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속 아버지는 항상 소와 함께였다”
이충렬 감독이 말하는 ‘워낭소리’
 
 
한겨레 이재성 기자
 








 

» 이충렬(43) 감독
 

이충렬(43) 감독은 “실감이 안 난다”고 했다. 3만~4만명이면 대박, 5만명이면 초대박인 독립영화계에서,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는 3주 만에 15만명을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50만명도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극장 관계자들은 “평일도 자리가 없어 보조석을 놓아야 할 판”이라며 즐거운 엄살을 떨고 있다.

이 감독이 영화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프리랜서 방송 피디였던 그가 애초 방송용으로 기획한 <워낭소리>는 방송사로부터 퇴짜를 맞은 작품이다. 제작자들도 “소 찍어서 돈 되겠냐”며 박대했다. 어렵게 나선 제작자마저 막판에 방송이 불가능해지자 손을 털고 떠났다. (그렇게 남들이 버린 작품의 가치를 알아본 이가 다큐 영화 <우리 학교>의 고영재 피디다.)


TV용으로 기획했다 퇴짜 맞아
제작자도 막판 손털고 떠나
설움딛고 3주만에 15만명 돌파
“아버지 향한 자식의 마음이죠”


이 감독이 방송사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면 <워낭소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감독은 스스로를 “실패한 피디”라고 불렀다. 방송사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했다. 방송사가 보기에 그는 심각한 다큐만 만드는 사람이었다. 강원랜드를 배경으로, 폐광이 된 사북탄광 광부들의 뿌리 뽑힌 삶을 담은 다큐는 “선악 개념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 밖에 비전향 장기수, 종군 연예인 등을 찍은 수백 개의 테이프가 그의 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1억원가량 된다.

미대를 가고 싶었던 이 감독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꿈을 접고 고려대 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대학 졸업 뒤 애니메이션 일을 하다 방송으로 넘어왔다. “프리랜서 피디라는 게 쇼든 뭐든 닥치는 대로 찍어 납품해야 하는 처지”였다. 갈수록 감동적인 대작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있던 30대 중반, 그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다고 결심했다. “나이 먹도록 결혼도 못하고, 돈도 못 벌고, 자주 떠돌아다녀 아버지께 늘 죄송스러웠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도 고향인 전남 영암에서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고 있다. 이 감독 세대가 대개 그렇듯, 그 역시 “아버지와 의사소통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그런 먹먹함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이 감독을 <워낭소리>로 이끈 동력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던 셈이다. 그는 “이 영화는 결국 나에 대한 질타일 수도 있다”며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자식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이미지가 소의 워낭 소리였다. 그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노동에는 언제나 소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전국의 우시장을 돌아다닌 지 5년 만에 찾아낸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는 “온전치 않은 소소함의 위대함, 황혼의 내리막길을 담고 싶었던” 이 감독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 그대로였다. 할아버지는 문맹이었고, 다리를 절었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소는 가장 오래 살았고, 잘 걷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인생은 소와 함께한 인생이었다. 남의 집 소를 길들여주는 ‘소 아버지’ 일을 8년이나 했고, 우시장 중매인으로 일한 적도 있다.


 

» 〈워낭소리〉
 


할아버지가 소와 닮았듯, 이 감독도 소와 닮았다. 우직하고 뚝심 있는 성격은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도록 하는 데만 여섯 달이 지나갔다. 제작 기간은 2005년 3월부터 2007년 봄 무렵까지 햇수로 3년이 걸렸다. 마치 연출한 것처럼, 할아버지와 소가 지나는 길목에서 기다렸다는듯이 ‘멀리 찍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감독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들의 동선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흡이 느리지만, 경박한 카메라 움직임으로는 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일을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자는 전략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 할아버지는 그새 ‘젊은 소’(영화에서 이 녀석은 늙은 소를 구박하고, 일도 하지 않는다)를 완벽하게 길들였다. 반가워 인사하는 그에게 할아버지는 “그만 때려치워 버려”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영화가 입소문을 탄 뒤 언론사뿐 아니라 관광객들까지 찾아와 귀찮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그 모든 사람들을 이 감독이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돈 많이 벌었냐, 돈 안 빌려주면 쳐들어간다”는 협박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처음 촬영할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께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는데, 조용하게 사시던 분들에게 부담을 드려 너무 죄송하다”며 “두 분을 제발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