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11) 지리산 천왕봉~장터목

푸릇푸릇 반기는 산죽 걷다보면 하늘이 열린다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이 낮고 가까워졌다. 산은 그대로지만 사람들이 산허리까지 올라간 까닭이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中山里)는 말 그대로 지리산 허리춤에 자리한 마을로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 코스가 나 있다.


 
▲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지나는 산꾼들. 1500m가 넘는 산줄기들이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장쾌함은 오직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는 명풍경이다. 오른쪽 가장 높은 펑퍼짐한 봉우리가 반야봉이다.


작년 7월부터 중산리 탐방안내소에서 순두류 자연학습원까지 셔틀버스가 다니면서 천왕봉 산행이 좀 더 쉬워졌다. 당일 산행으로 지리산을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중산리~천왕봉~장터목~백무동 코스에 도전해 보자. 이 길은 1915m의 천왕봉에서 장쾌한 조망을 만끽하고, 장터목까지 주능선을 걸으며 웅혼한 지리산의 기상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봄·가을 산불예방기간에도 출입이 자유로워 아무때나 산행할 수 있는 점도 매력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너그러운 민족의 영산


 
 

중산리에서 천왕봉의 중간 지점인 로타리대피소까지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칼바위 코스와 순두류 코스. 상대적으로 길이 순한 순두류 코스를 이용하려면 중산리 탐방안내소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지대를 10여분 지나 순두류 자연학습장 입구에서 내린다. 산행은 위령비 왼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르면서 시작된다.
포장도로를 벗어나 계곡으로 들어서면 푸릇푸릇한 산죽이 반갑고, 참나무와 박달나무에 생기가 돈다. 따스한 기운을 감지한 나무와 풀들은 새싹을 밀어올릴 준비로 분주하다.
봄의 생명력이 충만한 계곡을 1시간쯤 오르면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한다. 대피소 바로 위에 자리 잡은 법계사는 구례의 화엄사처럼 신라 진흥왕 9년(548)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알려졌다. 예전에는 찾는 사람이 뜸한 소박한 암자풍의 사찰이었는데, 최근에 다소 요란한 중창불사가 있어 호젓함은 사라졌다. 거대한 바위 위에 다소곳이 올라앉은 2.5m의 삼층석탑만 둘러보고 다시 등산로를 따른다.  


●천왕봉 오름길은 순두류 코스가 쉬워


법계사 입구에서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서 한동안 돌계단과 쇠줄 난간이 이어진다. 땀을 뚝뚝 흘리며 묵묵히 비탈을 오르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남녘의 산들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멀리 삼천포의 남해가 찰랑찰랑 넘실거린다. 커다란 입석 바위인 개선문(凱旋門)을 지나면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모이는 천왕샘이 기다리고 있다. 한 잔 들이켜보니 마치 살얼음을 깨고 먹는 것처럼 차갑다. 약수에 힘을 얻어 악명 높은 급경사 돌계단을 단숨에 돌파하니 대망의 천왕봉이다.
1472년 점필재 김종직은 함양 관아를 떠나 이틀 만에 천왕봉에 올랐고, 정상에서 덕유산·계룡산·가야산 등 사방의 28개 봉우리를 조망한 기록이 있다.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을 때에 지리산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많은 명산을 알아보았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김종직이 가르쳐준 대로 북쪽부터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고 북쪽의 무주 덕유산, 동쪽의 대구 팔공산, 서쪽의 광주 무등산, 남쪽의 사천 와룡산 등을 알아보았다. “동쪽의 팔공산과 서쪽의 무등산만은 여러 산 중에서 제법 활처럼 우뚝 솟아 있다.”는 그의 말처럼 두 봉우리의 기상이 출중했다.  


●김종직의 천왕봉 조망법  


천왕봉에서 장쾌하게 뻗어내려간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이 길을 걷다 보면 웅장한 산세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백두산이 떠오른다.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지리산보다 두류산(頭流山)이란 말을 더 좋아했다. 천왕봉을 내려와 통천문을 통과하면서 제석봉 고사목 지대의 멋진 풍경을 상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고사목들이 거의 쓰러져 제석봉은 민둥산처럼 황량하고 초라해져 있었다. 4년 전만 해도 제법 고사목들이 늠름했건만….
장터목산장에서 라면을 끓여 허기를 채우고, 하산길에 들었다. 길은 제석봉의 옆구리를 타고 돌다가 반야봉을 바라보면서 지릉을 따른다. 산죽과 신갈나무가 우거진 호젓한 숲길은 시나브로 고도를 낮추면서 참샘과 하동바위를 지나 백무동에 이른다. 순두류 자연학습원~천왕봉(4.8㎞) 3시간30분가량, 천왕봉~장터목(1.7㎞) 1시간, 장터목~백무동(5.8㎞) 3시간쯤 걸린다. 지리산관리공단 중산리분소 055-972-7785.  


●가는 길과 맛집  


서울에서 중산리로 가려면 서울남부터미널(02-521-8550)에서 함양 원지행 버스를 탄다.
오전 6시~오후 9시까지 30분~1시간 간격. 소요시간 3시간10분, 요금 2만원. 원지터미널(055-973-0547)→중산리는 오전 6시50분~오후 9시40분까지 약 1시간 간격. 백무동→동서울터미널은 오전 7시20분, 8시50분 11시30분, 오후 1시30분, 2시50분, 4시, 6시 각각 운행한다.
중산리 탐방안내소 앞의 용궁산장(055-973-8646)은 단골 산꾼들이 많은 집으로 직접 담근 장으로 만든 우거지해장국(6000원)이 일품이다. 이곳에서만 나온다고 자랑하는 당귀김치도 별미다.
산악전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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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41) 경남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은 지리산 주능선 상의 세석과 장터목으로 길이 닿아 늘 등산객들로 분주하지만 옛날 옛적엔 천왕봉에서 기도를 올리려는 무당들로 붐볐던 곳이라고 한다. 백무동이란 이름도 ‘100명의 무당이 살았다’는 뜻의 ‘백무(百巫)’였다가 무관이었던 전주 이씨가 들어오면서 백무(白武)로 그 뜻이 바뀌었다.


 
▲ 사진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해바라기 곱게 핀 백무동 마을 풍경, 장터목펜션을 운영하는 이봉수씨, 장작으로밥을 짓는 아궁이.


지금은 22가구쯤 살고 있으며 3분의2가 민박과 식당을 겸한다. 그중 원주민은 절반도 안 되는데 “장사할 줄 몰랐다.”는 게 그 이유. 주로 머루, 오미자, 당귀 등을 채취하며 살았던 원주민들은 뒤늦게 민박 대열에 합류했다. 산행인구가 늘어난 건 1980년대 중후반부터였지만 자연보호구역으로 묶여 시설 확충을 하지 못하다가 김대중 정부 때 취락지구로 변경, 약 4년 전부터는 펜션단지로 조성되다시피 했다.  


마을이름 百巫→무관가문 白武로  


백무동의 대표적 등산로는 한신계곡과 하동바위 코스로 각각 나뉜다. 약 6.5㎞의 한신계곡은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 한신폭포 등을 품고 있어 여름철 계곡산행 코스로 인기가 높다. 청류와 어우러진 가을 단풍도 멋스럽고 북사면 특유의 겨울 설경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석대피소를 앞둔 1㎞가 바위너덜로 이뤄진 급경사여서 오르는 데 곤욕을 치르곤 한다.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장터목대피소로 이어진 하동바위 코스는 길이 5.8㎞로 등산로 중간에 하동바위가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 남쪽의 중산리 코스와 더불어 천왕봉을 오르려는 등산객들로 사시사철 붐비는 길이다. 계곡은 거의 없이 무던한 능선길에 가깝다. 식수는 중간 지점의 참샘에서 보충할 수 있다. 몇 해 전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심야버스가 생기면서 새벽 산행을 즐기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 외 한신계곡의 가내소폭포 즈음 해서 장터목까지 오르는 한신지계곡이 있지만 현재는 비법정탐방로로 묶여 산행을 할 수 없다.
어느 코스든 주능선까지 오르려면 넉넉히 4시간은 잡아야 한다. 특히 요즘은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절정을 이루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전주 이씨의 후손으로 6대째 백무동에 살고 있는 이봉수(52)씨는 어린 시절 동네 어른한테 전해들었던 호랑이에 관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디선가 ‘사르르’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긴 꼬리의 호랑이가 동네에 자주 나타났다. 아주 더울 땐 밤중에라도 계곡에 내려가 친구들과 물장구를 쳤는데, 어른들이 물동이를 시끄럽게 두들기며 내려와 아이들을 데려갔다. 그럴 때마다 길 위로 올라와 계곡을 내려다보니 바위 위에 호랑이가 앉아 있더라는 것. 아이들 노는 걸 구경했는지, 아니면 먹잇감으로 생각한 건지, 커다란 불덩이(안광)가 덩실 춤을 추다 산으로 올라가곤 했단다.  


펜션 편리함·초가집 흙냄새의 어울림


18년째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봉수씨는 백무동 한쪽에 ‘장터목펜션’을 열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신축 허가가 나지 않아 묵혀 뒀던 땅이다. 쥐 오줌이 얼룩진 옛 민박집에 비하면 요즘의 백무동은 그야말로 최신식이다. 먹고 자고 씻는 일이 편해져 하룻밤 묵어가기 좋다. 특히 이씨의 펜션에 주차를 하고, 그의 택시로 성삼재 이동, 주능선 종주를 마친 다음 다시 백무동으로 하산, 역시 이씨의 펜션에서 식사까지 한 후 차량 회수를 해가는 이들이 많아, 이씨도 산행객들도 편해진 게 사실이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펜션으로 바뀐 민박집이 좋은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굳이 불편을 감수하며 낡은 흙집을 찾는 이들도 있다. 초행이라면 찾기도 힘든 백무동 골목 안 ‘초가집’은 상호 그대로 60년된 초가집이다. 짚으로 얹은 지붕엔 아직도 굼벵이가 산다. 건강 때문에 내려왔지만 이제는 각처에서 찾아오는 산사람이 좋아 평생 머물기로 작정했다는 초가집 내외는 펜션보다 훨씬 저렴한 숙박료를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단골 산꾼들은 돈보다 ‘격의 없이 친근함’을 이 집의 최고로 친다.  


글 사진 황소영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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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의 소설 '뇌'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옥은 우리 머릿속에 있어.욕망이 없으면 고통도 없지." "고통이 없으면 삶도 없죠.살아있는 존재의 특성이 곧 고통을 느낀다는 것 아닌가요. " 딸을 마약중독에서 구하려 뇌의 쾌감중추를 제거한 어머니와 기자인 이지도르의 대화다.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악화되기만 하는 듯한 경제 위기로 인해 다들 좌불안석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아무도 이렇다 할 전망이나 해답을 내놓지 못하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막연하니 불안하고,불안하니 두렵고 무섭다.

그러나 이지도르의 말처럼 고통은 살아있다는 증거고,살아있는 한 희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아픈 사람도 하루 스무 번씩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되풀이하면 병세가 호전된다는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법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지닌 놀라운 치유의 힘을 전한다.

뜻에 상관없이 간절한 소망을 담아 되뇌는 주문(呪文)이 간혹 뜻밖의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이런 자기 암시 내지 최면의 효능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톱스타 장동건과 정지훈(비)을 내세운 SK텔레콤 이동통신 브랜드의 광고문구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 Bobbidi Boo)도 그런 주문의 일종이다.

'비비디 바비디 부'는 동화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요술할머니가 호박과 누더기옷을 마차와 아름다운 드레스로 바꿀 때 쓰는 주문에서 가져온 것.생각과 꿈을 실현시키는 마법의 용어다. 하지만 주문이 통하는 건 쿠에의 자기암시와 마찬가지로 상상과 의지라는 두 에너지가 힘을 합칠 때다.

꿈만 품은 채 주문만 외우면 되는 게 아니라 생각대로 (실천)하면서 주문도 외워야 되는 것이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 불안을 떨치고 긍정의 힘을 얻을 수 있는 주문은 많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말한 대로 이뤄지리라)','하쿠나 마타타(걱정마,다 잘될 거야)' 등이 그것이다.

어려운 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 갑부 사이토 히토리씨는 부자가 되고 싶으면 "노력해서 안되는 일은 없다"와 "하지 않고 저절로 되는 일도 없다"는 주문을 매일 크게 외치라고 조언한다. '명유아작 복자기구(命由我作 福自己求:운명은 스스로 결정짓고 복은 자기에서 구하는 것)'라는 얘기도 있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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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일본인, 일본의 힘 - 선우정기자의 일본 리포트
선우정 지음 / 루비박스 / 2009년 1월
절판


그런데 이런 빚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알거지 정부가 1000조 엔을 빌려 연명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알부자 국민의 금융자산 1500조 엔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직접 국채를 사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금융자산을 은행 예금이나 투자신탁, 보험 형태로 금융회사에 맡긴다. 금융회사는 이 돈으로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인다. 일본 국내의 민간 자금이 일본 국채의 90% 이상을 소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정부 빛 1000조 엔은 근원을 따져보면 대부분 국민들 금융자산에서 차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금융자산이 없었으면, 일본 정부는 모자란 돈을 외국에서 차입했어야 했고, 결국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한국처럼 파국을 맞았을 것이다.-41쪽

일본에서 저축률이 급락한 시기는 앞서 설명한 생산연령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시기(1995년)부터 전체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시기(2005년)와 겹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저축률이란 소득 중 얼마만큼 저금하느냐를 나타낸다. 생산연령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근로소득을 얻는 국민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생산연령 이상(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근로소득을 얻지 못하고 대신 그동안 안 쓰고 모아 놓은 돈, 즉 저금을 부수어 소비하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일본의 저축률 하락은 미국, 영국, 캐나다와 달리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동, 고령화의 결과였다.
즉 고령화를 막지 못하는 이상, 일본의 저축률은 조만간 마이너스로 하락하고 1500조 엔의 든든한 금융자산은 장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고령화로 인한 저축률 하락으로, 고령사회를 지탱해 온 저축기반이 와해되는 심각한 모순에 직면한 것이다.-51쪽

실제로 로봇은 새 옷을 갈아입고 공장으로부터 가정으로 파고들고 있으며, 이런 인간친화형 로봇은 21세기 황금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시모' 역시 기술 진보에 의해 누구나 살 수 있는 가격 수준이 되었을 때, 인간 옆에서 인간을 도와주는 아톰 같은 로봇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혼다가 꾼 과거의 꿈이 미래의 산업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참고로, 혼다의 공식적인 기업 운영방침 다섯 가지 중 위 세 가지를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항상 꿈과 젊음을 유지하는 것, 둘째, 이론과 아이디어와 시간을 존중하는 것, 셋째, 일을 사랑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것.
현대자동차의 공식적인 경영이념 다섯 가지 중 위 세 가지를 열거하면 이렇다. 첫째 상품경쟁력 강화, 둘째 현지화 전략, 셋째 브랜드가치 향상. 경영철학만 보아도 누가 꿈을 추구하고 꿈을 이룰지 알 수 있지 않을까.-90쪽

1990년대 장기불황 이후 일본은 금융권 정규직의 40%가 잘려 나갈만큼 혹독한 인력 구조조정을 겪었다. 경영 용어로 말하면 '회사의 주인'이던 직원이 기업의 이익과 대치되는 재무재표상의 '코스트(비용)'로 전락한 과정이었다. 미라이공업과 창업다 야마다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도요타와 오쿠다가 저항한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극적이었다. 일본은 오쿠다와 도요타에 대한 열광 이상으로 야마다와 미라이에 열광한다. 인간을 '코스트' 취급한 영미식 자본주의를 향해 마치 무대에 선 배우처럼 크게 호통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니면 대체 누굴 위해 회사는 존재하는가?" 라고.-145쪽

'실천적 지혜'란 무엇인가?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선한 것을 판단하는 능력, 지식을 창조하는 장을 만드는 능력, 본질을 터득하는 능력, 터득한 것을 콘셉트화하는 능력, 콘셉트를 실현하는 능력, 이 모든 실천적 지혜를 전승하고 육성하는 능력을 말한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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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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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을 당시, 내게 이 글들은 상당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연재되었을 당시나 지금이나 신문 지면을 가득 채운 기사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웠고, '혹시나' 하는 기대는 언제나 '역시나'로 쉽게 귀결되고 말았다. 이러한 시대환경 때문에 한겨레신문에서 인지도가 높은 유명작가에게 생활에 (저자 스스로 이 글들의 컨셉을 '유머'라고 말했듯이) 웃음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글들을 요구하게 되었고, 실제로 독자의 입장에서는 적지않은 공감과 웃음을 얻었던 것 같다. 

이제 이 글들이 단행본으로 엮여나와, 그간 놓친 글들을 포함하여 글들의 전후맥락을 다시 훑어볼 수 있게 되었다. 40대 후반을 살아가는 일상의 관계 속에서 뭍어나오는 추억들과 생각들은 진솔하고 생생하다. 단지 아쉬운 것은 작가가 살아온 일상 속에서 마주친 기억들의 공간에서 보다 확장되어, 말 그대로 이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독자들에게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표지에 새겨진 문장을 다시 되새겨본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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