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 - 질문하고 토론하고 연대하는 ‘프랑스 아이’의 성장비결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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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딸 칼리가 쓴 프랑스 학교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목수정이 쓴 딸 칼리의 프랑스 학교 이야기다. 영국 대안학교를 다닌 학생이 쓴 책 '서머힐에서 진짜 세상을 배우다'나 스웨덴 공립학교를 다닌 학생이 쓴 '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처럼 학생의 관점이 궁금해서 읽은건데 낚였다ㅋ 그러나 결과적으론 좋은 선택이었다. 덕분에 응팔을 늦게나마 보게 된 행복까지.


예전엔 홍세화를 통해 프랑스를 알았는데 요즘은 목수정을 통해 그렇다. 목수정은 아버지가 아동문학가 목신일(이고 할아버지 독립운동가 목치숙인 뼈대(?)있는 집안 출신이다

 

이 책에서 목수정을 통해 프랑스 교육을 알게 된다. 독일 교육은 박성숙을 통해, 덴마크는 오연호, 핀란드는 후쿠다 세이지, 영국은 닉 데이비스, 미국은 마이클 애플을 통해 그러한 것처럼.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듯.

 

프랑스 교육을 정리하자면 학생들을 혁명으로 탄생한 공화국의 시민으로 교육시킨다는 점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밑줄>

프랑스에서 신생아는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첫날부터 자신의 방에서 혼자 자야 한다.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병을 물려줄 때도 엄마들은 아이와 눈을 맞추며 곧 네가 원하는 젖병을 줄 테니 기다리란 말을 차분하게 해줄 뿐, 젖병을 들고 숨 가쁘게 아이에게 달려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의 메시지를 간파했음을 알아차리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기다리는 기적이 눈앞에 펼쳐진다. 밤이 되면 아이가 부모와 떨어지기 싫어 울어도 그냥 내버려둔다. 그리하여 기필코 아이가 저녁 7~8시에 잠들게 한다. 초보 부모들에게 이 노하우들을 충실히 전수하는 사람은 소아과 의사들이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면 프랑스 부모들은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리고 선택의 범위를 제시한다. 아이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어른의 언어로 계속해서 설명한다. 프랑스에는 유아에게만 쓰는 특유의 단어가 없다. 아이도 처음 말을 배울 때부터 어른들의 말을 따라 한다. 아이들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기 위해 어른들 세계에는 없는 배꼽인사 같은 것은 시키지 않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최고의 교육이라 믿는다. 낯선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접촉과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만큼 사람을 풍요롭고 깊게 해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몸 안에서 키워내 출산을 할 뿐 아니라 젖을 먹이고, 몸을 주는 지혜를 풀어내 어린 생명체를 길러내는 여성의 능력을 갖지 못한 남성들은 그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개척했다. 예를 들면 사냥 같은 것. 과거엔 들짐승을 사냥했다면 지금은 고객을, 기업을, 돈을 사냥하고, 여성들과 비교해 그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다. 전 세계 노동인구의 3분의 2는 여자지만, 전 세계 부의 100분의 1만이 여성의 소유라는 유엔의 여성 지위에 대한 보고서는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 사냥 실력을 가졌는지를 입증해준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들은 자신들이 능력을 발휘하는 그 분야에서 실력을 입증하는 것만이 유용한 존재의 의미를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패러다임을 몰고 가버린 데서 비극은 발생한다.

 

당연히 있어야 할 위인전이 눈에 띄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라는 흔한 질문이 없다. 리스펙트(respect)라는 영어 동사와 비슷한 프랑스어 단어 레스펙테(respecter)의 의미는 영어의 맥락과는 조금 다르다. 영어의 리스펙트가 누군가를 우러러보고 따르는 비스듬한 경사의 상하 개념 속에서 작용하는 존경의 감정이라면, 프랑스어의 레스펙테는 수평적인 관계선상에서 누군가를, 그러니까 그의 말과 생각, 의견을 신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학교에서는 전교생에게 매주 한 권씩 새로운 책을 읽게 한다. 독서는 전교생이 학년과 반에 관계없이 해야 하는 공통의 숙제인 셈이다. 전체 학급이 한주일에 한번은 사서 교사와 도서관에서 수업을 한다. 아이들은 사서 교사와 함께 둘러 앉아 자신들이 그 주에 새로 읽은 책을 소개한다. 아이들이 서로에게 책을 권하고 돌려보는 일이 화제의 중심이 된다. 도서관의 학교의 심장이 된다.

이곳은 텔레비전이 없는 집이 흔하고 많은 학부모가 아이들의 텔레비전 시청에 부정적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tv 프로그램이나 가수 이야기보다 그들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담임 교사 프랑수아즈는 그 책을 당장 불태워버리세요. 집에서 문제집을 가지고 아이에게 추가적인 학습을 시키거나 선행학습을 시키는 행위야말로, 공부에 대한 아이들의 호기심을 앗아가고 공부를 지켜운 것으로 만드는 최적의 방법이란다.

 

프랑스에서는 서너 살 때부터 생활 태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시킨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등의 기본적인 언어 습관은 물론, 식탁에서는 전식과 본식, 후식 사이의 엄격한 순서를 지키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간식은 하루에 한 번, 늘 정해진 시간(4시에서 4시 반경)에 엄마가 골라준 건강한 간식들을 먹는다. 하루 종일 군것질을 입에 달고 사는 일은 결코 허락될 수 없으며, 아이들이 용돈을 들고 마트에 가서 제가 먹고 싶은 과자를 마음대로 사먹는 일도 가능하지 않다. 놀이를 마치면 장난감을 정리하고, 자기 전에는 부모의 얼굴에 뽀뽀를 하며 잘 자라고 인사하며, 그리고 제시간에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생활의 리듬이 완전히 습관으로 정착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훈련된다. 얼핏 보면 프랑스는 자유가 넘실대는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자유는 가정, 탁아소, 학교, 이웃, 친척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이처럼 단단한 틀을 만들어주고 나서야 그 틀을 준수하는 선에서만 허락된다.

 

프랑스 학교에는 없는 것이 참 많다. 먼저 입학식과 졸업식이 없다. 대학교만이 아니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각자에게 부여되는 번호도 없다. 교사가 이름 대신 번호로 아이들을 부르는 일은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우등상, 효행상, 개근상을 주며 누군가의 빼어남이나 성실함을 고취시키고 만방에 알리는 조회 시간도 없다. 사생대회나 백일장처럼 그림과 글짓기에서 자웅을 가르는 일도 없으며, 교내 합창대회를 열어 반끼리 치열한 승부를 가르는 일도 없다. 엄숙한 교가도 없다. 이 나라 모든 공립학교의 교훈은 자유 평등 박애. 교복도 없고 내가 알기론 촌지의 관습도 없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할 결정적인 단어, ‘전교권이 없다. 등수가 없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엄격하기로 소문난 4구의 샤를마뉴 중학교에 갔는데도 역시 등수는 없었다. 고등학교에 가도 마찬가지다. 중학교에서부터 학업에 대한 평가가 축하합니다”, “잘했습니다”, “열심히 하세요등의 등급으로 매겨지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이들이 얻은 점수대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점수는 좋았으나 학습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는 점수가 좋아도 축하합니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등수의 부재가 베푸는 미덕은 무한하다. 먼저 아이들은 쉽게 우정을 지킬 수 있다.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면, 공부를 잘하는 것은 한 아이가 갖는 특징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어린 시절 아이는 부모를 영웅으로 생각한다. 내 부모는 뭐든 모르는 것이 없고 나의 모든 꿈을 실현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에 대한 시선을 달라진다. 부모가 허점투성이의 평범한 어른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도 한다. 그러나 신뢰와 사랑으로 구축된 부모와 자식 사이라면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이르러도 막말을 한다거나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사춘기를 앓는 아이는 부모의 부족했던 애정에 신호를 보내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모든 신호를 유심히 관찰하고 반응해야 한다.

행복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 행복을 유지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아이가 지금 행복한가. 이 아이가 계속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할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평소에 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야 한다. 부모와 교사는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프랑스 학교에 가정 과목은 없는 대신, 남녀 모두 기술 과목을 배운다. 요즘 아이가 열성을 다해 몰두하고 있는 기술 수업의 프로젝트는 나무 위에 짓는 오두막집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저마다 로빈슨 크루소가 되는 것이 꿈이기라도 한 듯, 숲 비슷한 곳에 가기만 하면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나무를 모아 오두막집을 지으려고 달려든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여성 엔지니어, 건축가들이 이 나라에 있는 거구나 싶다.

 

프랑스 공교육 속에서는 크로스오버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아카데믹한 틀 안에서의 교육 내용과 현실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사이의 경계가 또렷하지 않다. 이른바 진도를 나가는 와중에도 우리가 현실에서 중요하게 포착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면 서슴지 않고 문을 열어 거기에 다가선다.

교과과정에 갇히지 않고, 입시에서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이 없기 때문에 허용되는 일상적 일탈이다. 세상과 쉽게 통하는 가르침이기에 학교는 아이들에게 유용한 곳이라는 신뢰를 얻게 된다. 학원이 끼어들 틈이 없다. 교사가 교과서대로만 진도를 맞추는 대신 현실의 흐름에 따라 경계를 넘나들며 크로스오버를 하는데 어떤 학원이 여기에 장단을 맞출 수가 있겠는가

프랑스에서는 사교육을 위한 학원 시스템은 없지만 가정교사는 있다. 가정교사의 역할은 한정적이다. 부모도 교사도 아닌 제3자로서 일시적인 슬럼프에 빠진 아이에게 로프를 던져주어 나오게 하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가 안심하기 위한 보험용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프랑스 교육에 근본적으로 학원시스템이 불가능한 것은 학교에서 교사마다 다른 것을 가르치는 까닭이다.

 

프랑스 교육부의 철학 바칼로레아 담당 교육감은 이 시험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철학 수업을 통한 우리의 목표는 학생들이 생각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다. 하나의 인간이자 시민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그들이 건설적인 생각의 자유를 획득 공화국 프랑스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길 바란다

나만의 사고 체계, 세계관 없이 세상에 발을 딛는 청년에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대세를 좇는 삶이다. 자기 세계관이 없으면 가장 번성한 종교인 자본주의가 그들의 사고를 점령하여 그들에게 대세를 좇게 하며 결국 박 터지는 경쟁 속에서 영혼을 탈취당할 것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잘 파악하여 그가 요구하는 정답을 맞히는 능력을 갖춘 체제 순응적인 엘리트를 길러낼 것인가.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세상의 모순에 과감히 문제를 제기하는,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될 시민들을 길러낼 것인가.

 

요즘처럼 마크롱의 대학 개혁 반대 집회나 철도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 투쟁이 진행되는 기간이면 망아지 같던 고등학생들이 중학생과는 다른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들은 전국 조직을 가진 고교생연합회를 통해 파업을 결의하고 교문에 쓰레기통을 쌓아 봉쇄한 후 거리를 향한다.

교사들의 경우에도 이런 집회와 파업이 있는 날 교원노조를 통해 함께 다수가 파업을 하며, 이 파업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교원의 지위에 위협이 가해지는 바 없듯이, 학생들 역시 전체 투표를 통해 결의된 파업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프랑스 고교생들의 정치 참여는 전혀 놀라운 현상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를 복기해보면, 금당 알 수 있다. 17~18세는 가장 빨리 피가 끓어오르고, 자신을 둘러싼 사회 조직에 눈뜨기 시작하는 나이다.

일제에 저항했던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 중 한 사람인 유관순을 떠올려보자. 그녀는 당시 이화학당에 다니던 열일곱 살의 소녀였다. 1929년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광주학생운동도 학생들이 주도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대규모 항일운동이었다.

1960419혁명을 촉발시킨 것도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시위에 참여했던 마산상고 학생 김주열의 죽음이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에 수많은 고교생 시민군이 있었음도 알고 있다. 지난 촛불 정국 때 어른들이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질타에 머무르던 순간, 가장 먼저 혁명정부라는 어휘를 들고 거리를 누볐던 사람들은 바로 고등학생이었다.

지난 수십년간 건강한 사회 작동에 필요한 학생들의 참여를 입시 지옥에 철저히 가둔 한국 사회가 오히려 진단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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