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 - 개정판 거꾸로 읽는 책 2
교육출판기획실 엮음 / 푸른나무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지금은 5,60대가 되었을 5,60년대생 문인, 노동자, 교사, 학생이 나이 2,30대에 쓴 성장기이다. 그 중 유시민이 나이 서른에 쓴 글이 눈에 띤다. 가난이 부끄러워 출세를 하고자 했으나 가난의 원인이 부모의 무능력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 학생운동으로 감옥까지 갔다는 이야기다.

 

요즘 2,30대는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난 때문에 출세를 위해 내달리고 있는 것은 과거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출세할 확률이 갈수록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가난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을 연민할 줄 아는 사람들이 점차 사회지도층, 지배계급이 되기 힘들어진다. 어차피 질 싸움에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은 그 싸움에서 어차피 이기게 될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끼리 연대하는 것이 출세의 길이다.

 

 

<밑줄 쫙>

 

나는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우등생이었다. 중학교 때보다는 성적이 훨씬 향상되어 선생님들로부터 일류대학에 진학하리라는 기대를 받는 우수한 고교평준화 1기생이었던 것이다. 교실 구석에서 박정희와 모모한 여인과의 관계에 대해 속살거리거나, 수업시간에 유신헌법의 비민주성에 대한 질문을 해서 사회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친구들을 나는 경멸했다. 나는 그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또 학생이라면 학교공부나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봉급액수를 알게 된 순간 이후, 나는 교과서와 선생님들의 지당하신 말씀들 속에서 거짓의 냄새를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 “각자가 이기심을 추구하기만 하면,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적 조화가 이루어진다.” 사회 교과서 전체를 지배한 이런 조화론적 세계관은 위대한 거짓말이었다. 각자가 자기의 이기심을 추구할 때 이루어지는 것은 약육강식의 냉혹한 세계일뿐이었다. 그것을 사회적 조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부자와 권력자뿐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내가 느낀 가난에 대해 부모님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성실 근면하고 정직하여 힘껏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면 그 가난이 경멸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가난한 부모님이 오히려 조금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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