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Mr. 김정일, 차 한잔 하실까요?’ 낸 김현경 기자
졸음 부르는 남북관계 해설서이거나 이름 날리는 기자의 취재 성공기쯤 되겠거니…. 문화방송 북한전문기자 김현경(42)의 를 열었을 때만 해도 미덥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뒷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술술 넘어가는데 재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독자와 눈을 맞춰가며 지은이는 뚝심있게 자신의 철학을 밀어붙였다. 잘난척 하지 않지만 속이 찬 이야기, 강요하지 않고 설득하는 말솜씨가 책의 첫 번째 매력이다.
“남북관계는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요.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보기도 싫어해요. 챗바퀴 돌듯 하니까요. 너무 단순화한다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아이들한테 이야기하듯 풀어쓰려 했어요.” 골치 아픈 북핵 문제만 해도 그렇다. 지은이는 고슴도치와 호랑이에 북한과 미국을 비유한다. 호랑이가 죽일까 두려워 고슴도치는 털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북한에게 핵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고 책에서 설명한다.
아나운서로 문화방송 <통일전망대>를 진행한 것까지 따지면 17년, 기자로 뛴 세월만 처도 12년째 북한과 인연을 맺어온 그의 글엔 북녘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배나온다. 연명하는 것조차 힘겨웠던 1998년 말, 청년영웅도로의 건설 과정은 뭉클하다. 거기엔 손으로 돌을 깨고 지게로 나르며 만두 한 접시 앞에서 통곡해야 했던 끈질긴 사람들이 있다. 배 곯아도 자식부터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이른바 ‘낀세대’가 돼버린 중장년층의 고민은 낯이 익는다. “민초들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래서 그들의 처지가 돼 보는 게 가능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접근만 해도 그렇다. “과연 김정일(국방위원장)만 없으면 북한 인권이 나아질까요? 자유와 인권이 외부의 강요나 선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우리도 겪었어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뒤에도 봄을 누리지 못했죠. 국민들이 전쟁과 가난에 대한 공포에 짓눌렸던 게 한 가지 이유죠. 북한 민주화 운동이 힘을 발휘하려면 주민들이 절대 빈곤과 침략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꿈꾸도록 도와줘야할지 몰라요.”
인권 문제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보편적 기준 사이 긴장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정하기가 까다롭다. 조선시대에 머물고 있는 북한의 여성인권도 그렇다. “북한은 이러니 남쪽 시청자들한테 그냥 이해해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특수성과 보편적 기준 사이 중간을 잡는 게 쉽지 않아요.”
역사적 현장엔 빠지지 않고 마이크를 들었고 평양만 6차례, 금강산이나 개성 땅은 수없이 밟아본 그이지만 여전히 북한 취재는 만만하지 않다. “현장은 그쪽에서 준비한 것만 보게 되니까요. 새로운 거리를 찾는 게 힘들죠. 검증이 제대로 되지도 않고요.” 지루할세라 취재 뒷이야기가 책에 양념을 친다. 첫 관광 때는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몇 초라도 빨리 보도하려고 난투극도 불사했던 기자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모아뒀던 취재 수첩을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어 그는 탄탄한 사실로 말랑말랑한 에피소드로 짰다. 그 속에서 김현경은 평화로 가는 길이 대화에서 시작한다고 줄기차게 말한다. “한반도에 같이 사는 이웃으로서 남북에겐 공통의 이익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주자는 거죠. 북한은 타이밍을 많이 놓쳤고 미국은 자신의 전략적 목표를 제대로 내놓지 않아요. 미국의 목적이 북한 체제를 깨뜨리는 건지 현안을 푸는 건지 확실하지 않죠. 대화는 적어도 해결로 가는 길을 보여줘요.”
따지고 보면, 아나운서가 된 것도 우연, <통일전망대>를 진행하게 된 것도 우연, 김일성 주석이 숨진 날부터 기자로 뛰게 된 것도 우연이라고 한다. “처음엔 북한 방송만 봐도 재미 없어 잠 들었어요.” 북녘과 만남을 거듭하면서 맞출 수 없는 퍼즐 조각같던 북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도 바뀌었다. 그의 책으로 좀더 살아 있는 북녘을 만나면, 통일이나 평화가 뜬구름 잡는 당위가 아니라 생활과 맞닿은 문제로 다가온다.
글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