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보다 더 무서운 미군의 무기, "인종주의"
브라이언 드 팔마의 <전쟁의 사상자들>(1989년)

   
이라크 하티타에서 미해병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 사건이 공개되면서 미군의 전쟁범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미 미국 언론들도 하티타의 학살을 베트남 전쟁 당시 발생했던 미라이 마을 학살 사건과 비교하면서 이라크 전쟁의 도덕성에 대해 뒤늦은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1968년 3월 16일, 미군 1개 중대가 베트남 중부 산악 지대의 미라이 마을에 들어가 마을 주민들을 광장에 몰아넣고 무차별 학살한 사건으로 미군이 저지른 전쟁 범죄 중 최악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미군은 반나절만에 504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 군 당국은 사건을 보고 받고도 국내의 반전여론에 영향을 미칠 것을 두려워 해 사건을 은폐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져 미국인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을 상징하게 됐고 이후 반전평화운동은 더욱 확산됐다.

베트남 전쟁 뿐이 아니다. 하티타 사건의 보도와 때를 맞춰 AP통신은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는 미국의 오랜 주장을 뒤엎을 수 있는 문서를 발굴 공개했다.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해 공격할 수 있는 상부의 명령이 존재했다는 내용의 이 문서를 통해 노근리 학살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미군이 20세기 후반 개입한 대규모 전쟁, 한국, 베트남, 이라크 모두에서 미군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미군은 이 모든 ‘학살’이 전쟁 중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민간인 피해’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전쟁범죄가 미라이 마을 학살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는 단 한명이었지만 미라이 학살과 같은 해인 1968년 11월에 발생한 강간사건이 이듬해 10월 미국 주간지를 통해 보도됐을 때 그 비도덕성과 잔혹함에 많은 이들이 몸을 떨었다.

토니 미서브 하사가 지휘하는 5명의 미군 수색대는 장거리 정찰에 나가면서 인근 마을에서 처녀를 납치했다. 목적은 작전 기간인 5일 동안 끌고 다니며 강간하기 위해서였다. 처녀를 윤간한 병사들은 계획했던 대로 복귀하기 전 총살해 ‘증거’를 인멸했다.

그러나 병사들 중 한명인 스벤 에릭슨 일병이 죄책감에 못 이겨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중대장에게 털어놨으나 문제가 커질 것을 두려워 한 중대장은 없었던 일로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스벤슨 일병의 배신 사실을 알게 된 동료들이 오히려 살해위협을 하자 그는 군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했다. 군사재판을 통해 범죄사실이 입증됐지만 미라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군당국은 내용이 민간에 흘러나가는 것을 막으려 했다. 사건은 발생한지 1년이 지나, 미라이 사건이 2년 만에 폭로되기 한달 전에 미국인들에게 공개됐다.

* * *

<언터쳐블>, <스카페이스> 등 사실에 기초한 영화를 선호하는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가 이 강간살인사건을 영화로 옮겼다. 1989년 제작된 영화 <전쟁의 사상자들>에서 마이클 J. 폭스는 스벤슨 일병역을, 숀 펜은 미서브 하사 역을 맡았다.

영화는 관련된 모든 인물들을 실명으로 처리했고, 영화 앞뒤에 미국으로 돌아온 스벤슨 일병이 사건의 참혹한 기억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삶을 지속하는 장면을 덧붙인 것 이외에는 최대한 사건을 재현하고 있다. 다만 영화의 시간관계상 5일 동안 5명의 군인이 한명의 여성에게 저지른 잔학한 행위가 수사보고서처럼 상세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

당시 사건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에 범죄행위와 시간까지 자세히 나와 있으니 아마 각본을 쓰기 위한 자료조사는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다. 미국의 치부를 드러냈기 때문은 아니다. 영화는 1987년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을 필두로 시작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할리우드의 자기고백 시리즈 중의 하나다. 80년대 후반 할리우드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긴 침묵을 깨고 전쟁에 대한 영웅주의적 해석이나, ‘우리도 피해자’라는 식의 변명이 아니라 가해자로서의 미군과 전쟁 자체에 대한 환멸을 담은 일련의 영화들을 쏟아냈다.

<전쟁의 사상자들>은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쟈켓>, 베리 레빈슨의 <굿 모닝, 베트남>, 존 어빙의 <햄버거 힐>, 패트릭 던컨의 <찰리 모픽> 등과 같은 시기에 발표됐다. 어쩌면 이처럼 비슷한 테마의 영화들이 유행처럼 제작됐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 할리우드의 자기비판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이후 <위 워 솔저스>처럼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베트남 전쟁 영화들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스릴러의 대가로 이름 높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스타일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이 엉뚱한 실망을 안고 돌아간 것도 영화가 큰 평가를 받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감독으로서는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독이 그리려고 했던 것은 스릴러의 긴장감이 아니라 도덕성의 긴장이었던 것이다.

전쟁영화 답지 않게 영화를 통 털어 단 한명만 죽는 다는 사실도 관객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굳이 전쟁영화가 아니더라도 수십명이 간단하게 죽어나가는 할리우드의 영화의 강도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는 지루한 전쟁영화로 비쳐졌을 것이다. 이 경우 한계치에 다다른 할리우드의 선정성과 잔혹성을 탓해야 하겠다.

그러나 영화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마이클 J. 폭스의 낮은 연기력이었다. 강간을 주도한 미서브 하사역의 숀펜과 함께 전통적인 선악구도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 것은 감독의 한계지만, 그 구도 안에서조차 숀펜의 연기에 압도되면서 방향을 찾지 못한 주인공은 영화를 산으로 가게 만들기 충분했다. 심하게 말하면 옷만 군복으로 갈아입었을 뿐이지 <백 투 더 퓨쳐>의 철부지 고등학생의 이미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주인공의 불만족스러운 연기 덕분에 영화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한 병사의 개인적인 투쟁에 과도하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은 모호한 작품이 돼버렸다.

   
▲ 미군 현장 조사단이 촬영한 학살 후의 미라이 마을, 전날 있었던 해방전선의 습격에 복수하기 위해 미군은 "작정하고" 미라이 마을에 들어갔다.
 
* * *

스벤슨 일병이 폭로한 강간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미라이 학살사건과 함께 황석영의 소설 <무기의 그늘>에 실려 있다. 베트남 전쟁이 얼마나 부도덕한 전쟁이었는지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이 사건의 보고서를 소설 중간에 끼워 넣었다.

그러고 보면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 전쟁보다 더 광할한 지역에,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미군이 투입됐던 2차세계대전에서는 이런 식의 미군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은 파시즘을 격멸하는 민주주의 전쟁이었고, 병사들의 도덕성도 더 높아서 그랬던 걸까?

해답은 노근리 학살과, 미라이 학살, 하티타 학살에 대한 미군 보고서에 들어있다. 이 사건들이 모두 “적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우발적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군복을 입은 나치와 군복을 입지 않은 나치를 구분할 수는 없었다. 요컨대 미국과 미군이 가지고 있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이 전쟁범죄의 기본 원인인 것이다.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했을 때 이미 일본군 스스로 자기 나라 국민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미군에게는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만약 미군이 일본 본토로 진격했다면 유럽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히틀러가 몇 달을 더 버텼다면 과연 트루먼 대통령이 히로시마 대신 함부르크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렸겠느냐는 의문은 과도한 의심이 아니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편협한 나라였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전쟁기간동안 모든 일본계 미국인들을 서부의 수용소에 몰아넣은 것이다. 미국 시민권이 있는 일본계 이민자들이 스파이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독일계 이민자들에게는 이런 의심이 제기되지 않았다. 이 일본인 수용소의 이야기는 알란 파커 감독이 1990년 <폭풍의 나날>이라는 영화로 제작했다.

미군의 전쟁범죄는 결코 우발적인 상황이 아니다. 인종주의로 무장한 미군이 가는 곳 그 어디서든 참혹한 학살은 계속 될 것이다.

2006년 05월 31일 (수) 12:19:03 장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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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푸른고개 2006-06-1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패권의 몰락 - 혼돈의 세계와 미국>(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한기욱 정범진 옮김, 창비, 2004년 05월 17일)

 

2012년 4월, K씨의 개 같은 하루

한-미 FTA를 반대하는 학자가 그린 ‘체결 5년 뒤 대한민국의 가상 시나리오’… 미 보험사에 의료보험료 내려 뛰어가다 게릴라로 전락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다

▣ 심광현 한미FTA저지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

04시30분, 보험은행사의 벨소리 공습에 잠이 깨다

전화기 소리가 깊은 잠을 깨운다. 금속 소리는 점점 커진다. 밤새 번역 일을 하고 겨우 잠들었는데 단잠을 깨우는 이 소리가 정말 싫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기 전에 가졌던 휴대폰 소리의 부드러운 컬러링이 그립다. 지금 전화를 받지 않으면 PSC보험은행사에서 준 문자수신기로 연락처가 남겨질 것이고, 응답 전화를 하려면 초당 수백원 하는 전화비를 내야 한다. 그렇다고 연락하지 않으면 내 책임으로 돌릴 것이다. 억지로 받는다.

아니나 다를까. PSC보험은행사 여직원이 오늘까지 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4등급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고 상냥하게 말한다. 잠이 번쩍 깬다. 하루만 참아달라고 애원했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 일과 시간 내로 반드시 계열사 은행으로 이달치 보험료를 내야 딸아이 아토피 연고 보조금을 지급하겠단다. 어쩔 수 없다. 임대주택 청약적금이라도 깨야겠다.


△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미국 쌀이 홍수처럼 들이닥치자 논은 다 넘어가고 아버지는 농약을 드셨고 어머니는 화병에 쓰러지셨다. 그땐 국립학교라 학비도 쌌는데 지금은 오히려 국립대학 출신이라고 학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싼 티가 나 학원 이미지 버린다나. 그나마 아파트 수위 자리로 연명하는 내 신세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울화가 치미니 좀 정신이 든다. 마루로 나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다 그만둔다. 물이 거의 없다. 1ℓ 한 병에 3만원인데 딸애가 아토피라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해서 나나 아내는 물도 마시기 어렵다. 병원도 못 데려가는데 물이라도 마시게 해야 마음이 편하다. 아내를 불렀는데 답이 없다. 황급히 집을 나서자 싸늘하고 매캐한 공기가 폐부를 쑤신다. 버려진 애완견들이 떼지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05시10분, 살인적 추억에 시달리며 집을 나서다

새벽이 다가오는데도 하늘은 캄캄하기만 하다.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이후 미국의 폐기물 산업체들이 도처에 자리잡자 맑은 날씨와 깨끗한 공기는 구경하기 힘들다. 4월이면 황사가 겹쳐 하루 종일 캄캄한 채 살아야 한다. ‘유해폐기물협약’을 미국 기업이 어겼으니 고발해야 한다며 서명을 받으러 왔던 시민단체 회원이 생각났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오히려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며 미국 폐기물 회사는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에 시민단체와 환경부를 제소해 수백억원의 벌금을 타갔을 뿐이다. 이뿐이랴. 노조 결성했다고 제소, 영화 제작 보조금 지급했다고 제소, 천연기념물 항목을 줄이지 않았다고 제소, 심지어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망하자 한국의 제도가 미비해서 그런 것이니 책임지라며 제소한다. 이 모든 재판에서 한국 정부는 판판이 깨졌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 지갑에서 빠져나간다. 앗!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첫 버스를 놓치겠다.

아직 잠이 덜 깼나 보다.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인 것을. 하지만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열이 받는다. 마지막 해에 4천만원이나 들여 대학을 졸업했는데, 그것도 이전에는 잘나가던 교대를 나왔는데도 교사는커녕 학원 강사도 못해먹고 있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그때 공부를 못해 미국으로 도피 유학 갔던 친구놈은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미국 대학 분교 대비반 학원을 강남에 차리더니 1년에 수십억원을 번다. 그나마 나는 하사관 3년 해서 모은 돈으로 졸업이나 할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꼭두새벽인데도 30분 간격으로 다녀 콩나물시루짝 같은 만원버스를 간신히 잡아타고 서초동 아파트에 도착했다.

06시30분, 아파트 수위실에서 상념에 잠기다

교대를 하고 나자 다시 피로가 엄습한다. 피붙이가 무섭긴 무섭다. 요즘은 환경호르몬 때문에 애 낳기도 힘들다. 겨우 얻은 딸애도 아토피 때문에 고생이 너무 심하다. 이전에도 아토피가 심했지만 치료약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은 1개에 수십만원이다. 그나마 난 보험이 3등급이어서 3분의 2 가격에 살 수 있는 게 다행이다. 한-미 FTA 이후 재정 형편에 따라서 보험 등급이 나뉘었다. 보험 3등급 미만이면 감기약도 수십만원을 줘야 구할 수 있다. 그나마 나와 처가 함께 돈을 버니 3등급은 유지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다행히 오늘은 아내에게 일이 있었나 보다. 이전에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는 미국 법인이 학교를 인수한 뒤 실직하고 고교 동창 집에 파출부로 나가고 있다. 엊그제 나도 몇 달 만에 동창과 소주 한잔 했는데 요즘은 사창가에 아이 데리고 나오는 젊은 주부가 많다고 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뒤 멕시코가 그랬다고 할 땐 설마 했는데 이젠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그 젊은 주부를 비난하랴! 다만 내 아내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 감사드릴 뿐이다.


△ 품질은 비슷하지만 15~20% 싼 미국쌀이 4월부터 식탁에 오른다. 평택시 농수산물 비축창고에서 인부들이 부산으로 수입된 미국산 쌀포대를 쌓고 있다.(사진/한겨레 김태형 기자)

매일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보험 3등급을 유지하는 데 아내의 도움은 절대적이다. 한 달에 수백만원 하는 유아원에 아이를 보낼 수 없는데 아내가 아이를 볼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보낼 생각을 하면 갑갑하기만 하다. 질 낮은 공립학교에 보낸다 해도, 한 달에 수십만원인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까. 월 100만원이 넘는 중·고등학교는 또 어찌 보낼까? 억대에 이르는 대학 학비는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도 아내는 함께 열심히 벌면 되지 않냐며 희망을 가져보자고 한다.

07시30분, 나비부인을 들으며 다시 절망에 빠지다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의 날카로운 소프라노 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로지르며 귓전을 때렸다. 아내가 교사로 일할 땐 우리 부부도 심심치 않게 오페라 공연을 보러 다녔다. 수위실에 첫 출근 하던 날 바로 앞집에서 흘러나오던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먼 옛날의 일일 뿐이다. 3만원에 이르는 거액의 관람료가 아니라도 할리우드 영화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 이젠 영화도 보기 싫다. 반토막난 스크린쿼터를 그나마 유지하겠다더니 한-미 FTA 체결 뒤에는 아예 없애버려 1년에 간신히 몇 편 개봉되는 한국 영화는 꼭 보러가려 했지만, 아이가 생긴 뒤에는 한 번도 못 갔다.

지금 아이들한테 한국 영화가 한때 아시아에서 제일 잘나갔다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에서만 만들어지는 줄 아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하긴, 나도 ‘한류’란 말이 있었는지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나마 텔레비전에서 가끔씩 2000년대 초반 영화를 보는 재미에 산다. 그런데 5분 상영하고 5분 광고하는 채널밖에 없어서 한 편을 2~3일에 나누어 봐야 한다. 그러면 어떠리. 영화광인 아내는 지금도 강동원만 보면 마음이 설렌다고 한다. 그래서 비교적 중간 광고가 별로 없는 영화 채널 하나만이라도 신청하자고 하지만 한 채널당 월 요금이 10만원이 넘고 1천만원이 넘는 일체형 텔레비전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다. 그 텔레비전을 사면 회사가 보유한 채널들을 절반 가격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없는 형편이라도 구미가 당기긴 한다. 물론 공짜 채널이 없는 건 아니다. 미국 ABC 채널은 어떤 텔레비전에서라도 볼 수 있다. 난 이 채널이라도 보자고 하지만, 아내는 결사코 반대한다. 공용어가 된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도 난 봤음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이런 나락으로 떨어진 게 다 미국놈들 때문이라면서 ‘미국’ 하면 화부터 낸다. 하지만 미국과 관련 없는 게 지금 어디 있을까? 하나에서 열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대통령이나 장관도 미국 유학생이 아니면 될 수 없는 세상인데.

15시30분, 은행 전용 버스를 타다

라면 한 그릇으로 아점을 때운 뒤, A씨와 교대를 하고 황급히 달려나섰다. 한낮인데도 하늘은 여전히 캄캄하다. 한때 법률사무소들이 득실거리던 법원 앞거리는 썰렁해지고 군데군데 미국 법률회사의 대형 간판이 걸린 고층건물들이 서 있을 따름이다. 이전에는 그리도 많던 은행들도 모두 통폐합되어 동에 하나씩 있어 은행에 가려면 걸어서 갈 수 없다.

15시45분, 영어 방송에 오리무중

한시라도 빨리 가려고 PSC은행 소속 버스 전용차선이 있어 거의 막히는 일이 없는 미국 회사 버스를 탔는데 낭패다. 전용차선이라 평시면 10분이면 갈 거리인데, 도통 움직이지 않는다. 10분마다 두 배로 요금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돈도 돈이지만, 은행 마감 시간이 지나면 보험료를 못 내는 게 더 큰 문제다. 3등급과 4등급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10분 구간에 1만원이긴 해도 지하철을 타는 건데, 잘못했다. 서비스 질을 높인다며 정부가 외국 회사에 지하철을 넘겼을 때 노조가 파업하는 걸 보고 이기주의자들이라 탓했던 내가 지금도 부끄럽다.

그건 그렇고 왜 버스가 이리도 가지 못할까? 기사에게 물으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라디오를 틀어보라고 하자 어차피 소용없을 거란다. 그래도 틀어보라고 승객들이 아우성이라 기사는 구시렁거리면서 라디오를 켠다. 이리저리 돌리지만 온통 영어 방송이다. 그나마 한국 방송은 광고 전용 방송뿐이다.

16시05분, 보도 없는 차도를 전력질주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내려달라고 했다. 오래전에 보도는 없어져 차도만 남은 도로는 온통 꽉 막혀 있다. 전력질주를 하는데 빌딩 2~3층마다 러닝머신을 타는 피트니스 클럽의 외국인들과 성형미인들을 힐끔 보면서 달리니 더 멀미가 날 것 같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갈까. 드디어 언덕 너머로 PSC은행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넘어서니 차가 왜 막히는지 알겠다. 한-미 FTA 이후 게릴라가 되어 산으로, 지하로 들어갔던 농민들이 도심 시위를 나온 것이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어디에 그리들 숨어 있다 쏟아져나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신기함도 잠시, 수천 명의 경찰들과 수백 명의 PSC은행 사설 경찰들이 농민들을 에워쌓다.

난 건물 안에 용무가 있는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고 애원하듯 소리치며 경찰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때 갑자기 경찰들이 대치하고 있던 농민들에게 달려들어 무자비하게 곤봉으로 내리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가족이 우선 살고 봐야지.

16시28분, 개 같은 내 인생

막 은행 빌딩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이 농민 무리에서 보인다. 아버지? 아버지가 아닌가! 분명히 군대에 있을 때 농약을 마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고개를 흔들어봐도 분명 아버지다. 시위대로 다가가려 했으나 전면의 대형 시계가 보인다. 이제 1분 뒤면 은행 문은 닫힌다. 아니야. 보험 등급은 다시 돈을 내면 되지만 아버지가 맞다면 지금밖에 기회가 없지 않은가! 그 순간 아버지는 개처럼 끌려가고 만다. 아! 어떻게라도 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멀어진다. 그때 ‘띵동’ 문자가 왔다. “보험 4등급 처리되었습니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개 같은 내 인생. 개 같은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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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미도 진상
사형수·무기수 아닌 ‘사관후보생’으로 모집했다
하니Only 김도형 기자
» 부대 소대장이었던 김방일씨가 공개한 실미도 부대원들의 사진.
[관련기사]

영화 <실미도>에서는 부대원들이 사형수 또는 무기수 등 흉악범 출신으로 묘사돼 있으나 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실제와 많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애초 모집관들이 사형수와 무기수를 대상으로 삼으려고 각 교도소를 돌아다녔으나 법무부에서 ‘만약 이들이 죽게 되면 주검을 유족들에게 인도해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고 난색을 표시해 이들은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정에 파견된 공군 모집관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연고 불량배 등 민간인을 대상으로 부대원을 모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군자료에는 “특수임무를 띠고 중정에 파견됐다”고 적혀있으나 국정원쪽에서는 “모집관은 공군 사람들”이라며 부인하고 있다고 조사위는 밝혔다.

사관후보생에 준하는 월급, 배불리 먹고, 미군부대 취직 약속

» 영화 실미도의 포스터.
모집관들은 사관후보생에 준하는 월급(3000~3200원)에다 배불리 먹고, 미군부대 취직 약속 등을 좋은 조건으로 내세웠다고 한다. 한 모집관은 대전한밭 체육관에서 먹고자는 아이를 발견하곤 “국가를 위해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실미도 부대원들은 권투선수, 편물점 재단사, 입대 대기자, 서커스 단원, 음식점 요리사 출신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20~34살의 젊은이들이었다.

또 실미도 부대원 3명이 생존설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신빙성이 낮다”고 말했다. 소설 <실미도>를 펴낸 저자 백동호씨는 자신이 교도소에서 만난 소설 <실미도>의 주인공 강인창(실명)이 대열에서 이탈한 세명중 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유가족들도 부인하고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또한 훈련과정에서 7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부대원끼리 서로 죽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훈련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부대원을 시켜서 집단린치를 가해 죽이는, 영화보다 더 잔혹한 ‘야수같은 행동’이 실제 실미도안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영화보다 잔혹한 야수 본능 “울면서 때려죽였다”

한 사형수는 재판과정에서 “울면서 때려죽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고 증언했다. 진상규명위는 재판기록이 실미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데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1972년 3월10일 임성빈 이서천 김병염 김창구 등 사형수 네명이 서울시 영등포구 오류동 소재 공군 제7069부대에서 사격장에서 사형집행된 뒤 33년간 공군본부 법무관실에서 기밀서류로 묶여 있다 지난해 12월말 기밀해제돼 진상규명위의 조사자료로 활용됐다.

사형수중 일부는 사형집행일인 1972년 3월10일 서울 오류동 공군 7069부대 사격장에서 애국가와 대한민국 만세 3창을 하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군검찰부장이었던 김아무개씨는 올해 1월 방영된 일본 엔에이치케이방송에서 내보낸 실미도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엔에이치케이스페셜>과의 인터뷰에서 “그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에 놀랐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지난달 28일 오류동 일대 사형수들이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유골발굴 작업을 벌였으나 유골을 찾아내지 못했다. 실미도 부대원중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7명이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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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집요함 꼼꼼함 없으면 책도 없다”
이진경 ‘미래의 맑스주의’ 펴 낸 김현경씨 “독자 읽기 편하게”
고미숙 ‘나비와 전사’ 만든 선완규씨 “여러 사람 땀 결과”
한겨레 구본준 기자
» 서울 원남동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의실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는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인문학자 고미숙씨,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왼쪽부터)
지은이들이 편집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출판기념회’

“이진경 선생님 원고를 읽는데 문장 하나가 두가지 뜻으로 읽히는 게 있었어요. 저 혼자 1시간 넘게 낑낑대고 고민하다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려서 무슨 뜻인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응, 그거 그냥 빼버려’ 하시는 거에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18일 저녁 7시, 종묘 뒷담 골목속 자리잡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의실. 출판사 그린비의 김현경 편집주간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지은이 이진경 교수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이 이야기속에는 편집자들의 집요함과 고생스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책을 직업적으로 접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들에게조차 편집자는 낯선 존재들이다. 그 이름은 책의 앞이나 맨뒷장 서지사항속 조그맣게 ‘편집 아무개’라고만 적힐 뿐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마저도 적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편집자는 뒤로 숨는다.

하지만 책에 있어서 편집자의 존재는 저자 못잖다. 때로는 저자 이상일 때도 있다.

지은이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그 원고를 읽기 좋게 가다듬고, 보기좋게 모양새를 잡고, 그리고 제목을 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편집자의 몫이다. 오탈자를 잡는 교열, 교정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일거리다.




책 자체를 기획해서 걸맞는 저자를 선정할 경우 그 책은 저자의 것이기 이전에 편집자의 것이다. 걸출한 편집자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그런 세상 흐름을 반영하는 책을 기획한다. 책이란 것에는 오롯이 지은이의 창의성과 노력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은이의 책’이 있는가 하면, 출판사 대표가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유명한 필자와 출판계약을 따내 성공하는 ‘펴낸이의 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의 책’이 있다. 꼼꼼한 편집과 세밀한 정성으로 만들어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접어들 때는 알아차리가 어렵지만, 읽고나면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듯 다양한 배려를 담뿍 담아놓은 책. 바로 그런 책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출판계의 주인공들인 편집자들은 관심의 바깥에 있다. 책이 성공하면 관심은 온통 지은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책이 성공하면 벌어들인 수익은 출판사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서 편집자들은 분명 ‘푸대접’을 받고 있다. 아무리 눈밝은 독자라도 편집자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책의 뒤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뿐이다. 편집자들은 조용히 책 뒤에서 책의 성공에 감격하고, 책의 실패에 눈물흘린다.

18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새 책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펴냄)와, 인문학 연구자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펴냄) 출판기념회로, 두 사람이 함께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으레 지은이가 평소 친한 이들에게 익숙한 감사말을 하며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날 출판기념회는 달랐다. 두 책을 편집한 편집자들인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과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이 함께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지은이 두 사람이 “나는 이렇게 책을 썼다”고 설명하고, 편집자 두 사람이 “나는 이 책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출판기념회였다. 책의 숨은 주인공 편집자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출판기념회였다. 실제 이날 출판기념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두 편집자였다. 그리고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들인지를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발표자는 <미래의 맑스주의>를 쓴 이진경 교수. 이 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어떻게 다시 사유할 것인지, 그리고 마르크스의 기본 가정들이 될 공리들을 다시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그 경계선을 확장시켜 보려했다”고 책의 집필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휴머니즘이란 것은 무서운 것, 끔찍한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만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의 존엄함이 망각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이런 지점들을 넘어보려 했다.”

이는 곧 새로운 세상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미래사회 등장할 로봇이 인간이란 주인에게 지배받고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위해 실험되고 희생되며 착취당하는 동식물들도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 새로운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트란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한 김현경 주간은 “편집자가 만나는 책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 것같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하나는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에 깊숙이 개입해 전체 구성부터 세세한 원고 배치와 부속물까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책’, 또다른 하나는 ‘구성과 내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그 원고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보기 쉽게 전달해줄까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라는 것이다.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가 전자에 가깝다면, 자신이 편집한 이진경 교수의 <미래의 맑스주의>는 후자에 가까운 책으로 정의했다.

김 주간은 <미래의 맑스주의>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아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다음 네가지 편집적 연출은 10년 이상 편집에 종사한 베테랑이 책을 만드는 요령이란 점에서 후배 편집자들이 귀담아들을만한 ‘노하우’이기도 했다.

우선 원래 원고의 각주에는 인용주와 내용주의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내용주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각주처리를 했고, 인용주는 시선을 분산시켜 읽어나가는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후주처리를 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앞으로 이 책이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보아 저자 원고에 따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참고문헌 목록을 인용주들과 본문에 언급된 책들 모두를 뽑아 정리해 뒤편에 실었다고 한다.

세번째로는 이 책이 저자의 사유를 집중해서 따라 읽어가는 것이 좋다고 보아 본문 안에 그림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없으면 독자들이 책에 담긴 강한 사유를 쉴틈없이 맞닥뜨려야하기 때문에 쉴 여유공간을 두려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그림을 넣고 각장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문장을 지은이에게 부탁해 수록했다.

네번째는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책 본문에서 인용하는 책들을 모두 구입 내지 입수해서 모든 인용구를 대조했다고 한다.

이날 이 네번째, 책 본문에 인용되는 모든 책을 실제 구입내지 입수해 대조했다는 대목은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편집자가 얼마나 꼼꼼하고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작업이기 때문이다. 김 주간은 인용되는 책들 가운데에는 절판된 것들도 많아 온 출판사 직원들의 친구며 후배며 동생을 동원해 각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김 주간은 “책을 기획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교열과 교정은 고된 노동이자 글자 하나, 문구 하나하나와 대결하는 전쟁”이라고 비유하고, “좋은 원고를 만나면 고정교열이란 노동은 어느새 나 자신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주침과 생기넘치는 활동이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불온한 사유와 만나 그것을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편집자로서의 제 꿈이고, 역할이고 행복입니다.”(당연히 터져나오는 청중들의 박수)

다음은 또다른 책 <나비와 전사>의 지은이 고미숙씨의 차례였다.

고씨는 책의 편집자 선완규 주간의 ‘지독함’을 ‘까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선완규 주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안보낸 원고도 자기가 입수해서 밑그림을 그려서 보내줘요. 원고를 보내주고 나면, ‘이 부분은 에전 선생님이 쓴 다른 글과 비슷하다’며 일일이 다 지적해서 다시 연락이 와요. 그러니 이러이러한 내용을 덧붙여 달라, 여긴 이러면 좋겠다… 그런 주문이 이어지는거지. 그래서 원래 1500매였던 원고가 2000매로 늘어났어요.”

고씨로부터 ‘집요한 편집자’란 애정어린 힐난을 듣고 발표에 나선 선 주간의 설명은 고씨의 말이 오히려 선씨의 집요함을 덜 표현한 것임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선 주간은 이 책 <나비와 전사>가 “5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책”이라고 설명해다. 그리고 2001년 6월12일자로 작성한 애초 출판기획안을 직접 가져와 이번 기획안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선 주간이 이 책을 기획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고씨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근대성’이란 주제의 강연을 듣고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고 느낀 고씨가 강의안을 토대로 기획안을 작성해 고씨에게 보냈고, 책을 펴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고씨의 바쁜 일정 때문에 책 출판은 계속 늦춰졌다고 한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선 주간은 원래 강의때 고씨가 한 말들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것을 활용해 원고에 빠진 내용이 있으면 연락해서 집어넣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이 대목에서 청중들 박수.

선 주간은 “책은 어느 한 사람의 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지식인들이 책을 써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편집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 때문에 두 편집자 모두 이날 행사에 자신을 초청한 연구공간 수유쪽에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이처럼 저자와 편집자가 함께 책을 설명하는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만의 성향탓일 것이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기성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도발적이고 새로운 사유의 모험을 떠난 젊은 연구자들의 코뮨이자, 가장 왕성하게 대중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저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수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고병권 수유 대표는 “올해는 수유의 여러 회원들의 책이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들이 과연 어떤 편집자들과 만나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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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Mr. 김정일, 차 한잔 하실까요?’ 낸 김현경 기자

졸음 부르는 남북관계 해설서이거나 이름 날리는 기자의 취재 성공기쯤 되겠거니…. 문화방송 북한전문기자 김현경(42)의 를 열었을 때만 해도 미덥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술술 넘어가는데 재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독자와 눈을 맞춰가며 지은이는 뚝심있게 자신의 철학을 밀어붙였다. 잘난척 하지 않지만 속이 찬 이야기, 강요하지 않고 설득하는 말솜씨가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남북관계는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보기도 싫어해요. 챗바퀴 돌듯 하니까요. 너무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듯 풀어쓰려 했어요.” 골치 아픈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은이는 고슴도치와 호랑이에 북한과 미국을 비유한다. 호랑이가 죽일까 두려워 고슴도치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북한에게 핵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책에서 설명한다.

아나운서로 문화방송 <통일전망대>를 진행한 것까지 따지면 17년, 기자로 뛴 세월만 처도 12년째 북한과 인연을 맺어온 그의 글엔 북녘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배나온다. 연명하는 것조차 힘겨웠던 1998년 말, 청년영웅도로의 건설 과정은 뭉클하다. 거기엔 손으로 돌을 깨고 지게로 나르며 만두 한 접시 앞에서 통곡해야 했던 끈질긴 사람들이 있다. 배 곯아도 자식부터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이른바 ‘낀세대’가 돼버린 중장년층의 고민은 낯이 익는다. “민초들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의 처지가 돼 보는 게 가능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만 해도 그렇다. “과연 김정일(국방위원장)만 없으면 북한 인권이 나아질까요? 자유와 인권이 외부의 강요나 선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우리도 겪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에도 봄을 누리지 못했죠. 국민들이 전쟁과 가난에 대한 공포에 짓눌렸던 게 한 가지 이유죠. 북한 민주화 운동이 힘을 발휘하려면 주민들이 절대 빈곤과 침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꿈꾸도록 도와줘야할지 몰라요.”

인권 문제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보편적 기준 사이 긴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정하기가 까다롭다.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는 북한의 여성인권도 그렇다. “북한은 이러니 남쪽 시청자들한테 그냥 이해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특수성과 보편적 기준 사이 중간을 잡는 게 쉽지 않아요.”

역사적 현장엔 빠지지 않고 마이크를 들었고 평양만 6차례, 금강산이나 개성 땅은 수없이 밟아본 그이지만 여전히 북한 취재는 만만하지 않다. “현장은 그쪽에서 준비한 것만 보게 되니까요. 새로운 거리를 찾는 게 힘들죠. 검증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요.” 지루할세라 취재 뒷이야기가 책에 양념을 친다. 첫 관광 때는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몇 초라도 빨리 보도하려고 난투극도 불사했던 기자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모아뒀던 취재 수첩을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어 그는 탄탄한 사실로 말랑말랑한 에피소드로 짰다. 그 속에서 김현경은 평화로 가는 길이 대화에서 시작한다고 줄기차게 말한다. “한반도에 같이 사는 이웃으로서 남북에겐 공통의 이익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자는 거죠. 북한은 타이밍을 많이 놓쳤고 미국은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제대로 내놓지 않아요. 미국의 목적이 북한 체제를 깨뜨리는 건지 현안을 푸는 건지 확실하지 않죠. 대화는 적어도 해결로 가는 길을 보여줘요.”

따지고 보면, 아나운서가 된 것도 우연, <통일전망대>를 진행하게 된 것도 우연, 김일성 주석이 숨진 날부터 기자로 뛰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한다. “처음엔 북한 방송만 봐도 재미 없어 잠 들었어요.” 북녘과 만남을 거듭하면서 맞출 수 없는 퍼즐 조각같던 북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도 바뀌었다. 그의 책으로 좀더 살아 있는 북녘을 만나면, 통일이나 평화가 뜬구름 잡는 당위가 아니라 생활과 맞닿은 문제로 다가온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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