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디지털에 책을 넘겨주다
구글, 전세계 모든 책 디지털화 야심… 저작권 해결 나서
美 '디지털 북' 年70% 성장… EU도 본격 가세
조형래 기자 hrcho@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정진영 기자 cya@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Url 복사하기
스크랩하기
블로그담기









12일자 조선일보 B2면에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광고가 실렸다. 광고는 '당신이 책을 쓰거나 출판한 적이 있는 저작권자라면 구글과 미국 저작권 협회가 합의한 내용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구글이 미국 전역의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서적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미국 외에 거주하고 있는 저작권자들에게도 허락을 받기 위한 것이다. 구글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백개의 신문에 같은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구글은 이미 전 세계 2만개가 넘는 출판사와 제휴, 700만권이 넘는 책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런 구글이 이번에는 미국 전체 도서관을 통째로 디지털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책 읽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방대한 디지털 작업과 접는 디스플레이 같은 혁신적인 휴대단말기의 보급으로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서적을 PC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로 볼 수 있다. 지하철 출근길에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소장된 서적을 휴대폰으로 내려받아 읽는 꿈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이인화 교수는 "지식의 교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면서 종이로 된 정보매체는 효율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구글이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면서 과거 산업화 시기에 정립된 책의 저작권 개념과 독서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 2004년부터 전 세계 도서를 디지털화하겠다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글의 야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저작권 문제였다.






◆구글, '책 읽는 방식을 바꾼다'

미국의 주요 저작권 협회는 구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며, 2년여 동안 지루한 법정 다툼을 하고 있었다. 구글은 그러나 작년 10월 미국의 작가협회·출판사협회와 도서 저작권 및 수익 배분에 합의, 저작권 문제를 단숨에 넘어섰다. 이 협상은 미국 도서관에 서적이 있는 모든 저작자와 출판사에 적용된다.

구글과 미국 저작권자들의 합의안에 따르면, 구글은 저작권 협회에 1억2500만달러(약 1750억원)를 제공해 도서 권리 등록기관(Book Rights Registry)을 설립, 운영하기로 했다. 미국 작가협회와 출판사협회에 소속된 회원들은 본인이 원치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자동 등록된다. 또 미국 내 도서관에 자신의 서적이 소장돼 있는 해외의 저작권자도 이 기관에 등록해 수익 배분 등 권리행사를 할 수 있다.

구글은 이 기관에 등록된 작가의 저작물에 대해서는 본인의 개별허락 없이도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또는 온라인을 통해 판매를 주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광고와 판매 수익 중 60% 이상을 저작권자에게 제공한다. 미국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의 경우, 먼저 개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서 전자책을 제작하지만 구글은 먼저 인터넷 서비스를 하고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도서관에 사장돼 있는 서적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에 대해 "엄청난 자금력을 지닌 구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구글의 정보 독점력이 갈수록 심화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책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의 전자책 시장규모는 2008년 현재 5240만달러 수준이며 최근 연간 성장률은 70%를 넘어설 정도로 가파르다. PC 외에도 스마트폰, 킨들(Kindle) 같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속속 출시되고 있는 점도 전자책 시장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경우, 킨들 단말기를 통해 20만권이 넘는 전자책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 역시 애플의 '아이폰'과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구글폰'을 통해서도 디지털 도서를 제공할 예정이다. 

EU도 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 박차

미국에 구글이 있다면 EU에는 '유럽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가 있다. 유럽의 문화와 과학 유산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2005년 3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구글이 도서관 자료 디지털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구글의 문화적 도전에 대처하라"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EU가 힘을 합쳐 서적과 문서 디지털화를 추진, 지난해 11월 디지털도서관 '유로피아나'를 열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암스테르담의 릭스뮤지엄 등 유럽 전역 1000개 이상의 문화 단체들이 소장하는 문서와 그림 등 300만건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유로피아나는 공개 직후 한 시간에 1000만명이 넘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문을 잠시 닫기도 했다.






▲ 그래픽=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마존·구글, 전자책시장 선점 격돌 [중앙일보]


아마존 리더기 ‘킨들2’ 공개
잡지 크기에 책 1500권 담아


‘전자책(e-book) 시장은 우리가 접수한다’.


 
 
세계 e-book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콘텐트시장 선점을 놓고 아마존과 구글의 다툼이 달아오르고 있다. 이 경쟁에 불을 붙인 것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24일 출시하는 e-book 리더기 ‘킨들(kindle)2’다. 무선으로 책을 구매하고 내려받아 읽을 수 있는 기기인 ‘킨들’은 우리말로 ‘불을 붙이다’는 뜻으로, 외신들은 “킨들이 말 그대로 e-book 시장 경쟁에 더 큰 불을 붙이고 있다”고 전했다.

아마존은 최근 홈페이지(www.amazon.com)에 제프 베조스 CEO의 편지를 게재해 네티즌에게 킨들2의 탄생을 알린 데 이어 9일(현지시간) 뉴욕의 모건도서관에서 발표회를 열었다. 기존 ‘킨들’이 출시된 지 1년3개월 만이다.

아마존에 따르면 킨들2는 기존 것보다 얇아진 반면 메모리를 7배나 늘렸다. 두께는 0.9㎝(0.36인치)로 얇은 잡지 부피와 비슷하지만 1500권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 문자로 된 텍스트를 소리로 전해 주는 ‘오디오북’ 기능도 추가됐다. 베조스는 편지에서 “책과 신문·잡지는 물론 블로그까지 ‘킨들’로 읽거나 들을 수 있다”며 “아마존의 꿈은 앞으로 모든 언어로 된 모든 책을 60초 안에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NYT)는 “아마존의 목표는 출판계의 애플이 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NYT는 “애플이 아이팟을 출시하고, 디지털 음원숍인 아이튠스토어(iTune Store)를 통해 음악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e-book 시장의 지배자가 되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마존에서 판매하고 있는 e-book 콘텐트는 23만 종이다. 지난해 6월까지만 해도 그 절반인 12만5000종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글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이미 700만 종의 책을 스캔해 e-book 콘텐트를 준비해 온 구글은 최근 이를 휴대전화 등에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플도 아마존의 독주를 막을 경쟁자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애플의 아이폰(iPhone)과 아이팟 터치(iPod Touch·애플의 PMP)로 콘텐트를 내려받아 읽고 있는 독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팟 터치가 229달러대에서 시작하는 데 반해 가격이 359달러에 달하는 킨들2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다.

반면 국내 e-book 시장은 현재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국내 최고의 전자책 서비스업체인 ‘북토피아’는 경영권 분쟁 등에 휘말리면서 서비스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북토피아에 콘텐트를 넘겼던 출판사들이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e-book 출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이상수 북큐브네트웍스 콘텐트 사업본부 과장은 “e-book의 유행에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국내 출판사들은 아직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그러나 국내 몇몇 대기업이 킨들과 경쟁할 e-book 리더기를 개발하고 있고, 여러 업체가 e-콘텐트를 축적하고 있는 등 e-book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분주하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참여문학' 부활의 기지개 켜나

촛불집회·용산참사등 계기 새로운 형식의 작품 속속 등장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1-21일 용산 재개발 지역 참사 현장을 찾은 난쏘공 조세희 작가가 현장을 둘러 보고 있다. /조영호기자voldo@hk.co.kr
2-시인 백무산
3-소설가 김숨 /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4-소설가 김사과
5-소설가 이시영




지난해 촛불 집회 현장 /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지난 달 용산 철거민 사태로 30여 년 전 발표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회자되고 있다. 조세희 작가가 쓴 이 작품은 도시 재개발 뒤 숨겨진 저소득층의 처절한 삶을 그린 단편 소설. 조세희 작가는 아픈 몸을 이끌고 용산 현장에 나왔고 언론은 조세희 작가의 발언과 용산참사 현장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시영 시인이 1986년 발표한 시 '공사장 끝에' 역시 386세대를 중심으로 다시 애송된다. 국어 교사 김유정(36) 씨는 "용산 참사 후 이시영 시인의 시를 다시 읽는데 울컥하는 마음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해 촛불집회와 최근 용산참사 등을 계기로 참여문학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 80년대 문인들의 작품을 비롯해 2000년대 발표된 작품 중 현실 참여의식이 뚜렷한 작품들이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2009 참여문학

용산 참사로 주목을 받는 것은 조세희 작가 뿐만이 아니다. 80년대 저항시인들은 새로운 경향의 참여문학을 선보이고 있고, 2000년대 한국사회의 한계를 지적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새삼 거론되고 있다.

중견 작가인 이시영 시인은 최근 용산 참사를 그린 시 '경찰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를 창비 주간 논평에, 가자지구 사태를 비판한 시 '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를 현대문학 2월호에 발표했다.

'불길 속에서 뛰쳐나온 농성자 3, 4명이 연기를 피해 옥상 난간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결국 매트리스도 없는 차가운 길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날의 투입 작전은 경찰 한명을 포함, 여섯구의 숯처럼 까맣게 탄 시신을 망루 안에 남긴 채 끝났으나 애초에 경찰은 철거민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철거민 또한 그들을 전혀 자신의 경찰로 여기지 않았다.'

(시 '경찰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중에서)

이시영 시인 이외에도 8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인 백무산 씨가 지난 해 말 시집 <거대한 일상>을 출간했고, 장경린 시인은 '재개발 지역'이란 연작시를 2005년 잇따라 내놓은 바 있다.

2000년대 작가 중에는 박민규, 김애란, 손홍규, 김사과 씨 등이 부각된다. 모두 외국인 노동자, 청년실업, 사교육 문제 등 한국사회 다양한 문제들을 세련된 언어로 다듬은 작품을 선보인 작가들이다.

왜 다시 참여문학인가?

순수문학과 대치되는 참여문학은 흔히 '현실 참여의 정신을 강조하는 문학'성향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1950년대 전후세대 문학과 1980년대 민중문학(민중의 이익을 이념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이 대표적인 참여문학으로 분류된다.

박수연 문학평론가는 "90년대 들어서면서 참여문학의 문학적 미학이 한계로 지적되고, 또 한편으로 참여문학을 하는 문인들이 주장했던 '문학이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논리가 미학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포장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쓰였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80년대 참여문학의 미학적 한계가 드러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90년대 동구권 붕괴나 소련의 해체 등 사회 변화도 참여문학 쇠퇴를 가져왔다.

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문학의 미학적 실험'이 문단의 화두로 떠올랐다. 문장과 단어 형식을 파괴한다든지, 서사를 파괴한 채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작품이 등장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문학이 주목을 받았다.

최근 다시 현실 참여적 문학이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새로운 형식의 현실 참여적 문학 작품이 속속 등장하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80년대 참여문학이 문인들의 현실참여에서 비롯된 '사회 고발'적 성격이 강했다면, 2000년대 젊은 작가군은 현실의 문제를 소재로 빌려와 문학적 성취로 연결시킨 특징이 엿보인다.

박수연 평론가는 "과거 참여문학은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담아내느냐가 관건이었지만, 현재 작가들은 자신의 미적 완성도에 포커스를 맞춘다"고 분석했다. 그는 "기륭전자 투쟁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송경동 시인과 같은 몇몇을 제외하면 현장보다는 미학적 상상 속에서 작품을 쓰는 것도 최근 작가들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지난 해 말 출간된 김숨의 <철>은 '철'로 상징되는 산업사회 이면의 어두운 기억을 기록한 소설이다. 조선소 노동자들은 오로지 철선의 완성을 위해 도구처럼 쓰이다가 마모되고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진다.

자본을 통한 물신화 과정과 자본주의 발전사 등 다분히 현실 고발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파편화되고 도구화된 개인을 주목한다는 점에서 80년대 참여문학과 차이를 보인다. 산업화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하는 방식도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우화적 비유를 주로 쓴다.

얼마 전 2009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은 촛불 집회의 단상을 드러냈고, 역시 이상문학상의 최종 후보로 같이 올랐던 조용호의 '신천옹'은 재개발지역을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 역시 촛불집회와 재개발지역을 소재로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고통과 일상을 드러낸다.

김형수 문학 평론가는 "80년대 참여문학은 연대기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공동체, 집단에 대한 과제에 몰두하다 개인의 숨결을 손상시킨 부분이 있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은 그런 강박관념에서 자유롭다. 현실과 접촉 속에서 소재를 찾아 건강한 미학적 소통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사과의 소설 <미나>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입시지옥으로 변한 오늘의 교육문제와 그들의 아버지인 386세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작가는 386세대의 지적, 윤리적 허영심을 '발가락만한 케이크'라고 묘사한다.

'그들은 없는 돈에 쪼들려가며 기어코 값비싼 디저트케이크를 가득 사서 대문에 덜어놓는 것으로 자신들의 하층계급의 삶을 감추고 기만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케이크는 천사의 날개같이 달콤하여 황홀하게 혀끝에서 녹으나 그 발가락만한 케이크만 빼면 아무것도 없다.' (소설 <미나> 중에서)

박민규의 소설 <지구영웅 전설>은 '겉은 노랗지만 정신은 하얀' 바나나맨을 통해 미국의 슈퍼특공대의 들러리가 된 친미주의자를 꼬집는다.

'내 이름은 바나나맨.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과 함께 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특공대의 일원이다!' (소설 <지구영웅 전설>중)

미국이 창조한 만화 속 영웅의 심부름을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는 한국의 초등학생 '바나나맨'을 통해 반미(反美)의식을 선보인다. 무거운 주제를 담되 가벼운 그릇을 택했다.

참여문학 계속 될까?

그렇다면, 주목을 받기 시작한 2009년 참여문학이 과연 주류를 형성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세태가 이렇게 전개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참여문학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김형수 평론가는 "그동안 미학적 실험과 모험이 핵심 주제였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작가들의 미학적 실험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동시대인과 호흡이 가능한 것인지 작가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즉, 촛불시위와 기륭전자 시위, 용산 참사 등 잇따른 사회문제가 계속 출현하면서 작가들이 다시 현실 사회문제를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만 작가들이 갖는 사회 문제의식을 80년대와 같은 '주류 문학 경향'으로 연결시킬 수 있느냐는 아직 미지수다.

박수연 평론가는 "사회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그것에 자신의 가장 절실한 삶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촛불에 대해 수많은 문인이 말했지만, 작품으로 확장시키는 문인은 보지 못했다. 아직까지 현재 문인들은 정치적 소신과 문학세계를 분리시켜 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시영 시인 인터뷰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현실이 시를 부른 것이다"

이시영 시인은 196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중진 작가다. 1980년부터 24년간 (주)창비에 몸담으며 대표적인 민족문학 작가로 꼽힌다. 1982년도에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 출판으로 안기부에 연행되기도 하고, 1989년 <창작과 비평>이 복간된 이듬 해, 황석영 작가의 방북기를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실었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최근 용산 참사를 비판한 시 '경찰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를 창비 주간 논평에, 가자 지구에서 펼쳐진 이스라엘 사태를 비판한 시 '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를 현대문학 2월호에 발표했다.

- 80년대 작 '공사장 끝에'가 최근 다시 애송되고 있다. 당시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됐던 사건이 있나?

= 그때는 철거가 많았다. 철거 현장의 단상을 쓴 것이지 특별히 어떤 사건을 염두하고 쓴 것은 아니다. 그 작품은 이미 20년 전의 작품이다.

- 시 '경찰은 그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를 비롯해 현대문학 2월호에도 시 '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를 발표했다. 계기가 있나?

= 나 나름대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새로운 민중시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런 시도를 해왔다.

- 최근 용산 참사와 관련해 철거민 문학, 참여문학이 다시 각광받는다고 말한다. 동의하는가?

= 한미 쇠고기협상, 용산 참사 등 민주주의의 퇴행을 보면서 지금 이 시점에 리얼리즘 문학이 더 필요하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한다. 문학이란 시대정신과 호흡 속에서 탄생한다. 시대와 함께 가는 것이다.

- 오랜 기간 창비의 주간으로 재직하며 누구보다 참여문학의 부흥과 쇠퇴를 지켜본 장본인이다. 20년 전의 참여문학과 지금의 젊은 작가들이 추구하는 문학,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나?

= 시대가 달라졌으니 민중문학 역시 정교해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고발문학이 아니라 정교하게 정치 고발적인 문학이 탄생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 용산 참사에 대한 본인의 시를 '새로운 형식의 참여문학'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새로운 민중문학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나?

= 그런 문학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본인이 시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시를 부른 것이다. 6명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아무렇지 않은 이런 정권 하에서 시인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태백산행 - 정희성 

 

눈이 내린다 기차 타고 

태백에 가야겠다 

배낭 둘러메고 나서는데 

등 뒤에서 아내가 구시렁댄다 

지가 열일곱살이야 열아홉살이야 

 

구시렁구시렁 눈이 내리는 

산등성 숨차게 올라가는데 

칠십 고개 넘어선 노인네들이 

여보 젊은이 함께 가지 

 

앞지르는 나를 불러 세워 

올해 몇이냐고 

쉰일곱이라고 

그중 한사람이 말하기를 

조오흘 때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한다는 

태백산 주목이 평생을 그 모양으로 

허옇게 눈을 뒤집어쓰고 서서 

좋을 때다 좋을 때다 

말을 받는다 

 

당골집 귀때기 새파란 그 계집만 

괜스레 나를 보고 

늙었다 한다 

 

 

- <돌아다보면 문득>(창비, 20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억속 아버지는 항상 소와 함께였다”
이충렬 감독이 말하는 ‘워낭소리’
 
 
한겨레 이재성 기자
 








 

» 이충렬(43) 감독
 

이충렬(43) 감독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3만~4만명이면 대박, 5만명이면 초대박인 독립영화계에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3주 만에 15만명을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50만명도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극장 관계자들은 “평일도 자리가 없어 보조석을 놓아야 할 판”이라며 즐거운 엄살을 떨고 있다.

이 감독이 영화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프리랜서 방송 피디였던 그가 애초 방송용으로 기획한 <워낭소리>는 방송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작품이다. 제작자들도 “소 찍어서 돈 되겠냐”며 박대했다. 어렵게 나선 제작자마저 막판에 방송이 불가능해지자 손을 털고 떠났다. (그렇게 남들이 버린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이가 다큐 영화 <우리 학교>의 고영재 피디다.)


TV용으로 기획했다 퇴짜 맞아
제작자도 막판 손털고 떠나
설움딛고 3주만에 15만명 돌파
“아버지 향한 자식의 마음이죠”


이 감독이 방송사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워낭소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감독은 스스로를 “실패한 피디”라고 불렀다. 방송사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방송사가 보기에 그는 심각한 다큐만 만드는 사람이었다. 강원랜드를 배경으로, 폐광이 된 사북탄광 광부들의 뿌리 뽑힌 삶을 담은 다큐는 “선악 개념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 밖에 비전향 장기수, 종군 연예인 등을 찍은 수백 개의 테이프가 그의 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1억원가량 된다.

미대를 가고 싶었던 이 감독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꿈을 접고 고려대 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대학 졸업 뒤 애니메이션 일을 하다 방송으로 넘어왔다. “프리랜서 피디라는 게 쇼든 뭐든 닥치는 대로 찍어 납품해야 하는 처지”였다. 갈수록 감동적인 대작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30대 중반, 그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자주 떠돌아다녀 아버지께 늘 죄송스러웠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고 있다. 이 감독 세대가 대개 그렇듯, 그 역시 “아버지와 의사소통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런 먹먹함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이 감독을 <워낭소리>로 이끈 동력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던 셈이다. 그는 “이 영화는 결국 나에 대한 질타일 수도 있다”며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자식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소의 워낭 소리였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노동에는 언제나 소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전국의 우시장을 돌아다닌 지 5년 만에 찾아낸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는 “온전치 않은 소소함의 위대함, 황혼의 내리막길을 담고 싶었던” 이 감독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문맹이었고, 다리를 절었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는 가장 오래 살았고, 잘 걷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소와 함께한 인생이었다. 남의 집 소를 길들여주는 ‘소 아버지’ 일을 8년이나 했고, 우시장 중매인으로 일한 적도 있다.


 

» 〈워낭소리〉
 


할아버지가 소와 닮았듯, 이 감독도 소와 닮았다. 우직하고 뚝심 있는 성격은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여섯 달이 지나갔다. 제작 기간은 2005년 3월부터 2007년 봄 무렵까지 햇수로 3년이 걸렸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는 길목에서 기다렸다는듯이 ‘멀리 찍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감독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들의 동선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흡이 느리지만, 경박한 카메라 움직임으로는 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일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자는 전략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할아버지는 그새 ‘젊은 소’(영화에서 이 녀석은 늙은 소를 구박하고, 일도 하지 않는다)를 완벽하게 길들였다. 반가워 인사하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그만 때려치워 버려”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뒤 언론사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찾아와 귀찮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사람들을 이 감독이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돈 많이 벌었냐, 돈 안 빌려주면 쳐들어간다”는 협박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처음 촬영할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께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조용하게 사시던 분들에게 부담을 드려 너무 죄송하다”며 “두 분을 제발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