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1

 

한나절 바지락을 캐고 난 갯벌은

먼데 막소줏집 불빛 하나를 남겨두고

말이 없다

 

어둠이 노을을 삼키고

웅크린 섬들을 지우는 동안

철책이 빗장을 걸고 이빨을 세운다

 

한점 비린내도 없이

저렇게 바람으로 텅 비어버린

갯벌이 나는 두렵다

 

물이랑이

칼등을 세워

비구름 몰려오는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사나운 바람이 엉겨붙어 아우성치는

철책 위로

피를 머금은 달이, 솟는다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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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빈 병

바람이

숲 속에 버려진 빈 병을 보았습니다.

 

'쓸쓸할 거야.'

 

바람은 함께 놀아 주려고

빈 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보오보오;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재혁이에詩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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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침 산책길

소리도 없이

살구나무가 말을 걸어왔어요.

 

아버지 산책길에

 향기로 말을 걸어올 살구나무가 있을줄이야.

 

가시나무 사이에

훤칠하게 키가 큰 살구나무가

조그만 언덕 가운데

꽃향기를 모내며 서 있어요.

 

먼먼 어느날

거기 살구나무 혼자만 남겨두고

누군가 떠나 버린 뒤

봄이면

살구나무는 사람을 그리워했을 거예요.

 

아버지는 한 걸음 두걸음 살구나무 곁으로 다가가

꽃향기로 건너오는 살구나무와

맘속으로 이야기 나누었어요.

그러고는

내일 아침 또 찾아올 거라고

들리짚 않는 소리로 약속을 해 주었어요.

 

살구나무가 향기로 말을 걸어요.

아버지가 맘으로 말을 대신해요.

 

                                                           詩2편에좋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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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한 날

 

싸움하고

집으로 가는 날

내 그림자는 더 길어지고

마을은 더 멀어집니다.

 

나는 바람 찬 언덕 위

앙상한 겨울 나무.

 

어머니의 따슨 손이

내 마음을 녹이고

어머니의 사랑의 말씀이

눈물이 됩니다.

 

그날밤

밤새도록 달려갑니다.

달을 안고

친구에게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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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1. 문막과 대관령 사이

 

막막하게

막막하게

눈은 내리고

우리들의 따스한 목적지

어디인지

 

끝없는 동굴이던 가슴 속

분분하게 눈이 내리는데

침묵의 여행은 계속된다

 

회갈색의 낙엽송 눈꽃 숲 아래

산이 완강하게 언다

베어문 아랫 입술

피가 배이고

수 만 마리의 흰 나비떼

날아오르는 일순

박제가 되는 문막 고빗길

 

언 강을 가로 질러간

발자국들

이 눈발 속에

피붙이의 장례라도 치른 것인지

황망한 발자국마다

눈물 자죽 얼어 있다

 

 

2. 대관령 청솔

 

시퍼런 뿌리 드러내고

무릎 깨어져 흐르던

검붉은 피 내려다 보며

마른 손 잡아 주기를

몇 밤이나 기다렸는가

 

그대들

이 밤도 산에 오르지 않고

칼끝 같은 달빛

청솔 검푸른 가슴

마구 자른다

 

 

3. 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를 돌며

 

오리나무 겨울 눈 움켜 쥐고 있는

저 붉은 손을 보아라

시린 해풍 영 넘어와

터진 줄기에

겨울 바다 그 낮은 이야기를 새기고

오리나무는

주먹 쥔 손 펼쳐보이지 않은 채

바다 건너오는 춘삼월 소식에

귀를 연다

 

산갈대 해풍에 꺾여 눕지 못하고

겨우내 능선에 서서

서걱이는 이웃이 되어

오리나무 주먹 쥔 손

펴보아라 펴보아라 소리친다

 

그대들

오리나무 겨울 눈 움켜쥐고 있는

저 붉은 손을 보아라

 

 

4. 겨울밤 모래톱에서

 

그대들

겨울 밤바다에 섰을 때

엄동에도 식을 줄 모르는

뜨거운 피를 달래며

검푸른 생각 뒤척이는 소리

그대들 가슴을 쳐

그대들은 어두운 해변

언 모래톱의 어디쯤 떠밀려 있는

조개껍질이던가

무수한 맨발자국 뒤축에 수줍게

누워 있는 여름 날 작은 계집아이들의

빛 고운 생각이던가

 

그대들 밤바다에 혼곤이 젖고

그대들의 혼돈이 키운

맑고 따뜻한 안개를 헤치며 오는

높새바람

젖은 살을 파고 드는

겨울 밤바다에 서 보라

 

 

5. 대관령에 밤이 오면

 

밤이 오면 나는 눈을 감는다

그대들의 따스한 손바닥 쥘 수 없어

그저 그대들 앞에 무너지는

어둠이기 위해

나는 밤이 오면 눈을 감는다

 

강물은 밤의 어디쯤서 풀려오는지

저무는 강물은 낮게 차오르고

겨울 철새들의 차가운 날개에 실려

그대들의 말소리 떠난 후에

어둠의 자락 강물에 젖는다

 

 

- <겨울 숲에서>. 열음사(부산 소재 출판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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