기 위해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지오북’ 황영심 대표는 “자연과학서는 사진이나 편집 등 신경 쓸 일이 많기에 회사에서는 쫓기듯 책을 낼 수밖에 없었다”면서 “여유를 가지고 자연과학서를 내고 싶어 독립했다”고 설명했다.

언어(특히 한자) 전문가인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출판사 대표와 IT 분야 전문 출판사로 자리잡은 ‘디지털미디어리서치’의 조광현 대표는 각각 독자 출판사를 세우고 관련 분야의 책을 잇따라 출간하고 있다.

박대종 대표는 “출간 당시 한자를 인쇄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내 정성과 혼을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광현 대표는 “콘텐츠 기획을 잘 하면 출판 과정 일부를 아웃소싱할 수 있어 직접 출판이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박정화 씨는 책을 내고 싶어 별도로 1인 출판사(삼애사)를 차리고 20년 간 연구한 고대사 자료를 모아 ‘일본의 원뿌리를 찾아서’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만불짜리 습관’ 등 경제경영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용오름 출판사 서사봉 대표는 10여 년간 일간지 경제ㆍ문화부 기자로 있다 2004년 창업했다. 6년간 출판사 편집자와 주간신문, 잡지 기자로 편력한 황기직 씨는 92년 ‘새벽소리’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한 후 ‘윤복이의 일기’,‘장다리 1학년 땅꼬마 2학년’, ‘머리 둘 달린 봉황새’ 등 아동서 4권을 포함해 9권을 냈다.

출판 경험이 전혀 없거나 출판과 무관한 사람들이 1인 출판에 도전하는 경우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서울 마포구 서교동)가 출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운영하는 ‘sbi(서울북인스티튜트) 창업자 과정을 올 초 수료한 김동석(36) 씨는 ‘기억상자’라는 1인 출판사를 차리고 11월 경 인문ㆍ역사서 출간을 준비 중이다.

sbi ‘편집자 입문 과정’을 다니고 있는 직장인 이승은(36) 씨는 ‘개암나무’를 창업하고 내년 초 번역 동화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계에 ‘1인 출판’이 확산되고 있지만 그 현상이나 장래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다. 긍정론자들은 출판의 다양성 차원에서 바람직하고 전문성을 갖추고 틈새를 공략할 경우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1인 출판은 재미있고 혁명적인 것”이라며 “산업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인 차원에서 바라보자”고 말한다. 정 대표는 중간 크기의 회사는 사라지고 아주 크거나 아주 작은 출판사로 출판계가 양분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반면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1인 출판이 영세하고 존립이 불안정함에 따라 소자본으로 번역 위주의 출판을 할 경우 외국 출판물의 ‘보따리 장사’가 성행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백 부장은 “출판의 핵심은 콘텐츠”라며 “1인 출판의 자산과 경쟁력도 콘텐츠인데 과연 국내 1인 출판사 중 어느 정도가 독자의 취향을 읽어내고 전문성을 갖췄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1인 출판의 경우 출판 고유의 ‘저수지 역할’이 미흡하다는 설명이다.

장래 엇갈린 전망… 영세성 극복이 관건

1인 출판의 장래에 대해서도 평가가 나뉜다. 비관론자들은 1인 출판의 영세성으로 인해 장기적인 존립이 불투명하다고 말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5년에 단 한 권이라도 신간을 펴낸 출판사가 전체의 7.6%인 1,715개사에 불과하다. 1년에 등록하는 출판사 숫자보다도 적다.

실제 출판저널 기자를 지낸 이현주 씨가 2003년 창업한 1인 출판사‘뜰’은 여성ㆍ가족ㆍ가정 분야를 특화해 ‘남자의 아름다운 폐경기’,‘가족이 있는 풍경’등을 출간해 한동안 주목을 받았지만 자금난으로 결국 지난 7월에 폐업했다.

다른 측면에서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는 “출판은 근본적으로 ‘1인 출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이 출판의 전 과정에 전문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용오름의 서사봉 대표는 “출간할 때마다 ‘창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안정성이 상존한다”며 “1인 출판의 고유 생존방식을 어떻게 유지하는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1인 출판의 가능성은 여전하다는 반론도 상당하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대표는 “혼자 만든 ‘창가의 토토’ 이후 직원을 2명만 더 채용했다”며 “결국 (소규모) ‘대장간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 규모를 키우지 않고 1인 출판의 장점을 살려가면 존립은 물론 나름대로 사회문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미국 출판인 제이슨 엡스타인이 ‘북 비즈니스’란 책에서 디지털 기술 발달 덕에 장인 정신의 출판 황금시대가 온다고 내다본 것을 주목, 한국 사회에도 1인 출판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출판인 양성소 sbi(서울북 인스티튜트)
전문성 길러 대박의 꿈 키운다

"출판 창업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버려라."

출판을 아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그만큼 출판으로 성공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고 노하우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푸른숲 대표)가 출판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운영하는 'sbi(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 박은주ㆍ김영사 대표)'는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sbi는 한국출판인회의가 1999년 출판인 양성을 위해 개설했던 한국출판아카데미를 보다 체계적으로 확대시킨 출판 전문교육기관이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sbi는 편집자 입문, 교열 교정, 출판 제작, 편집장, 창업자, 출판 디자인, 출판 마케팅, 편집 디자인 실무를 위한 DPT 과정 등 8개 정규 과정에 실용서 편집자, 아동서 편집자, 출판경리회계, 북아트 과정 등 4개 강좌를 추가로 신설했다.

강사진은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 등 현역 출판인과 편집자들이 나선다. 9∼10주 과정으로 짜여있으며 정원은 20∼50명 내외다.

sbi는 8월까지 모두 6기에 걸쳐 8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특히 올 초 노동부가 추진하는 '중소기업직업훈련컨소시엄' 제도의 일환으로 엄격하게 선발된 29명이 6개월 가량 출판교육을 받고 출판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sbi 8개 정규과정 중 대학생과 출판계에 입문하려는 일반인들이 주로 신청하는 '편집자 입문 과정'이 가장 인기가 높다. 이 과정의 5기 수료생인 윤경미 씨는 "하나의 책이 나오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실전에 있는 강사 분들의 생생한 얘기를 들은 게 출판인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출판 창업자 과정(1기)을 수료한 이은성 씨는 올 1월 'e-비즈북스'라는 1인 출판사를 설립하고 6월까지 인터넷 비즈니스 분야에서 3권의 책을 냈다.

이 씨는 "창업 과정에서 배운 그대로 실행한 결과 3권이 동시에 인터넷 서점의 해당 분야 베스트 10에 들면서 초기 소프트랜딩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편집과 마케팅쪽에 인원을 1명씩 늘린 이 씨는 "올해 말까지 20권의 책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혜경 회장은 "sbi에서는 대학이 할 수 없는 현장에 필요한 실무형 교육이 이뤄진다"며 "좋은 인력이 있어야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sbi가 곧 한국 출판계의 앞날을 좌우하는 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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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 1인 출판] 출판사 내 새끼친 '1인 출판', 임프린트
출판 자본과 편집기획자 결합 '윈윈' 시스템… 별도 브랜드 내주고 편집서 홍보까지 전권 위임

출판계에 ‘1인 출판’이 확산되는 가운데 대형출판사를 중심으로 ‘임프린트’(imprint)라는 변형된 출판 방식이 도입돼 시장의 지형을 바꿔놓고 있다.
임프린트란 출판사 내의 독립된 브랜드를 말한다. 대형출판사들이 외형 확대를 위해 자사의 편집자를 발탁하거나 실력이 검증된 타사의 편집자를 스카우트해 별도의 브랜드를 내주고 편집ㆍ기획ㆍ제작ㆍ홍보 등 일체의 운영을 맡기는 시스템이다. 이는 독립된 출판브랜드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기업 내부의 1인 출판’이다.

임프린트는 출판 자본과 역량 있는 편집기획자의 결합으로 출판사는 전문 편집자를 영입해 자사의 브랜드를 확장하고 매출과 수익을 늘릴 수 있고, 편집자는 자금을 지원 받아 원하는 책을 낼 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된다.

본래 영ㆍ미 출판계에서 정착해 출판사 인수합병(M&A)의 토대가 된 이 제도는 최근 2~3년새 국내에 도입돼 대형출판사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국내 처음으로 임프린트를 도입한 출판사는 ㈜랜덤하우스중앙이다. 미국의 출판재벌 랜덤하우스와 중앙M&B가 5대5 지분으로 설립해 2004년에 출범한 랜덤하우스중앙은 능력 있는 기획자들을 대거 영입, 산하에 두앤비컨텐츠(어학), 북박스(만화ㆍ판타지소설), 키즈랜덤(아동), 드림하우스, 울프 등 9개의 프린트를 늘리며 급속한 성장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7월 31일 랜덤하우스와 중앙일보가 결별, 랜덤하우스중앙은 랜덤하우스코리아로 출범해 현재는 두앤비컨텐츠, 북박스, 키즈랜덤, 노블하우스(문학), 드림하우스 브랜드만 남고 나머지는 유명무실화된 상태다.

웅진씽크빅은 2004년 10월 잡지부분을 디자인하우스에 매각한 데 이어 대대적인 인력영입을 통한 체제개편을 단행, 현재 단행본 임프린트가 초기 4개에서 10개로 크게 늘어났다.

"독립성·자율성 부여로 출판영역 확대"

웅진씽크빅 내부 임프린트에는 웅진주니어(아동ㆍ청소년), 웅진지식하우스(해외문학ㆍ인문교양), 웅진윙스(자기개발ㆍ실용전문), 갤리온(비소설), 뉴런(어학ㆍIT), 씽크하우스(어린이실용서), 웅진문학에디션 뿔(순수문학) 등 7개가 있고, 외부 임프린트로는 리더스북(경제경영), 노블마인((소설ㆍ에세이), 프로네시스(교양ㆍ인문과학) 등 3개가 있다.

웅진씽크빅은 각 영역을 더욱 세분화해 임프린트를 30개에서 50개까지 늘려갈 계획이다. 김민기 단행본그룹 사업기획실장은 “웅진씽크빅은 울타리 역할을 하면서 임프린터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부여해 출판 영역을 늘리고 문화지평도 넓힐 것”이라고 말했다.

단행본의 맹주로 인정 받는 민음사는 2005년에 편집자들을 자사 브랜드의 대표로 임명해 자율성과 책임을 강화했다. 또 민음사(문학, 인문), 비룡소(아동), 황금가지(대중서), 사이언스북스(과학) 외에도 황금나침반(논픽션), 민음in(교양), 세미콜론(예술) 등의 브랜드를 추가해 영역 확장에 나섰다.

(주)위즈덤하우스는 분사제란 독특한 시스템을 두고 있다. 책임과 권한을 분산하고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다. 독립 브랜드에는 1999년 설립되어 예술책을 주로 펴내는 예담을 비롯해 위즈덤하우스, 열번째행성, 예담프랜드, 예담차이나 등이 있다.

국내 출판의 영세성으로 인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임프린트는 출판계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위즈덤하우스는 55세 정년 보장과 이후 자회사에서 10년 간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발표를 해 그런 흐름을 가속화하는 단초가 됐다.

웅진씽크빅 김민기 실장은 “임프린트는 출판사가 유능한 에디터(편집자)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확보할 수 있고, 에디터는 자본의 영세함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더욱 늘어나는 추세”라며 “에디터의 신분 보장은 임프린트에 날개를 다는 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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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담다, 이순원의 『나무』

- 이순원
게재일 : 2007-10-18 조회수 : 2,895


글 / 류화선yukineco@gmail.com

 


소설가 이순원의 서재에는 특이하게도 나무로 만든 투박한 물레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된 물건으로 보이는 물레는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한 물건이다. 보통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혹은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는 물레를 남성인 그가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재밌다. “물레에서 실이 뽑아져 나오듯 글도 술술 나오라고, 그런 의미로 주셨어요.”

문학잡지와 소설책, 오래된 문학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서재는 소설가의 서재다웠다. 한쪽 책꽂이에 그동안 사용한 노트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처음 소설 쓸 때 타자기로 쓰다가, 그 다음에 워드, 컴퓨터로 옮겨 갔습니다.”

나무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이순원의 2007년 신작 『나무』는 모든 연령을 위한 읽을거리다. 허구라는 점에서는 소설을 닮았고, 순수함을 그려낸 투명함은 동화를 닮았고, 나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화를 닮았다. 나무의 이야기지만 삶의 이야기를 닮았다. 담백하고 청량한 이야기, 따뜻하면서도 긍정적인 힘이 넘치는 이야기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1년을 준비해서 15일 만에 원고를 완성했고,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집필기간은 한 달이었다. 『나무』는 2년이 걸렸다.

“그다지 긴 글이 아닌데 『나무』는 2년 정도 걸렸어요.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4년. 오래 붙잡고 있다고 공을 더 들이는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나무』는 방향성 때문에 중간에 여러 번 엎어버려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동화를 생각했지만 글을 쓸수록 장르의 벽은 사라졌다. 그저 나무를 설명하고, 나무의 느낌을 잘 전달해, 사람들이 나무를 친구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무처럼 인간과 잘 어울리는 풍경도 없다. 그러나 이순원의 『나무』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사물이 아니라 품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다. 수줍어하는 나무가 있고, 까부는 나무도 있고, 수다쟁이 나무도 있고, 당돌한 나무가 있다. 매년 하나씩 더한 나이테만큼 지혜를 더해간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 있는 밤나무, 앵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가 정답게 가지를 뻗어가며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들이 복숭아 속살보다 더 보드랍고 달콤하다.

또, 『나무』에는 생로병사의 굽이굽이가 있고, 저무는 세대와 떠오르는 세대의 아름다운 우정이 있고, 춘하추동의 고운 풍경들이 숨겨져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마당은 제 고향집입니다. 『나무』는 지금까지 쓴 제 글 중에서 가장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가족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제가 고향 마을을 모델로 해서 글을 썼지만 그건 배경만 빌려오고 그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허구였어요. 그에 비해 『나무』는 저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주는 책 『나무』



 

전생에 나무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나무를 사랑한다. 50년 동안 나무 곁에서 나무의 속사정을 함께 나누며 살았다. 『나무』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작가의 할아버지고, 그가 가꾼 아름다운 나무 정원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작가의 블로그(은비령http://blog.naver.com/lsw0502)에 가면 『나무』의 주인공 할아버지 밤나무와, 밤나무를 심은 조부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존경하는 사람은 다 멀리 있는 사람이잖아요. 위인전으로 읽은 이순신 장군 같은. 가족은 친근하긴 해도 존경의 대상이 아니죠. 그런데 커가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대단한 분이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기억에 남아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를 물었다. “노동을 즐기는 분이셨어요. 타고난 성실함이 있는 분이었죠.” 그리고 조부는 현명한 분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무는 후손을 위해 심는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나무를 키워보면 그렇지 않아요. 책에도 썼지만 나무는 당대에 그 덕을 봅니다. 아이들보다 빨리 자라죠. 그런데 사람들은 곡식보다 늦게 자란다고 나무를 심지 않죠. 저걸 심어서 언제 덕을 보나 하면서요. 그런데 묘목을 심으면 3~4년이면 열매를 맺어요. 가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언제 저 나무가 저렇게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자랐나 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제 아이가 어렸을 때 심은 나무들도 벌써 아파트 2층 높이만큼 자랐더군요.”

『나무』는 3대의 삶을 함께한 할아버지 밤나무가 여덟 살 먹은 꼬마 밤나무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조곤조곤 삶의 이치를 옛이야기 하듯 풀어놓는 이야기지만 교훈과 감동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바람이 차도 봄에는 잎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리처럼 『나무』는 흘러간다. 그곳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독자의 운일 따름이다.

“저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경계했던 점이 ‘유치해지지 말자’ ‘눈높이를 낮추지 말자’는 거였어요. 눈높이는 맞추는 거지 낮추는 게 절대 아니죠. 그리고 교훈을 담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어요. 사람은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아요. 눈 속에서 피는 매화, 자기 때를 기다리는 대추나무… 교훈적이라면 교훈적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나무의 삶일 뿐이죠. 욕심이 있다면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나무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은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에는 죽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한 나무의 죽음이 주는, 생명의 끝남 이상의 찡함, 묵직한 울림을 주고 싶었어요. 죽음을 통해 나무가 생의 의미를 완성하는 거죠. 완결이라고 할까요.”

작가 생활 20년, 전업 작가 생활 12년



 

이순원이라는 이름 앞에는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제일 먼저 붙지만 요즘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도 익숙해졌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반짝반짝 빛난다’고 평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반겼다.

“제가 30대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발표했을 때 신세대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어요. 그 소설이 그 시대에는 기존 소설 문법들과 달랐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우리 문단은 ‘새로운 것은 얕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끌어주고 싶은 선생님 입장에서도 답답할 때가 많아요. 텔레비전만 해도 불과 몇 년 전 것보다 지금 것이 훨씬 성능이 좋잖아요. 그런데 문학만큼은 30년 전 문학이 좋다고 고집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문단의 원로 작가들이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고, 자신들이 하는 문학이 순정하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선배 작가들이 그런 말을 할 만큼 열심히 글을 썼나요?”

또, 그는 장편을 쓰기 힘든 현재의 문단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했다. “젊은 작가들이 너무 단편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문단 분위기가 단편에 몰입하게 만드는 거죠. 단편은 그야말로 노블(novel)도 아니고 쇼트 스토리(short story)에 불과해요. 세계 문학사에도 단편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셋, 넷… 체홉, 카프카, 모파상, 오 헨리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 문단에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제 제대로 된 장편을 내야 하는 중견 작가들도 장편의 실패를 단편으로 만회하고, 단편으로 숨으려고 한단 말이죠. 그러니 발전이 없죠.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면 대표성을 가진 작가 중에 대표 장편이 없는 작가가 많단 말이죠. 그런 것을 극복해나가는 게 작가의 일입니다. 그게 싫다면 도대체 왜 글을 쓰려는 거죠?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얼마나 장편을 썼느냐?’라고 바로 공격이 들어오겠지만.(웃음) 작가에게 슬럼프가 있다면 그건 장편이 안 나올 때라고 생각해요.” 그가 지금까지 쓴 장편 중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묻자 『수색, 그 물빛 무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단어 하나 비문 하나 용서하지 않는 엄한 선생님이다. 엄한 가르침 덕에 제자들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해 신춘문예 사관학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란다. 그가 싫어하는 건 반짝이를 달아 멋을 낸 문장이다. “제가 소설 공부를 하면서 모범으로 생각했던 건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이었습니다.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하면서 내용으로 운율을 드러내는, 문장 자체로 운율을 드러내는 그런 문장이죠. 그런데 문학 지망생들은 반짝이나 수사의 유혹을 못 이겨요. 힘들이지 않고 멋있어 보이니까. 수사는 부족할수록 좋습니다. 문장을 다듬을 때도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두 점 사이에 수많은 점이 있어도 그 점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건 직선 하나뿐이니까요.”

그리고 ‘전업 작가’가 아니어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람에게 이런 충고를 남겼다. “제가 전업 작가가 된 지 12년입니다. 다들 전업이면 글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환경의 여건, 작업의 여건이 달라질 뿐이지 전업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와 글쓰기를 병행할 때의 그 열정이 그리울 때조차 있어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 이순원의 세계

모든 작가는 자기가 그릴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주제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이나 특정 인물에 고정될 수도 있다.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라는 가공의 마을을 만들어냈다면, 이순원은 ‘은비령’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흔히, 그를 ‘강원도의 작가’라고 부르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강원도라는 특정 지역에 묶여 있지 않다. 그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세계는 좀 더 근원적이고 시원적이며, 원초적인 것이다.

“작가가 쓸 수 있는 것이 자기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사람이 있고 좁은 사람이 있죠. 30대 때는 사회적인 요소가 작품에 많았는데 40대 이후에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글 속에 담기게 됩니다. 작가의 세계는 태생과 성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말을 찾아서」「아비의 잠」 같은 작품이 제 성장과 태생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아마 독자들이 기억하는 내 작품은 이런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효석의 수많은 작품 중에 「메밀꽃 필 무렵」이 기억되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작가의 태생과 성장과 인성과 밀접한 작품입니다. 빛나는 한 작품인 셈이죠.”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수명이 짧다. 자신의 생명을 열매와 맞바꾸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무는 예술가와 닮았다. 예술가도 생명을 줄여서라도 작품을 남기기를 열망하니까. 쉰이 넘으면 회사원은 은퇴를 해 제2의 인생을 가진다. 그러나 소설가 이순원에게 쉰이란 나이는 제대로 된 전성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필생의 마스터피스를 쓰는 여정이 비로소 시작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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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ㆍ교보문고 선정 `BEST BOOK 20`
세상을 읽는 지혜의 샘


매일경제와 교보문고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BEST BOOK 20` 최종 선정이 완료됐다. 각 분야 전문가 28명이 참여해 3개월간 작업한 끝에 선정된 최종 추천도서는 전 분야를 망라한 20종이다.

추천도서는 3차에 걸친 전문가들 추천을 받아 추천 횟수가 많은 책을 기준으로 뽑았다. 선정된 책은 선정패를 수여함과 동시에 특집 지면을 통해 소개된다. 교보문고에 특설매장을 마련해 전시 판매도 하며 향후 기증운동으로 확산시킬 예정이다.





 
 
 
 
◆ 바리데기(황석영) =

탈북 소녀 `바리`의 고난에 찬 여정과 세상의 고통을 한몸으로 녹여내는 구원의 서사를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이 책은 전쟁과 국경, 인종과 종교,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넘어 상처받은 인류를 위로하고 구원의 길을 모색한다. 창비 펴냄.

◆ 시간의 부드러운 손(김광규) =

김광규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소박한 듯하지만 깊이 읽으면 섬광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김광규의 문학세계가 절절하게 반영된 좋은 책이다. 시대에 대한 관찰,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일상적이고 명징한 언어로 옮기는 작가 특유의 시어가 잘 드러나 있다. 문학과지성사 펴냄.

◆ 리진(신경숙) =

90년대 이후 한국 소설문학계를 주도해온 대표 작가 신경숙의 신작이다. 궁중 무희 신분으로 프랑스 외교관을 사랑한 실존 여인 리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19세기 말, 시대의 역동 속에서 자기만의 운명과 사랑을 만들어간 한 여인의 모습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졌다. 문학동네 펴냄.

◆ 직접행동(에이프릴 카터ㆍ조효제 옮김) =

`21세기 민주주의, 거인과 싸우다`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으로 절차적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여기는 협소한 관점을 뛰어넘어 직접행동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외연을 확장시킬 수 있다는 현실적이고도 이론적인 계기를 제공한다. 교양인 펴냄.





 
 
 
 
◆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정민) =

사상 유례없이 폭넓은 분야에서 기적 같은 학문적 성취를 이뤄낸 전방위적 지식경영인 정약용은 어떻게 지식의 기초를 닦고 정보를 조직했을까. 어떻게 핵심을 장악하고 생각을 단련하고 효율성을 강화했을까.

그의 탁월한 사고와 과학적인 논리를 통해 현대에도 유용한 지식경영 핵심과 로드맵을 제시한다. 김영사 펴냄.

◆ 부의 미래(앨빈 토플러ㆍ김중웅 옮김) =

`미래쇼크` `제3의 물결`을 통해 일찍이 지식기반 사회가 도래할 것을 예견했던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신작. 이 책은 다가오는 제4의 물결을 예견하고 경제에서 사회제도, 비즈니스부터 개인의 삶까지 미래세계를 조명한다. 미래의 부(富)가 어떻게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논거한 책이다. 청림 펴냄.

◆ 미래의 물결(자크 아탈리ㆍ양영란 옮김) =

그동안 자크 아탈리 머릿속에 허구로 존재하던 미래를 향한 개념은 이 책을 통해 명확한 형상을 갖추게 됐으며, 비로소 보다 구체적인 현실성을 획득했다. 미국이라는 제국의 종말과 국가개념 해체 등 구체적인 미래 예측을 담았다. 위즈덤하우스 펴냄.





 
 
 
 
◆ 피터 드러커 마지막 통찰(엘리자베스 에더샤임ㆍ이재규 옮김) =

`지식 근로자`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지식사회 도래를 예견해 현대 경영학의 틀을 마련했던 피터 드러커. 그가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재검토해 70년 넘는 연구 인생을 통해 드러커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을 집대성했다. 명진출판사 펴냄.

◆ 컬처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ㆍ김상철 외 옮김) =

클로테르 라파이유 박사는 기업 마케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객들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과 조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라파이유 박사는 코드분석 작업을 통해 해당 기업들이 획기적으로 수익을 제고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리더스북 펴냄.

◆ 철학의 진리나무(안광복) =

철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하나의 방법론이며 더 나아가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정신의 호흡이다. 복잡한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한 `생각 방정식`인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궁리 펴냄.





 
 
 
 
◆ 제국이라는 유령(알렉스 캘리니코스 외ㆍ김정한 외 옮김) =

이 책에는 2000년 출간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제국`에 대한 대표적인 논평이 실려 있다. 책에 실린 글들은 `제국`에 대해 질문하고 반박한다. 저자들은 지구화, 민족국가, 신자유주의 등 다양한 쟁점에서 `제국론`을 비판하고 있다. 이매진 펴냄.

◆ 노름마치(진옥섭) =

기생, 무당, 광대, 한량…. 홀로 찬란히 꽃피웠으나 때로는 홀로 남아 외로웠던 이 시대 마지막 예인들의 삶과 예술을 담았다.

이 책은 길 위에서 마주한 예술가들을 무대로 이끈 한 연출가의 세세한 기록으로 명인들의 삶이 예술로 승화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각의나무 펴냄.

◆ 인간을 묻는다(제이콥 브로노프스키ㆍ김용준 옮김) =

예술의 창조적 행위에 관여하는 인간 상상력이 자연현상을 발견해내는 과학에서도 똑같이 작용할 수 있을까. 브로노프스키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 이 책은 절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과학과 예술행위, 그리고 두 분야에서 얻는 지식과 감정의 얽힘을 통해 인간존재 근원을 추적한다. 개마고원 펴냄.

◆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ㆍ이한음 옮김) =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수많은 과학적 논증을 펼치며 신이 없음을 입증하고 오히려 신을 믿음으로써 벌어진 참혹한 전쟁과 기아, 그리고 빈곤 문제들을 일깨운다.

"신이 없어도 인간은 충분히 열정적이고 영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해 이제껏 신의 이름 뒤에 가려진 인간 참모습을 제시한다. 김영사 펴냄.





 
 
 
 
◆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한영우 글ㆍ김대벽 사진) =

관념의 영역에 머물던 역사를 `동궐(창덕궁과 창경궁)`이라는 현장으로 불러낸 책이다.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최근 일반에 공개된 후원을 누비는 이 역사 기행은 결국 이곳에서 `수많은 생명이 우리처럼 먹고 자면서 살고 갔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열화당ㆍ효형 펴냄.

◆ 선비답게 산다는 것(안대회) =

이 책은 저자가 옛 글을 읽다 발견한 선비 특유의 모습과 흥미로운 사유의 자취를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던 판에 박힌 선비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선비를 만날 수 있다. 푸른역사 펴냄.

◆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이야기(신시아 샤피로ㆍ공혜진 옮김) =

저자는 이 책에서 회사가 무엇을 기반으로 직원을 평가하는지 무서우리만큼 솔직하게 밝힌다. 회사가 어떤 직원을 승진시키고 누구를 구조조정 명단에 올리는지 알려주고,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지 조언한다. 서돌 펴냄.





 
 
 
 
◆ 이채원의 가치투자(이채원 외) =

대한민국 가치투자 일인자로 꼽히는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전무의 책. 본인의 투자 경험과 사례를 바탕으로 가치투자법을 소개하는 이 책은 내 몸에 잘 맞는 투자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콘 펴냄.

◆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임태희) =

아픔을 통해 청소년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소설. 주인공은 청소년기 아픔을 스스로 소설과 사이버 세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 사이버 세상 속 나와 현실 속 나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소녀 이야기다. 사계절 펴냄.

◆ 손에서 손으로 전하는 고전문학(권혁래 글ㆍ백남원 그림) =

고전을 새롭게 해석해 어린이 독자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한 책.

구구절절 세세하고 불필요한 설명을 붙이는 대신 소중한 우리 문학 전통에 대한 관심을 생생하게 일깨우고 상상력을 북돋울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했다. 산하 펴냄.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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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영업인들의 주도적 노력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주요 온라인 서점들은 대체적으로 도서정가제의 연착륙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의 특성상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가격을 견주어가며 구매에 나서기 때문에 G-마켓이나 모닝365 등의 새로운 사업모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해를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판계의 의견은 이들 또한 책을 파는 일종의 서점인만큼, 원칙적으로 기존의 온오프 라인 서점들에 적용되는 기준을 따르라는 것이다. 다만 G-마켓의 경우, 판매자가 서점이 아닌 출판사인 경우도 있는 까닭에, 출판계 내부적으로 의견조율을 거쳐 어디까지나 개정 발효되는 법률 취지에 맞춰 영업행위를 해야 한다는 원칙만을 정해둔 상태였다. 지난 9월17일, 기존 온라인 서점 관계자들은 이들 신규 플레이어들의 영업행태가 조율되지 않으면 현재의 할인, 경품, 마일리지 등에 관해 협조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올해 추석 직전에는 반디앤루니스(구 서울문고)에서 파격적인 할인판매 공고를 해 파란에 휩싸였다. 오프라인 서점이 운용하는 온라인에 국한되는 것이라 하나, 출판유통의 근본 질서를 해칠 우려가 드는 대목이었다. 이에 관해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협의를 거쳐 “법 발효 이전에 그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업계의 자율적인 도서정가제 정착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이다. 입장을 수정하지 않으면 출판계의 집단적 저항에 부닥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동 행사를 철회하기 바란다.”는 권고를 했다. 이에 관해 반디앤루니스 측에서 대국적인 바른 관점을 세워 행사를 철회키로 해, 다행스럽게도 큰 파행을 겪지 않고 수습 국면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문제는 언제라도 예기치 못한 형태로 불거져 나올 수 있는 것이니만큼, 출판계 내부에서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들을 감안하면,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해 출판계가 감당하여야 할 두 가지 과제가 드러난다. 우선은 온라인 서점들과 오프라인 서점들의 도서정가제 준수를 이끌어내야 하고, 이와 동시에 개별 출판사들의 도서정가제 준수 또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 두 가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20일 새 법 발효 뒤의 도서정가제 상황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사실 사회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자에게는 벌칙이 주어진다. 사람들이 경찰이나 검찰을 두려워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출판계는 이런 규칙 위반자들에게 벌칙을 가할 수단이 결여된 상태다. 과연 어떤 해법이 가능할 것인가?
이런 필요성으로 인해 한국출판인회의는 10월2일 실행위원회를 열어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따른 도서정가제의 정착을 선도하기 위한 행동준칙을 정하여 전 회원들의 서명을 받기로 결의하였다. 현재 법률에선 서점들이 ‘스스로 제공하는 할인방법에 의하여 정가의 10% 범위 안에서 할인판매를 할 수 있다’고 해놓았는데, 우리 출판계에서는 ‘스스로 제공하는 공급방법에 의하여 도서정가제 입법취지에 맞춰 영업행위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행동준칙의 핵심이다. 출판사는 ‘책’이라는 문화상품의 생산자로서, 도서정가제 입법취지를 해치는 서점 영업행위자에게 공동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고, 역으로 개별 출판사들이 도서정가제 입법취지를 해치는 영업행위를 할 경우에도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일방에 관한 단방향 접근이 아니라, 출판계와 서점계에 대한 쌍방향 접근이 되어야만 도서정가제가 정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 행동준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07년10월20일에 발효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담긴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게 영업행위를 하는 서점에 대하여, 한국출판인회의 실행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일시적인 도서공급 중단 혹은 거래정리를 행할 수 있다.
둘째, 개별 출판사로서 특정 서점을 통해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를 해치는 영업행위를 하지 않는다. 아울러 도서정가제의 연착륙을 위해 쿠폰 및 경품의 축소 및 폐지, 마일리지의 법적 한도 내 운용 등을 지지한다.

이에 관해서는 <기획회의> 210호(10월20일 발매) 권두언에도 기고한 바 있으므로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바란다. 글의 요점은 기실 흔들리는 도서정가제의 책임은 출판계에 있으며, 만일 출판계가 단합만 하면 도서정가제 정착은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10월2일의 결의 이후 10월10일 현재까지 50여개 출판사가 서명을 하였고, 출판계의 공론이 도서정가제 정착 쪽으로 잡혀 있는 만큼 300개사 이상의 출판사들이 참여하리라고 전망한다. 이 서명작업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에는 서점 쪽이나 출판사 양쪽으로, 즉 쌍방향으로 ‘도서정가제의 정착을 위한 영업행위’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현재 온오프라인 서점들은 다소 혼란스런 가운데 눈치를 보고 있다. 출판사들 또한 타 출판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눈치 보기를 하는 중이다. 그래서 출판시장에선 ‘도대체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는데 뭐가 어떻게 바뀐다는 거지? 맨날 그대론데...’라는 말들이 떠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업계뿐만 아니라 일반사회나 국회를 통해서 거의 절대합의를 이뤄진 것이 ‘도서정가제의 정착’임을 누구도 정면으로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즉 그 길이 옳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군가 이 도서정가제를 정면으로 훼손하려 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출판계의 공적公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눈치 보기는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 도서정가제의 정착 쪽으로 대세가 쏠릴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다만 도서정가제의 훼손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진 만큼, 그 복원 또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임은 예상해야 한다. 마음은 급하더라도 자세는 느긋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그 동안의 여러 사정들을 감안하면서, 이제는 도서정가제 정착을 위한 출판계 나름의 시행세칙 마련이 중요한 시점이다. 향후 새 법아래 새로운 아이디어로 등장한 마케팅 기법이 적합한지 아니한지를 판단할 시스템 마련이 중요하다. 일마다 법을 들이댈 수 없고, 그런 문제를 소수의 몇 사람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출판계 스스로 납득할만한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갖춰 실제 현장과 제대로 접합되도록 이끌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면에서 출판영업인협의회야말로 선도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일이다. 가령 출판영업인협의회는 각 서점들의 현장에서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를 해치는 행위가 이루어지는지를 감시하고, 문제발생시 유기적으로 그 보고를 올리는 한편, 보고된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나가는 데 있어 적극적인 역할을 펼쳐야 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출판계의 양대 단체와 허심탄회한 논의를 거치면 된다. 그렇게 가는 길이야말로 출판영업인들의 위상도 높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제 새 법이 시행된다. 거기에 맞춰 출판서점계도 변해야 한다. 바뀌지 못한다면 지금까지의 온갖 노력이 그만 무위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의 변화는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써만 가능하다. 그 가능한 힘을 누가 발휘할 것인가? 어떤 면에서 출판영업인이야말로 이런 변화가 두려울지도 모른다. 과거의 관성대로 살고자 하는 인간의 의식을 감안할 때, 필시 이런 새로운 변화가 어찌 달갑기만 하겠는가. 이럴 때 시대의 주인이 되는 사람은 남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가을에 서리가 내리면, 그 서리를 보고 얼음이 얼 것을 짐작하는 사람만이 겨울을 대비할 수 있다. 지금 도서정가제는 작은 싹을 새로 틔우고 있을 뿐이지만, 먼 장래에는 둘레에 넓게 가지를 틔워 그늘을 만들어줄 큰 나무가 될 것임을 미루어 아는 자만이 도서정가제에 맞는 새로운 출판마케팅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07년 출판유통시장에서는 출판현장을 누비고 온 출판영업인들이 쌓아온 지혜 보따리가 풀리기를 고대하고 있다. 한편으론 출판계의 내부자성을 통한 마케팅환경 재편, 또 한편으론 서점계의 도서정가제 입법취지에 맞는 영업활동 유도를 도모하는 것, 그 노력의 중심에 출판영업인들이 서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래에는 <우리는 도서정가제 정착을 선도한다!>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진 행동준칙 선언서를 첨부한다. 선언서 가운데에도 들어가 있지만, 아마도 이러한 선언서 및 출판사의 연서명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출판계와 서점계 쌍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한다. 이 선언서의 행동준칙을 통해 범출판계의 도서정가제 수호 의지가 만천하에 두루 퍼지기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도서정가제 정착을 선도한다!

출판의 미래가치를 담보하는 유일한 길이 도서정가제이다. 새로이 마련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은 도서정가제의 존치를 결정했다. 이는 오랜 동안의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여야 국회의원들의 절대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완전 도서정가제와 견준다면 다소 불완전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나마 혼탁한 출판유통 환경을 개선할 든든한 발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제공하는 할인방법에 의한 100분의 10 범위 안에서 할인가능, 12개월에서 18개월로 신간 범위 확대, 도서정가제에 관한 일몰조항 철폐가 핵심인 이 법률의 실효성 확보의 과제는 이제 출판계로 공이 넘어왔다.

다가오는 2007년10월20일에는 이 법이 발효된다. 과연 법이 바뀌었다고 현실도 바뀔 것인가. 아마도 자연적으로는 법이 현실을 뒤바꾸지 못할 것이다. 주요 서점들이 적법 탈법 불법의 샛길을 오가면서 희한한 수단들을 동원하며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고 있다. 과다한 할인 및 마일리지, 온갖 경품에 현금성 쿠폰 등은 이제 책이 일반 공산품과 다름이 없게 만들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제공하는 할인방법’에 의한 것이라는데, 이제 출판계는 이를 ‘스스로 제공하는 공급방법’에 의하여 정화시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 근본적 출발은 도서정가제의 판을 흔든 책임이 일차적으로 출판계에 있음을 깊게 반성하는 지점이어야 한다. 결국 서점들이 제공한다는 할인방법은 궁극적으로 출판사들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출판계가 단합하면 도서정가제는 관철된다. 구간은 정가제의 예외대상이 되었지만, 출판계가 공급원칙을 준수함으로써 대체적으로 신간과 다름없이 취급되었다. 이제 곧 다가올 법 발효에 발맞춰 소수이지만 대매출을 기록하는 전위 출판사들과, 다수로서 소매출이지만 의미있는 책을 내려 애쓰는 후위 출판사들이 힘을 합쳐 도서정가제를 기둥삼아 출판시장의 질서를 잡으려 한다면 시대의 흐름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출판문화산업 공급자들의 시장선도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는 도서정가제를 무너뜨린 공공의 적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우리는 출판시장의 바람직한 질서를 세우기 위해 집단적인 준칙을 마련코자 한다. 우리가 상식에 입각하여 스스로 제공하는 공급방법은,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압박을 가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물론 최선의 환경은 우리의 이러한 물리적 제재수단이 동원되는 일이 없이 출판유통 질서가 잡히는 것이다. 법 발효를 앞둔 이 시점에 우리들 전위와 후위 출판사가 함께 강철 같은 대오를 형성한다면, 도서정가제는 저절로 자리를 잡을 것이고 출판시장의 질서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저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 준칙은 새로운 21세기 출판 질서를 마련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뜻을 어기는 행위는 책이 뚫어놓은 함께 가는 길을 해치고 문화 동업자로서의 귀한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행동 준칙>

1. 2007년10월20일 발효되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 담긴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에
맞지 않게 영업행위를 하는 서점에 대하여, 한국출판인회의 실행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일시적인 도서공급 중단 혹은 거래정리를 행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의 해제
또한 실행위원회의 의결을 거친다.
2. 개별 출판사로서 특정 서점을 통해 도서정가제의 입법취지를 해치는 영업행위를 하
지 않는다. 아울러 도서정가제의 연착륙을 위해 쿠폰 및 경품의 축소 및 폐지, 마일
리지의 법적 한도 내 운용 등을 지지한다. 이에 관해서는 한국출판인회의 실행위원
회 및 출판유통발전협의회의 보고사항에 토대하여 실행을 구체화한다.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이정원을 필두로 이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서명함으로써
시대의 중차대한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

2007년10월8일

서 명 인 :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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