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다가, 가슴에 와 박히는 문장을 하나 만날 때....그만한 기쁨이 또 있을까? 게다가 그 문장이, 그저 써먹을만 한 겉멋 든 잠언, 그 이상일 때.  
내 머리, 혹은 가슴을 배회하던 모호한 상념....혹은 시간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문장을 찾아냈을 때, 그만한 기쁨이 정말 또 있을까?
그런 이유로 난 전경린을 좋아한다. <나>를, 특히 <나에게 있어 사랑>을 정의하는 많은 부분이 그녀의 문장을 빌어 명명되었다. 그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뼈 아프게 사랑을 앓으며 깨달아 가는 것들을, 나는 책장을 넘기는 수고만으로 함께 배웠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유려하고 예민한 문장들을, 사랑했다.

헌데....이 책을 넘기며 문득 깨닫는다.
아름다운 문장을 모두어 놓았다고 아름다운 소설이 되는 건 아니다.  
문장은, 글은 그저 매개일 뿐. 소설을 이루는 것은 그 안에서 울고 웃는 사람, 사람들이다.

이번 소설에서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나보다. (아니면...아껴둔 문장이 바닥 났던가.)
그래서 사람을 낳고, 그 사람들을 시켜 이야기를 얽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몇 몇 배우를 캐스팅하고 그네들에게 작가의 문장을 그냥 낭독시킨 듯 하다.

"기억나? 로댕의 <입맞춤>이라는 조각작품 말이야. 난 그 작품이 무서워. 그 앞에 서면, 내 삶이 전부 가짜 같아. 허깨비인 듯 열등감에 빠져. 그게 뭘까."
"돌아왔을 때, 처음에 알아봤다. 누가 뭐래도 네 삶을 살 것 같은 힘이 보여."
"욕망이란 이상해요.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순교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이 이야기 속에서는....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는 여동생이 언니에게, 노인성 우울증을 앓는 평범한 어머니가 딸에게,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이 연인에게, 저런 식으로들 이야기 한다. 뭔가 서걱대는 이질감.
이야기 속 사람들이 살아있질 않아...! 대부분의 자매는, 모녀는, 연인은 이렇게 정련된 단어로 철학적인 대화를 하진 않아....! 그런 외침이 밀고 올라와 미간이 모아졌다.  그냥, 공허한 말잔치 같아......

삶을 내리 관통하는 명문은, 책을 통틀어 두어 개 정도가 적정량인걸까? 책 어느 페이지에나, 책 속 누구나 다 배역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풋내기 배우처럼 현란한 문장을 줄줄 읊는다면....아니다. 전경린의 언어를 좋아하지만, 이 책은 어쩐지 유리로 만든 밥상...같다.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먹을 수는 없는. 삶이 아닌 그저 '말'이 담긴.

자신의 진실을 알기란 정말 어려워. 스스로 말이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도 정말 어려운거야.
이상한 일이었다. 상처의 이름만 알아도 적대감은 마술처럼 풀려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전경린의 말들은 여전히 매혹적으로 빛난다. 사랑과 삶의 공공연한 일상을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그래서 진부하고 느른한 나의 일상마저도 살풋, 빛나는 듯 느끼게 하는....작가의 능력은 여전히 탁월하다.
고로! 섣부른 실망은 없다.^^ 나와는 연이 닿지 않은 작품인게지. 이번 상에서는 실컷 눈요기한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번 잔치에서는 정말 배부른 먹거리가 넘쳐나길...한결같은 기대와 사랑으로,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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