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60주년] 뉴라이트 교과서의 반란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대안교과서> 출간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포럼이 출간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가 제주를 분노로 들끓게 하고 있다.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대안교과서>는 144~145쪽에서 제주 4·3 사건을 ‘좌파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다.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 세력이 대학민국의 성립에 저항했으며 이들이 1948년 4월3일에 제주도에서 무장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또한 이 사건은 “김일성의 ‘국토완정론’(남한을 미국 지배에서 해방시켜 국토를 완정하겠다는 이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이며 “이같은 무장반란과 사회 각층에 광범히 침투한 좌파 정치 세력에 대처하고자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구닥다리 ‘4·3 폭동론’ 그대로 들고와”

이에 제주 4·3연구소는 “지금까지 많은 자료 분석이 있었지만 김일성은 물론 남로당 중앙당이 4·3 사건에 개입한 근거조차 제시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발발한 사건이 ‘반란’이라면 그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반란’이냐”고 따져물었다.
역사적 시점의 혼돈도 지적됐다. 산간지대 초토화 작전은 정부 수립 이후 감행돼 당시 군 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에게 1차 책임이 있는데도 <대안교과서>가 오로지 미군정청만 언급한 데 대해, 4·3연구소는 “뉴라이트가 대한민국 건국자·수호자로 미화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흠집을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 정권이 세워지기도 전에 일어난 4·3 사건이 어떻게 김일성 정권 수립 이후에 나온 ‘국토완정론’의 노선을 따랐단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안교과서>의 책임편집을 맡은 이영훈 교수는 <한겨레21>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4·3 사건을 남로당이 주도했다는 것은 자료가 다 있으나 그걸 일일이 말할 순 없지 않느냐”며 “나는 경제사 전문가고 전공자가 아니니 세세한 부분은 말할 처지가 못 된다”고 했다. 또 “제주 4·3연구회가 낸 성명서는 읽어보았으나 아직 그에 대해 구체적인 의견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서 집필자 12명 중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역사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냐, 그런 말 하지 마라”고 답했다. 다만 “앞으로 토론이 일어나고 비판이 있으면 바꿔나갈 것이니 기다려달라”고 덧붙였다.
4·3연구소 박찬식 소장은 “보수우익 세력이 정권교체기를 틈타 구닥다리 ‘4·3 폭동론’을 그대로 들고 나와,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공식 사과까지 한 4·3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대안교과서>를 폐기하고 4·3 영령 앞에 사죄하지 않으면 제주도민과 4·3 유족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정당의 비난 성명도 잇따르는 가운데, 성명을 내지 않은 한나라당 제주도당의 대변인조차 “교과서 내용이 한쪽에 치우쳤다. 진상 규명이 진행 중인 사건을 전문가도 없이 이념의 잣대로만 재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교과서 막아달라’ 인터넷도 후끈

분노는 인터넷을 타고 제주를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포털 사이트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좀 막아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1만 명 서명을 목표로 3월25일에 올라온 이 청원에는 하루 만에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다. 같은 날 ‘뉴라이트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란 청원도 올라왔지만 200여 명이 서명했을 뿐이다. 제주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앞으로 제주 지역 단체들이 <대안교과서> 사건을 쟁점화해나갈 것이고 조만간 유족들도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60년 세월이 지났건만 4·3은 여전히 피투성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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