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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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포리스터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아름드리미디어, 1996.11.1. 7,800)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5)

 

그게 이치란 거야. 누구나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야 한다. 사슴을 잡을 때도 제일 좋은 놈을 잡으려 하면 안돼. 작고 느린 놈을 골라야 남은 사슴들이 더 강해지고, 그렇게 해야 우리도 두고두고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거야. 흑표범인 파코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지. 너도 꼭 알아두어야 하고.(25)

 

꿀벌인 티비들만 자기들이 쓸 것보다 더 많은 꿀을 저장해두지그러니 곰한테도 뺏기고 너구리한테도 뺏기고우리 체로키한테 뺏기기도 하지. 그놈들은 언제나 자기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쌓아두고 싶어하는 사람들하고 똑같아. 뒤룩뒤룩 살찐 사람들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그러고도 또 남의 걸 빼앗아오고 싶어하지. 그러니 전쟁이 일어나고그러고 나면 또 길고 긴 협상이 시작되지. 조금이라도 자기 몫을 더 늘리려고 말이다. 그들은 자기가 먼저 깃발을 꽂았기 때문에 그럴 권리가 있다고 하지그러니 사람들은 그놈의 말과 깃발 때문에 서서히 죽어가는 셈이야하지만 그들도 자연의 이치를 바꿀 수는 없어.(25)

 

어쨌든 조지 워싱턴이 총알에 맞았을 거라는 할아버지의 해석은 나한테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래야 그가 일으킨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39)

 

개든 사람이든 간에 자기가 아무데도 쓸모없다고 느끼는 건 대단히 좋지 않다는 게 할아버지의 설명이셨다.(42)

 

그놈이 나무 앞에서 두세 번 짖자 그 빈 나무 속에서 다른 여우 한 마리가 나왔다. 그러자 첫번째 놈은 나무 속으로 들어가고 두번째 놈이 쫓아오는 개들을 끌고서 총총걸음으로 달아났다. 할아버지가 나무 곁으로 가보니 그 속에서 여우의 코고는 소리가 들리더란다. 개들이 바로 코앞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자신의 잔재주에 얼마나 자신이 있었던지 개들이 그렇게 가까이 지나가도 여우는 쥐뿔도 신경을 안 쓰더라는 것이다.(55)

 

할아버지는 예전에도 이런 일을 많이 봤다고 하셨다. 사람들 중에도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리핏처럼 호되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시면서,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았다.(54)

 

할머니가 나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거나 좋은 것을 손에 넣으면 무엇보다 먼저 이웃과 함께 나누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말로는 갈 수 없는 곳까지도 그 좋은 것이 퍼지게 된다.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97)

 

할머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하셨다. 하나의 마음은 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꾸려가는 마음이다. (중략)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과 전혀 관계없는 또 다른 마음이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음을 영혼의 마음이라고 부르셨다.(101)

 

그런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죽은 사람이 되고 만다. 할머니는 어디서나 쉽게 죽은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하셨다. 여자를 봐도 더러운 것만 찾아내는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쁜 것만 찾아내는 사람, 나무를 봐도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고 목재와 돈덩어리로만 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이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그런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죽은 사람들이었다.

영혼의 마음은 근육과 비슷해서 쓰면 쓸수록 더 커지고 강해진다. 마음을 더 크고 튼튼하게 가꿀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한 가지, 상대를 이해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것뿐이다.(102)

 

산사람들에게 변변한 직장이란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고용되는 직업을 뜻한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한테 고용되어 생활하는 것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하는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봤자 만족은 없고 시간만 낭비할 뿐이라고 주장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107)

 

참 묘한 일이지만 늙어서 자기가 사랑했던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 좋은 점만 생각나지 나쁜 점은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나쁜 건 정말 별거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니겠냐고 하셨다.(127)

 

그 정치가는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내 손만은 잡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인디언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하셨다. 인디언은 아예 투표를 하지 않으니 그 정치가한테는 우리가 아무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그럴듯한 설명이었다.(132)

 

인디언은 우의의 표시로 손바닥을 펴서 들어올려 보인다.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충분히 이치에 맞는 이 행위가 백인들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비치곤 했다. 백인들은 악수로 같은 뜻을 표현하지만, 악수라는 것은 감칠 듯이 다정한 말을 입에 올리면서도 친구라고 하는 상대가 혹시라도 소매 속에 총을 숨기고 있을까봐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흔들어대는 행위라는 게 할아버지의 주장이셨다. 할아버지는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친구라고 생각한 상대를 의심하며 소매에서 뭔가를 떨어뜨리려는 사람이 좋게 보일 리 없었던 것이다.(194)

 

할아버지는 해가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일은 자주 있다, 특히 오후 늦게 밭일을 끝내고 한시바삐 냇가에서 몸을 씻고 싶다는 생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고 하셨다. 또 할아버지는 우리가 무슨 일엔가에 몰두해서 해가 아무리 더디게 움직여도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 해도 게으름피우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일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하셨다.(222)

 

또 할어버지 자신은 언제나 어둠이 무서워서 조마조마해하고 있으니, 이제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는 것은 전적으로 나한테 달려 있다고 하셨다.(224)

 

윌로 존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셨다. 그분의 눈속 아득하게 깊은 곳에서 반짝이는 빛 같은 것이 보였다. 나중에 할머니는 윌로 존이 그런 눈빛을 보인 건 몇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230)

 

와인 씨는 나에게 가르쳐준 연필 깍는 방법을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다. 인색한 것과 절약하는 것은 다르다. 돈을 숭배하여 돈을 써야 할 때도 쓰지 않는 일부 부자들만큼이나 나쁜 게 인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살면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인생에서 어떤 착한 일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써야 할 때에 돈을 쓰면서도 낭비하지 않은 것이 절약하는 것이다.(254)

 

할머니의 가슴 앞섶에는 나에게 쓴 편지가 꽂혀 있었다.

 

작은 나무야, 나는 가야 한단다. 네가 나무를 느끼듯이, 귀기울여 듣고 있으면 우리를 느낄 수 있을 거다. 널 기다리고 있으마.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이번보다 더 나을 거야. 모든 일이 잘될 거다. 할머니가.(330)

 

블루보이는 코가 발달되어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벌써 고향산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블루보이라면 문제없이 할아버지 뒤를 따라잡을 것이다.(332.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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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 - 박완서 기행산문집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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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여행가방(박완서, 실천문학사, 2005.12, 9,800)

 

1.       생각하면 그리운 땅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고 남도기행

타임머신을 타고 간 여행 하회 마을 기행

생각하면 그리운 땅 섬진강 기행

만추 여행 오대산 기행

2.       잃어버린 여행가방

잃어버린 여행가방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 바티칸 기행

, 참 좋은 울음터로구나 중국 백두산 기행

상해와의 인연 상해 기행

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숨 쉬지 않는 땅 에티오피아 방문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인도네시아 방문기

4.       해오의 여정

모독 티베트 기행

신들의 도시 카트만두 기행

 

우리가 조금 잘살게 됐다고 자본주의의 악의 꽃만 들입다 수입해 정신없이 즐기다가 어느 날 문득 불빛이 사위어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사막화된 황무지 한가운데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남도기행, 27)

 

옛사람이 집터를 잡는다는 건 당장 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 몇백 년을 두고 후손이 번창할 자리를 잡는다는 뜻이었다.(하회마을 기행, 31)

 

가장 앞서갔다고 생각되는 게 가장 처진 게 될 수도 있다. 지금 가장 낙후된 고장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앞선 희망의 땅이 될 수도 있다. 발전이란 이름으로 만신창이가 된 국토에 마지막 남은 보석 같은 땅이여, 영원하라.(섬진강 기행, 48)

 

음력 설까지 쇠었으니 이제 확실하게 한 살을 더 먹었다. 이 나이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니 장수의 복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내가 쓰고 살던 집과 가재도구를 고스란히 두고 떠날 생각을 하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나의 최후의 집은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가방이 아닐까. 내가 끼고 살던 물건들은 남 보기에는 하찮은 것들이다. 구식의 낡은 생활필수품 아니면 왜 이런 것들을 끼고 살았는지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이 어린 물건들이다. 나에게만 중요했던 것은, 나의 소멸과 동시에 남은 가족들에게 처치 곤란한 짐만 될 것이다. 될 수 있으면 단순 소박하게 사느라 애썼지만 내가 남길 내 인생의 남루한 여행가방을 생각하면 내 자식들의 입장이 되어 골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나 내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 육신이란 여행가방 안에 깃들었던 내 영혼을, 절대로 기만하 수 없는 엄정한 시선, 숨을 곳 없는 밝음 앞에 드러내는 순간이 아닐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일생 끌고 온 이 남루한 여행가방을 열 분이 주님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허세를 부릴 필요도 없고 눈가림도 안 통할 테니 도리어 걱정이 안 된다. 걱정이란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할 때 생기는 법이다. 이게 저의 전부입니다. 나를 숨겨준 여행가방을 미련 없이 버리고 나의 전체를 온전히 드러낼 때, 그분은 혹시 이렇게 나를 위로해주시지 않을까. 오냐, 그래도 잘 살아냈다. 이제 편히 쉬거라.(잃어버린 여행가방, 63)

 

아무리 승용차로 간다 해도 내일 아침 그 많은 인파를 뚫고 과연 제시간에 바티칸에 도착할 수 있을까, 내가 걱정한다고 달라질 리 없는 걱정은 안 하는 게 수라는 걸 알 만한 나이가 됐건만도 그 모양이었다.(바티칸 기행, 66)

 

남의 정치 체제나 문화, 국민소득 들을 우리와 비교하지 않고 그 나름대로 사는 양상으로 그냥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중국 백두산 기행, 75)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쪽 조선족들의 꾸미지 않고도 저절로 큰 마음씨와, 남북 두 개로 갈라진 조국을 편견 없이 직시하고, 그른 건 그르다 옳은 건 옳다, 거침없이 말하면서 양쪽을 함께 얼싸안으려는 열띤 태도는 흉내내봄 직한 것이었다.(상동, 78)

 

차려입은 겉모양은 우리가 그이들보다 좀 나아 보일지 몰라도 마음은 훨씬 더 초라하고 밉다는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비밀스러운 열등감이었다. 우리의 빈번한 왕래가 그 땅에 앞으로 유발시킬 소비의 욕구를 생각하면 우리가 바로 인간 공해라는 미안감도 들었다.(상동, 88)

 

남자(이이화 소장)의 울음은 거의가 중국 사람인 선객들에게도 충격을 준 것 같았다. 저희들끼리 수군대며 일제히 우리에게 창가 자리를 내주었고, 눈빛에 깊은 연민이 어렸다.

분단된 민족에 대한 그이들의 적나라한 연민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중국 땅에서 숱하게 뿌리고 다닌 연민을 같잖고도 창피하게 여겼다. 그이들이 우리보다 조금 못 입었다고, 조금 덜 정결하다고, 조금 작은 집에 산다고 여길 때마다 아끼지 않은 연민은 이제 그이들로부터 받고 있는 연민에 비하면 얼마나 사소하고도 천박스러운 것이었나.

돌이켜보니 우리 세 사람의 호곡장은 다 달랐지만 결국은 한뿌리에 닿아 있었다.(상동, 95)

 

땅의 숨결이란 무엇인가. 나무와 풀과 푸성귀의 씨앗을 품고 싹트게 하고 밀어올리는 거대한 에너지가 아닌가. 만약 올해로 이 가혹한 한발이 끝나고 충분한 비가 내린다면 땅이 되살아날까. 나는 그 메마른 땅으로 폭우가 쏟아질 것을 상상하는 게 더 무서웠다. 토사와 영양분을 사정없이 훑어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숨 쉬지 않는 땅이란 물과 영양분의 저장 능력이 없는 땅이기도 했다.(에티오피아 방문기, 107)

 

그러나 이 지역은 1977년 오가딘전쟁 때 멩기스투 정권이 소련, 쿠바 등 외세의 군사력 지원까지 받아 진압한 곳으로 그때 전란을 피해 소말리아로 피난 갔던 소말리아계 에티오피아인들이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다시 건너온 것이니 피난인 동시에 귀향일 수도 있었다.(상동, 108)

 

그렇다고 시내에 차가 귀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일제인 외제차의 왕래가 빈번하고 고급차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요컨대 그들은 심심한 것이었다. 선량하지만 무기력해 보여서 속상했다. 저 아이들이 심심하지 않도록 무기력으로부터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나라에 진정한 변화가 올 것 같았다.(상동, 117)

 

농업을 전적으로 강우량에 의지하던 고장이 장기간의 한발로 메말라가는 모습은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한지, 우리가 곧잘 쓰는 신토불이가 우리하고는 다른 뜻으로 딱 들어맞고 있었다.(상동, 123)

 

이틀만에 메켈레로 돌아와 지칠 대로 지친 몸이 혼곤한 잠에 빠지면서 나는 분명히 어릴 적 원두막에서 듣던, 옥수수 잎사귀를 때리던 상쾌한 소나기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바람 소리였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 내려다보니 자카란다 꽃이 마당 하나 가득 보랏빛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상동, 125)

 

티베트의 하늘은 그때의 우리 하늘빛보다 더 깊게 푸르다. 인간의 입김이 서리기 전, 태초의 하늘빛이 저랬을까? 그러나 태초에도 티베트 땅이 이고 있는 하늘빛은 다른 곳의 하늘과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햇빛을 보면 그걸 더욱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다. 바늘쌈을 풀어놓은 것처럼 대뜸 눈을 쏘는 날카로움에선 적의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그건 산소가 희박한 공기층을 통과한 햇빛 특유의 마모되지 않은, 야성 그대로의 공격성일 것이다.(티베트 기행, 134)

 

식물한계선을 넘은 높이에 있는 이곳 산은 눈을 이고 있지 않으면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맨몸이다. 바위도 없이 갈색 흙으로 된 산들이 우기에 팬 자국을 주름처럼, 거대한 발가락처럼, 사타구니처럼 드러내고 대책 없이 서 있는 꼴은 황량과 파렴치의 극치이다. 그 낯선 풍경에는 이국적이라는 말도 그 감미로운 울림 때문에 해당이 안 된다. 딴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게 아니라 딴 천체를 여행하고 있는 것처럼 아득하고 공포스러운 외로움에 사로잡히게 된다.(상동, 145)

 

지구가 마침내 생명을 품을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노쇠하면 저런 모양으로 먼지로 풍화해버릴 것도 같다. 종말인 듯 시초인 듯, 이 이상한 나라에서는 종말과 시초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가 풍화 직전의 먼지보다 하찮게 여겨진다.(상동, 146)

 

포탈라 궁은 철근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돌과 나무만 가지고 지은 고층 건물인데 3백여 년 동안 끄떡없이 유지되는 걸로도 세계적인 불가사의에 들어간다는 게 안내원 석 부장의 설명이다. 티베트의 얼마 안 되는 삼림 지대와 부탄 등 주변 국가에서 나는 주니퍼 나무(삼나무의 일종)가 그렇게 단단하다고 한다.(상동, 153)

 

옴마니반메훔을 직역하면 연꽃 속의 보석이여라는 뜻이라고 한다.

몇 호 안 되는 마을도 희게 칠한 불탑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고, 불탑에는 물론 집에도 반드시 오색 헝겊 깃발이 꽃혀 있다. 세로로 꽂힌 깃발 맨 위엔 청색, 백색, 적색, 녹색, 황색의 순서로 손수건만한 헝겊을 달아놓고 있다. 부처님이 득도했을 때 몸에서 오색의 빛이 난 데서 유래된 종교적 관습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말 한마디, 일거수 일투족이 부처하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상동, 169)

 

우리가 모르는 사람을 처음 소개받을 때 그 사람의 학벌이나 지위, 재산 정도 따위보다도 그 사람의 귀여운 버릇이나 소탈한 일화 같은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이해하고 호감을 갖는 데 믿을 만한 구실을 할 때가 있다. 헬레나의 글도 내가 티베트를 여행하는 동안, 특히 시골에서는 그런 좋은 위미의 선입관이 돼주었다.(상동, 189)

 

고마워하면서 잡아먹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시체를 독수리에게 먹히는 조장의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땅이라는 걸 감안해야 할 것 같다.

영혼을 떠나보낸 육체에 대해서는 그게 비록 인간의 시신이라 할지라도 미신적인 공포감이나 신비화 없이 냉정하게 직시하는 능력 또한 티베트 민족의 상냥함과는 또 다른 엄혹한 면이 아닐까. 야크를 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야크에서 나는 건 털끝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완벽한 이용으로 표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연민, 자비 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의 정서라고 해서 그 사랑법까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상동, 190)

 

1절    형이 아우에게

나는 타국으로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슬퍼하지 말아다오, 아우야.

이것은 전생에서의 인과일 테니까.

언젠가 구름 사이로 볕이 드는 날도 있을 테니.

 

2절    아우가 형에게

나는 여기 남아 있을 게요, 형님.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주세요.

이것도 전생으로부터의 인과겠죠.

한 방울의 물도 결국에는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걸요.

 

3절    티베트 민중이 두 분에게

우리들은 고통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것이 전생으로부터의 인과니까요.

제발 슬퍼하지 마세요.

하늘의 해와 달 같은 두 분의 지킴 덕으로 우리들의 오늘이 있으니까요.

(상동, 199)

 

더 열렬한 신자나 명상가 중에는 평생의 목표를 자기가 사는 고장으로부터 카일라스 산까지 오체투지로 가는 걸로 세우기도 한단다.

인도에서 카일라스 산까지 이십 년이 넘게 걸려도 그걸 실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상동, 210)

 

그러나 밤하늘의 별은 놀라웠다. 세상을 잘 만나 여기저기 돌아다녀본 데도 많고 지상의 모습뿐 아니라 밤하늘의 모습도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팅그리의 밤하늘처럼 신비하게 별이 빛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잃었던 유년기의 신비까지 가슴으로 쏟아져내리는 것 같았다. 혹독한 기후를 견디며 불모의 황원에서 노숙하는 유목민도 저런 밤하늘을 이고 자리라. 그들의 상상력이 화려 찬란하고도 천상적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상상력의 총집결이 그 장엄하고도 사치를 극한 사원의 불상들이 아닐까.

다음날도 히말라야 산맥을 전망하기에 좋은 쾌청한 날씨였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라고 부르는 히말라야 최고봉을 여기서는 초모랑마라고 한다. 에베레스트는 그 산이 최고봉이라는 걸 발견한 서양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만 발견해도 거기다 제 이름을 붙이고 싶어하는 게 서양 문명이니까 어련했겠는가. 그러나 초모랑마는 최고봉이라고 발견되기 전에도 최고봉이었고, 이름이 붙여기지 전부터 거기 있었다. 에베레스트는 칠성이가 미국 가서 리처드가 된 것 같은 이름이니 본고장에서는 초모랑마라고 불러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상동 219)

 

우리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부르는 이 티베트 고원은 5천만 년 내지 1억 년 전에는 바다였다고 한다. 그럼 인도 대륙은 자연히 거대한 섬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섬이 무슨 까닭으로인지 북진을 해 아시아 대륙과 충돌을 하면서 그 힘으로 바다 밑이 솟아올라 광대한 고원이 됐다고 한다. 그 증거가 되는 어패류의 화석이 지금도 이 고원 여기저기서 많이 발견되고 그건 지금도 이곳 시장의 중요한 관광상품이 되고 있다.(상동, 221)

 

이게 그 말썽꾸러기 버스하고도 작별이었다. 버스와는 상관없이 티베트 운전사와 안내양을 우리는 다들 좋아하고 정도 들었기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작별을 아쉬어하면서 따뜻한 포옹을 나누었다. 괜히 가슴이 뭉클하면서 우리와의 만남이 저들에게 무엇이 되어 남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관광 작태가 저들에게 모독이나 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에겐 아직도 랏채에서의 기억이 상처처럼 생생하고도 고약했다.(상동, 227)

 

없는 나라 차가 없다고 할 정도로 각국의 고물차들을 다 볼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유럽의 젊은이들이 낡은 차나 버스를 한 대 사가지고 나라마다 색다른 풍물을 즐기며 지구를 반 바퀴 도는 긴 여행 끝의 종착역이 바로 카트만두이기 때문이란다. 타고 온 차를 여기서 팔면 그동안의 여비뿐 아니라 돌아갈 비행기표 값까지 떨어질 정도로, 아무리 고물차라도 차 값이 비싼 게 이 나라라고 한다. 바퀴 달린 건 아직 자전거도 못 만든다는 이 나라의 비극이다. 공업화하고 상관없는 공해여서 더욱 민망하다.(카트만두 기행, 229)

 

하루 50루피(1달러)로 벌기 어려운데 그들이 세운 학교의 학비가 일 년에 2천 루피도 더 든다는 애절한 호소를 단지 장사꾼의 우는 소리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우리야말로 자식 가르치는 데 있어서 이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 아닌가.(상동 247)

 

이곳까지 임종을 위해 와 있는 노인들도 많아, 그런 노인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있다. 그런 노인들은 아마 안 죽고 있는 동안 매일매일 죽음을 예습할 수 있으리라. 죽음이 복습이 되면 혹시 덜 힘들까. 늙으면 친구의 부음이 가장 큰 충격이 되는 우리나라 노인들하고는 너무도 다르다.(상동, 250)

 

실상 온통 약탈한 것 투성이인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신자 없는 장려한 성당, 그림엽서하고 똑같이 가꾸어놓은 전원 풍경에 실컷 질리고 감동하고, 그런 문화를 가진 민족이니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언행까지를 흘금흘금 관찰하게 되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이란 얼마나 피곤한가. 그렇다고 만 불 시대의 부를 마음껏 으스대며 남을 마구 얕보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 무절제한 쇼핑과 환락을 일삼는 동포들과 하루 몇 번씩 부딪혀야 하는 동남아나 중국 여행이 덜 피곤한 것도 아니다. 무시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기나 무시하기에 급급하기나 피차 편안치 못한 관계이긴 마찬가지다.

네팔 여행은 그런 부담없이 상대방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신기해하며 인정해주고 같이 즐길 수 있어 좋고,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못 꿀 낭비를 와장창 하고 나면 책임감과 약속에 얽매인 사람노릇과 공해로 질식할 것 같은 몸과 마음이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생기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서 또한 좋다. 요새도 뭔가로 벌충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참아낼 수 없을 것처럼 심신이 바스라졌다고 여겨질 때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고 거기서 누가 부르는 것처럼 마음이 달뜨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네팔에서 어쩌다 우리나라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걸으러 온 사람이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타는 사람보다도, 나는 사람보다도, 뛰는 사람보다도, 달리는 사람보다도, 기는 사람보다도, 걷는 사람이 난 제일 좋다.(상동,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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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내 운명 - 번역이 좋아 번역가로 살아가는 6人6色
이종인 외 지음 / 즐거운상상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번역은 내 운명(즐거운상상, 2006.3.3 )

 

1)

강주헌 – 1957년 서울생, 외대 불어과(/박사), 프랑스 브장송대 수학(언어학 박사), 외대/건대 수학, 현재 전문번역가,

<문화란 무엇인가 1/2>, <노스트라다무스의 대예언>,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

 

번역은 쉬어야 한다! 내용은 어렵더라도 읽어 내려갈 수는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 원칙은 촘스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모든 책에 적용시킨다. 전문 용어는 최대한 살리더라도 누구나 읽어 낼 수 있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요약하면 어려운 책도 쉽게 번역하자는 것이다. 전공자들이야 원서를 읽으면 될 것이 아닌가. 책을 번역하는 목적, 더구나 출판의 목적은 대중화에 있으니까 말이다. 출판을 뜻하는 ‘publishing’의 어원이 ‘public’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17)

 

2001 11강주헌 해외저작권을 중계하는 에이전시 설립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미국에서는 10년 전, 1995년에 첫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34)

 

 

번역 강좌라면 번역을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고, 다리 역할은 부수적인 차원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옆에 있던 번역가 친구가 한겨레문화센터 편을 드는 것이 아닌가!

기존 번역 학원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초보 번역가들을 등쳐먹는다고 욕했잖아.”

에잇, 친구가 배신하다니! 결국 한겨레 문화센터에 번역 강좌가 개설되었다.(37)

 

2)

권남희 - 1966년생, 중앙대 일어과,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사임당아씨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 유머작가, <창이 있는 서점에서> <러브레터> <질투의 향기> <토토의 새로운 세상>..

 

그런데 그 후로 난 참치를 먹지 않는다. 왠지 참치를 먹으면 그때가 생각나서 눈물난다. 배터지게 잘 먹고 이런 말 해서 참치업계 종사자들에게 몹시 미안하지만, 눈물 젖은 참치를 먹어보지 않은 자는 돌을 던지지 말라고.(65)

 

번역하는 사람들의 인터넷 까페(68)

 

아마존 재팬 같은 일본 사이트를 찾아,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좋은 책들을 골라 보라. 검토서를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71)

 

일이 없는 동안에는 차라리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부지런히 책을 읽어 국어실력을 키워라.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음 번역은 매끄러워져 있을 것이다.(72)

 

3)

김춘미 이대 영문과, 외대 일본어과(석사), 고대 국문과(박사). 고대 일문과 교수. 한국 일본학회 회장

<해변의 카프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밤의 원숭이>(이상 무라카미 하루키),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

 

우선 번역이 원문을 언어적, 문화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 번역이 원문의 분위기, 정서를 잘 전달하고 있을 것. 원작의 리듬, 호흡, 문체적 특징 등은 작가의 문학 세계의 내실이므로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리듬을 중시하는 편이다. 그래서 원작가의 호흡과 문체의 리듬을 가장 중요시한다. 세 번째로 번역된 텍스트가 그 나라의 문학 작품으로도 매력적인 읽을거리가 되어야 한다. 먼저 번역이 원문에 충실하며 동시에 번역된 언어로서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위의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황석영 선생의 <오래된 정원>을 번역한 아오야키 유코 씨에게 대상이 돌아갔다.(104)

 

번역이란 뭔가를 진지하게 배우려는 작업이라고 한 하루키의 얘기에서 번역이 새로운 문체의 획득, 다시 말해 새로운 자아(주체)의 획득에 모종의 역할을 했을 거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소설가가 번역을 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자기 나름의 문체 창출을 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문학 형성기부터 작가란 자기만의 문체를 확립하기 위해 고심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119)

 

4)

송병선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 콜럼비아 하베리아나 대학(박사), 울산대 스페인 중남미학과 교수, <거미여인의 키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번역은 단지 복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을 문화적으로 확장하면, 문화의 지배국인 유럽과 미국은 위대한 독창성의 출발점이지만, 그들의 것을 수용하는 국가들은 번역이며 복사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피지배 국가들은 메트로폴리스의 텍스트들을 마구 먹어치워 주인의 복제품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직역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한쪽 발을 직역에, 다른 한쪽 발을 의역에 놓고 작업하는 번역가이다. 이 말은 외국 작품을 우리에게 맞게 완전히 동화시키는 작업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보존하면서 외국적인 요소들에 어느 정도 초점을 맞춘다는 의미이다.

…(중략)..

다시 <돈키호테>로 돌아가자. 이 작품의 신부는 원본을 우선시하는 죄를 범한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통해 그것을 해체한다. 우리는 이 작품의 저자가 믿을 수 없는 무어인인 시데 아메테 베넨헬리인지, 아니면 세르반테스인지, 그것도 아니면 익명의 번역가인지 알지 못한다.(135)

내가 옮긴 작품들도 나의 관점을 보여주는 재창조물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들은 나의 머리와 경험에서 나온 산물, 그러니까 내가 전적으로 친권을 가진 친자식들은 아니지만, 고통 끝에 탄생시킨 나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타인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소중하게 여긴다. ‘눈에 보이는번역과 내 관점에 의한 번역을 통해 나는 내가 소개하고 번역하는 작품이 단순히 사본에 불과하다는 것에 반항한다. 이런 번역은 불가피하게 반역을 통한 또 다른 산물을 창조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반역자이자 창조자인 말린체이다.(135~136)

 

우리나라에 <독서의 역사>로 잘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의 번역가 알베르토 망구엘은 이렇게 번역가를 찬양한다. “번역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세밀한 독서방법이다. 책을 읽고 번역하면서 우리는 해석한다. 번역가는 원문에 담긴 모든 불완전함을 보고, 모든 논리의 부족과 실수, 그리고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대목들을 본다. 번역가의 눈은 무자비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해당 작품을 번역가보다 더 자세하게 읽는 독자는 없다는 망구엘의 지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138)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세계 문학을 이끌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현대문학은 단순히 제3세계 문학이라는 주변문학으로만 간주되던 실정이었다.(141)

 

나는 내 수정본이 결정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본이란 화석과 같은 죽은 존재라고 여긴다. 번역에서 결정본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의미에서 번역은 영원히 살아 있다. 번역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여러 번 번역되어야 한다. 번역은 변화이며 움직임이다. 더 이상 가야할 장소 없이 동일한 상태로 남아 있을 때 문학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148)

 

내가 보기에는 더욱 급한 일이 지금 살아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시 번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40여 권의 책을 번역했지만, 내가 번역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은 없다. 단지 4만 부에서 5만 부 정도가 팔린 준 베스트셀러가 몇 권 있을 뿐이다. 나는 대부분 인세로 계약하기 때문에 번역서를 출판할 때마다 베스트셀러를 꿈꾼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이것은 정말로 이엇다. 그 꿈이 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꿈을 꾸며 행복해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행복한 번역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번역을 통해 많은 출판계 사람들을 알계 되었고, 어떤 경우는 흉허물 없는 우정까지 나누기 때문이다. 번역이란 세계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내 고통과 노력의 산물인 번역물만큼 소중하니까.(159)

 

5)

이종인 - 1954년생, 고대 영문과, 브리태니커 편집국장, 성대 전문번역가 겸임교수,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만약에> <고대 그리스의 역사> <성의 페르소나> <영어의 탄생>

 

인세는 책이 많이 팔릴수록 번역가에게 유리하고, 척박한 출판 환경에서 문화사업의 보람으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 경영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방식이다.(170)

 

(출판사) 대부분 책이 출판된 그 다음달에 (인세를) 주는 게 표준 절차인 듯하다. 문제는 그 책이 언제 나오는가이다.(172)

 

만약 어떤 책이 확실히 출판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미리 안다면, 나는 아무리 번역료를 많이 주어도 계약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173)

 

에세이난 소설 같은 타이틀은 공경희씨가, 추리 설이나 애정 소설은 선배 번역가 이창식 씨가 많이 담당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럼 나는 어느 장르인가? 나의 고민은 특정한 장르 없이 텍스트가 어려운 것일수록 이 아무개에게라는 동의할 수 없는 낭설이 출판계에 퍼져 있다는 것이다.(176)

 

<리더쉽 리터러시>(세종서적, 1999)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인 스토리를 24회나 되풀이해야 하는 것이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텍스트가 따분하다고 생각할 경우 과연 잘 된 번역이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책을 만났을 때 번역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180)

 

번역타이틀을 앞에 놓은 번역가의 심리는 텅빈 스크린, 맑은 연못, 비어 있는 계곡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193)

 

딱ㄸ가한 문장을 그녀가 부드럽게 고쳐놓은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르고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구사하여 무명을 비단으로 만들어 놓은 그녀의 솜씨 때문에 번역을 할 때마다 미성 씨의 쉬운 문장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195)

 

장인의 명성은 그가 만들어내는 물건에 달린 것이지, 그의 이력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항상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치열한 정신으로 매달려야 한다.(197)

 

그런데 이(..) 글의 아름다움이 번역과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이 글은 황신혜라는 여배우의 외모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녀를 번역하고 잇다. 황신혜에 대하여 저자 특유의 해석을 가하고 있다. 모든 번역은 텍스트에 대하 논평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논평을 하고 있는 것이다.(200)

 

이렇게 볼 때 번역이 원작보다 못하다는 얘기는 오해에 지나지 않는다. 원작이라는 것도 이미 리얼리티(실제 : 보다 구체적으로 위에서 예를 든 황신혜나 경정산)로부터 한 단계 떨어져 있으므로, 원작과 번역이 서로 리얼리티를 다투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바로 이런 근거에서 번역은 제2의 창작 혹은 아름다움의 창조가 되는 것이다.(205)

 

잘 된 번역서에는 우리말 특유의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번역과정에서 외국어(원서의 언어)와의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우리말의 결정체인 번역서, 거기에는 황신혜 못지 않은 한국어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있다.(206)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라는 장편 소설의 맨 처음에서 이렇게 말했지요.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모습으로 행복하다. 하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사유로 불행하다.” 나는 톨스토이의 행복한 가정이 23각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212)

 

6)

최정수 : 70년생, 연대 불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연금술사> <, 자히르> <숨쉬어>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빈센트와 반 고흐>

 

번역가는 해당 국가에서 그 책의 최초의 독자이다. 그 책을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정확하고 성실하게 소개하는 것, 그것은 번역가의 영광이지만, 앞으로 그 책을 읽게 될 이름 모를 수많은 독자들을 생각한다면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일이다.(229)

 

사실, 파울로 코엘료는 엄청한 대중적 인기에 비해 평단으로부터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잘 차려내지만, 문체나 문학성,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빈약하다는, 이른바 깊이는 없고, 글 솜씨만 좋은 마케팅의 귀재라는 것이 대다수 평론가들의 입장이었다.(235)

 

하지만 이 일은 동서고금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그리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아주 크고 다채로운 세계이다. 내 세계의 지평을 조금 넓혀보고 싶은 사람, 또 하나의 세계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봐도 좋은 일 아닐까?(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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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고수기행
조용헌 지음, 양현모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조용헌의 고수기행(조용헌, 랜덤하우스 중앙, 2006.3.28)

 

* 족보학 연구가 서수용

돌이켜 보면 근대 이전의 조선 후기는 경상도가 탄압을 받았던 셈이고 경상도 사람이 지역적 차별을 받고 소외를 당했던 역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22)

 

* 묵방산 산지기 이우원

예술품이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연의 대용품인 것 같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자연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유리된 삶이다 예술이란 자연을 접할 수 없는 문명과 도시의 산물이다.(40)

 

종로 2가 관철동에서 학사주점을 운영하기도 했다. 일명 ‘2층집이었다. (중략) 일포가 학사주점을 운영하면서 벽에 서 붙여놓은 구호가 있었다고 한다. ‘마셔도 취하지 말자. 취해도 흔들리지 말자. 흔들려도 외상 긋지 말자!’ 외상이 많았으니 장사가 잘 될 리 없었다.(49)

 

아미타불은 이 자비이고, 태양이 아닐까. 물론 나의 개인적인 해석이다. 그래서 아미타불이 서방에 계신다고 여겼던 것 같다. 서쪽을 향해 지은 아미타불 도량은 예불하는 사람으로하여금 석양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저녁노을이 주는 평화다.(57)

 

* 컴퓨터와 사주의 크로스오버 김상숙

 

* 전업 문필가 이덕일

인문 역사서를 기술하는 과정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들과 대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서에 나오는 인물은 당대에 가장 뛰어났던 인물들이다. 그러한 인물과 매일 대화하니까 재미있다. 이런 재미 누리는 사람도 한국 사회에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조직의 보호도 그렇다. 당대의 진실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혼자 있을 때 잘 보인다.(110)

 

* 자연을 퍼주는 독지가 변동해

 

* 뼈대 있는 신선 정재승

 

* 오디오 마에스트로 일명 스님

사찰의 대웅전에 가보면 보통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왜 세 명의 부처님이 한 조를 이루어 모셔져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잇다.

첫째, 깨달음을 이룬 성자의 인격은 두 가지 면이 있는데, 하나는 자비이고, 또 하나는 지혜다. 자비로운 표정은 대체로 미소를 머금은 경우가 많고, 지혜로운 표정은 냉철한 기색을 띠게 마련이다. 이 상반된 두 가지 표정과 역할을 충돌 없이 나타내기 위해서 양쪽에 두 명의 불상을 조성했다고 보는 설이 있다. 오른쪽 불상이 자비라면 왼쪽 불상은 지혜를 담당하는 식이다.

둘째, 오랫동안 수행에 정진했던 노스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은 이야기다. 가운데 계신 본존불이 도를 닦고 있을 때 옆에 있는 두 사람이 시봉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략)

셋째, 깨달음과 예술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설이다. 가운데 자리가 깨달은 도인이 앉는 자리라고 한다면, 좌우의 자리는 예술가가 앉는 자리다.(180)

 

소리를 즐기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존재를 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존재 그 자체는 빛이고 기쁨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 그 자체는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다. 존재 그 자체는 불성이고 신성인데, 어찌 슬플 수 있겠는가. 그 근원적인 존재의 기쁨을 기쁨으로 표현하는 전달 매체가 바로 소리다. 존재와 기쁨의 중간에 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리는 그 중간 매개체라고 보면 된다.(185)

 

한 번 득음의 경지에 이르면 영원히 그 경지가 유지되는가. 돈오점수라고 하듯이, 득음 이후에도 수행이 필요한가?”

필요하다. 전라도 명창을 유명한 인물이 바로 임방울이다. 임방울도 이미 득음을 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와 여기저기 활동을 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흐트러진 것 같다. 세상에서 바쁘게 활동하다 보면 흐트러진다. 흐트러지면 다시 산에 들어가 폐관하고 정진해야 한다. 다시 추슬러야 하는 것이다. 임방울도 흐트러지면 산으로 들어가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186)

 

예를 들어, 눈이라고 하는 안근은 앞에 있는 사물은 볼 수 있지만, 뒤통수 너머에 있는 사물은 볼 수 없다. 그래서 800공덕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리를 듣는 이근은 뒤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전후좌우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래서 이근은 1,200공덕이라고 설명한다. 800보다 1,200이 더 크다. 눈보다 귀를 사용하는 것이 전천후 수행법인 것이다.(187)

 

듣는 소리는 대략 네 가지로 구분된다. 법음, 묘음, 해조음, 관음이 그것이다. 해조음은 바닷가의 파도 소리다. 파도 소리는 항상 들린다. 집중하려면 항상 들리는 소리를 택해야 한다. 필자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관음도량이 공교롭게도 모두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조음을 듣기 위해서다. 동해안에서는 낙산사 홍련암이 유명하고, 서해안에는 강화도 보문사, 남해안에는 남해 보리암이 있다. 한국의 3대 관음도량으로 꼽힌다.(187)

 

일명은 공덕을 쌓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단계는 물질로 도와주는 단계다. 가장 초보적인 아래 단계에 속한다. 그 다음 단계는 스스로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 담배를 적게 하고, 음식도 가능한 한 육식을 적게 먹고, 또 욕심을 줄이고, 하루에 1시간 이상 혼자 있으면서 자기를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는 선정력이다. 깊은 삼매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른바 기도발이 여기에 해당한다. 기도를 일심으로 하면 정신통일의 상태에 들어가고, 정신이 통일되면 정신세계에서 응답을 한다. 자타불이의 경지다. 이 응답이 기도발이다. 기도를 제대로 하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공덕을 쌓다 보면 관상이 바뀌고, 분위기가 바뀌고, 그 사람의 에너지의 파동이 바뀐다.(195)

 

스피커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corn 스피커와 혼horn 스피커가 있다. 콘 스피커는 소리를 직접 방사하는 방식이다. 직접 방사한다는 말은 증폭 장치가 달려 있지 않다는 의미다. 보통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오디오에 달려 잇는 사각형의 네모진 스피커다. 콘형은 바로 말하는 형식이다. 그에 비해 혼 스피커는 넓은 공간과 먼 거리에 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스피커다. 소리를 드라이브시킨다. 증폭시키는 것이다. 마치 입에다 두 손을 모아 말하는 형식이다. 커다란 나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혼 스피커다. 일명이 만드는 스피커는 혼형 스피커다. 한국적인 소리를 내는 데는 혼형이 적합하다. 일명이 지난 27년 동안 개발하는 데 몰두했던 스피커가 혼형 스피커였다.(199)

 

주변을 관찰해 보면 여자들이 음악은 좋아하지만 오디오 마니아는 없다. 왜 그런가. 일명의 분석에 의하면 여자는 아이를 낳는다. 자기 몸 내부에 이미 세계가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남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 그래서 밖에서 추구하게 된다. 밖에서 소리를 완성하고자 하는 욕망이 남자들을 오디오에 매달리게 만드는 것이다.(200)

 

일종의 소믈리에다. 포도주를 감별하는 직업이 소믈리에이듯이, 소리를 감별하는 사운드 소믈리에라고 할 만하다. 일명이 겨루고 있는 명품 스피커 회사를 물어보니 몇 군데가 있다. 미국에는 윌슨 오디오가 있다. 미국적인 소리를 내는 데 적합하다. 미국적인 소리는 사실적인 소리에 가깝다. 미국인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는 탓이다. 그랜드슬램 스피커다. 스피커 가격은 약 2억 원을 호가한다. 유럽에는 포칼에서 나온 그랜드 유토피아라는 스피커가 있다. 프랑스 제품인데, 프랑스 제품답게 포도주 냄새가 나는 스피커란다. 이 역시 2억 원 정도 한다. 스위스에서는 골드문트스피커가 유명하다. 독일과의 합작 회사인데, 자연에 가까운 투명한 소리를 낸다.(200)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물에 허물이 없다. 하지만 이 말은 한참 진행된 차원의 이야기다. 일상 생활에 지친 생활인들에게는 먼저 좋은 스피커로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기쁨을 느끼는 일이 필요하다. 삶의 피로를 푸는 데 소리가 그 역할을 한다. 그러면 단순해지고 소박해진다.(203)

 

* 서울공대 출신의 한의학 전문가 이의원

세상에 양이 있으면 음이 있게 마련이다. 대학 강단에서 통용되는 강단동양학이 있는가 하면, 강호의 무림에서 유통되는 강호동양학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강호동양학의 삼대 과목은 사주, 풍수, 한의학이다. 사주는 천시를 포함하는 학문이고, 풍수는 지리를 탐색하는 학문이며, 한의학은 인사를 다루는 학문이다.(208)

 

* 미국의 태권도 대부 이준구

진정한 고수는 어떤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초식을 꼭 필요한 자리에서 꼭 필요할 때 보일 수 있는 사람이다. 말이 많고 이유가 많은 사람은 고수가 될 수 없다. 고수는 순간의 일합을 통해 자신을 증명한다. 그러나 고수는 이 순간의 합일을 위해 수십 년을 준비한다.(232)

 

중년이 되면 척추 아래쪽 명문혈이 뒤로 빠져서 자세가 꾸부정하게 변하는데, 이준구는 명문혈이 안으로 들어가 있어서 앉은 자세가 수직을 이룬다. 명문혈이 곧으면 신장의 정기가 아직 충만해 있음을 뜻한다. (중략) 매일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니, “규칙적인 반복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어야 기술이 된다. 반복해야 세포가 기억한다. 따라서 좋은 습관, 좋은 기술이란 세포가 기억하는 것이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255)

 

* 비전 전문 명상가 한바다

불경기, 청년실업, 북핵 문제, 저출산은 한국이 직면한 사대 우울증이다.(262)

 

얼굴 표정도 동안에 가깝다. 상대방을 긴장하게 하지 않는 얼굴이다. 이런 얼굴이라면 안시라고 해야 맞다. 얼굴 표정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므로, 얼굴을 가지고 상대에게 보시하는 셈이다ㅏ. 얼굴에는 늘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264)

 

생각을 쉬면 마음이 맑고 고요해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불가에서는 모든 것을 놓으라는 방하착이라는 가르침이나, 분별심 또는 양변을 여의어라라는 가르침도 간단히 말해 생각을 쉬라는 것이다. ‘부처도 아니고, 부처 아님도 아니다라는 말이나 불일도 아니고, 불이도 아니다라는 선가의 표현 또한 생각을 통해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생각을 쉬게 만든다.(264)

 

생각을 버리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며, 때린 자도 맞은 자도 없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생각을 버리는 과정이 바로 명상이다. 명상은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게 하고 이 근원의 마음을 되찾게 해준다.(265)

 

보통 일상 생활을 하다 보면 눈, , , 입 등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으로 마음이 언제나 왔다 갔다 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 보면 근원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근원으로 소급하려면 일상적인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에 매달라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267)

 

고대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매일 목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욕이 갖는 의미는 매우 깊었다. 목욕은 성스러운 행사에 가까웠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거듭 난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세례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다. 정신적인 목욕이 곧 물소리를 듣는 일이다. 이렇게 지리산의 피아골처럼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가 근원의 마음을 찾는 데 유용한 장소다. 지금 이 산장도 물소리를 듣기에 아주 적당한 장소다.(268)

 

종자돈이 있어야 씨를 퍼트리고 이자를 치는 것처럼, 집단적인 행복감은 민족의 무의식에 커다란 에너지로 남아 있게 된다. 집단 카타르시스는 재도약할 수 있는 자본금이다. 이 자본금이야말로 긍정하는 힘이 된다. 긍정할 수 있어야 풍류로 갈 수 있다. 우리 나라는 그동안 이 긍정하는 에너지가 막혀 있었다. 월드컵이 긍정하는 힘을 주었다고 본다.(269)

 

비전은 30 ~ 40퍼센트 정도 실현 가능한 잠재력이다. 그러나 비전을 성취할 주체 집단의 몫과 책임이 큰 변수로 작용한다. 주체가 그 비전에 대한 사명 의식이나 주인 의식을 강하게 갖게 되면 30 ~ 40퍼센트의 가능성이 더해지며, 여기에 외적인 행운이 따른다면 비전은 성취된다. 이러한 비전이나 운들은 마치 집 앞 시냇가로 몰려드는 고기 떼와 같다. 고기 떼는 유동적인 에너지다. 만일 고기 떼를 잡을 소쿠리가 엎거나 또는 관심이 없어 그대로 놓아두면, 고기는 결국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가버린다. 비전의 성취를 위해서는 소명 의식과 현실적인 행동력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중요하다.(275)

 

가진 것 없이 이 산 저 산의 산장과 민박집이 거처일 뿐인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들을 축포처럼 터뜨리고 있다. 그와 1 2일 동안 계곡의 물소리를 들어가며 대담을 나누고 나니 왠지 모를 희망이 생긴다.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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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너머의 미국?

〈Made in USA〉가 보여준 기 소르망의 통찰은 공허하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9·11 3주년이 다가오고 있다. 이건 슬픈 얘기다. 이 비극적 사건의 주년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가 현재의 목을 조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9·11의 몇 주년까지 꼽아야 할까.


프랑스의 칼럼니스트 기 소르망이 지은 〈Made in USA〉(문학세계사 펴냄)는 9·11에 맞춰 불어·영어판과 거의 동시에 한국어판도 출판됐다는 점에서(한국에 관심 많은 지은이가 프랑스문화원을 통해 출판 의사를 타진했다고 한다), 기 소르망이라는 이름이 한국에서도 꽤 상품성이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 것 같다. 지은이는 이 책이 반미의 시각을 넘어서 “우리(유럽)와 그들(미국)과의 차이”를 탐구한다고 밝혔다. 확실이 이 책은 ‘반미’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기 소르망은 특유의 입버릇대로 미국의 ‘문명’을 성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이 몽땅 등장하고, 이것들을 관통하는 메커니즘이 분석된다. 그 메커니즘의 가장 중심부에 국가나 사회보다 우선하는 적극적인 개인주의가 있다. 그리고 캘빈주의를 바탕으로 한 종교성,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세계 전파라는 열망,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 인종의 융합 등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늙은 유럽의 지식인으로서 소르망은 미국을 ‘타자’로 관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신기한 물건’에 대해 꽤 재미있는 분석들을 내놓는다. 미국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립은 정치 영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절반의 미국인이 다른 절반의 미국인들과 싸우는 문화 전쟁”이다. 미국인들은 지식인보다 운동 선수를 대접하듯, 지성보다 몸에 집착한다. 미국 시민들은 캘리포니아주지사 소환의 예에서도 드러나듯,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정부에 반항하는 것을 즐긴다. 유럽 정치가 대중을 선도한다면 미국 정치는 항상 대중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기 소르망의 재치는 신흥 종교, 흑민 문제, 이민 문제 등에서 성급하게 긍정적인 전망들을 내놓으면서 부서져버린다. 게다가 10장 ‘제국적 민주주의’에 와서는 목소리가 아예 몽롱해진다. 소르망에 따르면 미국의 제국주의는 항상 민주주의의 전파를 위한 소명의식에 기반을 둔다. 미국은 유럽과 달리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하드 파워’에 입각한 군사력 사용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쯤되면 LA에서 열리는 눈물 범벅의 부흥회 같은 종교적 열정이다. 할렐루야!

소르망의 문제는 미국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반미’라는 하나의 근본주의로 치환해버린다는 데 있다. 미국을 바로 보기 위해 ‘반미’를 피해야 한다는 말은 그래서 공허하다. 기 소르망은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반미 유령’을 격퇴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유령은 그의 악몽 속에만 존재한다. 무엇보다 소르망은 ‘한국 걱정’을 안해주는 것이 좋겠다. 효순·미선양의 죽음으로 한국을 위해 죽은 3만3천 명의 미국 병사들이 갑자기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느니, 미군이 떠나면 두 개의 한국은 서로 싸우고 일본도 전쟁에 개입할 거라느니, 한국 반미주의자들은 반미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에서 권력과 특권을 얻는다느니 하는 말은 맨 정신으로 썼을까? 정말 동시 출간을 할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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