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워, 부끄러워…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산화>가 보여주는 미의식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참는 거야.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던 날 사내는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며 ‘새신랑’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신랑>). “한줄의 애국시도 쓰지 못한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토해낸 말은 모양 사납게도 ‘만세! 죽어버리자’였다.”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작품은 형편없었지만 소설가는 ‘비굴하게도’ 그것들을 출판사에 추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종’이라고, 벙어리 갈매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갈매기>). 소설가의 집을 드나들며 문학을 배우던 학생이 전선에서 옥쇄(전장을 사수하다 전원이 사망하는 것)했다. 평소 학생의 시를 신통찮게 생각해왔던 소설가는 그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건강하신지요./ 먼 하늘에서 문안드립니다./ 무사히 임지에 도착했습니다./ 위대한 문학을 위하여/ 죽어주십시오./ 저도 죽습니다./ 이 전쟁을 위하여.”(<산화>)

일본 근대의 폐허를 헤맨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선 <산화>(김욱 옮김, 책이있는마을 펴냄)가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의 마니아라면 싱거울 테고, 세계문학 코너에서 우연히 <인간실격> 정도를 구경한 독자라면 단편의 현란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단편‘선’이란 늘 그런 것이다. 오사무의 인생은 그 자체가 소설처럼 유통된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보다 더 끔찍한 ‘자살 중독증’을 앓았다. 열아홉에 처음 자살 시도를 했고, 동경대학 시절 술집여자와 함께 바다에 투신했다가 혼자 살아남았고, 알코올과 진통제 중독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 39살의 나이로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투신해 생을 마쳤다. 가해자의 나라에 살았던 이 피해자의 생은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그들은 세계가 모조리 추악한 거짓이라는 무서운 진실 앞에서, 도피한다. 그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무서워하고, 이렇게 무서워하는 자신을 병신, 비굴한 인간이라 질책하면서 내면 속으로 숨는다. 그것은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 계속되는 삽질이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그는 악의적인 만담가다. 그의 소설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내뱉는 1인칭 독백, 즉 ‘타자’를 의식하며 주절거리는 고백이다. 소설의 화자는 부끄러움에 떨며, 소곤소곤 우리에게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다가, 돌연 심술궂은 웃음을 띠고 우리를 조롱하기도 한다. 여기에 오사무 소설의 현란함이 있다. <앵두>의 사내는 “터놓고 말해서 이 소설은 우리 부부싸움 얘기인 것이다”라고 운을 뗀 뒤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아이들과 젖가슴 사이를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하는 아내의 비루한 삶을 늘어놓는다. 그러곤 아내가 아이를 들쳐업고 배식 줄을 서는 사이 술집으로 달려가 귀한 앵두를 씹어대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식보다 부모가 소중하다, 자식보다 부모가 약하다.”

<사양>의 상실감과 슬픔과 불안을 거쳐 오사무는 마지막 작품 <인간실격>에서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 없는 절망에 이른다. 그가 시종일관 우리에게 한 가지 ‘근대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의 비참 속에 던져진 인간에게 구원은 있는가. 물론 장렬히 ‘옥쇄’한 병사들의 참호 속에는 없다. 오사무가 뛰어든 시퍼런 물에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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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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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꽤 유명한 저자의 오랜만의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의 특장으로는 즐겨읽었던 시 한 편을 통해 자신의 지난 기억이나 생각, 또는 고민 등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쓰여진 것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의 시 한 편을 통해서 그 의미와 삶을 자상하게 소개시켜준 점(아마 이 책을 통하지 않았다면, 단 한번도 '압둘 와합 알바야티'라는 인명을 검색하지 않았으리..^^) 등 유익한 내용이 가득하고, 또한 인생과 사랑에 대한, 상처에 대한 깊은 천착은 실로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절절하다.

 체 게바라의 <나의 삶>을 포함하여 다수는 그 한 편의 시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의미를 통해 나름대로 재해석해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일부는 '시와 서간체의 글이 무엇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 하는 혼란을 주기도 한다. 해석의 다양성으로, 또는 그 시보다 더 절절한 작가의 회상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단, 한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J'에 대한 해석이다. 물론 작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혹 J가 JEJUS의 이니셜이기도 하겠다 싶은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J...좀 더 단조로운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적한 곳으로 가야 인간이 가진 마음의 찌꺼기들이 밖으로 잘 나오게 하셨나 싶기도 했지요.(79쪽)

J, 당신을 그리워하다 병도 든 적 없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다가 마음 한 번 제대로 찢어져 본 적 없습니다. 그녀가 20세기의 성녀라는 사실은 이해됩니다. 다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을 다해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으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은 성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143쪽)

반면에 그렇지 않아보이는 대목도 있다.

J,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중략).. J, 이 편지를 읽으며 마음 아파하실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은 새벽에 일어나 시몬느 베이유의 글을 읽으며 저를 생각했다고 쓰셨지요.(99~100쪽)

인격화된 신앙체로 보던,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하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 추상화된 그 '무엇'으로 보던 독자의 몫일 수도 있겠으나, 형식의 틀로써 서간체를 택한 입장에서는 보다 친절할 필요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다. 혹 다른 해석이 있으신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산도르 마라이, 압둘 와합 알바야티.......... 그리고 충격적인 규모의 책 광고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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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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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여기 실린 작가들만큼 넓직하고, 책으로 가득 넘치는 서재는 아니더라도, 책 속에 묻혀 생각을 키우고 보다 충만한 시간을 누리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규모보다는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한 갈망이리라. 그러한 갈망과, 언젠가 갖게 될 공간에 대한 '꿈꾸기'를 위해서라도 이 책의 기획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가, 특히나 유명작가들에게 '서재'란 무엇인가? 특히나 전업작가인 경우에는 자신의 온갖 사유와 탐구, 정리와 창조를 위한 '삶의 가장 치열한 공간'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에서 내 나름의 고약한 잣대로 줄을 세워보면 어떨까? 강은교 > 김용택 > 공지영 > 신경숙 > 이문열...(김영하는 연구실만을 보았으니 번외로 치고..)

오랜 기간 문학판을 취재를 했던 저자의 경험은 인터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기획의도를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작가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또 나갈 길을 살펴보기에는 아쉬운 대목이 있다. 단지 방구경은 아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또 한가지.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강은교, 이문열, 김용택 등의 선배작가들과 40대 중반의 공지영, 신경숙, 김영하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이라는 면에서는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왠지 한 권에 담기에는 뭔가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조화롭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얻을 수 있었던 작가들의 목소리.

강은교 시인의 '현재시단'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한 대목.

"학생들이 요즘 시 안 쓰는데, 시 쓰는 사람들도 잘못한 점 많았고요. 너무 어렵게 쓰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만 쓰고 있지요./시에는 자기를 위해 쓰는 기능이 있고, 타인에게까지 가지고 가는 기능이 있는데, 자기를 위해서 쓰는 일에서 멈춰 버리고 말아요. 그 사람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도통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따라갈 길이 있나. 결국 시를 안 읽지요."(130~131쪽)

또한 시에 대한 열정.

'아, 언제 저 매미처럼 울 수 있을까. 매미의 유언인 저 울음. 언제 늘 마지막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안녕히.'(139쪽)

또한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교육자 김용택의 충고.

"애들에게 글 쓰는 것, 그림 그리는 것 가르치면 안 돼. 잘 보는 법을 가르치는 거여. 산, 나무, 농사일하는 거,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자세히 보게 하는 거여. 그래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도시에서는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 기술이라는 건 금방 애들이 귀찮아 해. 맘대로 그렸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하는 거야. 잘못 그리면 혼나. 잘 그리는 놈은 성질나니까 하기 싫어져버리는 거야. 아이들 상상력을 죽이면 안 돼. 나는 미술학원에서 배워 그린 그림을 아주 싫어해."(220~221쪽)

* 노트(3쇄)  135쪽 2행 찾이리 -> 찾을 이 또는 찾을리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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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새시대 큰인물 8
우봉규 지음, 임향한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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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강감찬은 948년에 고려 정종 3년에 금주고을에서 태어났다.

나는 강감찬에 대해서 학교에서 독서 골든벨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잘 못하는문제를 뽑아서 내셨다.

쉬운 것도 나왔지만 이런 문제를 내셨다.

거란족이 첫번째로 쳐들어왔을 때 강감찬이 물리친 거란족의 장군은?

나는 강감찬에 대해서 거의 틀렸다.

왜 강감찬은 은천이였다가 강감찬으로 이름을 바꾸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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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대사가 찾던 '자루 없는 도끼'는?
‘내 마음 하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소요산 자재암
  임윤수(zzzohmy) 기자   
▲ 자재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음을 설파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에 대한 설화가 흐르는 곳이다.
ⓒ 임윤수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면 세상에 못 이룰 것이 하나도 없고 안 될 일도 하나 없을 겁니다. 마음대로라면 세상을 호령하는 군주가 못될 것도 없고, 마음에 두고 있는 절색미인과 흥건한 사랑타령 한 번 못 나눌 일도 없습니다.

역시 마음대로라면 요즘 밤잠을 설치게 하는 월드컵대회에서도 그깟 16강이나 4강이 아니라 우승도 문제 될 것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실상에선 담배를 끊거나 술을 안 마시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거창하게 의지력이니 뭐니 말들을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쉬운 일일수도 있고 어려운 일일수도 있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그냥 마음 편하게 '안 먹고 안 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일도 아닐 텐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마음이니 마음의 실체가 궁금합니다.

이뿐입니까. 세상에 태어나 자각하는 순간부터 마음대로 되었던 일이 한 번인들 있었을까 싶습니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졸음이 쏟아지니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고, 잊어야 하는데 잊어지지 않으니 마음 아닌 마음과 육신을 포함한 매사가 마음가는 길에 걸림돌일 뿐입니다.

▲ 일주문을 들어서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원효폭포가 발길을 맞아준다.
ⓒ 임윤수
마음은 유형도 무형도 아닙니다.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게 마음입니다. 딱히 마음의 실체를 설명하라고 하면 궁색한 설명들이 반복되지만 없다고 단정해 버릴 수도 없는 게 마음입니다. 마음이란 것은 냉철한 판단력을 근거로 한 이성(理性)일 수도 있고, 펑펑 눈물 흘리고 박장대소하게 하는 감성(感性)일 수도 있습니다. 살육을 서슴지 않는 잔인함 일수도 있고, 미물의 상처에도 눈물 흘려주는 온정 일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참 변덕스럽습니다. 상대적이란 표현을 쓸 수도 있지만 변덕스럽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듯싶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물결처럼 상황과 감정에 따라 잠시도 멈추지 못하기에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국의 고승을 대표하는 한 분이 원효대사입니다. 그 원효대사가 깨달음의 결정체로 남긴 일성(一聲)은 다름 아닌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어렵게 얘기할 것 없이 '모든 일은 마음이 만들고, 마음에 따라 생긴다', 한마디로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지극히 평범한 말입니다.

▲ 바위와 돌담이 만들어낸 진입로가 절 찾아가는 길을 장식하고 있다.
ⓒ 임윤수
자재암(自在庵)은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逍遙山)에 있는 작은 암자로 654년, 신라 무열왕 1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합니다. 한 때 소요사나 영원사로 불리기도 했지만, 1909년 성파스님과 제암스님이 절을 중창하며 본래의 절 이름이었던 자재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합니다.

자재암이 있는 소요산은 그 입구부터가 단풍나무 일색입니다. 한여름 단풍은 그 빛이 푸른색 일색이지만 가을이 되면 일품일 가을단풍이 그려집니다. 설악의 단풍이 좋고 내장산 단풍이 좋다고들 하지만 자재암으로 가는 소요산 자락에서 만나게 되는 단풍 또한 여타의 절경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 한 번 들어가면 깨우치지 않으면 나오지도 않을 듯 출입문이 굳어만 보인다.
ⓒ 임윤수
매표소를 겸한 일주문을 들어서 저만치 시원하게 물줄기 쏟아내는 원효폭포가 보입니다. 움푹 파인 물웅덩이로 물이 내려앉습니다. 어떤 물은 미끄럼 타듯 바위에 기대 흐르고 어떤 물은 내려꽂히듯 곧장 떨어지며 하얀 물방울을 주변에 뿌려 댑니다. 물이 아주 맑습니다. 깊지 않은 웅덩이지만 주변의 산세를 거울처럼 담아 맑게 비추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반질반질 다듬어진 작은 돌들이 알몸으로 드러납니다. 잠시 멈춰 옥죈 신발을 풀어놓고 발을 담그니, 그 시원함과 청아함이 온몸으로 전해집니다.

▲ 자재암 안쪽으로 석굴법당 나한전이 보인다.
ⓒ 임윤수
자재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속리교(俗離橋)를 건넙니다. 속세를 떠나 피안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속리교를 건너면 주변부터가 달라집니다. 지금껏 걸었던 진입로가 평평하고 잘 포장된 길이었다면 피안으로 접어든 속리교 저쪽은 가파른 계단에 울퉁불퉁한 바윗길입니다.

속리교를 건너 조금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면 공주봉으로 올라 소요산 주능선을 타게 됩니다. 자재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좌측으로 나 있는 계단으로 올라갑니다. 폭포의 물줄기가 만들어 내는 리듬 없는 타음이 내림목탁소리처럼 들립니다.

자재암은 원효대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던 요석공주의 설화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가 불경을 공부하려던 원효는 잘 알려진 일화처럼,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간밤에 마셨던 물이 아침에 보니 해골(骸骨)에 고인 물이었음을 알고 토악질을 하며 '일체유심조'를 깨닫게 됩니다.

그 일을 계기로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고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알게 된 원효는 유학을 포기하고 평범한 교리로 부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신분 고하나 귀천에 관계없이 뭇 대중과 어울리며 알기 쉽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니 오줌싸개에 코흘리개까지도 원효를 통해 부처님을 알게 하였다고 합니다.

원효, 자루 없는 도끼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다

그런 원효가 '누가 자루 없는 도끼 빌려주면 하늘 떠받칠 재목 만들겠노라'고 큰소리치다 만난 사람이 김춘추의 둘째 누이인 요석(瑤石) 공주입니다. 여기서 자루 없는 도끼란 생명의 근원지인 어머니들의 생식기인 자궁을 표현한 말인 듯하니, 부부의 연을 원했다고 생각됩니다. 첫 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어 과부가 되었지만 매력 있고 불심 깊었던 요석공주가 원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들의 만남은 인연인지 필연인지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 나한전은 자연동굴에 앞면을 쌓아 조성하였다.
ⓒ 임윤수
원효가 요석공주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으며 하늘처럼 떠받칠 재목을 낳으니, 그가 바로 신라 10현 중 한 명인 '설총'입니다. 그러나 어쩌리, 속가의 연을 끊지 않고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없는 걸림돌인 걸. 부부의 연을 맺어 여체를 탐욕하며 끈끈한 육신의 정을 나누던 원효는 홀연히 속세와 연을 끊고 수행의 길을 찾아드니, 그 수행의 은둔지가 바로 이 소요산이라 합니다.

졸지에 남편이 속세를 떠남으로 또다시 과부 아닌 과부가 된 요석공주는 원효대사와 사이에 낳은 설총을 데리고 이곳 소요산으로 들어와 공주봉 기슭에 살았다고 합니다. 아무리 흘러간 시대의 여인이지만 지아비에 대한 그리움이 어떠했으며, 홀어미로 자식을 키워야 하는 한탄이 어찌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요석공주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금의 일주문 근처로 설총을 데려와 아버지인 원효대사가 수도하는 곳을 향해 세 번씩 절을 시키고 학업에 정진토록 하는 인고의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 나한전 안으로 들어가면 전면으로 나한상이 봉안되어 있고, 동굴 천장은 연등으로 장엄되어 있다.
ⓒ 임윤수
속리교 건너 이정표가 있던 갈림길, 공주봉으로 올라가는 오른쪽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에 잠겨있던 바위가 붉은 색을 띠는 것은 혹시 요석공주의 피눈물이며, 아녀자의 한탄이 피멍으로 남은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논리적으로야 바위가 철광석이거나 점토질 바위라 붉게 보인다고 설명되겠지만, 요석공주가 생활하던 공주봉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생각하니 그렇게 생각됩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뒤돌아보니 설총이 절을 올렸다는 일주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계곡 건너 쪽으로 자재암에 또 다른 자취를 남기셨을 스님들의 흔적인 부도와 탑비가 석축으로 단을 높인 작은 텃밭에 좌선이라도 하듯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 나한전에서 바라 본 자재암은 조용하기만 하다.
ⓒ 임윤수
자재암은 가파른 비탈에 매달린 산제비집처럼 길쭉한 지형에 전각들이 나란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터가 넉넉하진 않으나 궁색하지도 않습니다. <自在庵> 편액을 달고 있는 ┎ 형태의 전각은 협소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뒤쪽 지붕을 덧대 그 처마가 바위에 맞닿아 있습니다.

전각 오른쪽으로 대웅전이 있고 그 오른쪽으로 또 한 채의 전각이 있습니다. 대웅전 왼쪽엔 삼성각으로 올라가는 사이길 계단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렬로 늘어선 듯 나란한 전각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쌍사자가 받치고 있는 석등이 있습니다. 그 안쪽으로 원효대사가 수행하였던 고행의 공간이며 삶의 공간이었던, 바로 그 자연동굴에 조성된 나한전 석굴법당이 있습니다.

▲ 동굴법당 나한전 바로 앞에도 1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는 폭포수가 있다.
ⓒ 임윤수
석굴법당 입구 오른쪽에 있는 감로수에는 자재암에 얽힌 또 하나의 설화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속세에서 부부의 연과 혈육의 연을 모두 끊고 동굴 앞 초가에서 수행을 하던 원효대사는 다시 한 번 파계의 유혹을 받았으나 이를 극복했다는 설화입니다.

원효, 또 한 번 여인의 유혹에 시험받다

몹시도 비가 나리 던 어느 날 원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참선을 하고 있었답니다. 그때 비를 흠뻑 맞아 여체의 관능적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는 미모의 여인이 비를 피해 원효가 있는 초가로 들어왔답니다. 그렇게 들어온 여인은 교태스런 미소와 관능적 몸놀림으로 원효를 유혹했지만, 원효는 마음의 미동 없이 수행에만 정진했다고 합니다.

이미 부부의 정을 맺어 애욕의 달콤함을 경험한 원효에게 관능적 여체의 몸놀림은 금욕을 파괴하기에 충분한 유혹이며 충동이었으나 원효는 이를 잘 극복한 것입니다.

원효는 나중에서야 그 교태스런 여인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출현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로부터 수행자로의 의지력을 시험받은 원효대사가 절하나 지으며, '내 마음 하나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절 이름을 <自在庵>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나한전 오른쪽으로 촛대처럼 뾰족한 기암이 솟아있습니다. 어림잡아 촛대봉이려니 했더니 옥류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옥류봉 오른쪽으로는 또 하나의 시원스런 폭포가 물줄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나한님을 모신 굴법당이 있고, 그 옆이 촛대 형상의 옥류봉이며, 그 옆으로 옥이 흐르는 듯 맑은 물줄기가 끝이지 않는 옥류폭포가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자재(自在)인데 인간만이 부자재(不自在)로다

쏟아진 물줄기는 내려온 순서 없이 작은 웅덩이에서 얼기설기 섞여 다시 아래로 흐릅니다. 웅덩이 아래로 뻗어 가는 계곡이 워낙 좁다보니 넓지 않은 웅덩이조차 넓게만 보입니다. 넓게 보이고 좁게 보이는 것도 역시 상대적이며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알게 됩니다.

▲ 지형을 따라 한일자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자재암이 자재롭게만 보인다.
ⓒ 임윤수
불끈 솟은 바위도 높은 산에 비하니 그 높이가 별 것 아니고, 높게 보이던 폭포수도 그 위에 오르니 발아래 개울물일 뿐입니다. 원효대사가 깨우침으로 설한 그 '일체유심조'가 입술에서만 맴돌 뿐 자신의 것이 되질 않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여다본 물 속 바위는 여전히 붉고, 그 붉은 색이 지아비를 그리워하며 흘린 요석공주의 피눈물로 보이는 건 마음이 그러하기에 그렇게 보였을 겁니다.

흐르는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니 자재(自在)하고, 밝혀진 촛불은 수명 다해 꺼지니 자재(自在)합니다. 삼라만상의 자연은 모두가 자유자재이거늘 별 것 아닌 인간들만이 사소한 것도 마음의 덧에 걸어 그 마음에 갇혀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2006-06-15 15:01
ⓒ 2006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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