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자
조선일보 B2면에는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
구글의 광고가 실렸다. 광고는 '당신이 책을 쓰거나 출판한 적이 있는 저작권자라면 구글과
미국 저작권 협회가 합의한 내용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신고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광고는 구글이 미국 전역의 도서관에 보관돼 있는 서적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미국 외에 거주하고 있는 저작권자들에게도 허락을 받기 위한 것이다. 구글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수백개의 신문에 같은 내용의 광고를 내보냈다.
구글은 이미 전 세계 2만개가 넘는 출판사와 제휴, 700만권이 넘는 책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그런 구글이 이번에는 미국 전체 도서관을 통째로 디지털화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책 읽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방대한 디지털 작업과 접는 디스플레이 같은 혁신적인 휴대단말기의 보급으로 소비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서적을 PC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말기로 볼 수 있다. 지하철 출근길에서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소장된 서적을 휴대폰으로 내려받아 읽는 꿈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이인화 교수는 "지식의 교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면서 종이로 된 정보매체는 효율성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구글이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면서 과거 산업화 시기에 정립된 책의 저작권 개념과 독서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지난 2004년부터 전 세계 도서를 디지털화하겠다는 작업을 시작했다. 구글의 야심에 가장 큰 걸림돌은 저작권 문제였다.
◆구글, '책 읽는 방식을 바꾼다'
미국의 주요 저작권 협회는 구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며, 2년여 동안 지루한 법정 다툼을 하고 있었다. 구글은 그러나 작년 10월 미국의 작가협회·출판사협회와 도서 저작권 및 수익 배분에 합의, 저작권 문제를 단숨에 넘어섰다. 이 협상은 미국 도서관에 서적이 있는 모든 저작자와 출판사에 적용된다.
구글과 미국 저작권자들의 합의안에 따르면, 구글은 저작권 협회에 1억2500만달러(약 1750억원)를 제공해 도서 권리 등록기관(Book Rights Registry)을 설립, 운영하기로 했다. 미국 작가협회와 출판사협회에 소속된 회원들은 본인이 원치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자동 등록된다. 또 미국 내 도서관에 자신의 서적이 소장돼 있는 해외의 저작권자도 이 기관에 등록해 수익 배분 등 권리행사를 할 수 있다.
구글은 이 기관에 등록된 작가의 저작물에 대해서는 본인의 개별허락 없이도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또는 온라인을 통해 판매를 주선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광고와 판매 수익 중 60% 이상을 저작권자에게 제공한다. 미국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아마존의 경우, 먼저 개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서 전자책을 제작하지만 구글은 먼저 인터넷 서비스를 하고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구글코리아의 정김경숙 상무는 "도서관에 사장돼 있는 서적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에 대해 "엄청난 자금력을 지닌 구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구글의 정보 독점력이 갈수록 심화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디지털 도서관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책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의 전자책 시장규모는 2008년 현재 5240만달러 수준이며 최근 연간 성장률은 70%를 넘어설 정도로 가파르다. PC 외에도 스마트폰, 킨들(Kindle) 같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가 속속 출시되고 있는 점도 전자책 시장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경우, 킨들 단말기를 통해 20만권이 넘는 전자책을 제공하고 있다. 구글 역시 애플의 '아이폰'과 자신의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구글폰'을 통해서도 디지털 도서를 제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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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도 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 박차
미국에 구글이 있다면 EU에는 '유럽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가 있다. 유럽의 문화와 과학 유산을 디지털화함으로써 전 세계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2005년 3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인 자크 시라크가 구글이 도서관 자료 디지털화를 추진한다는 소식에 "구글의 문화적 도전에 대처하라"고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EU가 힘을 합쳐 서적과 문서 디지털화를 추진, 지난해 11월 디지털도서관 '유로피아나'를 열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과 암스테르담의 릭스뮤지엄 등 유럽 전역 1000개 이상의 문화 단체들이 소장하는 문서와 그림 등 300만건을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유로피아나는 공개 직후 한 시간에 1000만명이 넘는 접속자가 몰리면서 문을 잠시 닫기도 했다.
- ▲ 그래픽=신용선 기자 yss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