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고등학생이 읽으면 좋은 책들
 
 
 
한겨레  
 








 
커버스토리 /


독서를 통한 ‘선행학습’의 장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갈팡질팡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예비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각 교과 교사들이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골랐다. 겨울방학, ‘책’을 읽으면서 교과 관련 ‘지식’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지혜’까지 덤으로 얻어보자.



 

■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지음/효형출판·9500원


이 책은 재미와 유익이란 두 마리 토끼를 갖췄다. 최재천 교수는 낯선 생물학을 왜 남성이 연상에 여인에 끌리는지, 원앙이 과연 잉꼬부부인지, 뻐꾸기가 왜 시계에 들어갔는지 등 일상 속 소재로 쉽게 풀어간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첫 장에 실린 글이 수록된 책이다.





■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지음/솔·1만8000원


좋은 책을 선정하라면 어디서도 빠지지 않는 책 중 하나다. 조선의 명화가 김홍도가 그림에서 손을 거꾸로 그렸다면 그것은 실수일까, 의도된 것일까? 김홍도의 유명한 그림 ‘씨름’은 시합 중반일까, 막바지일까.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고 근처 미술관에 간다면 더욱 빛을 발하는 책이다. / 서울 대광고 조주희








 



 


Baum, L. Frank 지음/Oxford U.K·5900원


고전이라고 하면 느껴지는 딱딱함과 무거움에서 벗어나 주인공인 도로시(Dorothy)와 다른 주인공들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으로 읽으면 원서라는 부담을 떨칠 수 있다. 대화체의 문장들과 쉬운 어휘들 덕에 처음으로 완독해보는 첫 영어책으로 손색이 없다.


Keller, H. 지음/Bantam·6960원


실제 인물의 실제이야기를 마치 옆에서 듣는 것 같은 생생함과 삶에 필요한 교훈을 얻는 맛이 크다. 영어로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동국대 사범대학 부속고 이동현








 



 


■ <편의점에서 배우는 수학> 구로자와 도시아키 외 지음/명진출판·8900원


주인공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기는 수학적인 의문을 찾아내고, 생각하고 해결해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적인 것에서 수학적인 사고를 유도해 내는 과정을 통해 추론능력, 문제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수리논술을 대비에도 좋다.


■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이명옥·김흥규 지음/시공사·1만3000원


이 책은 수학이라는 학문을 감성적인 명화에 연결시켜 거부감 없이 수학적인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게 쓰여져 있다. 한 권의 책으로 역사, 문화, 예술, 수학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통합교과적 교양서이다.

/ 전국수학교사모임 수학독서반운영팀 (인천 작전고 정소이·이지연, 인천 예일고 김선희, 서울 경영정보고 오미영)








 



 


■ <세계사 편력-청소년판> J. 네루 지음/일빛·1만2800원


고교 세계사 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자칫 개별적인 사건의 암기에만 치우치거나 서구 중심적인 역사관에 빠지기 쉽다. 이에 고교 입학 전 이 책을 통해 동양을 포함한 전체적인 세계사 흐름과 균형 있는 역사관을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 <내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유시민 지음/푸른나무·8800원


그동안 파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시대적 맥락과 역사적 주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작업이 눈에 띈다. 학생들이 비교적 읽기 쉬운 이 책은, 제목처럼 역사를 ‘내 머리’로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역사적 사고력을 키우는데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 서울 성심여고 이충근








 



 


■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하이먼 러치리스 지음/에코 리브르·8800원


이 책은 중학교의 과학 교과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을 쉽고 단순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과학을 하면서 흔히 지나치기 쉬운 “관찰”을 강조하면서 옛 과학자들이 어떤 과학적 사고 방법을 거쳤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과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유익한 책이다.


■ <과학사 속의 대논쟁 10> 핼 헬먼 지음/가람기획·1만원


이 책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진리는 수많은 반대파들의 비판을 인내하고 심지어 목숨을 건 주장 후에 얻은 성취임을 알게 해주고 있다. 특히 갈릴레이의 태양중심설, 다윈의 진화론 등은 피상적인 내용을 넘어 과학자의 삶과 갈등을 알게 해 주고 있다. / 서울 대성중 곽효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방학 독서로 공부 밑천 쌓자
예비 중·고생, 책으로 선행학습하기
 
 
한겨레  
 








 

» 학원의 예비 중·고교반이 붐비는 요즘, 교과관련 책을 읽는 것도 훌륭한 선행학습이 된다. 교과서가 생략하고 있는 네용을 미리 알면 교과 학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비 중학생과 예비 고등학생이 맞는 겨울방학은 특별하다. 흔히 이 시기에 하는 ‘선행학습’이 상급학교 생활의 성패를 가른다고 믿는다. 6개월, 1년 선행학습을 위해 개설된 학원의 ‘예비 중고교반’이 붐비는 이유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학원에서 하는 선행학습의 수명은 기껏해야 한학기 또는 1년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교과 학습과 관련된 ‘책’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3년, 6년의 ‘장수하는’ 교과 지식을 쌓을 수 있다.


■ 교과 지식은 ‘책’으로 완성된다=상급학교로 갈수록 교과서는 점점 더 ‘불친절’해진다. 작전고 정소이 교사(수학)는 “중학교까지는 도형을 직접 그려보는 등 직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배우지만 고교에서는 공식으로 계산하고 증명하는 추상적인 내용이 많다”며 “단순한 계산력보다 수학적인 사고력이 점차 요구된다”고 했다. 수학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방법은 교과서에 나와있지 않다. 예비 중고등학생들이 수학 관련 교양서적을 통해 메워야 하는 교과서의 ‘공백’이다.


이처럼 교과서만으로는 교과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대성중 곽효길 교사(과학)는 “교과서는 지동설이 옳다고만 가르칠 뿐, 천년 넘게 천동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다”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생들이 과학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과서가 학생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비약적으로 서술돼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교과서는 어려운 법칙과 복잡한 원리를 설명하면서 무수한 ‘뒷이야기’들을 행간에 생략하고 있다. ‘나무’만을 가리키는 학교 수업에서는 ‘숲’을 보는 지식을 가진 학생이 유리하다. 예비 중고등학생들의 책을 통한 ‘선행학습’은 ‘숲’을 미리 조망하는 작업이다.





■ 책을 통해 교과에 대한 ‘흥미’를=중학교부터는 학사일정이 정기적으로 치르는 내신시험에 맞춰진다. 고교에 진학하면 수능 모의고사까지 더해져 학생들은 거의 매달 시험의 압박에 시달려야 한다. ‘시험’이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처럼 돼버린 현실에서 학생들은 교과 공부에 ‘흥미’를 잃기 쉽다. 동국대사범대학부속고 이동현 교사(영어)는 “시험 때문에 영어가 싫다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며 “교과서에 실린 내용만으로 영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유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예비 고등학생들은 미리 영어 원서를 읽는 습관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 원서를 읽는 것은 영문법이나 영어단어를 공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활동이기 때문에 중학교까지 쌓아온 영어 실력을 총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사회 교과 가운데 지리과목과 역사과목은 ‘암기과목’이라는 편견때문에 ‘새내기’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연현중 이영실 교사(지리)는 “중학교 1학년은 제일 처음 지리를 배우게 되는데 생소한 개념이 많아 무작정 외우려고 하다보면 쉽게 질릴 수 있다”며 “지리교과 관련 책을 미리 읽으면서 흥미를 느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낯선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수학은 책을 통해 ‘흥미’을 불러일으키기에 좋다. 정소이 교사는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종종 ‘실생활에서도 쓰이지 않는 복잡한 공식을 왜 배워야 하는 거냐’는 아이들의 반발(?)에 부닥치곤 한다”며 “수학의 실용적인 쓰임을 설명하려면 수학 관련 교양서가 필수적이다”고 했다.


■ 수능과 논술을 위한 ‘투자’=교과 관련 독서는 좁은 의미에서 ‘입시’와도 맞닿아 있다. 내신은 교과서를 바탕으로 이뤄진 학교 수업에서 출제되지만 수능과 논술은 그렇지 않다.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고 수준높은 사고력을 요구한다. 정소이 교사는 “수능 수리영역의 문제는 계산이 복잡하지 않다. 다만 그 계산식을 도출해내는 사고의 과정이 복잡할 뿐이다”며 “수학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며 따라서 문제집을 푸는 것 못지 않게 수학 관련 서적을 읽고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대성고 조주희 교사(국어)는 “고교 시절 가장 더디 점수가 오르는 게 언어영역이다”며 “고교 과정이 요구하는 어휘력과 독해력이 없으면 언어영역은 물론이고 다른 교과의 학습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특히 예비 고등학생들은 긴 지문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도록 끈기있게 독서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교과서에 실린 지문이 수록된 책을 찾아 완독하면 교과 내용에 대한 훌륭한 ‘선행학습’이 된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교적 배려 때문에 사실을 왜곡했다”



‘일본 고유 영토’ 표기 주장하는 ‘새역모’ 후지오카 노부카츠 회장 인터뷰


▣ 도쿄=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 후지오카 노부카츠 회장




“외교적 배려도 역사 왜곡이다.”
단호했다. 묘한 만족감과 자신감도 엿보였다. 자신들의 주장이 국가의 방침이 됐으니, 한껏 힘을 받을 만했다. 그래서다. 조금 두렵기도 했다. 극우적 사관으로 무장한 후지오카 노부카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쓰쿠루카이) 회장(65)은 “다케시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교육 주권에 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지난 7월18일 도쿄 분쿄구 혼고 새역모 사무실에서 1시간 남짓 후지오카 회장을 만났다. 후지오카 회장이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문제가 명기됐는데.
=다케시마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의 고유 영토다. 이번엔 처음으로 법적 구속력도 없는 해설서에 실으면서, 문서화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였다. 기왕 문서화할 거라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써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다. 이 점을 ‘외교적 배려’라는 말로 철회한 것에 대해선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대대적으로 환영할 줄 알았는데, 유감이라니 뜻밖이다.
=뭐, 기쁘기보다는 당연한 거니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내용적으로 특별할 게 없다. 오히려 ‘외교적 배려’ 때문에 사실을 왜곡한 게 문제다.
그 ‘배려’에 대해 한국에선 말도 안 된다고 보는데.
=한국에서 그렇게 반응한다 해도 별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만 묻자. 그렇게 말하는 한국은 일본에 대해 무슨 배려를 하고 있나?
왜 하필 두 나라 정상이 ‘한-일 새 시대’를 말하는 시점에서 이번 발표가 나왔다고 보나.
=전부터 교과서 검정에서 고유 영토로 기술하게 돼 있었다. 외무성 홈페이지에도 그렇게 나와 있고, 교과서 검정에도 그렇게 됐다. 학습지도요령에 분명히 명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므로 문부성이 이번에 하려고 했는데, 한국이 반발하니까 외교적으로 ‘고유 영토’란 표현을 넣는 것을 연기한 것이다.
한국에선 지지율이 낮은 후쿠다 총리가 ‘우파의 압력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언론 보도야 다 만들어지는 것이고, 빗나간 억측이라 본다. 지금까지의 방침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문서화한 것일 뿐이다. 명백히 일본 영토라고 기술하지 않고 ‘양국 주장에 차이가 있다’는 식으로 썼다. 영유권 문제가 정치·외교 문제에 좌우돼선 안 된다. 영토 문제 교육엔 근본이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이번 발표에 대한 반발이 거센 이유가 뭐라고 보나.
=글쎄, 한국은 원래 그래왔지 않나. 영토 문제에서는 타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 나라에서도 타협할 생각이 없지 않은가? 우리도 타협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전쟁을 해야 하나?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서 해결하는 방법밖에 없다.
재판에서는 이길 수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일본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된다.
근거가 뭔가.
=(웃음) 이 자리에서 애기하자면 시간이 걸리니까 그만두자.
1929년 일본 사회과부도에도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나오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자리, 다른 기회에 하자. 철저히 제대로 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자.
왜 지금까지 국제법에 호소하지 않았나.
=주장이 다르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신네 나라에서 어떻게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는지를 문제 삼아 괘씸하다고 난리친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마찬가지로 일본도 일본 입장이 있으니 다케시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일본의 교육 주권에 관한 문제다.
앞으로 역사·영토 문제에 대해 어떤 활동을 해나갈 생각인가.
=일본 젊은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자기 언어로 잘 이야기하지 못한다. 일본이란 나라가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외국에 없는 고유의 제도나 특징, 예를 들면 천황·황실이 있다는 것, 그게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일본 문화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문부성도 같은 인식이다. 우리의 주장이 국가의 방침이 됐다. 영토 문제는 역사와 관련돼 있고, 지리·공민 과목과도 관련이 있다. 국가 주권의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다. 정확히 가르쳐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사넌센스] 영혼 없는 유령이 배회한다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유령 하나가 반도 남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재주는 영혼 없는(혹은 없도록 강요받는) 무리들을 홀리는 것. 유령은 모든 걸 바꾸라며 피리를 분다. 그리고 반도 남쪽은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행정안전부는 이전 정부의 훈령과 지침 등을 한꺼번에 폐지하기로 했고, 교육과학부는 ‘좌편향된’ 사회·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13세기 독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위반한 위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피리 소리로 마을 아이들을 꼬드겨 데려갔다. 반면 21세기 반도 남쪽 유령의 피리 가락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찾기 위함인가. 유령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으로도 모자라 ‘일찍 일어나는 새’ 바람까지 일으킨다. 순진하게 ‘피리 사내’를 뒤따랐던 아이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유령이 데려갔나.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반도 남쪽에서 사라졌다. 5월15일 저녁 8시50분 인천공항. 서울·경기·인천 지역 이주노조의 토르너 림부(네팔) 위원장과 압두스 사부르(방글라데시) 부위원장은 방콕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졌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게 붙잡혀 청주보호소에 감금된 지 13일 만이다. 지난해 11월 단속된 당시 지도부 3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내고도 강제 출국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이주노조는 이번엔 더 다급하게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한 터였다.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는 표적 단속으로 이들의 인권이 침해됐는지를 가리기 위해 강제 출국을 유예하라는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으나 소용없었다. 이쯤에서, 영혼 없는 유령이라도 품음직한 의문이 든다. (1)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1만여 미신고 이주노동자 가운데 하필 지도부 두명만 단속·감금되고 강제 출국당한 까닭은? 참고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서울지방노동청이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건 부당하다며 신고필증을 내주라고 판결했다. (2) 정부 합동단속 이틀 만에 10여 명의 단속반원이 집 앞에 잠복하다 이들을 붙잡은 건 표적 단속일까, 아닐까?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노동권과 결사의 자유를 그들에게서 박탈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정부의 시도”라고.

반도 남쪽과 프랑스의 차이는 뭘까. 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라진 그날, 프랑스에선 5만여 명(주최 쪽 주장, 경찰 발표는 1만8천여 명)의 교사와 10대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원을 대폭 감축하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나라 학교의 학생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와 교감들이 학생의 시위 참가를 막으러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시교육청은 중·고교 교감 670명과 장학사 222명 등 892명을 5월17일 촛불집회 현장에 내보내 학생지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령이 보기에 학생부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경찰의 정보과 형사는 집회를 신고했다가 취소한 전주의 한 고등학생을 수업 중 불러내 겁주고, 임기를 보장받은 경찰청장도 시위대 겁주기에 여념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랬을까?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과 반도 남쪽의 인권을 걱정하는 촛불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건 사슬뿐이요, 얻을 건 세상이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주 4·3사건 60주년] 뉴라이트 교과서의 반란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대안교과서> 출간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가 제주를 분노로 들끓게 하고 있다.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안교과서>는 144~145쪽에서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다.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 세력이 대학민국의 성립에 저항했으며 이들이 1948년 4월3일에 제주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이 사건은 “김일성의 ‘국토완정론’(남한을 미국 지배에서 해방시켜 국토를 완정하겠다는 이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이같은 무장반란과 사회 각층에 광범히 침투한 좌파 정치 세력에 대처하고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닥다리 ‘4·3 폭동론’ 그대로 들고와”

이에 제주 4·3연구소는 “지금까지 많은 자료 분석이 있었지만 김일성은 물론 남로당 중앙당이 4·3 사건에 개입한 근거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발발한 사건이 ‘반란’이라면 그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반란’이냐”고 따져물었다.
역사적 시점의 혼돈도 지적됐다. 산간지대 초토화 작전은 정부 수립 이후 감행돼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1차 책임이 있는데도 <대안교과서>가 오로지 미군정청만 언급한 데 대해, 4·3연구소는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건국자·수호자로 미화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 정권이 세워지기도 전에 일어난 4·3 사건이 어떻게 김일성 정권 수립 이후에 나온 ‘국토완정론’의 노선을 따랐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안교과서>의 책임편집을 맡은 이영훈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4·3 사건을 남로당이 주도했다는 것은 자료가 다 있으나 그걸 일일이 말할 순 없지 않느냐”며 “나는 경제사 전문가고 전공자가 아니니 세세한 부분은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했다. 또 “제주 4·3연구회가 낸 성명서는 읽어보았으나 아직 그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서 집필자 12명 중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역사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냐,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답했다. 다만 “앞으로 토론이 일어나고 비판이 있으면 바꿔나갈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덧붙였다.
4·3연구소 박찬식 소장은 “보수우익 세력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구닥다리 ‘4·3 폭동론’을 그대로 들고 나와,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까지 한 4·3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안교과서>를 폐기하고 4·3 영령 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제주도민과 4·3 유족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정당의 비난 성명도 잇따르는 가운데, 성명을 내지 않은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대변인조차 “교과서 내용이 한쪽에 치우쳤다.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인 사건을 전문가도 없이 이념의 잣대로만 재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교과서 막아달라’ 인터넷도 후끈

분노는 인터넷을 타고 제주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포털 사이트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좀 막아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1만 명 서명을 목표로 3월25일에 올라온 이 청원에는 하루 만에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같은 날 ‘뉴라이트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란 청원도 올라왔지만 200여 명이 서명했을 뿐이다. 제주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앞으로 제주 지역 단체들이 <대안교과서> 사건을 쟁점화해나갈 것이고 조만간 유족들도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60년 세월이 지났건만 4·3은 여전히 피투성이이다.



[제주 4·3사건 60주년] 오사카의 증언 “학살의 섬에서 살아남았다”
[제주 4·3사건 60주년] 피해 인정 못 받고 죽어야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