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책상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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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을 돌아보면, 그것은 항상 내 것 같질 않다.
기억의 불확실성이라는 희부연 난막에 둘러 싸인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나'가 아닌 약간의 이질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 어쩌면 헤세의 말마따나 인간은 모두 알을, 그 속의 난막을 찢고, 껍데기인 알을 깨고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별반 큰 변화 없는 단조로운 성장이 아닌, 부화나 변태에 버금가는 고통의 시간이 사람마다 자라온 과거 어느 곳엔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그래서 항상 유년은, 차라리 햇빛 쨍한 날 언뜻 겪는 데자뷰보다도 낯설고 희부옇다.

여기, 한 작가가 있다.
그의 성장통은 조금 유별났던 듯, 쉰 일곱의 화자는 열 여섯에서 스무 살 사이, 과거의 자신을 '그'라고 자아와 분리시켜 칭한다. 그저 희부연 정도가 아니라..... 아니, 시간의 켜나 기억의 불확실성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으로, 자신이 사랑했던 어린 '그'는 죽고, 지금의 자신은 또 다른 비겁한 껍데기 쯤으로 여기는 듯 하다.
작가란 온 힘을 다 해 짜낸 한 작품이면 족하다고 믿는 어린 '그'가, 삼십 년이나 작가라는 이름을 걸고 비척거리는 자신을 보면 경멸할 것이라며 괴로워 한다. 
하지만 왜....?
독자가 넘어다 보는 어린 '그'는 사실 그렇게 절절히 사랑할만큼 매력적인 존재는 아니다.  탄생의 순간부터 생의 독기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그', 항상 자살, 혹은 타살의 충동에 시달리는 '그', 창녀와 어머니 사이에 확실한 금을 긋지 못하는 '그'는 그저 태생이 심약하고 비관적인 소년이다. 헌데 그런 '그'를 단순한 실패자로 규정짓지 않고, 살을 에이는 듯 절절한 감상을 전해주는 존재로 승화시키는 힘은, 어찌 보면 화자인 작가....작가의 '그'에 대한 사랑....직설화법으로 풀어내자면, 유년에 대한 자기애이다.

초반에는 몰입해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 화자와 주인공의 관계가 혼란스러웠고, 즉물...선험...언필칭....등의 자주 쓰이지 않는 한자어에 야지랑스럽다, 얄망궂다 같은 낯선 우리말까지 더해져 발목을 붙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열 일곱의 그에게 다가서고, 철인동 창녀촌의 육자배기 가락이 얽혀들기 시작하자 책장 넘기는 데 탄력이 붙더라. 아무리 낯설어도, 일정 시간 이상 보대끼다 보면 정 들고 익숙해지기 마련인지.... 이제,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단순히 좋았다 혹은 싫었다는 평은 불가하다. 하지만, 읽게되어 참 다행스럽다는 은근한 뿌듯함은 남는다.

쉰 몇 살 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에게 건네고 싶다.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신산하고 아픈 기억이지만, 옛 기억을 버무리면 삼키기 힘든 '그'의 거친 속내도 꿀꺽, 수월히 넘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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