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너머의 미국?

〈Made in USA〉가 보여준 기 소르망의 통찰은 공허하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9·11 3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이건 슬픈 얘기다. 이 비극적 사건의 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의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9·11의 몇 주년까지 꼽아야 할까.


프랑스의 칼럼니스트 기 소르망이 지은 〈Made in USA〉(문학세계사 펴냄)는 9·11에 맞춰 불어·영어판과 거의 동시에 한국어판도 출판됐다는 점에서(한국에 관심 많은 지은이가 프랑스문화원을 통해 출판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기 소르망이라는 이름이 한국에서도 꽤 상품성이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 것 같다. 지은이는 이 책이 반미의 시각을 넘어서 “우리(유럽)와 그들(미국)과의 차이”를 탐구한다고 밝혔다. 확실이 이 책은 ‘반미’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기 소르망은 특유의 입버릇대로 미국의 ‘문명’을 성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이 몽땅 등장하고, 이것들을 관통하는 메커니즘이 분석된다. 그 메커니즘의 가장 중심부에 국가나 사회보다 우선하는 적극적인 개인주의가 있다. 그리고 캘빈주의를 바탕으로 한 종교성,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세계 전파라는 열망,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인종의 융합 등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늙은 유럽의 지식인으로서 소르망은 미국을 ‘타자’로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신기한 물건’에 대해 꽤 재미있는 분석들을 내놓는다. 미국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은 정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의 미국인이 다른 절반의 미국인들과 싸우는 문화 전쟁”이다. 미국인들은 지식인보다 운동 선수를 대접하듯, 지성보다 몸에 집착한다.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지사 소환의 예에서도 드러나듯,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에 반항하는 것을 즐긴다. 유럽 정치가 대중을 선도한다면 미국 정치는 항상 대중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기 소르망의 재치는 신흥 종교, 흑민 문제, 이민 문제 등에서 성급하게 긍정적인 전망들을 내놓으면서 부서져버린다. 게다가 10장 ‘제국적 민주주의’에 와서는 목소리가 아예 몽롱해진다. 소르망에 따르면 미국의 제국주의는 항상 민주주의의 전파를 위한 소명의식에 기반을 둔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하드 파워’에 입각한 군사력 사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쯤되면 LA에서 열리는 눈물 범벅의 부흥회 같은 종교적 열정이다. 할렐루야!

소르망의 문제는 미국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반미’라는 하나의 근본주의로 치환해버린다는 데 있다. 미국을 바로 보기 위해 ‘반미’를 피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공허하다. 기 소르망은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반미 유령’을 격퇴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유령은 그의 악몽 속에만 존재한다. 무엇보다 소르망은 ‘한국 걱정’을 안해주는 것이 좋겠다. 효순·미선양의 죽음으로 한국을 위해 죽은 3만3천 명의 미국 병사들이 갑자기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느니, 미군이 떠나면 두 개의 한국은 서로 싸우고 일본도 전쟁에 개입할 거라느니, 한국 반미주의자들은 반미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에서 권력과 특권을 얻는다느니 하는 말은 맨 정신으로 썼을까? 정말 동시 출간을 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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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 부끄러워…

다자이 오사무 단편선 <산화>가 보여주는 미의식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참는 거야.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냐.”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던 날 사내는 하루하루를 기쁜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하며 ‘새신랑’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젖는다(<신랑>). “한줄의 애국시도 쓰지 못한다. …골똘히 생각하다가 토해낸 말은 모양 사납게도 ‘만세! 죽어버리자’였다.” 전선에서 보내온 병사들의 작품은 형편없었지만 소설가는 ‘비굴하게도’ 그것들을 출판사에 추천한다. 그리고 자신이 ‘병종’이라고, 벙어리 갈매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갈매기>). 소설가의 집을 드나들며 문학을 배우던 학생이 전선에서 옥쇄(전장을 사수하다 전원이 사망하는 것)했다. 평소 학생의 시를 신통찮게 생각해왔던 소설가는 그가 보내온 마지막 편지를 읽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건강하신지요./ 먼 하늘에서 문안드립니다./ 무사히 임지에 도착했습니다./ 위대한 문학을 위하여/ 죽어주십시오./ 저도 죽습니다./ 이 전쟁을 위하여.”(<산화>)

일본 근대의 폐허를 헤맨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선 <산화>(김욱 옮김, 책이있는마을 펴냄)가 나왔다. 다자이 오사무의 마니아라면 싱거울 테고, 세계문학 코너에서 우연히 <인간실격> 정도를 구경한 독자라면 단편의 현란한 매력에 빠져들 것이다. 단편‘선’이란 늘 그런 것이다. 오사무의 인생은 그 자체가 소설처럼 유통된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보다 더 끔찍한 ‘자살 중독증’을 앓았다. 열아홉에 처음 자살 시도를 했고, 동경대학 시절 술집여자와 함께 바다에 투신했다가 혼자 살아남았고, 알코올과 진통제 중독에 빠져들었으며, 마침내 39살의 나이로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투신해 생을 마쳤다. 가해자의 나라에 살았던 이 피해자의 생은 자신의 주인공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그들은 세계가 모조리 추악한 거짓이라는 무서운 진실 앞에서, 도피한다. 그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계를 무서워하고, 이렇게 무서워하는 자신을 병신, 비굴한 인간이라 질책하면서 내면 속으로 숨는다. 그것은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이 없을 때까지 계속되는 삽질이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를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그는 악의적인 만담가다. 그의 소설은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내뱉는 1인칭 독백, 즉 ‘타자’를 의식하며 주절거리는 고백이다. 소설의 화자는 부끄러움에 떨며, 소곤소곤 우리에게 자신의 신세한탄을 늘어놓다가, 돌연 심술궂은 웃음을 띠고 우리를 조롱하기도 한다. 여기에 오사무 소설의 현란함이 있다. <앵두>의 사내는 “터놓고 말해서 이 소설은 우리 부부싸움 얘기인 것이다”라고 운을 뗀 뒤 자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매는 아이들과 젖가슴 사이를 ‘눈물의 골짜기’라고 말하는 아내의 비루한 삶을 늘어놓는다. 그러곤 아내가 아이를 들쳐업고 배식 줄을 서는 사이 술집으로 달려가 귀한 앵두를 씹어대면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식보다 부모가 소중하다, 자식보다 부모가 약하다.”

<사양>의 상실감과 슬픔과 불안을 거쳐 오사무는 마지막 작품 <인간실격>에서 더 이상 파고들어갈 곳 없는 절망에 이른다. 그가 시종일관 우리에게 한 가지 ‘근대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의 비참 속에 던져진 인간에게 구원은 있는가. 물론 장렬히 ‘옥쇄’한 병사들의 참호 속에는 없다. 오사무가 뛰어든 시퍼런 물에도. 그리고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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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공지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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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유명한 저자의 오랜만의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의 특장으로는 즐겨읽었던 시 한 편을 통해 자신의 지난 기억이나 생각, 또는 고민 등을 풀어놓는 방식으로 쓰여진 것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의 시 한 편을 통해서 그 의미와 삶을 자상하게 소개시켜준 점(아마 이 책을 통하지 않았다면, 단 한번도 '압둘 와합 알바야티'라는 인명을 검색하지 않았으리..^^) 등 유익한 내용이 가득하고, 또한 인생과 사랑에 대한, 상처에 대한 깊은 천착은 실로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절절하다.

 체 게바라의 <나의 삶>을 포함하여 다수는 그 한 편의 시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의미를 통해 나름대로 재해석해보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일부는 '시와 서간체의 글이 무엇으로 연결되는 것인지.. ' 하는 혼란을 주기도 한다. 해석의 다양성으로, 또는 그 시보다 더 절절한 작가의 회상에 무게중심을 둔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단, 한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J'에 대한 해석이다. 물론 작가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혹 J가 JEJUS의 이니셜이기도 하겠다 싶은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J...좀 더 단조로운 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한적한 곳으로 가야 인간이 가진 마음의 찌꺼기들이 밖으로 잘 나오게 하셨나 싶기도 했지요.(79쪽)

J, 당신을 그리워하다 병도 든 적 없습니다.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다가 마음 한 번 제대로 찢어져 본 적 없습니다. 그녀가 20세기의 성녀라는 사실은 이해됩니다. 다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을 다해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으로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실은 성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143쪽)

반면에 그렇지 않아보이는 대목도 있다.

J,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중략).. J, 이 편지를 읽으며 마음 아파하실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은 새벽에 일어나 시몬느 베이유의 글을 읽으며 저를 생각했다고 쓰셨지요.(99~100쪽)

인격화된 신앙체로 보던, 아니면 둘 다를 포함하는 다양한 함의를 지닌 추상화된 그 '무엇'으로 보던 독자의 몫일 수도 있겠으나, 형식의 틀로써 서간체를 택한 입장에서는 보다 친절할 필요는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다. 혹 다른 해석이 있으신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기도 하다.

산도르 마라이, 압둘 와합 알바야티.......... 그리고 충격적인 규모의 책 광고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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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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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여기 실린 작가들만큼 넓직하고, 책으로 가득 넘치는 서재는 아니더라도, 책 속에 묻혀 생각을 키우고 보다 충만한 시간을 누리고 싶은 생각은 누구에게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규모보다는 그 공간의 의미에 대한 갈망이리라. 그러한 갈망과, 언젠가 갖게 될 공간에 대한 '꿈꾸기'를 위해서라도 이 책의 기획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작가, 특히나 유명작가들에게 '서재'란 무엇인가? 특히나 전업작가인 경우에는 자신의 온갖 사유와 탐구, 정리와 창조를 위한 '삶의 가장 치열한 공간'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에서 내 나름의 고약한 잣대로 줄을 세워보면 어떨까? 강은교 > 김용택 > 공지영 > 신경숙 > 이문열...(김영하는 연구실만을 보았으니 번외로 치고..)

오랜 기간 문학판을 취재를 했던 저자의 경험은 인터뷰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기획의도를 살펴볼 수는 없겠지만, 작가들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또 나갈 길을 살펴보기에는 아쉬운 대목이 있다. 단지 방구경은 아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말이다.

또 한가지.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을까? 강은교, 이문열, 김용택 등의 선배작가들과 40대 중반의 공지영, 신경숙, 김영하에 이르기까지, 다양성이라는 면에서는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왠지 한 권에 담기에는 뭔가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조화롭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얻을 수 있었던 작가들의 목소리.

강은교 시인의 '현재시단'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한 대목.

"학생들이 요즘 시 안 쓰는데, 시 쓰는 사람들도 잘못한 점 많았고요. 너무 어렵게 쓰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를 위해서만 쓰고 있지요./시에는 자기를 위해 쓰는 기능이 있고, 타인에게까지 가지고 가는 기능이 있는데, 자기를 위해서 쓰는 일에서 멈춰 버리고 말아요. 그 사람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도통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보통 사람들이 따라갈 길이 있나. 결국 시를 안 읽지요."(130~131쪽)

또한 시에 대한 열정.

'아, 언제 저 매미처럼 울 수 있을까. 매미의 유언인 저 울음. 언제 늘 마지막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안녕히.'(139쪽)

또한 아이들 교육과 관련한 교육자 김용택의 충고.

"애들에게 글 쓰는 것, 그림 그리는 것 가르치면 안 돼. 잘 보는 법을 가르치는 거여. 산, 나무, 농사일하는 거,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걸 자세히 보게 하는 거여. 그래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지./도시에서는 그림 그리는 기술을 가르쳐. 기술이라는 건 금방 애들이 귀찮아 해. 맘대로 그렸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그려라, 저렇게 그려라'  하는 거야. 잘못 그리면 혼나. 잘 그리는 놈은 성질나니까 하기 싫어져버리는 거야. 아이들 상상력을 죽이면 안 돼. 나는 미술학원에서 배워 그린 그림을 아주 싫어해."(220~221쪽)

* 노트(3쇄)  135쪽 2행 찾이리 -> 찾을 이 또는 찾을리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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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새시대 큰인물 8
우봉규 지음, 임향한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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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은 948년에 고려 정종 3년에 금주고을에서 태어났다.

나는 강감찬에 대해서 학교에서 독서 골든벨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이 잘 못하는문제를 뽑아서 내셨다.

쉬운 것도 나왔지만 이런 문제를 내셨다.

거란족이 첫번째로 쳐들어왔을 때 강감찬이 물리친 거란족의 장군은?

나는 강감찬에 대해서 거의 틀렸다.

왜 강감찬은 은천이였다가 강감찬으로 이름을 바꾸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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