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宇 집宙 - 지상의 집 한 채, 삶을 품고 우주와 통하다
서윤영 지음 / 궁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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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집에 관한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 다만 제목에서 암시하는 집과 우주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니, 그 설명을 보충하든가, <건축의 역사>라는 부제를 달든가 했어야...

 

" '우'와 '주'는 원래 지붕의 '처마'와 '들보'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한나라 고유가 <회남자>에서 상하사방의 공간을 '우'라고 하고 지나간 과거에서 다가올 미래까지의 시간을 '주'라고 주해한 이후에 천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터를 다지고 방을 나누고 층을 올리고 도시를 이루기까지, 사람살이를 넓히고 수렴하고 기억하고 내다봐온 역사가 곧 집이다. 우리가 사는 집은 작은 우주다"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어떠한 재료를 써서 집을 짓는가 하는 것과 신이 인류를 어떻게 창조했는가 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관련성이다. 다시 말해 진흙을 이용해 집을 짓는 문화권에서는 신이 진흙을 빚어 인류를 창조했다고 설명하는 신화가 주류를 이루는 반면, 목재를 이용한 문화권에서는 신이 나무를 깍아 인류를 창조했다고 하는 점이다."

 

"건축의 발달 과정은 기능의 세분화라고 할 수 있는데, 강원도 두메의 고콜은 최근까지도 불의 기능이 구분되지 않은 채 난방, 조명, 조리 등 다용도로 사용되는 예다. 오늘을 사는 지금도 때로 변하지 않은 채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예가 많다. 시골 농가 한구석에 마련된 김칫각이 신석시 시대의 모습이었듯, 고콜 또한 지금껏 남아 있는 구석기 시대의 모습이다"

 

"집을 짓는 것도 지신에게 땅을 빌려서 이용하는 것인데, 집을 짓자면 땅을 파거나 터를 다지는 등의 훼손 행위가 동반되었으므로 반드시 먼저 지신을 달래고 고사를 지내야 했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동티' 혹은 '동티 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동토(動土)'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집을 지을 때 땅을 잘못 건드려 지신이 노해 말썽이 나는 일을 말한다. 땅을 파헤치는 일은 매우 불경스럽고 위험한 일이어서, 고대 유럽에서는 농경을 위해 쟁기질을 하는 것조차 금기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건축물은 벽체와 지붕, 각종 설비로 이루어진 물리적 구조체인 동시에 사회적 의미의 총체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예를 들어 보아도 그것은 산업혁명의 사회적 산물이며, 신흥 공업도시에 몰려든 공장 노동자에게 양질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면서 또한 교묘하게 노동자를 통제하는 역할도 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조합을 결성하여 노동 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행하곤 해서 여간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영국정부는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면서 20~30년 장기 할부제도를 도입하여 단 한 달이라도 할부금을 내지 못하면 집에서 내쫓기도록 만들었고,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도입하여 파업을 하면 임금을 받지 못하게 했다. 파업을 하면 임금을 받지 못한다, 임금을 받지 못하면 할부금을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국 노조는 정당한 권리로 보장되어 있는 파업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된다. 즉 아파는 철근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물리적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노동자에게 양질의 주거 공간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탄압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사회적 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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